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만져지지 않는다. 책으로는 만들어지지만 글자는 만질 수가 없다. 무형의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유형의 것을 탐닉하게 되는데, 김중혁 작가에게는 종이와 가방, 문구가 그런 존재다.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메이드 인 공장』의 출발은 단순했다. 작가가 좋아하는 물건이 탄생되는 배경을 엿보고 싶었다. 사람을 이해하듯 물건도 이해하다 보면,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메이드 인 공장』은 지난 1년간 김중혁 작가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산문집이다. 종이, 콘돔, 간장, 초콜릿, 지구본 등 여러 공장들을 다니면서 물건들의 세계사를 들여다보았다. 비단 공장 취재기가 아닌 것은 작가가 공장을 거닐며 느낀 단상과 시간의 기억들이 주재료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궁금했던 김중혁 작가는 호기심과 죄책감(?)으로 종이 공장을 찾았고, 다른 공장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콘돔, 브래지어 공장을 방문했다. 어떤 지인은 브래지어 공장을 가게 된 그에게 "야, 세상에 재미있는 일은 네가 다 하는구나"라며 음흉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김중혁 작가는 산문집을 펴내고는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부분 털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보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하나 『메이드 인 공장』의 뒷이야기를 궁금해 할 독자들이 많아 보였다. 소설가가 산책한 공장의 풍경, 제한된 지면 속에 그리지 못한 풍경이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만난 김중혁 작가는 다소 익살스러울 것 같았으나 꽤 단정한 모습이었다. 예의 바른 모습 속에서 그의 공장 취재 현장이 그려졌다. 김중혁의 글 공장 통제실에는 표어가 하나 적혀 있다. "멍하니, 바라보자. 오랫동안, 바라보고, 끈기 있게,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자. 모든 게 끝났으면 빠른 시간에 쓰자." 꽤 바지런한 작가 김중혁. 24시간 쉬지 않는 그의 공장의 연료가 궁금해졌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공장에서 하는 일보다 우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공장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보다 구체적이며 직접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메이드 인 공장』中
다정한 서먹함을 느낀 공장 사람들
『메이드 인 공장』의 출발이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된 취재인가요?
예전에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으로 <한겨레 21>에 카툰을 연재했어요. 이 책의 ‘사물의 뒷면’으로 들어가 있는 ‘감정 이입’이라는 그림이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것들이에요.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공장을 한 번 가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요. 왜 재미없을까 생각해 봤더니 공장 얘기가 좀 많더라고요. 하루키는 그런 취재가 재미있어서 간 건데 저는 공장에 대한 이야기보다, 공장에서 본 풍경이나 공장에서 느끼는 것,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을 김중혁 식으로 소화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죠.
칼럼을 시작하면서 꼭 가고 싶었던 공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막 우겨서 갔던 곳은 대장간이랑 지구본 공장 정도였어요. 책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대부분 공장을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과자 공장에 가서 공장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 가보고 싶은 공장 없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어떤 분이 "콘돔 공장, 되게 궁금한데요"라고 해서 콘돔 공장을 취재하게 됐어요.
<한겨레>에 연재할 때, 가장 뜨거운 반응이 있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웃음) 콘돔 공장이요. 콘돔이랑 브래지어가 제일 뜨거웠어요. 댓글도 많이 달렸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간장 공장 이야기도 반응이 꽤 있었는데, 일단 가장 뜨거운 반응은 콘돔이랑 브래지어였어요.
큰 기대 없이 갔는데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곳도 있을 것 같아요.
지구본 공장을 가보기 전까지는 지구본을 만드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지구본 공장에 가니까 분위기가 무척 좋더라고요. 공장의 규모가 크진 않은데, 공장의 풍경이 되게 좋았어요. 공장 분들이 모두 지구본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공장 자체가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공장의 동선이 한눈에 다 보이는데, 이쪽에서는 지구를 조립하고 있고 저쪽에서는 지도를 오리고 있고. 이런 풍경이 묘하게 재밌더라고요. 설명하기가 되게 힘든데요. 가서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풍경이에요.‘이런 공장에서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한 번 취재를 가면, 몇 시간 정도 취재하셨어요?
처음 공장에 갔을 때는 엄청 열심히 봤어요. 그런데 열심히 볼 이유가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전문적인 이야기는 어차피 제가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쓸 수가 없고, 게다가 요즘에는 홈페이지에서 웬만한 정보는 다 찾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한 두 번 취재를 한 후부터는 ‘그냥 내가 본 것만 써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일반인들과 똑같은 견학 코스를 소개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장이 대체로 비슷해서요. 다섯 군데 이상 가보니까 대충 시스템을 알겠더라고요. 공장 직원 분들하고 이야기할 때도 재미있는 게, 예를 들어 화장품 공장에 계신 분들은 자기 분야는 잘 아시지만 콘돔 공장 이야기는 전혀 모르시잖아요. 제가 다른 곳도 이 곳과 비슷한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리면, 굉장히 재밌어 하면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더 해주시더라고요. 되게 흥미로운 취재였어요.
프롤로그를 보면,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묘한 공통점을 느꼈다"고 했어요. '다정한 서먹함'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제가 시골의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 만났던 동네 분들하고 공장 사람들하고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서울에서 홍보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느낌이 들어요. 저를 무척 서먹해 하면서 ''이 사람이 여기를 왜 왔지?' 이런 생각도 하시는 것 같고.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해보면, 다정한데 약간 낯을 가리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게 있었어요. 어릴 때, 동네 아저씨들을 바라봤을 때 느꼈던 풍경과 비슷해서, 되게 반갑고 기분 좋은 서먹함 같은 감정이 들더라고요.
공장 분들도 칼럼을 읽었을 텐데, 어떤 반응이던가요?
한 공장에서는 사보에 글을 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왜 싣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우리가 못 봤던 새로운 시각이라서 좋았다"고 하셨어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저는 익숙한 제 시선으로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만 그 분들의 입장에서는 밖에서 보는 시선이 새로울 수 있잖아요.
꼭 가고 싶었는데 섭외가 안 돼서 못 갔던 곳도 있었나요?
많죠. 스포츠 장비를 만드는 공장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국내에는 별로 없더라고요. 또 문구 공장도 가보고 싶었는데, 단가 자체가 워낙 낮으니까 대부분 외국에 공장이 있더라고요. 글러브나 공을 만드는 곳도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닿았어요.
'나중에 소설을 쓸 때 배경으로 써도 되겠다' 싶은 공장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산문과 소설은 분리되어 있는 작업이긴 한데요. 재미있다고 느껴서 한 번 써보고 싶었던 건,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초콜릿 공장이에요. 영등포에 있는 공장이었는데, 부지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옮길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초콜릿을 이동하는 수송관이 모두 땅 밑에 심어져 있어서, 그 관을 옮기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거예요. 그게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 땅 밑으로 초콜릿이 흐르는 관이 있는 풍경을 상상해 보니까, 되게 재밌을 것 같았어요.
1년 단위로 글 공장을 돌린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의 일상을 소재로 한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를 흥미롭게 읽게 되는데요. 수필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는 게 김중혁 글 공장의 목표라고 했어요. 소설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렸는데요. 김중혁 작가의 산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서운할 이야기에요. 하지만 최근에 <한국일보>에 새 칼럼 연재를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수필공장 직원들이 난리예요(웃음).
빨리 원고를 달라고요?
(웃음) 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꾸준히 아이템을 개발해야 하는데요. 발로 뛰든 어떻게 하든 책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저는 1년 단위로 글 공장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글 공장' 이야기를 쓰게 된 게, 공장 하나가 섭외가 안 돼서 얼결에 쓰게 된 거거든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요. 사람들이 창작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칼럼 ' 김중혁이 캐는 창작의 비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해요.
하나의 작업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물고 올 때가 많네요.
어떤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작업이 다른 쪽으로 튀어서 아이디어가 생길 때가 많아요. 아마 칼럼을 쓰는 일은 계속 이런 식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소설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것 같아요. 소설에 영향을 거의 안 미치기도 하고, 소설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그래서 편안하게 쓰는 것 같아요.
김중혁 작가의 공장에는 거래처는 많지만 직원은 작가, 한 명뿐이잖아요. 만약 공장에 직원을 둘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을 뽑고 싶나요? 어떻게 보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기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Her> 보셨나요? 스칼렛 요한슨 같은 사람이 비서일 수 있겠죠(웃음). 그런데 사람을 들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면 약간 사람이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소설을 쓸 때의 나와 에세이를 쓸 때의 나, 그림을 그릴 때의 내가 다 달라요. 뇌가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고요. 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흥미로운 부분인데, 정말 내 안에 직원들이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작가님이 여러 사람이 되어서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건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소설을 쓸 때는 이렇지 않거든요. 에세이 쓸 때도 이렇지 않고,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고요.
만약 글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을 인수할 수 있다면, 탐나는 공장이 있을까요?
사업에는 흥미가 없지만 탐나는 공장들은 있죠. 예를 들면 맥주 공장? 아니면 연필 공장이나, 지구본 공장도 재밌을 것 같아요. 지구본 공장도 의외로 개발할 게 많더라고요. 취재 갔을 때, 최근에 개발한 아이템이 지구본의 특정한 부분을 카메라로 찍으면 그 지역 형태를 휴대폰이 인식해서 그곳의 정보를 보여주는 거였어요. 별자리가 보이는 지구본도 있었는데 신기하더군요.
최근에 동료 작가들과 함께 소설 리뷰 사이트 '소설 리스트'라는 홈페이지를 열었어요. 김중혁 작가는 '표지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메이드 인 공장』의 표지는 어떤가요? 흡족한 결과물인가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 리스트'에 포함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마음에 들어요. '표지 평론가'라고 농담을 했는데, 저는 표지를 워낙 좋아해서 늘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심심할 때, 외국 서적의 표지를 보는 취미도 있고요. 남들보다 조금 표지에 관심을 가지는 편인 것 같아요. 『메이드 인 공장』의 표지 그림을 제가 그렸거든요. 아이콘으로 공장을 표현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 어떻게든 조금씩은 계속 참여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림을 그릴 때가 글을 쓸 때보다 편한가요?
그림을 그릴 때는 약간 뇌가 비어 있는 느낌을 받아서요. 보통 팟캐스트나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서 작업을 하거든요. 스케치는 미리 하고요, 들으면서 보면서 동시에 작업을 하는데. 그게 은근히 노동이어서 뇌가 텅 비게 돼요. 그래서 웃기는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는 비어 있는 상태에서 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약간 뇌가 포맷되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편하고 좋아요.
책에서 또 흥미로웠던 부분이 ‘소설을 방문 판매하면 어떨까’라는 이야기였어요. 작가가 직접 방문 판매를 한다면 값이 엄청나게 올라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보통 방문 판매는 서비스를 많이 주잖아요. 만약 이벤트성으로 방문 판매를 해본다면 독자들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요?
일단 제가 방문을 한다는 게 부록이고요(웃음). 친구들의 소설집을 부록으로 줘야 될 것 같은데요. 또 제가 직접 만든 책갈피나 책에 밑줄을 그을 수 있는 연필 같은 걸 화장품처럼 끼워서 드릴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러려면 책값이 한 1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만약 방문 판매 이벤트를 열어서 신청자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독자에게 찾아가고 싶으세요?
(웃음). 이런 이벤트를 안 할 것 같아서, 근거를 댈 수는 없는데요. 어떤 독자가 어떤 독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추첨을 하지 않을까요? 댓글 같은 걸 봐도 사실은 모든 댓글이 다 중요한 댓글이어서, 그런 걸 뽑을 때도 저는 추첨을 하자고 늘 이야기를 하는데, 출판사에서는 그렇게 안 하는 것 같아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게 훨씬 편한 사람이에요
요즘 일상은 어떤가요?
진짜 바쁘네요. 새로 시작한 칼럼이 격주 연재인데도 인터뷰를 해야 하니까 공이 많이 들어요. 자료가 많이 필요해서 예전에 나왔던 창작 관련 책들을 다 보고 있거든요. 거기에 있는 핵심 내용들을 요약해서 보여주면, 나중에 이 칼럼 전체가 하나의 창의성에 대한 자기계발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예술가적인 인터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창작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어서 관련 자료를 많이 보고 있어요. 그리고 소설도 꾸준히 쓰고 있어요. 지금 장편도 쓰고 있고 단편도 함께 작업을 하고 있어서 좀 많이 바쁜 상황이에요.
올해 봄에 장편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펴냈는데, 최근에는 거의 1년에 2권씩을 냈어요.
그렇게 되네요. 소설을 쓰는 것과 에세이를 쓰는 작업이 별개로 움직이니까 사실은 ‘책을 너무 많이 내나?’ 라는 생각도 있는데, 지금은 쓰는 게 좋으니까 굳이 이걸 제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또 그렇게 많이 쓰는 건 아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단편집이 먼저 출간이 되겠죠?
내년 상반기에 단편집 하나를 낼 생각이에요.
지금 쓰고 있는 장편 소설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직 윤곽만 잡고 있는 상태라서요. 시기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아마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 같은데 SF는 아니에요. 제목만 정해 놓았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우주 비행사에 대한 이야기에요.
김중혁 작가를 두고 "아이디어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림, 디자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고요. 일반 독자들이 '김중혁 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편견으로 듣지 않아요. 그것도 제가 만든 이미지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게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누구나 다 변하잖아요.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하게 되는데. 저도 변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예전에 첫 소설을 냈을 때 제가 지향했던 소설의 지점과 지금 생각하는 지점이 달라진 것처럼, 제 소설이나 에세이도 바뀌고 있어요.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동시대의 작가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는 게 흥미로울 수 있거든요. 최근에 많은 분들이 "소설이 약간 달라지는 것 같다", "페이소스가 더 생기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다가도 ‘아, 그런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 변화가 조금씩 천천히 진행되면, '사람들이 편견이라고 하는 것들도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를 느끼게 되고, 그런 재미가 생기겠죠.
김중혁 작가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게 훨씬 편한 사람이에요. 제가 사실은 이동진 씨와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해서 많은 분들이 '말을 잘하는구나'라고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게 50배 정도 편해요.
50배나요?
왜냐하면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뒤죽박죽일 때 글로 써내려 가면 정리가 돼요. 그리고 구조를 만들 수 있잖아요. 제가 OK한 것만 내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은 그 과정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머릿속에서 정돈을 해도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 부담감이 커서 글 쓰는 게 훨씬 편해요. 가끔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웃음).
"소설을 열심히 쓰기보다는 오래 써야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나요?
물론이에요. 재밌는 일은 오래 하고 싶잖아요. 재미있는 일을 질리지 않게 오래 하고 싶어요. 너무 몰입해서 생명을 걸듯이 하면 질릴 수 있으니까, 되도록 천천히 오래 쓰고 싶고, 1년에 한 편씩은 쓰고 싶어요. 동시대 작가들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작을 내는 걸 보면 되게 좋거든요. 제 꿈은 독자들이 ‘올해 김중혁의 신작이 나오겠지? 올해는 어떤 걸 낼까?’라고 매년 김중혁의 소설을 궁금해 하는 거예요. 이런 독자들이 많아진다면 정말 최고로 좋겠죠.
요즘 작가로서가 아닌 사람 김중혁으로서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창작의 비밀’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2014년에 사건이 많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화도 좀 나고 짜증도 나고 약간 슬럼프가 왔던 것 같아요. 지금 <씨네21>에 ‘바디 무비’라는 몸에 대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제가 너무 무기력하니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생각해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였어요. '어떤 질문을 던질까' 계속 물어보다가 '사람들이 조금 덜 험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거칠어지는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보면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근원적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제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데, 아마 새로 시작한 칼럼 '창작의 비밀'이 저의 대답인 것 같아요. 뭔가 만들고 창조적인 일을 하면 덜 싸우게 되지 않나요? 그런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는데요. 이게 아마 칼럼에 반영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어떤 독자들이 『메이드 인 공장』을 흥미롭게 볼 것 같은지, 저자로서의 생각이 궁금해요.
책에는 대체로 어떤 타깃이 있지만, 이 책은 제가 좋자고 만든 책인 것 같아요. 제가 관심 있어서 만든 책이라서 어떤 분들이 좋아할지 진짜 모르겠어요. 시작할 때부터 '공장 얘기를 사람들이 보겠어?'라고 생각했던 게, 약간 덕후 냄새가 나는 느낌도 있어요(웃음). 일단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제 스타일로 했기 때문에 조금은 소프트해진 것 같고요. 사물에 대한 관심을 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면 재미있게 볼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소설이라는 건 어떤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건데, 요즘 사람들은 사물에도 감정 이입을 되게 잘하는 것 같아요. 휴대폰이 떨어지면 내 마음도 같이 깨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공감 능력이기도 하거든요. 사물이 태어난 배경을 알고 사물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다시 해보면 그 사물과 제가 더 친밀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럴 때 생겨나는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 이런 걸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메이드 인 공장김중혁 저 | 한겨레출판
이 책은 제지 공장부터 콘돔, 간장, 가방, 도자기, 엘피, 맥주, 그리고 김중혁 글 공장까지 호기심이 가득한 소설가 김중혁이 다양한 공장들을 다니면서 적어 내려간 시간과 기억, 속도와 사람에 대한, 느긋하고 수다스러운 글과 그림을 엮은 산문집이다. 15개의 공장 산책기와 더불어 노트 탐험기, 번뜩이는 가방 디자인 하기, 맥주 만취 시음기 등 작가의 재기 넘치는 토크(talk)와 인공 눈물, 글로벌 작가, 안경, 보온병, 시간표 등 사물을 담은 그림 등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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