사실, 인간의 삶은 욕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 피곤할 때는 수면에 대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이 공공의 선과 상충되는 순간 욕망은 범죄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찌 보면 법이 만들어지고 종교가 만들어진 것도 한계가 없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절제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공고하게 형성된 욕망에 대한 인식, 내지는 터부가 언젠가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종교적으로도 위배되지 않으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욕망은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사치와 허영으로 인식되던 행위들이 이제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고 할까? 하나의 예로 2006년 즈음 밥값과 맞먹는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생겨나며 ‘된장녀’라는 신조어로 희생양이 됐던 여성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밥값에 상응하는’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있고, 또 그것을 두고 뭐라는 이들도 없다. 명품가방이나 외제차 역시 ‘능력이 되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조금 특별한 상황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밥값 수준의 커피 값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제차, 명품가방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감히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견이 있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가격이 올라가는 국산차과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외제차를 비교했을 때 조금만 더 무리하면 외제차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무조건 비싸다는 생각 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실제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인식도 변하게 마련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대비해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1980~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에는 꽤 이중적인 면이 있었다. 작은 소형가전제품 같은 것에는 소위 일제와 미제라는 것이 프리미엄처럼 여겨지며 소유욕을 자극했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외제차만큼은 ‘그림의 떡’ 내지는 허영과 사치의 상징으로 치부됐던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호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부정적인 인식의 차이는 결국 ‘능력’ 즉 경제력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그 입장이 되면, 혹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비난은 긍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다
욕망에 대한 언급은 이렇듯 아직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데 최근 한 대학교수가 직접적인 욕망 추구와 관련한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욕망과 더불어 찬반의 의견이 분분한 ‘자기계발서’를 함께 엮어 놓았다는 것이다.『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는 책 제목 역시 꽤나 직접적이다. 저자인 최성락 교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꽤 괜찮은 직업으로 손꼽히는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가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은 이유는 뭘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봤을 때 이 정도 경력이면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모습은 일반적인 학력에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소위 명문대 나오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곡 경제적 부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러한 조건들은 잘사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단언컨대, 내 삶에 경제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은 이후부터였다.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도 살 수 없었던 고급 외제차를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대로 살아본 지 2년 만에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을 겪은 후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최성락 교수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그가 책에서 이야기했듯, 그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평범한 회사원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그가 쏟아 놓는 이야기들은 놀라웠다. 우선은 그 역시도 몇 해 전까지는 자기계발서를 머리 식히는 정도로 읽는 사람이었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것. 그러나 한권이 두 권이 되고 수십 권이 되면서 점차 의문이 생기게 됐다. ‘과연 가능할까?’란 의문은 실천으로 이어졌고 그 변화는 놀라웠다고 한다. 그는 현재 외제차를 타고(아내의 독단(?)에 의해 벤츠는 포기하고 같은 가격의 아우디 A6를 샀다) 타워팰리스에 살며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불과 3~4년 전에는 모두 없었던 것들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는 그간 교수님이 ‘벤츠’를 사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결과물을 내 놓은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어떤 반응들을 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처음 결심을 했을 때 주위 사람에게는 거의 말하지 않았어요. 아내에게 말한 것이 전부죠. 그 외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내가 어떻게 해서 벤츠를 사겠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닐까요? 결국 아우디 A6였지만(웃음), 차를 사게 됐을 때도 그렇고 타워팰리스에 입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뤄진 다음에 문제가 되더군요. 아내야 내가 하겠다고 미리부터 예고를 해 놓았던 터라 괜찮았는데, 양가 부모님들은 직접적으로 반대를 하시더군요. 한 마디로 낭비고 사치라는 거죠. 제가 외제차를 사고, 타워팰리스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단순히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을 하고,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이 이뤄진 것뿐이에요.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하고 싶다고 다 하면 부작용이 생기더군요.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외제차 타봤으니 일반적인 차로 바꿔도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세요(웃음).
아내 분께서 처음 교수님 말씀을 들었을 때도 믿지 않으셨을 듯한데요?
그렇죠.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해요(웃음). 사실 저 역시도 처음부터 정말 이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저 ‘그것이 목적이다’,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실천해 본 거죠. 하지만 외제차를 타고, 타워팰리스에서 살고, 토익 시험 900점을 넘겠다는 목표 중에 2개가 이뤄졌어요. 토익 시험은 아직 현재진행 중인 사항이지만 그 와중에 또 다른 목표를 세운 것들도 이뤄냈죠. 확신이 섰던 것은 타워팰리스에 입주할 때 즈음인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메커니즘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벤츠’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뤄내셨던 과정은 놀랍지만, 그 경험을 책으로 쓴다고 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셨을 듯 한데요. 자기계발서에 대한 사회인 인식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일단 예전부터 전공과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은 익숙했기 때문에 집필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에 자기계발서에 대해 ‘쓸데없는 책이다’, ‘사기다’라는 식의 책이 나온 것을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견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까요? 자기계발서의 내용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사람이 알아야 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말과 같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거든요. 단, 단순히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효과가 있고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죠. 저도 그 이전에는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는 않았어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꾸준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생겼고 실천을 하고, 진짜로 이뤄낸 거예요. 저 역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전통적인 자기계발서들은 다들 유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하라, 목표를 구체화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라, 꿈을 종이에 적어라 등이 가장 공통으로 등장하는 말이다. …(중략)…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자기계발서의 주요 내용은 과학’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과학에서 논의되고 증명된 것들이라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목표를 설정하라, 목표를 구체화하라,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라 등의 말은 ‘경영학’적이다. 경영학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말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심리학에 속한다. 심리학에서 그 효과가 충분히 증명된 말이다. 자기계발서에 쓰인 말은 그저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경영학과 심리학 교재를 알기 쉽게 풀어쓴 내용들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실천하면 바뀐다
믿고 실천하라,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교육과 학습에서 적용되는 진리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그간 자기계발서를 너무 기분전환용으로 대한 것은 아닐까 싶다. 다시 ‘믿고 실천하라’, 이 말이 자기계발서와 결합했을 때 결과는 놀랍다. 실제 최성락 교수가 아니더라도 ‘믿고 실천해서’ 놀라운 목표를 달성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경험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자기계발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실천을 하고 나서 교수님이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요?
내적으로는 일단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요? 이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돈이라는 것, 잘사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니 행동 역시도 그 동안 제가 취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더군요.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교수님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되시는지요?
일단 시간상으로 희생하는 부분이 있죠. 더 많은 연구 과제를 수행해야하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시간 이든 무엇이든 콤팩트하게 사용하게 되더군요. 굳이 희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어려움에 해당되는 건 일단 돈 벌기는 어렵다는 거죠(웃음).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버느냐의 문제, 결국에는 그것이 해결돼야 하는 거니까요. 그 과정을 찾고 그걸 계속 시도를 하는 것의 연속이죠. 물론 시도를 계속 해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돈이 잃기도 하고, 시행착오가 있죠. 단, 노력과 시간을 기울인다는 것이 자신의 본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욕망, 그것이 문제로다
최성락 교수는 욕망에 대한 해법으로 ‘선’과 ‘탄트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선’ 스스로의 욕망을 지우고 쓸데없는 욕망이 이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반면 ‘탄트라’는 욕망을 해소함으로서 욕망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완전히 다른 방식이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이 성공과 돈, 명예와 같은 가치에 이 두 가지 방식을 이중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망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생각나는데요. 욕망을 없애는 방법으로 ‘선’과 ‘탄트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는데요.
저 역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탄트라의 개념을 보고 놀랐어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불교에서 욕망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욕망을 절제하는 것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욕망을 억제해서 정말 억제가 되면 괜찮지만 사실 그게 아니잖아요. 욕망은 억제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억눌려 있고 뭔가 숨어있고 가슴에 남아있는 욕망이 있어요. 그것은 언제든지 표출될 기회가 있으면 다시 나오게 되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그럴 바에 ‘탄트라’의 방식이 정신건강에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물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욕망은 억제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오긴 했지만,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봐요.
“탄트라는 욕망이 발생했을 때 그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욕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떡볶이를 먹고 싶으면 떡볶이를 먹는다. 그러면 떡볶이에 대한 욕망이 사랑진다. 마찬가지로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그냥 스테이크를 사 먹는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욕망을 없애고, 그럼으로써 욕망에 대한 콤플렉스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탄트라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탄트라의 방식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욕망의 충족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악을 구분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욕망이라고 봐야죠. 경제학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유무를 중요하게 봐요. 규제의 대상을 정할 때 피해 여부를 판단하거든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대적 박탈감 등 정신적으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면 규제가 필요하죠. 단,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봐요.
인간의 욕망은 끝없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한 없이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다보면 정신적으로 공허해진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요?
지금 욕망이 있으면서도 욕망을 달성해봤자 소용없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역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정신적인 평화를 얻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완전한 정신적인 평화,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경지라면 또 모르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의 삶은 하나의 욕망이 생기고 그걸 달성하고 또 그 다음 생기는 욕망을 추구하는 반복의 연속이에요. 욕망을 마음속에 품고 한탄하는 것과 욕망을 추구하는 것, 적어도 추구해서 달성을 한다면 다음 욕망이 생길 때까지 얼마간 달성한 욕망은 해소가 되는 거잖아요. 전 그게 정신적으로도 더 낫다고 생각해요. 외제차에 대한 욕망도 그렇죠.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하면 마다할 사람은 없어요. 이 얘기는 어찌됐든 누구나 그 안에는 표출하지 않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요?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문서를, 꿈을 이루고 성공을 잡으려면 자기계발서를 읽으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헌데 이 말은 인문서가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도 해석되는 듯한데요?
인문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높아지지만 잘 사는 법을 알 수 있게 하진 않는 듯해요. 물론 잘 산다는 것의 정의는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인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교수들이 그렇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욕망을 절제하지는 않거든요.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목적하는 게 있으면, 예컨대 어떤 분야의 자격증을 따고 싶다 그러면 그 자격증 관련 책을 읽으면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잘 살고 싶다 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야지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고요.
지금은 인문서로 인정받는 고전 중에서도 당대에는 일종의 자기계발서와 같은 것들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맞아요. 경영학의 목표를 잘 생각해보면 되요. 어떻게 하면 회사가 이익을 얻고 성공하느냐를 연구하는데, 이것의 주체가 개인이 되면 사실 자기계발서에 있는 원칙으로 귀결되거든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아요. 다만 세부적인 수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해야하나, 몇 개로 정해야 하나’와 같은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어요. 저도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하고 직접 쓰기도 했지만, 그건 책마다 다르더군요. 최선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책 한권으로 인생이 바뀐 케이스는 아니거든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공통점을 도출해 내고 조금씩 수정해 나갔죠. 제가 하는 말이 꼭 정답은 아니에요. 자신에게 맞는 성공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목소리 정도로서 의미만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최성락 저 | 아템포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혹은 학자들 중에는 소위 성공학이나 처세 관련 책을 제대로 된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이러한 비판과 타박은 과연 정당할까? 이 책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정리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문서를, 꿈을 이루고 성공을 잡고 싶다면 자기계발서를 읽어라!” 이 책의 저자 최성락 교수는 자신이 직접 자기계발서를 수년 간 읽고 이후 변화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자기계발서를 제대로 읽는 법에 대해 쓰고 있다. 경영학 박사이자 현직 대학 교수가 ‘자기계발서 예찬론’을 썼다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추천 기사]
- 정바비 “여름이면 하루키 작품을 한 번씩 읽어요”
- SNS를 통해 그려낸 청춘의 속내, 아사이 료 『누구』
-얼얼함에 대하여
- 소설가 성석제의 결핍과 호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