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라디오 DJ, 예능감 넘치는 종합 방송인까지 장윤주를 수식하는 단어는 갈수록 화려해진다. 2~30대 여성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몸매와 세계가 반한 워킹의 소유자지만 그녀의 노래는 놀랍도록 수줍고 여리다. 싱어송라이터 장윤주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심장으로 호흡하는 사람일까. 추위가 매서운 어느 밤, 한적한 카페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4년 만의 앨범이다. 그동안 음악 활동이 없었던 이유는.
방송 활동이나 다른 일도 많았고 사람을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부담도 있었고요.
2집 < I'm Fine >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
이번 2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지향하는 삶의 신조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앨범이에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았고 또 스스로에게 전달하는 힐링의 음반이 아니었나 싶어요. 「I'm fine」이라는 앨범 이름이 가진 의미죠. 주위에 사인 해 줄 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I'm fine, you're fine」이라고 써요. 그 말 속에는 지난 일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아프고 싶지 않은,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 서른 넘은 여자의 방어기제가 담겨 있죠. 두 번째 앨범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팬들에게 죄송해요. 계속 관심을 가져 주셔서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집에 비해 더 차분해진 느낌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20대는 왔다 갔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히피처럼 살았어요. 서울에 있기 싫어해서 매번 짐 가방 싸서 떠났죠. 현실에 만족하지 못 하고 멀리 있는 걸 찾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현재에 안주하지 못 해서 떠나고, 또 못 떠날 때는 우울해하고. 그렇게 살기에 그나마 좋다는 느낌이 1집 때에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라는 사실보다도 젊음이라는 즐거움이 더 많았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가까이에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내가 여자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변화들이 2집에 반영된 것 같고요.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1집은 만들고 나서 정말 안 들었어요. 오히려 데모 버전에 대한 미련이 더 많았어요. 물론 「Fly away」는 데모보다 훨씬 좋게 녹음되었지만 다른 곡들에 대한 미련을 당시에는 정말 못 버렸죠. 그래서 당시에는 앨범을 많이 안 들었는데 공연을 준비하며 최근에 다시 들어 보니 또 좋게 들려요. (웃음) 2집 같은 경우는 프로듀서가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의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만의 온전한 색깔이 아니에요. 프로듀서 김정범의 작품이라고도 얘기하고 싶어요. 전체적인 사운드 디렉팅이나 가이드 작업이 있었기에 내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또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죠. 최선의 선택을 모아서 한 앨범이라고 생각하기에 만족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인지도나 피드백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지만.
4년의 공백기 동안 음악 시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2집은 발매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았어요.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음악 시장의 측면에서나. 만들어도 잘 몰라주는 인지도도 그렇고 음반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던 기획사도 그렇고 제가 부딪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랬기에 프로듀서를 기용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죠. '내가 해야 돼, 해야 돼'하는 마인드만 있던 1집 때와 비교하면 2집은 의지할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프로듀서를 기용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1집 < Dream >에는 보이싱을 편곡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막상 들어보면 내 노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았죠. 2집을 작업할 때는 보이싱이나 코드 진행 같은 부분을 안 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윤주만의 느낌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어요. 작업도 다 원 테이크로 했고요.
프로듀서 김정범은 어떤 사람인가.
푸디토리움(Pudditorium)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는 실력 있는 사람이에요. 우선 서로 감성이 잘 맞았어요. 원래 슬프면서도 따뜻한 감성이 있는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잔잔하면서도 포근한 그런 애잔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잘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어 정재형 씨 같은 경우는 예전 음악들을 보면 어둡고 슬프기만 한데 김정범 씨 음악에는 슬픔과 아련한 행복이 동시에 존재하잖아요. 감정 코드가 비슷하죠.
프로듀서를 직접 고른 것인가.
직접 골랐어요. 정재형 씨나 이적 씨 혹은 정원영 씨 등 주위에 음악 하는 분들이 많아 음악들을 다시 들어보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 사람은 어떨까 해서 김정범 씨의 음반을 접하게 됐어요. 후에 라디오 게스트로도 초대했었고. 장윤주라는 사람이 음반 프로듀서로 자신을 기용한 것에 대해서 김정범 씨 스스로는 상당히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나얼과도 작업한 곡이 많다.
1집 「Fly away」 때도 직접 보컬 디렉팅을 해 줬어요. 당시에 음반 작업은 같이 안 했는데 2집을 제작하면서 디렉팅을 해 준다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어요. 곽윤찬 씨 < I Am Melody >라는 가스펠 앨범을 만들 때 나얼 씨와 같이 작업했는데 그때 목소리에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웃음) 의미를 모른 채 지내다가 조금씩 깨닫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뒤였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력을 품고 있고, 또 싱그럽고. 나얼 씨라면 제 목소리를 더 멋지게 해 줄 것 같아서 같이하게 됐죠.
나얼의 보컬 디렉팅은 어땠나?
나얼 씨와 작업하면 보컬 톤이 한 톤으로 유지돼요. 노래를 길게 부르다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억지로 어렵게 가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끌어내는 사람이라 그 덕분에 호흡이 길어진 것 같아요. 「오래된 노래」와 「The field」, 「가을바람」에서 디렉팅을 받았고 나머지 곡은 김정범 씨와 작업했어요. (김정범 씨 디렉팅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김정범 씨가 오히려 더 기술적이고 테크닉적인 부분에 집중했어요. 결과의 측면에서는 1집보다 훨씬 만족스러워요. 더 잘 불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웃음)
「아침이 오면」 Part 1과 Part 2는 상당히 실험적인 트랙이다. 재즈로 시작해 록으로 끝나는 전개도 독특한데 어떠한 기획으로 출발했나?
「아침이 오면」 같은 경우는 사랑에 대한 분노의 사운드를 넣고 싶었어요. 처음 만들 때부터. 데모의 경우에는 파트 1과 파트 2가 합쳐져 있는데 나중에 녹음하면서 나눴어요. 김정범 씨 의견이었어요. 다른 곡들에 비해서 더 세죠. 실험적이고. 다른 사운드들과 같이 묻힐까 하는 고민보다도 조금 더 갈 거면 아예 가 보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타이틀 곡 「I'm fine」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난 톱 모델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여자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걸 좋아하고, 당신은 뭘 더 해 줘야 될까 생각하는데 난 이 정도로도 좋다는 솔직한 마음이죠. 연애를 하면서도 인간 장윤주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도 모델로서의 어떠함 때문에 더 끌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만나보면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모델은 연기에 불과한데 그 모습을 더 좋아한다는 게 상처와 충격이었죠.
그게 장윤주 그 자체이지 않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는 것은 싫어요. 모델은 인간 장윤주의 한 부분일 뿐이죠. 나는 더 평범한 사람이고 보통의 사람인데 자꾸 모델의 이미지로만 바라보는 거잖아요. 모델이기 전에 나도 한 사람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자로서 서러운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직업적인 영향이 강해지니 ‘나는 없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건 나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에요. 일부를 전부로 해 달라는 것은 못 할 짓이에요. 사실 전 아무거나 다 잘 먹는데. (웃음)
그렇다면 장윤주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것인가?
모델 이미지를 벗기 위한 생각이라고는 절대 해 본 적이 없어요. 뮤지션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도 결국 모델의 이미지로 깊게 남겠죠. 주위에 이소라 씨나 홍진경 씨를 봐도 방송인으로 사업으로 성공했지만 결국에는 모델 이소라나 모델 홍진경이라는 이름이 많잖아요. 그래도 이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모델로 유명해진 케이스고 그 유명세로 방송에 올랐으니까. 주위의 톱 배우 출신 방송인들 보면 모델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벗어야 배우로 성공하고 못 벗으면 성공 못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억지로 벗으려면 오히려 부작용이 나올 것 같아요. 모델로 얻었던 이미지는 계속 가져가려고 해요. 전에 차승원 씨도 제가 여기저기 나오는 걸 보고 ‘네 정체성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 때도 모델이라고 대답했죠.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꿈이었나.
먼저 언니에게 음악을 배웠어요. 교본 말고 코드부터 배우고 음악도 따라듣고 혼자 쳐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대학교 가서는 영화과였는데도 정원영 교수님 음악 수업을 들었죠. 20살에는 토이 뮤직비디오 촬영하면서 유희열 씨를 만났고 그러면서 이적 씨, 정재형 씨 또 메이트의 임헌일 씨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주위에 계속 음악이 있었던 것 같네요. 피아노 교습도 1년 정도 배웠고요.
앨범의 피아노 파트는 혼자 다 연주한 것인가.
합주는 세션이고 혼자 하는 것은 다 스스로 쳤어요. 데모는 직접 치면서 녹음했고.
뮤지션 장윤주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음반을 꼽으라면?
원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언니가 듣던 공일오비(015B) 테이프. 근데 직접 산 앨범은 스탄 게츠(Stan Getz)예요. 어렸을 때 스탠다드 재즈를 들어보고 싶어서 테이프 가게 아저씨한테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주셨던 게 < Getz / Gilberto >였죠. 처음 듣는 앨범이었는데 어딘가 익숙하고 좋았어요. 그 다음에 갔을 때는 보컬 없는 앨범을 부탁드리니 쳇 베이커(Chet Baker) 연주 앨범을 주시더라고요. 돈을 주고 직접 샀던 앨범이 재즈 보사노바라 그 장르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어요.
뮤지션으로서 롤 모델은?
정말 많아요. 최근에는 김정범 씨에게 소개받은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라는 브라질 뮤지션에게도 관심이 많고 미국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Carla Bley)도 멋있어요. 음악뿐만이 아니라 룩(look)도 그렇고. 제인 버킨(Jane Birkin)도 좋아요. 올해 내한 공연을 갔더니 음악이 좋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심수봉 선생님이나 양희은 선생님 등. 20대 초반에는 심수봉 선생님 정말 좋아했어요. 얼마 전에 같이 공연했던 조원선 씨도 롤러코스터 때부터 좋아했고. 깊이가 있는 뮤지션이잖아요.
첫 앨범은 어떻게 내게 된 건가?
처음에는 앨범을 낼 마음이 없었어요. 「Fly away」를 책이랑 같이 냈던 것처럼 원래는 책에다 넣을 앨범을 만드는 거였는데 주위에 이적 씨 정재형 씨한테 들려주니 왜 이걸 책으로 내느냐고 막 그러는데. (웃음) 준비가 안 돼서 지금은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분들이 나중에 다시 하려면 못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1집은 그렇게 주위의 조언으로 낸 앨범이죠. 만들고 나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 곡들을 지금 냈으면 또 언밸런스한 부분이 있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 때 내기 적절한 앨범이었죠.
장윤주라는 뮤지션의 인지도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뭔가 섭섭한 마음이 들죠. 앞으로도 계속 할 건데. 모델로서의 이미지가 덮여 있기에 음악 전문 프로에 나가도 날 뮤지션으로 봐줄지 의문이에요.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민이죠. 사람들이 내가 스타일 강의를 한다면 많이 올 텐데 음악 공연을 한다면 그것보다는 덜 하지 않을까라는 식의 생각도 해 봤고요. 공연할 때도 관객석 반응이 두 가지예요. ‘와, 모델 장윤주다’하는 식의 신기하다는 것 하나랑 ‘네가 음악을 한다고? 곡을 네가 다 썼다고?’하는 식의 다른 하나. 그런 반응 때문에 1집 때는 무대 위에 있다가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 정도로 당황했죠.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만이, 장윤주라는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뮤지컬 같은 건 아니고 진짜 나만의 공연.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앨범이 한 번에 팔렸던 1집보다는 반응이 늦어요. 1월에 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서울이랑 부산 공연을 시작하면 반응이 어떻게 올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크게 기대 안 해요. 그래도 계속 우려는 되죠. 어떻게 봐줄까. (웃음)
4년 만의 앨범이다. 그동안 음악 활동이 없었던 이유는.
방송 활동이나 다른 일도 많았고 사람을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부담도 있었고요.
2집 < I'm Fine >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
1집에 비해 더 차분해진 느낌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20대는 왔다 갔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히피처럼 살았어요. 서울에 있기 싫어해서 매번 짐 가방 싸서 떠났죠. 현실에 만족하지 못 하고 멀리 있는 걸 찾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현재에 안주하지 못 해서 떠나고, 또 못 떠날 때는 우울해하고. 그렇게 살기에 그나마 좋다는 느낌이 1집 때에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라는 사실보다도 젊음이라는 즐거움이 더 많았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가까이에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내가 여자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변화들이 2집에 반영된 것 같고요.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1집은 만들고 나서 정말 안 들었어요. 오히려 데모 버전에 대한 미련이 더 많았어요. 물론 「Fly away」는 데모보다 훨씬 좋게 녹음되었지만 다른 곡들에 대한 미련을 당시에는 정말 못 버렸죠. 그래서 당시에는 앨범을 많이 안 들었는데 공연을 준비하며 최근에 다시 들어 보니 또 좋게 들려요. (웃음) 2집 같은 경우는 프로듀서가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의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만의 온전한 색깔이 아니에요. 프로듀서 김정범의 작품이라고도 얘기하고 싶어요. 전체적인 사운드 디렉팅이나 가이드 작업이 있었기에 내가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또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죠. 최선의 선택을 모아서 한 앨범이라고 생각하기에 만족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인지도나 피드백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지만.
4년의 공백기 동안 음악 시장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2집은 발매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았어요.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음악 시장의 측면에서나. 만들어도 잘 몰라주는 인지도도 그렇고 음반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던 기획사도 그렇고 제가 부딪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랬기에 프로듀서를 기용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죠. '내가 해야 돼, 해야 돼'하는 마인드만 있던 1집 때와 비교하면 2집은 의지할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프로듀서를 기용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1집 < Dream >에는 보이싱을 편곡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막상 들어보면 내 노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정말 많이 받았죠. 2집을 작업할 때는 보이싱이나 코드 진행 같은 부분을 안 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윤주만의 느낌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어요. 작업도 다 원 테이크로 했고요.
프로듀서 김정범은 어떤 사람인가.
푸디토리움(Pudditorium)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는 실력 있는 사람이에요. 우선 서로 감성이 잘 맞았어요. 원래 슬프면서도 따뜻한 감성이 있는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잔잔하면서도 포근한 그런 애잔함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잘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어 정재형 씨 같은 경우는 예전 음악들을 보면 어둡고 슬프기만 한데 김정범 씨 음악에는 슬픔과 아련한 행복이 동시에 존재하잖아요. 감정 코드가 비슷하죠.
프로듀서를 직접 고른 것인가.
직접 골랐어요. 정재형 씨나 이적 씨 혹은 정원영 씨 등 주위에 음악 하는 분들이 많아 음악들을 다시 들어보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 사람은 어떨까 해서 김정범 씨의 음반을 접하게 됐어요. 후에 라디오 게스트로도 초대했었고. 장윤주라는 사람이 음반 프로듀서로 자신을 기용한 것에 대해서 김정범 씨 스스로는 상당히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나얼과도 작업한 곡이 많다.
1집 「Fly away」 때도 직접 보컬 디렉팅을 해 줬어요. 당시에 음반 작업은 같이 안 했는데 2집을 제작하면서 디렉팅을 해 준다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어요. 곽윤찬 씨 < I Am Melody >라는 가스펠 앨범을 만들 때 나얼 씨와 같이 작업했는데 그때 목소리에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웃음) 의미를 모른 채 지내다가 조금씩 깨닫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뒤였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생명력을 품고 있고, 또 싱그럽고. 나얼 씨라면 제 목소리를 더 멋지게 해 줄 것 같아서 같이하게 됐죠.
나얼의 보컬 디렉팅은 어땠나?
나얼 씨와 작업하면 보컬 톤이 한 톤으로 유지돼요. 노래를 길게 부르다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억지로 어렵게 가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을 끌어내는 사람이라 그 덕분에 호흡이 길어진 것 같아요. 「오래된 노래」와 「The field」, 「가을바람」에서 디렉팅을 받았고 나머지 곡은 김정범 씨와 작업했어요. (김정범 씨 디렉팅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김정범 씨가 오히려 더 기술적이고 테크닉적인 부분에 집중했어요. 결과의 측면에서는 1집보다 훨씬 만족스러워요. 더 잘 불렀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웃음)
「아침이 오면」 Part 1과 Part 2는 상당히 실험적인 트랙이다. 재즈로 시작해 록으로 끝나는 전개도 독특한데 어떠한 기획으로 출발했나?
「아침이 오면」 같은 경우는 사랑에 대한 분노의 사운드를 넣고 싶었어요. 처음 만들 때부터. 데모의 경우에는 파트 1과 파트 2가 합쳐져 있는데 나중에 녹음하면서 나눴어요. 김정범 씨 의견이었어요. 다른 곡들에 비해서 더 세죠. 실험적이고. 다른 사운드들과 같이 묻힐까 하는 고민보다도 조금 더 갈 거면 아예 가 보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타이틀 곡 「I'm fine」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난 톱 모델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여자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걸 좋아하고, 당신은 뭘 더 해 줘야 될까 생각하는데 난 이 정도로도 좋다는 솔직한 마음이죠. 연애를 하면서도 인간 장윤주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도 모델로서의 어떠함 때문에 더 끌렸던 사람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만나보면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모델은 연기에 불과한데 그 모습을 더 좋아한다는 게 상처와 충격이었죠.
그게 장윤주 그 자체이지 않나?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는 것은 싫어요. 모델은 인간 장윤주의 한 부분일 뿐이죠. 나는 더 평범한 사람이고 보통의 사람인데 자꾸 모델의 이미지로만 바라보는 거잖아요. 모델이기 전에 나도 한 사람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여자로서 서러운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직업적인 영향이 강해지니 ‘나는 없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건 나의 일부지 전부가 아니에요. 일부를 전부로 해 달라는 것은 못 할 짓이에요. 사실 전 아무거나 다 잘 먹는데. (웃음)
그렇다면 장윤주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것인가?
모델 이미지를 벗기 위한 생각이라고는 절대 해 본 적이 없어요. 뮤지션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도 결국 모델의 이미지로 깊게 남겠죠. 주위에 이소라 씨나 홍진경 씨를 봐도 방송인으로 사업으로 성공했지만 결국에는 모델 이소라나 모델 홍진경이라는 이름이 많잖아요. 그래도 이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모델로 유명해진 케이스고 그 유명세로 방송에 올랐으니까. 주위의 톱 배우 출신 방송인들 보면 모델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벗어야 배우로 성공하고 못 벗으면 성공 못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억지로 벗으려면 오히려 부작용이 나올 것 같아요. 모델로 얻었던 이미지는 계속 가져가려고 해요. 전에 차승원 씨도 제가 여기저기 나오는 걸 보고 ‘네 정체성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 때도 모델이라고 대답했죠.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꿈이었나.
먼저 언니에게 음악을 배웠어요. 교본 말고 코드부터 배우고 음악도 따라듣고 혼자 쳐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대학교 가서는 영화과였는데도 정원영 교수님 음악 수업을 들었죠. 20살에는 토이 뮤직비디오 촬영하면서 유희열 씨를 만났고 그러면서 이적 씨, 정재형 씨 또 메이트의 임헌일 씨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주위에 계속 음악이 있었던 것 같네요. 피아노 교습도 1년 정도 배웠고요.
앨범의 피아노 파트는 혼자 다 연주한 것인가.
합주는 세션이고 혼자 하는 것은 다 스스로 쳤어요. 데모는 직접 치면서 녹음했고.
뮤지션 장윤주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음반을 꼽으라면?
원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언니가 듣던 공일오비(015B) 테이프. 근데 직접 산 앨범은 스탄 게츠(Stan Getz)예요. 어렸을 때 스탠다드 재즈를 들어보고 싶어서 테이프 가게 아저씨한테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주셨던 게 < Getz / Gilberto >였죠. 처음 듣는 앨범이었는데 어딘가 익숙하고 좋았어요. 그 다음에 갔을 때는 보컬 없는 앨범을 부탁드리니 쳇 베이커(Chet Baker) 연주 앨범을 주시더라고요. 돈을 주고 직접 샀던 앨범이 재즈 보사노바라 그 장르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어요.
뮤지션으로서 롤 모델은?
정말 많아요. 최근에는 김정범 씨에게 소개받은 타니아 마리아(Tania Maria)라는 브라질 뮤지션에게도 관심이 많고 미국 재즈 뮤지션 칼라 블레이(Carla Bley)도 멋있어요. 음악뿐만이 아니라 룩(look)도 그렇고. 제인 버킨(Jane Birkin)도 좋아요. 올해 내한 공연을 갔더니 음악이 좋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심수봉 선생님이나 양희은 선생님 등. 20대 초반에는 심수봉 선생님 정말 좋아했어요. 얼마 전에 같이 공연했던 조원선 씨도 롤러코스터 때부터 좋아했고. 깊이가 있는 뮤지션이잖아요.
첫 앨범은 어떻게 내게 된 건가?
처음에는 앨범을 낼 마음이 없었어요. 「Fly away」를 책이랑 같이 냈던 것처럼 원래는 책에다 넣을 앨범을 만드는 거였는데 주위에 이적 씨 정재형 씨한테 들려주니 왜 이걸 책으로 내느냐고 막 그러는데. (웃음) 준비가 안 돼서 지금은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분들이 나중에 다시 하려면 못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1집은 그렇게 주위의 조언으로 낸 앨범이죠. 만들고 나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 곡들을 지금 냈으면 또 언밸런스한 부분이 있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 때 내기 적절한 앨범이었죠.
장윤주라는 뮤지션의 인지도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뭔가 섭섭한 마음이 들죠. 앞으로도 계속 할 건데. 모델로서의 이미지가 덮여 있기에 음악 전문 프로에 나가도 날 뮤지션으로 봐줄지 의문이에요.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민이죠. 사람들이 내가 스타일 강의를 한다면 많이 올 텐데 음악 공연을 한다면 그것보다는 덜 하지 않을까라는 식의 생각도 해 봤고요. 공연할 때도 관객석 반응이 두 가지예요. ‘와, 모델 장윤주다’하는 식의 신기하다는 것 하나랑 ‘네가 음악을 한다고? 곡을 네가 다 썼다고?’하는 식의 다른 하나. 그런 반응 때문에 1집 때는 무대 위에 있다가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 정도로 당황했죠.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만이, 장윤주라는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뮤지컬 같은 건 아니고 진짜 나만의 공연.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앨범이 한 번에 팔렸던 1집보다는 반응이 늦어요. 1월에 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서울이랑 부산 공연을 시작하면 반응이 어떻게 올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크게 기대 안 해요. 그래도 계속 우려는 되죠. 어떻게 봐줄까. (웃음)
인터뷰 : 임진모, 조아름, 윤은지, 이수호
정리 : 조아름, 이수호
사진 : 이한수
정리 : 조아름, 이수호
사진 :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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