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소설을 끝냈다. 이기호의 두 번째 장편『차남들의 세계사』이야기다. 계간 「세계의 문학」에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연재됐던 「수배의 힘」. 원고지 700장 분량의 경장편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던 소설이 장편이 되었다.『차남들의 세계사』는 얼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된 ‘나복만’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1980년대 초반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부조리한 삶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았다. 작가는 아픈 현대사를 구체적으로 건드렸지만, 소설의 미학도 놓치지 않았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의 삶에 연민이 생기고 자꾸만 궁금해지는 건, 작가의 요상한(?) 주문 때문이다. ‘이것을 턱을 괸 채 한 번 들어 보아라’, ‘자, 이것을 누워서 한번 들어 보아라’, ‘자, 이것을 창문 활짝 열고 담배라도 한 대 피우면서 들어 보아라’ 등, 소설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작가는 독자들의 주변을 환기시킨다. 소설은 무거운데, 작가의 주문은 가볍기 짝이 없다. 어떤 장단에 맞춰 소설을 읽어야 할지, 독자들은 혼란스럽다. 결국, 덫에 걸리게 되는 독자들. 재밌게 읽히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소설가 이기호는 1999년 단편소설 『버니』를 《현대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작가로 살아온 지어느새 15년. 지금은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로, 그리고 세 아이의 아빠라는 타이틀도 더했다. 이기호는 심야 라디오 DJ를 하면 딱 어울릴 만한 목소리를 가졌는데, 농담을 던져도 뭔가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묘한 음성이다. 그런데 문단에서의 별명은 ‘젊은 구라’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첫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까지, 이기호의 작품에서는 좀체 평범한 제목을 찾을 수 없다. 제목이 먼저 다가와야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는 유일하게 나중에 제목을 바꾼 작품이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차남들의 특징을 ‘늘 곁눈질 하는 사람들’로 정의했다. 방점은 ‘세계사’에 찍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차남들의 세계사』를 두고 ‘쓸쓸한 농담 같은 소설’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누군가에는 ‘씁쓸한 진담’으로 여겨질 수 있는 소설이다. 이기호는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했다. 독자들은 그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까? 작가의 요상한 주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자, 이 인터뷰를 턱을 괸 채 한번 읽어보자.
어느 순간, 어금니가 나가 버렸다
그간 단편소설집은 펴냈지만 장편은 6년 만이다.『차남들의 세계사』가 유독 시간이 많이 걸린 까닭은 무엇이었나.
역시 인물 때문인 것 같다. 처음 생각했던 『차남들의 세계사』는 인물보다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시대의 어떠한 부조리를 보여주기 위해, 에피소드에 부합되는 인물을 떠올렸는데 결국엔 내 마음속에 이 인물이 깊이 남았다. 2009년부터였나, 냉소주의에 빠졌던 시절이었는데 소설마저도 허무해지면 도대체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거대한 철학적 사유나 인문적 소양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 별 다르게 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내 옆에 있는 친구, 이웃들에게서부터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때부터 ‘나복만’이라는 인물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왔던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전, 전지를 꺼내놓고 캐릭터 구상을 먼저 한다고.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에는 원고지 700장 정도의 경장편으로 끝낼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 쓰는 와중에 바뀐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이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쓰기 때문에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거리감 같은 걸 둘 수 없으니까. 『차남들의 세계사』 1부를 끝낼 때쯤, 이걸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무척 고생스러웠던 작품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소설을 쓴 장소도 여러 군데였다. 담양, 무주, 광주, 원주,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장 집중적으로 소설을 쓴 공간은 어디였나?
제일 몰입해서 쓴 건, 광주였다. 광주에서는 월셋방을 ‘상아방’이라고 말하는데, 거기서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집 밖을 나서면 노점상이 많아 굉장히 시끄러웠는데, 소설을 쓰기에는 썩 좋은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이나 감정을 얻는데 꽤 보탬이 됐다. 우즈베키스탄은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고려인 문학을 조사하려고 3주 정도 갔는데, 밤에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글을 썼다. 나성국 이야기의 배경이 우즈베키스탄인데, 때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집, 연구실에서는 소설을 쓰지 않나?
집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고 연구실에서는 짧은 원고는 모를까, 길게 써야 하는 작품은 못 쓴다. 눈 앞에 뭐가 있으면 그걸 먼저 해결해야 하니까. 소설을 쓰려면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진도 간첩단 사건을 겪은 김정인 씨의 편지로부터 구상된 작품이다. 이 편지를 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사실 이 소설의 처음 의도는 국가보안법과 도로교통법의 차이에서 시작됐다. 오히려 내가 의도한 바는 ‘국가보안법이 도로교통법보다 못하구나’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떤 형식이나 논리의 측면으로 봤을 때,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형편없이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쭉 찾았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김정인 씨의 자료를 봤는데, 이게 결국은 나복만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 다른 방대한 조사도 이뤄졌지만, 당시 나랑 비슷한 나이였던 김정인 씨의 짧은 편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택시운전사 나복만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한국은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이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는 문맹률이 높지 않은가.
소설에 형제고아원이 나오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실제 있었던 곳이다. 한 반의 학생이 60명이 넘었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 친구들이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무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나복만 같은 인물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라는 인물도 나복만이라는 사람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복만이 마지막까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커다란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거나 부조리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멍청하고 답답하고 고집이 센 거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아주 작은 걸 지키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희망은 나복만이 그 사건 이후,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했을 거라는 믿음이다.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고 어찌 보면 멍청해 보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복만이 고문을 받는 장면은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더라.
고문 장면을 쓸 때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소설적으로 형상화를 잘한다고 해도 어떠한 르포, 사실의 기록에 닿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회의감이 있었고, 애초에 ‘내가 그것보다 잘 써야겠다, 잘 묘사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다. 결국엔 고문하는 과정도 소설을 쓰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문을 하는 이유도 합당한 플롯을 만들고 답을 내기 위한 것들이 아닌가. 소설도 스토리를 따라 쭉 간다면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에 도달한다. 고문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보다 템포를 쉬면서, 이것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해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문하는 장면은 짧은 분량이지만 가장 많은 파지를 냈다.
고 김근태의 저서 『남영동』을 참고했다고 들었다.
김근태 선생은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줬던 은사님의 동생이었다. 그래서 몇 번 뵙기도 했고, 형님을 통해서 절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책을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남영동』을 읽으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쓰는 내내 힘들었다. 연극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힘들었던 건 소설가는 악역이라 하더라도 개별인물에 대해서 감정이입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장편 같은 경우에는 더하다. 객관적 거리감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차남들의 세계사』에 등장하는 스포츠머리, 손등에 털이 많이 난 요원 같은 경우에 감정이입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었다.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는데, 어금니가 나가버렸다. 이를 너무 꽉 물고 있었던 거다.
잘 쓴 문장이란, 공감할 수 있는 문장
소설의 재밌는 지점 중 하나는 화자가 변사처럼 등장해, 이렇게 저렇게 읽어보라고 독자에게 주문을 거는 장면이다. 마치 저자와 1:1로 대화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읽었던 후일담 소설, 즉 1980년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상처 입은 시대를 다루다 보니 작가들의 시선이 진지하고 딱딱했다. 나 또한 그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똑같이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설은 예술적 장르니까 미학적으로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미학과 정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논문이나 르포를 쓴다면 정치적인 것을 부각시킬 수 있지만 소설은 예술이기 때문에 미학이 먼저다. 내가 예술을 대할 때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 중 하나는 미학적인 차이를 줘야 한다는 점이다. 잘 쓴 문장이라는 건, 표현력이 아주 뛰어난 문장이라기보다 누군가 옆에서 들려주고 있는 듯한 문장,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다.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접근하는 문장 같은 거다.
제목이 먼저 다가와야지 소설을 쓰는 스타일이라고 했는데, 이번 작품은 예외였다.
작은 소동극을 생각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제목을 정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갈 수는 없겠더라. 『차남들의 세계사』는 제목을 마지막에 정한 유일한 소설이다. 나복만과 같이 별다르게 힘이 없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늘 곁눈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왜 바라보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통칭적으로 차남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제목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문단에서는 소설가 이기호를 두고 ‘젊은 구라’라고 평하기도 한다. 유머러스한 작품을 썼기 때문인데 『차남들의 세계사』는 이기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듯하다.
내가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마무리를 했으면, 그냥 이기호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그냥 이기호로 끝났을 것 같다. 『차남들의 세계사』를 쓰면서 얻은 것 중 하나가 내가 조금이라도 확장됐고 변했다는 점이다. 그 감각이 지금 나에게 굉장히 소중하고 좋다. 독자들 입장에서도 책을 읽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찾아온다. 이를테면 『차남들의 세계사』의 김순희의 선택과 같은.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쓰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끈질기게 물어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나, 이기호에서 멀리 떠나갈 수 있다. 나에게 지금 존재하는 딜레마는 다른 작품을 쓸 때도 이번 소설을 쓸 때만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을 때 오랫동안 성찰하고 고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 확보하려면 학교를 그만두면 되는 문제인데, 이건 또 현실적인 문제와 얽혀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나복만의 애인이었던 김순희의 결말,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순희를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나복만을 기다리는 게 김순희를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순희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갈등, 나약한 모습 같은 걸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수십 년 동안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게,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만 해도 되는 사람이 부럽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매우 단조로운 일상을 지낸다고.
난 별다른 취미도 없고 재미 없는 사람이다. 그냥 뭐랄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소설도 써야 하고, 또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들이 있는데, 이런 의무적인 것들만 하더라도 하루가 빠듯하다. 대부분의 시간이 일과를 하는데 마쳐지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남는 시간이 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늘 원고 마감에 쫓기는 게 딜레마다.『차남들의 세계사』같은 경우는 내가 쓰고 싶은 시간을 확보하면서 쓴 작품이다. 2010년에 마감을 해야 했던 작품이니까 욕을 먹으면서 쓴 거다(웃음). ‘아직 우리나라 출판사가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구나’를 깨달은 작품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소설이 써지지 않으면 성경을 읽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
성경을 읽었던 건, 종교적인 양식으로써가 아닌 이야기적인 차원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원고가 안 써지면 그냥 걷는다. 또는 차를 타고 어디로부터 좀 떠난다. 아마 시간적인 텀을 줘서 그렇겠지만 장소를 옳기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얻게 된다. 그 밖에 다른 재미난 짓을 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나란 사람은 정말 심심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내가 과연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무언가에 깊이 미처 본 적은 없었나?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소설을 쓸 때, 좀 미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몸이 너무 안 좋은 상태에서 밤에 노트북을 켰는데, 어느 순간 화면이 환하게 보여질 때 넋이 좀 빠져 있는 듯한 나를 봤을 때,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소설 속 장면과 장면이 연결될 때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그 지점을 찾기 전까지는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뎌야 한다.
누군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
책을 한 권 내고, 평생 안 쓰는 사람. 말하자면 책을 읽기만 해도 되는 사람이 부럽다(웃음). 책을 쓰는 고통이 너무 크니까. 그냥 빨리 은퇴를 해서 하루 종일 책이나 읽으면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어떤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독자로서만 내가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물론 막상 책을 쓰지 않는다면 괴로워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글을 쓰는 건 굉장히 괴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흥분시키는 일이기도 하지 않나? 소설가가 되지 않은 이기호의 인생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의 압박이 심했을 때 입사지원서를 결국 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 때를 말하자면 별다른 소설적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 강원도 원주에서 올라와서 공부를 했는데, 아버지는 퇴직을 하시고 이제 내가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력서를 가지고 몇 군데를 찾아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버티다 버티다 종로에 있었던 한 출판사를 찾아 갔는데, 그 날이 신입사원 마감일이었다. 인터넷 접수가 없던 때라 줄을 서 있는데, 이 줄이 쉽게 줄지가 않더라. 줄이 짧았으면 지원서를 내고 돌아올 수도 있었는데 20분쯤 있다가 결국 줄에서 이탈해 홍대 앞 마포도서관 분원을 갔다. 거기서 그냥 취직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돈도 없었던 자취생으로서는 꽤 큰 용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잘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단에 데뷔한지 15년이 됐다. 작가로서의 변화를 느끼는지.
신인시절에는 내가 쓴 소설에 대해 믿지 못했다. 얼마나 객관화 되어 있고, 독자에게 얼마나 가 닿았는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내 문장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건데, 이것에 대해서 만큼은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다. 적어도 신경이 곤두서있지는 않으니까. 그런 의심 같은 게 들면 열심히 퇴고하면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고 하고.
올해 초까지 <한국일보>에 칼럼을 꾸준히 썼는데, 돌연 중단했다.
5월까지 썼던 것 같다. 내가 느끼고 있는 우리 시대의 부조리나 혹은 내가 느끼고 있는 어떤 문제점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썼다. 그런데 1년 정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이 글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환기가 되어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는데, 이게 과연 영향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작은 돌멩이를 하나 던졌을 뿐, 사회는 꿈쩍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는 나 혼자서 ‘이 문장 잘 썼네’ 이런 식으로 자족하고 있더라. 가장 심했을 때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나서였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신문사에 전화를 해서 못 쓰겠다고 했다.
요즘 주로 하는 생각들은 무엇인가.
물론 나는 작가니까 문장에서 의미를 찾아가겠지만, 어떤 벽에 막히다 보면 그 문장 자체만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로서 문장과 더불어 행동, 실천적인 모습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소설을 썼으면 그에 대한 책임, 행동이 필요하다. 소설적인 의미만 부여 받고 평가 받는 건, 이미지만 남을 뿐이다. 작은 행동, 실천이 없이 문장만 쓰는 건, 또 다른 허무와 의미 없음을 만드는 것뿐이다. 『차남들의 세계사』를 쓰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소설과 함께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소설 외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오히려 어쩌면 실천이 먼저 진행되고 또 다른 문장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주문을 했듯이, 『차남들의 세계사』를 읽을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라’하고 한 마디 주문을 한다면.
맨 처음 작품을 시작하면서 ‘이 소설을 턱을 괸 채 한번 들어 보아라’라고 썼는데, 이런 의도도 있었다. ‘너희들 그렇게 방에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었지? 그리고 나서 무엇을 할 거니?’ 이 느낌이 컸다. ‘어떤 사람은 유유자적하게 책을 읽고 있을 때, 다른 어떤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면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너희들은 책만 읽고 있니? 책을 읽고 났으면 뭘 할 거니?’ 같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소설 맨 마지막에 직접적으로 말을 할까도 생각했다. ‘당신이 턱을 괴고 책을 보다 화장실에 갔다 오고, 물을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을 시간에 어떤 사람은 30년 동안 이런 일을 겪었다’라고. 그런데 너무 과격해 보이는 것 같아 최종적으로는 빼버렸다.
소설은 개인적인 시간과 경험이니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재밌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 ‘이런 시대도 있었구나’ 정도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지금이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볼 때, 한두 사람 정도는 ‘현재까지도 이런 일이 이어지고 있네. 내가 뭘 해야 하지? 어떤 걸 생각해야 하지?’와 같은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작가로서의 욕심이 있다.
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 저 | 민음사
이기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계간 《세계의 문학》에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연재됐던 『수배의 힘』이 제목을 갈아입고 나온 것이다. 얼떨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고 만 ‘나복만’의 삶을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광기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과 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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