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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곤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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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에 등장해 스페인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원래 스페인은 관광 강국이다.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만나는 곳이고 제국주의 시절 엄청나게 광활했던 영토를 보유했던 나라가 스페인이다. 자연스레 스페인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건축이다. 특히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건축가가 있으니, 바로 안토니오 가우디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말년에는 초라한 행색으로 전차에 치여 죽은 가우디. 결코 화려하다고 할수 없는 죽음이었지만 죽음 뒤에 그가 남긴 작품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에 『스페인은 가우디다』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게 할 정도로 말이다.

 

『스페인은 가우디다』는 한국의 건축가 김희곤 저자가 쓴 책이다. 전작 『스페인은 건축이다』를 쓴 그는 마흔넷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성가족 대성당, 구엘 공원, 카사 비센스, 카사 밀라 등 가우디가 남긴 작품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건축이란 무엇인지, 한국 건축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였다.

 

가우디 건축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김희곤 저자의 말로 하자면 ‘장인정신’이다. 책상에서 컴퓨터로 건축을 배우는 요즘 풍경과 달리 가우디는 하나 하나 자신이 몸으로 겪어 가며 건물을 만들었다. 더 대단한 점은 그가 평생 관절염을 앓으며 몸이 불편했다는 사실이다. 책에는 이러한 가우디의 삶이 다양한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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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는 건축의 신


많은 위대한 건축가 중에서 가우디에 관심을 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이 바르셀로나로 가는 이유가 가우디 덕분일 겁니다. 그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세계를 실현했죠. 한 인간으로, 건축인으로 가우디는 성자처럼 실천하는 삶을 살았어요. 건축가로서 그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우디는 건축을 위해서 자기 생을 오롯이 바쳤어요.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 코르뷔제는 가우디를 건축의 신이라고 불렀는데요. 이 말이 모든 걸 함축하고 있죠.


책 속에 가우디에 얽힌 다양한 일화가 있잖아요. 그중에서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꼽는다면?


프롤로그에도 나오는데, 성가족 대성당을 설계할 때 가우디의 손을 들어준 사람이 로젠 학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졸업식 때 가우디가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약간은 비아냥거렸던 사람이었죠. 예나 지금이나 대학은 규정과 절차에 얽매여 있어요. 자유로운 영혼이 시도하는 파괴적인 행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죠. 가우디는 교수들의 일방적인 가르침에 순응하지 않았어요. 특히 그는 관절염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할 수 없던 상황이었어요. 언제나 현장에서 걸어다니며 성찰하고, 모형을 제작하고, 굉장히 빠르게 도면을 그렸어요. 교수님들이 보기에 그리 성실하게는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로젠 학장의 말 그대로죠. 천재 아니면 바보. 이랬던 로젠 학장이 결국 가우디를 인정한 거죠.


가우디와 피카소 일화도 재밌는데요.


당시 피카소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천재적인 예술가였죠. 그렇다고 어린 피카소를 위한 자리는 없었어요.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피카소는 사회를 향한 불만으로 가득했죠. 반면 가우디는 전성기였죠. 피카소가 보기에 가우디는 부자의 비위나 맞춰주는 영혼 없는 건축가였어요. 하지만 가우디가 만들고 있던 트랜카디스 기법에서 입체주의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가우디가 건축 사무소 문을 열고 참 힘들게 살았잖아요 그 무렵 가우디는 어땠나요.


누구나 시작은 불안하고 초라하기 마련이죠. 가우디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대학 시절부터 공방을 들락거리며 자신의 내공을 키웠어요. 자신의 책상, 명함, 철제조형물을 직접 만들고 자신의 세계를 다져갔죠. 그는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가난한 자를 위한 일이나 부자를 위한 일이나 항상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파리 박람회에 출품한 작은 유리전시장 속에도 장인의 천재성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이었어요.


카사 바트요를 가우디의 자서전이라 평했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가우디만의 구조와 디테일, 장식 그리고 입면까지 가우디의 스토리가 완벽하게 실현된 첫 작품이에요. 모든 건축가의 바람은 일관된 스토리로 자신의 작품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건축주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죠. 가우디의 천재성이 건축주의 지갑을 열게 했죠.


바르셀로나에서는 몬세라트 수도원과 검은 성모상을 봐야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인데요. ‘바르셀로나 비극의 일주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가우디의 건축물이 피해를 입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1908년 방직공장에서 벌어진 무더기 해고사태, 1909년 모로코 반란군을 진압하려는 마드리드 정부에 대한 반발,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재벌과 교회의 착취에 항거하며 비극의 주가 시작됩니다. 가우디는 제자와 인부와 함께 집을 지었어요. 그들은 도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세의 마지막 장인이었죠. 가우디 작품이 그들의 작품이기도 했어요. 그러니 인부들이 나서서 파괴를 막았죠.


바르셀로나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라면 관심 있게 볼 만한 게 있을까요


가우디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성산인 몬세라트 수도원과 검은 성모상을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구엘성지 지하제실의 원시성을 만나야죠. 가우디의 독창성과 거친 대지의 원시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성가족 대성당은 언제쯤 다 지어질까요?


예언가가 아니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2026년은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에요. 이 시기를 맞추려는 카탈루냐 주정부의 의도도 있고요.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미사집전으로 이 곳이 가톨릭의 새로운 성지로 부각되며 2026년이 거론되었죠.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바르셀로나 경제 사정이 하나의 변수이고, 두 번째 변수는 진입 축에 자리 잡은 기존 건물의 철거입니다.


굉장히 유명했던 가우디였으나, 전차에 치였을 때는 아무도 가우디를 알아채지 못했는데요. 이런 시적 죽음이 일어났던 이유는?


가우디의 말년은 쓸쓸했죠. 가족도 없고 친구도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가우디는 고집불통에 채식을 고집했어요. 마지막 열정을 성가족대성당에 모두 쏟았을 때, 제자와 인부와 똑같이 돌을 다듬고 작업했죠. 그러니 그의 옷차림을 보고 가우디일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죠. 항상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끊임없이 헌신하는 장인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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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못지 않게 대단한 우리 전통 건축


늦은 나이에 스페인 유학을 결심했잖아요.


우리가 건축사를 땄을 때는 의사 변호사보다 수입이 좋았어요. 건축사는 부족하고 사회가 전체적으로 고도성장기니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수입이 생길 때였죠. 그러다 IMF가 오면서 경제가 추락하면서 건설경기가 죽었죠.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어요. 작고한 스승님이 권유했어요.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생각하고 출정하듯 한국 건축사가 거의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스페인으로 무작정 떠났어요.


상상 속 가우디 작품을 실제로 만났을 때는 영혼이 비틀거릴 정도로 충격적이었죠. 그의 작품에는 기하학과 구조의 질서가 퍼즐 조각처럼 녹아 있었죠. 어쩌다 그냥 나온 작품이 아니었어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천재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건축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앞으로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질문부터 답하게 만들었죠. 아름다운 삶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건축 교육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는 어떤 부분인가요.


제 지도교수님이 지금은 돌아가신 홍익대 김성국 교수님입니다. 그분과 10년간 도제 관계로 배웠죠. 스승님의 스승님이 미국 분인데, 이 분이 한국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이래요. 한국은 이상한 게,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가르쳐야 하는데 박사 학위 소지자가 가르친다고.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춤을 배우는데, 춤의 역사를 공부한 이론가가 전부를 가르쳐요. 물론 이론도 필요하죠. 춤의 역사를 배운다면 해당 분야를 공부한 사람에게 배우는 게 맞죠. 그러나 적어도 춤 자체는 세계적인 춤꾼에게 배워야죠. 건축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경영학과에서도 성공한 기업가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주로 경영학을 공부한 학자에게 배우잖아요.
 
스페인 건축에 관한 책을 연이어 두 권 내셨는데, 한국 건축 중에서도 훌륭한 작품이 많잖아요. 좋아하는 곳을 꼽는다면.
 
가장 좋아하는 건축을 하나로 꼽으라면 부석사. 스케치 해서 스페인 대학에서 강연도 할 정도로 아끼죠. 창덕궁 후원도 좋고요. 경상도 봉화에 가면 청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도 좋아요. 청암정은 그리 크지 않은데도, 그 안에 동양사상 모든 게 담겨 있죠.


우리 건축은 대단해요. 파리 개선문은 기껏해야 1836년에야 완성됐죠. 우리 건축은 조선시대 건축부터 해서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시간적으로 길어요. 수적으로 따져도, 가우디 작품은 12개인데, 그나마도 완성된 게 거의 없죠. 우리나라 건축을 꼽으면 12개는 가볍게 넘습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세계에 못 알릴까요? 아직 한국 건축에 관해서 세계적으로 통용될 만한 보편적인 분석을 내놓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저술 활동에 열심히 하고 계신데, 앞으로 계획은?


스페인에서 배운 게 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죠. 마흔넷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돌아와서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나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게 필요했죠.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일도 병행하겠지만, 이론적으로 방향을 제대로 갖춰나가려고 해요. 그래야 한 개를 짓든 두 개를 짓든 제대로 지을 수 있어요.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유행대로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게 가우디 철학이기도 했죠. 제가 생각하는 건축은 한국의 토양에 뿌리를 박으면서도 서구의 모더니즘을 융합하는 것이에요. 주택 하나를 지어도 그렇게 짓고 싶어요. 


제대로 지으려면, 공부를 해야죠. 책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책 한 권을 쓰려면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하니까, 자연스레 공부가 되죠. 이번에 쓴 『스페인은 가우디다』처럼 동서양 건축에 관해서 계속 책을 내려고 합니다. 파르테논, 피라미드, 한국 건축 등을 소재로 해서 가벼운 여행서적이 아니라, 깊이가 좀 있는 책을 쓰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죽기 전에 걸작이 나오지 않을까요? (웃음) 죽기 전까지는 수행이고, 죽기 직전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 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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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 김희곤 저 | 오브제
『스페인은 가우디다』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삶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며, 그가 인류에게 선물한 건축물을 심도 있게 소개한다. 바르셀로나 곳곳의 가우디의 건축 사진을 보고 건축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결코 화려하지 않았던 인간 가우디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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