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촉망받는 소설가 헬렌 오이예미. 첫 번째 작품 『이카루스 소녀』가 성공하면서 그녀는 일약 스타 작가에 오른다. 이때 불과 그녀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이후로 『건너편 집』, 『흰색은 마녀의 것』을 발표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네 번째로 발표한 장편 『미스터 폭스』가 이번에 한국에도 출간되었다.
그녀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재해석’이다. 『건너편 집』은 쿠바 신화를 모티브로 했고, 세 번째 소설 『흰색은 마녀의 것』은 헨리 제임스와 에드거 앨러 포에 뿌리를 뒀다. 그리고 『미스터 폭스』역시 잘 알려진 어떤 작품에 기반을 둔다. 바로 『푸른 수염』이다.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연쇄살인마 푸른수염이라는 모티브는 『미스터 폭스』에서 기묘한 형태로 변형된다.
인기 작가 세인트 존 폭스는 작품 속 인물을 죽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성이 찾아온다. 메리 폭스라는 여성은 환상 속 인물로 미스터 폭스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 그녀는 미스터 폭스에게 더는 작품에서 살인은 그만두라며 이야기 대결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소설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모르게 전개된다.
열린 마음으로 읽어달라
『미스터 폭스』가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고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에는 한국 독자가 누군지 몰라 긴장 많이 했다. 만나 보니 참여 잘하고, 이야기가 길어도 경청해 주고, 많이 질문해 주셨다. 영화와 책 등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많이 둔 독자들이었다.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미스터 폭스』를 비롯하여 오이예미의 작품은 독특하다. 독자가 읽기 전에 염두에 둘 부분이 있을 듯한데,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주의 깊게 읽을 책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읽기를 바란다. 이 대목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싶어도 다음 페이지에 가면 다른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
구성이 참신하다. 실마리가 된 작품이 있을 듯하다.
『미스터 폭스』는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만든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동화 『푸른수염』을 재해석한 책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로 영화, 그림으로 여러 차례 재해석된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보면서 나 또한 재해석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스릴러물로 시작했으나, 원하던 게 아니었다. 다시 시작했다. 『푸른수염』의 영국 버젼이 『미스터 폭스』라고 보면 될 것이다. 미스터 폭스와 레이디 메리가 서로 맞서 싸운다. 이 두 캐릭터가 대립하는데 1930년대 배경을 입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는 식으로 썼다. 글을 쓰는 내내 놀랍고 두렵기도 했지만, 잘 끝냈다.
신화나 동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신화나 동화에 관심 있는 이유는 재구성하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이 아는 작품을 재구성하면 독자도 아는 이야기라 시작하기 편하다. 거기에 반전을 주면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스토리텔러보다는 독자가 되어야
어떻게 보면 『미스터 폭스』는 결국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연인이 얻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대담하되 너무 대담하지는 않게.
끊임없이 작중 인물을 죽이는 작가와 그에 반하는 뮤즈 사이에 스토리텔링 경쟁이 펼쳐진다. 그런 면에서 작품의 주제가 스토리텔링으로 볼 수도 있다. 모든 독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스토리텔러가 되라는 메시지로 읽어도 될까?
굉장히 난해한 질문인데, 지금 현대인은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SNS로도 그렇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강조해서 보여주고, 좋아하지 않는 일은 숨긴다. 이게 이야기다. 장단점이 있다.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는 걸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 스토리텔러가 되라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는 독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삶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삶의 파편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서로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니 작품에 이야기가 많다. 이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는다면?
특히 즐겁게 작업했던 부분은 ‘마담 데 실렌시오의 교습’이다. 신부 수업을 많이 다루지만, 신랑 수업은 드무니까.
한국에서는 소설이 예전보다 덜 읽힌다는 말이 나온다. 스마트폰 영향도 있고. 영국은 어떤가.
우선 예전에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다만 요즘은 아이패드나 킨들을 이용해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읽는다. 소설 인기가 없어졌다기보다는 플랫폼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 첫 책 『이카루스 소녀』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은 관심은 부담스럽지 않았나.
얼마나 부담스럽지는 기억 안 난다. 시간이라는 게 좋은 듯하다. 그때 얼마나 부담을 느꼈는지 잊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걸 잊는다. 매번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평소에 취미도 독특할 거 같은데.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특별한 취미라면 주전자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마음에 드는 주전자를 수집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여성의 삶을 다루고 싶어
주목하는 아시아 작가가 있나.
책을 읽을 때 나라를 생각해서 읽지 않는다. 아시아 문학이라고 생각해서 보지 않고, 나와 같이 문학의 나라에서 살고나, 하면서 본다. 지역별로 따로 두고 읽진 않는다.
새로운 스타일에 계속 도전하는데, 지금 쓰는 작품은?
지금 쓰는 책은 다소 어렵다. 열쇠에 관한 책인데, 책을 쓰면서 마치 열쇠들이 나에게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미스터 폭스』처럼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 스타일을 표현한다. 여러 가지 사람이 되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작업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앞으로도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다. 복잡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테고, 그 여성 캐릭터가 만나는 사람에는 남자도 포함될 것이다.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헬렌 오이예미 저/최세희 역 | 다산책방
헬렌 오이예미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어려움과 정체성의 혼란을 성장소설로 담아낸 첫 번째 작품 『이카루스 소녀』를 스물한 살에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천재 소설가’라는 극찬과 함께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헬렌 오이예미는 쿠바 신화에 영향을 받은 두 번째 소설 『건너편 집』을 발표한 데 이어, 헨리 제임스와 에드거 앨러 포에 뿌리를 둔 세 번째 소설 『흰색은 마녀의 것』으로 2009년 셜리 잭슨 상과 2010년 서머싯 몸 상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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