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과의 대화』는 논쟁적인 책이다. 대우를 만든 ‘김우중’ 회장이라는 인물 자체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했던 샐러리맨이 단돈 500만 원으로 회사를 세웠고, 그 회사는 ‘세계 경영’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녔다. 회사 이름은 대우. 그 지역에서 대우는 대한민국보다 더 유명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좌초할 때 대우는 매출 71조 원, 자산 78조 원으로 한국 재계 순위 2위였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는 1997년 대우그룹을 개발도상국 출신 다국적기업 중 해외자산 규모 세계 1위에 올려놨다.
승승장구하던 대우는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부터 급격하게 몰락한다. 이때 IMF가 돈을 빌려주면서 내건 조건은 철저한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정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핵심은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경영을 하라는 것이었다. 부실로 판정받은 기업은 자산을 매각했고, 합리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대규모 감원에 들어갔다. 이런 맥락에서 대우도 예외일 수 없었다. 특히 당시 신흥국 시장 개척에 매진했던 대우의 사업 중 많은 부문이 부실로 판정받았다. 대우자동차가 GM에 팔리고, 다른 계열사도 뿔뿔이 흩어졌다. 김우중 회장은 한국을 떠나 오랜 시간을 외국에서 머물렀다.
이후 김우중 회장이 귀국했고 법원은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등을 주도한 혐의를 물어 2심에서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을 선고했다. 징역과 추징금 액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긴 했으나, 대우를 잘못 경영하여 국민 경제에 혼란을 끼친 김우중 회장이 대가를 치르긴 치러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김우중과의 대화』가 나왔다. 김 회장이 직접 쓴 책은 아니나, 대화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김 회장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는 의미다.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우와 김우중 회장이 지니는 화제성을 증명한 셈이다.
책을 쓴 신장섭 박사는 오랫동안 IMF 체제의 부당함을 지적한 경제학자다. IMF 체제에서 해체된 대우 그룹은 신 박사의 학문적 관심사였다. 김우중 회장 역시 IMF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구조조정에 회의적이었던 경영인이었다. 두 사람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다. 신장섭 박사는 대우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자고 김우중 회장을 거듭 설득했고 결국 2014년,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대우의 흥망성쇠를 다루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IMF 이전과 이후의 한국경제를 분석한다. 특히 IMF 체제에 관해서 상세하게 논의하는데, 책이 문제 삼는 시각은 ‘IMF 위기는 금융위기와 기업위기가 함께 발생해서 벌어졌고, IMF 처방을 철저하게 실행함으로써 빠르게 경제회복에 성공하며 금융 투명성도 확보했다’이다. 그에 비해 신장섭 박사와 김우중 회장의 인식은 ‘IMF 위기는 금융위기였고, 이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과정에 대우가 해체됐으며, IMF 프로그램을 아무 비판 없이 시행하는 바람에 한국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데다 고용 불안이나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 경제 체질 전체도 악화되었다’이다.
책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렸지만 신장섭 박사의 육성으로 몇 가지 쟁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책에 쏟아지는 관심, 반갑지만 아쉽기도
책이 화제다. 『김우중과의 대화』가 대우의 흥망성쇠를 다루긴 했어도, 한국의 경제 성장 전반을 훑은 책이지 않나. 그럼에도 주로 김우중 회장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되는 것 같은데. 다소 아쉽기도 할 듯하다.
아니다. 이 책은 김우중 회장에 관한 이야기니 그런 관심이 당연하고 반갑다. 대우 해체라는 소재가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으리라 예상했다. 문제는 대우 해체는 굉장히 커다란 사건인데 지금 논의는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고 있다. 경제 관료가 대우를 죽일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작은 문제다. 기획 해체인가 좌초인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이런 방향으로 논쟁이 전개되니까 안타깝다.
그렇다면 큰 문제는 무엇인가.
대우 김우중 회장은 기업가니까 보통 때는 정부 관료와 충돌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대우 김우중 회장과 경제 관료가 IMF 금융 위기 때 충돌한다. 이 둘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대우가 해체됐다. 대우 해체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
둘은 왜 충돌했나.
금융 위기 극복 방안을 두고 철학과 방법이 달랐다. 당시 정황이 어땠는가 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선 주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IMF 재협상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캉디쉬 IMF 총재가 각서를 받으러 한국에 온다. 각서 내용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IMF 프로그램을 그대로 집행한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어쩔 수 있나. 사인했다. 그렇다고 김 대통령의 생각이 많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IMF 프로그램을 이행하면 안 좋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반대로 당시 정계 관료나 학계,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IMF 프로그램을 철저히 집행하자는 쪽이었고.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반대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김우중 회장은 반대편 이야기를 가장 잘해주는 인물이었다.
많은 기업가가 있었을 텐데 왜 김우중 회장이었나.
첫 번째는 전경련 차기 회장으로, 회장 대행을 맡고 있었다. 특정 기업가를 자주 만나면 이상한 말이 나올 수가 있지만 전경련 회장을 자주 만난다고 부담될 게 없었다. 그리고 김우중 회장은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 경영을 했는데, 신흥시장에서는 금융 위기가 빈번했다. 그러니 김우중 회장은 금융위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우중 회장과 경제 관료 사이에 정책 논쟁을 붙였다. 어떤 때는 김우중 회장이 옳다고 끝낸 적도 있었고. 김우중 회장이 왜 반대편 이야기를 세게 했느냐 하면, 굉장히 민족주의자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IMF 프로그램대로 하면 한국 경제 나빠질 거로 예상했다. 책을 쓰면서 자료를 발견했는데, 1998년 5월에 했던 공개강연에서 김우중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IMF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한국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국제 금융 기관이 자기들의 관리 체제로 넣는 과정이고 이 체제에 오래 있으면 경제가 많이 나빠진다고.
정리하자면 당시 경제 관료는 IMF에서 이야기하는 구조조정론자였고, 김우중 회장은 거기에 반대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당시 김우중 회장이 내건 대안은 무엇이었나.
IMF 체제에 들어왔으니, 완전히 거부까지는 못해도 이왕 들어왔으면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산시설을 열심히 돌려서 수출하자는 쪽이었다. 김 회장은 동아시아만 잠시 위기지만, 세계실물경제는 좋은 상황으로 봤다. 게다가 환율이 800원에서 1,600원까지 가니까 수출은 잘 되고, 수입은 줄 거로 예상했다. 연간 50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해서 2년 만에 탈출하자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신흥 경제 관료와 강하게 부딪쳤고 대우가 해체된다.
IMF 체제를 기점으로 산업에서 금융으로 이동
신흥 경제 관료라고 표현했는데, 이전 관료와 어떤 점에서 달랐나.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금융이 산업을 도와주는 게 주 역할이었다. 그때는 오히려 금융이 억압받는다 할 정도로 산업자본 축적을 위해 존재했다. IMF 이전에는 한국에 모기지도 없었다. 모기지는 생산적이지도 않고, 부동산 투기만 조장한다고 인식했다. 관료들의 기본적인 생각도 경제성장 성공하면서 금융 쪽은 천천히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쪽이었다. IMF가 들어오면서 급진적으로 하자는 쪽으로 바뀐다. 이헌재 위원장은 금융 관료를 하다 1980년대 초에 외국으로 떠난 다음에 신용 평가 회사, 외국 금융 회사에 다니면서 신자유주의를 접한다. 이 사람이 금융감독위원장이 되면서 IMF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세게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자신의 회고록에도 썼듯 본인이 재벌개혁에 대한 확신이 강했다. 이들은 이렇게 하는 게 국익이라 생각한 듯하다. 그전 관료는 산업 중심이었다면 바뀐 다음에는 금융 중심으로 갔다.
산업과 금융이 서로 도우면 선순환일 텐데, IMF 때 왜 산업으로 흐르는 돈을 막았을까.
산업과 금융 간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장기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 대우차도 결국은 산업자본이 장기적으로 갖고 있는 안목을 금융자본이 인정해주지 않은 사례다. 대우차는 투자를 굉장히 빨리했다. GM과 1993년에 헤어지고 나서 1997년에 연 200만대 생산 규모를 완성한다. 당시 삼성이 자동차에 뛰어들면서 갖추려 했던 규모가 20만 대였으니,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라고 해서 생산 규모를 크게 하면 단가는 떨어지고 자연스레 경쟁력은 강화된다. 당연히 이렇게 갖추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때는 국내 시장에 팔겠다는 게 아니라 신흥 시장을 노렸다. 당시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곳에서는 이미 그 나라 내수 점유율 1위를 대우가 차지했다. 신흥 시장 성장 가능성을 보고 선투자를 했고 2000년대 이후에 엄청나게 과실을 거들 수 있었다. 그런데 금융자본이 중간에 뚝 잘라서 이익도 못 내고 투자만 많이 했네, 부실이야, 해버렸다.
산업을 보면 장기 투자가 필요할 때가 많지 않나.
삼성 반도체도 그렇다. 지금은 세계 1등이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 적자였다. 적자가 크니까 삼성전자에 붙였다. 그러다 삼성통신이 돈이 버니 삼성반도체통신 이렇게 했고. 통신이 돈을 못 버니 다시 삼성전자에 붙였다. 이렇게 그룹 차원에서 도와주면서 성공했다. 산업에서 이런 게 많다. 대우조선도 10년 이상 걸려서 세계 수위의 조선회사로 만들었다. 금융자본 논리로 보면 불가능하지. 중간에 뚝 잘라서 이거 안 돼, 부실이라고 몰아붙이고는 더 나아가 경영인이 부도덕하다며 범죄자로 몰아갔다. 그 분위기가 IMF 때 굉장히 강했다. 현재 국내에서 팽배한 반기업 정서는 이때가 기점이었지 않나 싶다. 잘못된 건 다 기업 잘못이라 하지만 금융기업도 책임져야 한다. 처음에는 돈 빌려주다가, 조금 문제 있으면 쏙 빼서 산업이 잘못했다고 말하며 있는 자산 팔고 담보 내놓으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정부인데, 정부가 중간에서 국가 경제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은가를 판단해야 한다. 돈은 어차피 금융이 쥐고 있으니 산업과 금융이 갈등하면 산업이 밀린다. 이때 정부가 산업 편을 조금 들어줘야 한다. IMF 때는 정부가 금융 편을 들었다.
당시 구조조정의 핵심은 뭐였나.
그때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자산 중에 팔 만한 걸 팔아서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의미였다. 과연 헐값 매각하는 게 애국이었을까. 김우중 회장은 헐값 매각하면 한국 경제가 나빠진다고 말했다. 김우중 회장이 수출을 늘리자 제안했는데, 이게 확장 경영이라고 비판받았다. 역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15년 지나고 나서 보자면, 어느 게 애국이었고 역적이었는가? 그동안 헐값에 판 게 문제 된 게 많다. 대우자동차만 해도 210억 달러 정도를 손해 본 걸로 본다. 대우자동차를 헐값에 산 GM은 중국에서 승승장구했다. 대우자동차가 정말 부실기업이었으면 이게 가능했겠나. 그 밖에도 제일은행, 외환은행, 한미은행 등. 진로소주도 골드만삭스에 헐값에 팔았다 비싸게 되사왔다. 그런 게 부지기수다.
구조조정의 허와 실, IMF 체제 이후 한국 경제 나빠져
그럼에도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조조정론자들은 그렇게 구조조정을 철저히 했기에 한국 경제가 빨리 회복됐고, 금융 안정성을 얻어서 경제가 더 탄탄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빨리 회복했다고 해도, 지금은 저성장이다. 경제가 좋아진 게 아니라 나빠졌다. 좀 더 자세히 보자. 기업 부채비율 낮추라고 해서 기업 부채비율은 현재 미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대신 가계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결국 기업부채가 가계부채로 이전된 거다. 가계부채도 함께 줄었다면 경제가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데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은행도 살아야 하는데 기업에는 돈 빌려 주지 말라고 하니 모기지에 기댔다. 부채를 누가 갖고 있는 게 나을까? 기업이 낫다. 기업은 10~20%, 많을 때는 두세 배 성장이 가능하다. 그렇게 성장해서 부채 상황이 가능하다. 가계에 그런 능력이 있나? 가계부채 느니까 내수가 부진할 수밖에. 자, 그렇다면 금융 안정성.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때 한국이 3,000억 달러 넘는 외환보유액이 있었다. 그렇게 많았는데도 1997년 외환위기에 준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나라와 스왑 계약 맺어서 보유해둔 외환보유액도 별로 쓸모없었고. 간단히 말하자면, IMF 프로그램대로 해서 경제는 나빠지고 한국의 자산은 팔아먹었다.
2008년 위기를 거론했는데, 실제로 2008년 위기 때 미국의 대응과 1997년 한국의 대응이 상당히 달랐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선진국이 한 짓을 보자. 선진국도 IMF 프로그램대로 했는가? 전혀 안 했다. 금리도 0%로 낮추면서 심지어 양적 완화까지 했고. 대우 죽여라 해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부실한 기업의 경영인조차 안 바꾸고 다 살렸다. 시티은행, GM, AIG 등 다 살렸다. 자기들의 자산을 매각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선진국이 다르게 적용하는 거에 대해서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조지프 스트글리츠는 IMF가 이중잣대를 적용한다고 했지만, 아니다. 단일잣대다. 자기의 이익이라는 잣대라는 점에서는 단일잣대인 셈이다. 다른 나라 금융 위기 때는 자기들이 주워 먹을 게 많아지니까 그렇게 했고, 자기들이 금융 위기를 당했을 때는 그렇게 안 하는 게 자기들 이익에 부합한다. 그런데 1997년 한국의 관료나 미디어는 상대방 이익과 나의 이익을 구분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이익을 국익이라 착각했다. 결국은 김우중 회장 말이 옳지 않았을까, 전반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책에서도 다뤘지만 고용 불안, 제조업 위축도 IMF 프로그램을 이행한 뒤에 심해진 문제 아닌가.
맞다. 한국은 그 전에 정리해고가 거의 없었다. 그 당시는 한국처럼 정리해고를 안 하는 건 비효율적인 경영이라고 IMF에서 몰아붙였다. 그런데 이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니까 이제서야 다시 상생 경영해야 하고 비정규직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것만 봐도 속은 거지. 그 당시에 속지 않은 재벌 총수가 김우중 회장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정리해고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한국이 과잉 투자이니 생산 시설을 줄이라고 한 지적에 대해서 줄여야 할 나라는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그랬다. 선진국은 오랜 기간에 투자해서 낡은 시설도 많았는데, 한국은 단기간에 제일 좋은 시설로 투자했다. 양쪽이 과잉이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시설을 줄여야지. 그리고 한국이 투자한 대부분은 신흥시장을 겨냥했다. 전혀 과잉 투자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과잉투자론을 받아들여서 제조업을 줄이라고 한다. 그 당시 정책이 지금의 저성장을 초래했다. 그때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이미 국민소득 3만~4만 달러 진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추징법 피하기 위해 책 낸 게 아냐, IMF 체제 재평가 필요해
책 출간 동기, 시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보자. 많은 경제학자, 칼럼니스트, 인터뷰어가 있을 텐데 왜 신장섭 박사가 김우중 회장의 회고록을 쓰게 됐나.
김우중 회장 측의 의뢰를 받고 쓴 책은 아니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IMF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쭉 써 왔다. 책도 여러 권 냈고. 이런 부분에서 김 회장과 내가 생각이 비슷했는데, 첫 번째 만남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처음 만나 이틀 동안 단둘이서 15시간을 이야기했다.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했다. 그 뒤로 종종 만났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대우 이야기를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더라. 대우가 성장하고 해체되는 이야기가 한국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1997년에서 1999년, 격동의 시기에 경제부 기자도 하고 논설위원도 맡았다. 현장에 있으면서 IMF 비판하는 글도 많이 썼다. 내 딴에는 많이 안다 생각했는데, 김 회장과 만나고 보니 잘못 알던 게 많았고 알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게 있더라. 나조차도 이렇게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겠나. 시간이 갈수록 김 회장의 반대쪽 이야기가 정설로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김 회장이 살아 계실 때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자고 설득했다. 설득에 성공한 게 2010년 여름. 그렇게 해서 책을 썼다.
출간 시기가 미묘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우중 회장 추징법을 회피하기 위해 낸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오비이락이다. 이 책은 오히려 추징법 때문에 손해를 봤다. 원래는 작년에 나올 책이었다. 원고가 다 나온 상태에서 인쇄만 들어가면 되는데, 전두환 추징법이 나오니까 김우중 회장이 전두환 추징금과 얽히는 게 싫다고 이야기하더라. 책에도 다뤘는데, 김우중 회장 추징금은 문제가 많다. 원천 무효라 생각한다. 어쨌든 전두환 추징금과 얽히면서 언론에서 추징금 프레임 안에 가둬버리니까 책을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김우중 회장 측근 사이에서도 논란이 생겼다. 나는 책을 가능한 한 빨리 내자는 쪽이었으나 이 추징금이라는 게 김 회장 본인과 가족 그리고 대우 임직원도 걸려 있으니, 그 사람들이 험한 꼴을 당하면 안 되지 않겠냐, 해서 입법 추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그래서 책이 1년 정도 늦게 나왔다.
김우중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웠으니 박근혜 대통령 때 책을 낸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게 말이 안 된다. 책을 내자고 합의한 게 2010년 여름. 그때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았나? 만약 야당 대통령이 됐다면 책 출간을 6년 이상 늦췄을까?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자, 대우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낸 거지 시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전혀 연관 못 시키는 게, 김우중 회장 추징법이 다른 정권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행정부에서 나왔다. 박근혜 정권에서 가장 피해를 봤다.
산업 강화하고 신흥국 시장 개척해야
어쨌든 상황은 안 좋아졌다. 경영, 리더십, 청년 실업에 관해서도 책에서 다뤘는데. 대안은 무엇일까.
일단은 산업 금융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갖춰야 한다. 예전 개발 독재할 때처럼은 못하더라도 산업금융을 담당하는 국책금융기업은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마저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민간은행도 산업 쪽에 물꼬를 틀 수 있도록 정부가 유인해야 한다. 텍스 인센티브를 준다든지 해서. 지금은 민간은행이 수익을 내야 하니 모기지 등 다른 쪽에 돈 많이 빌려주지 않나.
또 하나는 청년 실업 문제인데 한국 젊은이들 불쌍하다. IMF 시스템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 내가 졸업할 때만 해도 고시 준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IMF 시스템 이후에 정리해고 하고 기업이 우르르 무너지니 부모도 그렇고 본인도 ‘대기업 들어가 봤자 처음에야 멋있지 나중에 무슨 일 벌어질지 모른다.’라며 처음부터 철밥통 쪽으로 인력이 몰린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공무원 이쪽으로. 그런데 이런 분야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진취적인 일을 하는 곳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내수 업종이다. 합격하려고 과외도 많이 받는다. 예전에는 고시 보는 사람도 학원 안 다녔다. 요즘은 고시뿐만 아니라 9급 공무원까지 몇 년을 학원 다니며 공부한다. 이게 얼마나 낭비인가. 이런 상황으로 한국사회가 변해 버렸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인가.
제조업 육성해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한국은 제조업 계속해야 한다. 내수도 좋지만 외국으로 뻗어 나가야지.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진취적 기상을 가져라’는 거. 재밌어서 일부러 앞부분에 썼는데, 김우중 회장은 27살 때 외국으로 나가서 30만 달러 주문을 받아 한성실업을 살린다. 회사 지원을 받아 간 게 아니었다. 김우중 회장은 젊었을 때부터 남이 안 가는 곳에 갔다. 선진국은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들어가 봤자 매력이 없다. 신흥국 중에서도 일본이나 화교 기업이 이미 들어가 있는 데는 싸우기 벅차다. 이들이 못 간 데에 들어가야 한다. 이들이 왜 못 갔겠나. 힘드니까. 성장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대우는 가장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아프리카에 보냈다고 한다. 1970년대 아프리카는 지금보다 더 심하다. 아무것도 없다. 그 열악한 곳에서 성공하면 그 사람 역량이 얼마나 커지겠나. 이런 사람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잘 된다. 대우인 중에 아프리카 한두 번은 대부분은 다 갔다 온다. 어렵지만 남들 안 가는 데 들어가는 진취적인 기상으로 대우는 성공했다. 비록 나중에 해체됐지만.
어쨌든 결국은 당시 5대 기업 중 가장 미진하게 구조조정했고 정부와 타협을 안 하면서 해체로 갔는데. 김우중 회장 책임도 있지 않을까?
타협을 안 했다기보다는 정부 관료가 공정한 잣대라고는 말했지만 프로쿠르스테스 침대를 들이민 게 아닌가 싶다. 공정하진 않았다. 5대 그룹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는데 대우는 5대 그룹 중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했다. 금융 시스템 막히고, 수출 금융이 끊기니까 할 수 없이 단기 차입금을 끌어 쓸 수밖에. 그러면서 가장 어려워졌다. 회사채 발행하려 했지만, 그것도 막혔고. 이런 걸 보면서 노무라 증권은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고 표현했다. 이러니까 다른 데에서도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고. 기업이 다 다른데, 단일한 잣대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다 할 수 있나? 어떻게 보자면 야구선수, 배구선수, 농구선수 모두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서, 목표를 주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너는 선수 아니야, 하는 거랑 똑같지.
김우중 회장은 “돈 벌려고 한 게 아니다. 나라 잘되려고 했다.” 이런 말을 굉장히 자주 하면서 공동체 강조했던데. 실제로 만나보면 어떤 인물인가.
정말 독특한 기업가다. 만나서 이야기해도 비즈니스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한국 경제, 기업가, 젊은이,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더라. 대우를 경영할 때도 국내 중소기업 하는 분야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고. 이들과 함께 외국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어 했다. 일찍부터 번 돈을 사회 공헌에 많이 내놓았다. 아프리카에서도 50대 50 법칙이라 해서 그쪽과 공생, 상생하는 걸 고민했다. 한번은 “예전에야 국가 발전과 기업 발전이 함께 갔지만, 선진국으로 가면 기업가에게 이런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선진국 되면 민간 역량이 강해지면서 마음만 먹으면 국가 발전과 궤를 함께하는 게 더 쉬워진다고 답하더라. 마음 먹기에 달린 거다. 지금 주는 메시지가 굉장히 크다. 독자들도 김우중 회장이 주는 메시지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김우중과의 대화신장섭 저 | 북스코프
이 책은 대우그룹의 성장과 해체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 그에 따른 역사적 재평가를 위해 탄생했다. 김우중 회장과 대우가 침묵한 15년간 한쪽의 이야기만이 정설처럼 굳어졌기에 『김우중과의 대화』가 불러올 파급은 크다. 그러나 본서는 대우그룹의 성장과 해체의 실체적 진실을 말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금융위기 극복방안의 타당성과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담고 있다. 결국 이 책이 진정으로 전하려는 것은 대우의 흥망으로 읽는 우리 사회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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