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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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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마키아벨리는 진짜가 아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는 말한다. 마키아벨리에게 씌워진 누명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의 이름에서 파생된 단어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과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그가 남긴 이름이 결코 명예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안은 ‘권모술수에 능한’이라는 형용사로, 마키아벨리즘은 ‘정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상’을 의미하는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누구라도 억울함을 호소할만한 가혹한 평가다. 김상근 교수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가혹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이 철저하게 왜곡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런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짜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원래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는 진짜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하던 신학자들, 사회과학자들, 처세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를 해석해왔고, 그의 심오한 사상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온 것이다. (p. 6)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로 규정짓는 오류를 범한 사람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저서 『군주론』이 그것이다. 『군주론』안에서 그가 이야기한 ‘바람직한 군주의 상(像)’은 시민 위에 군림하는 냉혹한 지배자의 모습이다.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와 같은 말들로 오랫동안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에게 ‘권모술수의 대가’라는 불명예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군주론』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 무엇을 이유로 쓰였는지, 그 커다란 맥락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 책(『군주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권모술수로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정치 실세로 복권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일자리를 얻기 위한 일종의 자기 추천서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별한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군주론』은 권력 집중을 강조하고, 군주의 처세가 극단적이어야 한다고 애써 강조한다. (p. 22)

정치 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가 공직을 얻기 위해서는 메디치 가문으로 하여금 책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했다. 그러한 이유로 『군주론』은 군주에게 권력이 집중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숨은 의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피렌체는 공화정이 붕괴되면서 힘의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에게 당시의 혼란을 진정시킬 의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모를 피렌체의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마키아벨리는 바로 지금이 군주가 위엄을 보여야 할 때임을 알아챘다. 악한 군주라는 인상을 준다 할지라도 따끔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이렇듯 『군주론』은 그것이 집필될 당시 피렌체의 역사적 상황과 마키아벨리 개인이 처해있던 현실, 그의 국가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올바로 읽을 수 없다.




약소국의 가난한 시민, 그가 진짜 마키아벨리다

『군주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권모술수의 대가라는 마키아벨리의 오명을 씻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김상근 교수는 마키아벨리 개인의 삶에 주목했다.

“사실 글은 자기를 약간 숨겨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먼저 봐야 해요. 가장 좋은 인문학의 텍스트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먼저 깊이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이해한 다음에 텍스트를 읽어야지, 텍스트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가 속이고 싶어 했던 것들에 넘어가는 거죠.”

마키아벨리는 철저하게 약자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살다 간 인물이었다. 지방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한평생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삼류 법률가였다.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시민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마키아벨리 역시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피렌체는 나폴리 왕국의 침략을 받았고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프랑스의 왕 샤를 8세가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피렌체를 점령했다. 비극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1527년, 이탈리아는 또 한 차례의 침공을 받게 된다. 이번에는 스페인 군대였다. 쉰여덟의 마키아벨리는 생애 세 번째 전쟁을 겪어야 했다.

“마키아벨리를 연구해 보니까 이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이었고 약자였고,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던 사람이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국 전쟁이라는 엄청난 전쟁의 경험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그런 전쟁을 세 번이나 겪은 사람이에요. 그것도 제2서기장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었던 그가 겪었을 트라우마와 고민을 생각해 보면, 아마 심각했을 거예요.”

가난한 이들 안에서 살아가며 강대국의 침략 앞에 무력한 자국의 모습을 지켜봤던 마키아벨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우리는 늘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강자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가? 해답을 찾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강자의 힘과 권력의 속성에 주목했다. 그들의 움직임과 생각을 읽는 것이 생존하는 길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다수의 힘없는 자들과 소수의 권력자 사이의 대립과 투쟁이 계속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피렌체가 외국의 침공을 받기 시작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어떻게 하면 강대국의 횡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한 거예요. 결론은 군대를 만들어야겠다는 거였죠. 자기 나라의 국방은 자기가 해야 된다는 거죠. 왜 남의 힘에 의해 보호 받냐는 거예요. 결국은 시민들이 나와서 자발적으로 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그 세계관이 개인사로 바뀌는 거예요. 공직에서 쫓겨나 체포되고 고문 받고, 이후에는 실업자로 살죠. 그러면서 ‘내가 살아남을 길이 뭘까’ 생각해 보니까 결국 강자에게 붙는 거예요. 그래서 『군주론』을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환상이 깨지는 거죠. ‘내가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반성하면서 생각을 바꾼 겁니. 그래서 『로마사 논고』를 쓰고 약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로마사 논고』 안의 마키아벨리와 만나다

『군주론』안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정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로마사 논고』에서 그는 공화정을 이상적인 국가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대중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버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라고 조언했던 그가 입장을 바꾼 것일까. 『로마사 논고』의 그는 “대중은 군주보다도 훨씬 은의에 돈독하고, 총명함과 부동심에 대해서도 군주보다 훨씬 신중하며, 변덕도 적고 정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군주론』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만으로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상근 교수 역시 『로마사 논고』를 통해 마키아벨리의 감춰졌던 모습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10년 동안의 르네상스 연구를 끝내고 로마 연구로 넘어가려고 했어요. 르네상스가 다시 로마 시대로 부활한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로마를 어떻게 보았을까 알아야했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책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에요. 그런데 『로마사 논고』를 읽다 보니까 내가 아는 『군주론』하고 다른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하고는 전혀 다른 마키아벨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고 『마키아벨리』를 쓰게 된 거죠.”

지난 10년간 르네상스 시대를 연구하며 김상근 교수가 지켜왔던 ‘보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은 『마키아벨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모두 답사했다. 16세기의 마키아벨리가 거닐었을 그 길 위에 서서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시뇨리아의 정청에서 마키아벨리 동상을 마주했을 때, 김상근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슬픔을 보았다고 했다. 비열한 눈빛과 미소를 머금은 협잡꾼을 상상했던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키아벨리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마키아벨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교수는 그를 살려내는 작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두 남자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긴 대화를 마친 지금 김상근 교수는 말하고 있다. 당신이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는 진짜가 아니라고.

마키아벨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착한 심성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었고, 르네상스 정신의 근간을 제공했던 인문학의 정수에 도달한 탁월한 인문학자였으며,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을 품에 안으며,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격려하던 약자들의 진정한 수호성자였다. (p. 6~7)




『군주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진짜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짙어졌다. 왜 그는 오랜 시간 누명을 벗지 못한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군주론』을 오독한 것일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군주론』안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지식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것이기에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그 결과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해 가능한 부분만을 선택해서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에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가르친 악의 교사’라는 선입견까지 더해지면서 보다 큰 맥락에서 『군주론』과 마키아벨리를 읽어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강자들의 의도된 왜곡과 은폐다. 『군주론』이 강자들이 가진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까닭에, 마키아벨리의 지혜와 통찰력을 두려워한 권력자들이 그에게 악의 교사라는 오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후 5세기가 지나도록 누명을 벗지 못한 채, 마키아벨리에 대한 재해석이 기존의 견해를 뒤엎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군주론』에 대한 사회과학자들의 얄팍한 독해가 정설이 되어버린 거예요. 학문은 권위자가 해석을 해버리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역사의 가장 큰 매력, 혹은 학문의 사명은 그 해석에 대해서 부정하는 거예요. 누군가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해요. 역사를 재해석하는 거죠. 이런 것들이 계속 나와야 역사가 발전해 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약육강식 혹은 진화론적인 입장, 사회과학자들의 얄팍한 책읽기, 고전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지식, 이런 것들이 결합되면서 마키아벨리를 계속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던 거죠.”

김상근 교수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마키아벨리 개인과 그의 저서들에 대한 오해가 단순히 지나간 역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대학의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가 쓴 『마키아벨리』책은 네이콘(neo-conservatives, 미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보수주의)의 모델이 됐어요. 조지 부시 밑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의 제자들이거든요. 그들의 논리가 뭡니까. 미국이 세계를 재패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라크가 석유를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면 그것을 타도해야 된다는 거거든요. 그게 마키아벨리의 이론이라고 말하는 건데, 내가 읽어보니까 아닌 거예요. 마키아벨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거예요.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다시 살리자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마키아벨리즘의 다른 이름 ‘함께 살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역사가 죽어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역사 안에서 지나간 시간의 기록은, 오늘을 비추어보는 거울이자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나침반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나침반의 바늘을 잘못 읽는 것은 분명 중대한 실수다.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김상근 교수는 거울을 새롭게 닦고 나침반의 바늘을 점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왜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작업의 필요성을 절감한 걸까. 그가 마키아벨리의 목소리가 되어 주겠노라 자청하고 나선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놀랍도록 닮아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저는 우리 시대의 약자들을 보면서 ‘마키아벨리라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생각했어요. 그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마키아벨리를 이용한 거예요. 『마키아벨리』를 쓰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동안 총선도 있었고 대선도 있었죠. 그럴 때 ‘정치가로서 마키아벨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마키아벨리』를 쓴 거예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너무나 내몰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약자들에 대한 조언이나 위로가 강자들이 의도적으로 하는 이야기거든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취직 못해서 힘들어하고, 등록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시대의 약자들이 강자들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 길 위에서 마키아벨리를 만났고, 그를 통해서 약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만약 16세기의 마키아벨리가 지금의 21세기에, 이탈리아가 아닌 대한민국에 되살아온다면 『군주론』은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까. 어떤 모습의 군주와 시민을 이상적이라고 말할까. 마키아벨리를 대신해 김상근 교수로부터 대답을 들었다.

“마키아벨리가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내가 두 권의 책을 썼다고. 하나는 『군주론』이고, 하나는 『로마사 논고』죠.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군주론』을 읽고 약자들은 『로마사 논고』를 읽으라고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예상되는 독자가 다르고, 그래서 글 쓰는 방식도 달랐거든요. 과연 마키아벨리는 우리 사회에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것이 다음 프로젝트의 주제에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은 누군가와 제가 가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거예요. 『군주론』을 쓴 자신의 의도를 독백하는 마키아벨리의 목소리가 이어지고요. 『마키아벨리』를 통해서 일으킨 반전을 다시 뒤집어서 우리 삶 속으로 다가오도록 쓰는 게 새로운 과제에요.”

『마키아벨리』를 집필하며 김상근 교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 그의 진실에 대해 말해주겠다’는 것. 그리하여 『마키아벨리』는 그의 오래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달려온 긴 여정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 김상근 교수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물었다. ‘마키아벨리안’과 ‘마키아벨리즘’은 어떻게 재정의 되어야 할까.

“콘비비오(convivio)라고 할 수 있어요. 단테의 작품 『향연』의 라틴어 제목이 콘비비오에요. 플라톤이 제자들과 모여서 토론한 ‘심포지움’을 단테가 번역한 거죠. 해석하면 ‘같이 살자’는 뜻이에요. 단테도 마키아벨리와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쫓겨나고 떠돌아다니면서 죽을 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단테가 했던 말이 ‘함께 살자’는 거예요. 그게 잔치고 향연이라는 거죠. 단테와 같이 질곡의 삶, 추방의 삶을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진짜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함께 살자,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자’는 거죠. 콘비비오, 이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즘을 대신할 단 한 가지 단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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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김상근 저 | 21세기북스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과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저자는 책에서 수백 년간 강자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어온 마키아벨리의 진면목과 인생철학을 복원하여 10년의 르네상스 연구를 완성했다. 그는 기존 『군주론』에 국한되어 있던 마키아벨리에 대한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마키아벨리의 역사적?인문학적인 면모를 새롭게 재해석했다. 또한 이탈리아를 포함해 마키아벨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럽 곳곳을 누비며 직접 확인한 마키아벨리의 행적과 그의 사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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