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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왜 이렇게 나쁜 세계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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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9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젊은 작가’ 부문 1위는 김연수였다. 지금도 김연수는 젊지만 그가 등단한 지는 햇수로 20년이 지났다. 작가로 활동한 기간을 보면 김연수는 이제 중견작가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상경력을 보면 그는 대한민국 대표작가이다.

 

『소설가의 일』은 대한민국 대표작가 김연수가 공개한 소설론이자 창작론이다. 소설은 무엇인지,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를 다룬다. 이런 내용이라면 예비 작가를 꿈꾸는 사람만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도 상당히 재밌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한국 작가가 쓴 그 작법책의 제일 첫 장에는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소설을 쓰려면 먼저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니! (중략) 어떤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원양어선을 타보란다. (‘차라리 인간이 되겠습니다. ㅠㅜ) 또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먼저 라캉이나 데리다부터 공부하란다. (‘에잇, 원양어선 쪽을 다시 알아보자.’) - 『소설가의 일』99쪽

 

반대로 이런 문장도 있다.

 

세계 각국의 속담이 말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잔인한 진실은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 농담할 겨를조차 없는, 이런 직설의 진실은 도처에 널렸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그 잔인한 진실을 저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 왜? 잔인한 진실을 좀더 완화시키고 짐짓 모든 게 축제인 듯 살아가기 위해서다. -『소설가의 일』 185쪽

 

잔인한 진실을 완화시키고 모든 게 축제처럼 느끼게 도와주는 김연수 소설가를 만났다.

 

김연수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웃기게 쓴 책

 

『소설가의 일』이라는 제목을 보고 일상을 담은 산문이라 생각했는데, 소설론ㆍ창작론입니다. 이번 책을 기획한 계기가 있을까요.

 

책에 실린 글들은 2012년에 네이버의 문학동네 카페 게시판에 연재한 글들입니다. 햇수로 치자면 등단한 지 20년이 된 해였죠. 처음에는 쉬어 갈 겸, 제목 그대로 소설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쓰려고 했습니다. 강연을 가보면 독자들은 이런 걸 궁금해하더군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책은 몇 권이나 읽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써 보자, 라고 해서 책의 초반에는 그런 식의 느낌이 남아 있죠. 예를 들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떤 식으로 읽는지 같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용이 바뀌었어요. 20년 정도 소설을 썼더니, 소설가 김연수는 결과적으로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되더라는 식으로요. 소설가의 눈에는 이 세상의 일들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썼더니 마치 작법 책처럼 나왔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데 도움받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소설을 썼더니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됐다는 거지, 이런 것들을 알았기 때문에 소설을 썼다는 건 아니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책에는 소설가의 일상은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는데요. 글 쓰는 시간 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저는 단순해요. 별다른 취미가 없거든요.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옛날 노래보다는 신곡을 주로 듣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어떤 신곡이 좋은지 알려면 이것저것 많이 들어봐야하니까요. 그리고 책을 읽는데도 많은 시간을 들이고요. 가끔 달리기나 산책을 하고요, 드문드문 여행을 갑니다. 이게 전부죠. 아, 술은 자주 마십니다. 원래는 맥주를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독한 술이 맛있어졌습니다.

 

『소설가의 일』에 유머를 잔뜩 넣었는데요. 독자를 웃기려고 노력하셨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노력까지는 아니고요. (웃음)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라 꽤 진지한 내용인데, 진지한 내용을 진지하게 쓰면 더 웃길 것 같아서요. 잔뜩 폼을 잡고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결여된 것을 가지려는 욕망을 지닌 인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렇게 써버리면, 내용이야 아주 훌륭하지만 너무 웃기잖아요. 독자들 보기에는 “뭐, 어쩌라고?” 이런 느낌도 들 테고요. 그래서 너무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느라 일부러 웃기게 쓴 것입니다. 말이 되나요? (웃음) 진지하게 소설가의 일에 대해 썼으면 진짜 웃긴 책이 됐을 거예요.

 

이번 책 말고도 산문집이 전반적으로 경쾌하잖아요. 소설 쓰는 자아와 산문 쓰는 자아가 좀 다른가요?

 

산문이 대상으로 하는 세계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고 주인공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그대로 쓰면 좀 민망한 감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자꾸 웃기게 나오네요.

 

 

김연수는 황희 정승형 소설가

 

세상에는 헤밍웨이처럼 하드보일드 형의 소설가도 있고, 다자이 오사무처럼 자멸파 형의 소설가도 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황희 정승 스타일의 소설가다. (중략) 소설을 쓴다는 건 끊임없이 등장인물들에게 “그건 네 말도 맞아”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소설가의 일』 57~58쪽

 

자신을 황희 정승형 소설가라고 진단했습니다. 너도 맞고, 나도 맞다가 황희 정승형 소설가인데요. 우리가 소설을 읽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갈수록 소설을 안 읽는 사회가 되면서 더 팍팍해지는 걸까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른 세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를 보면 마흔이 넘으면 소설 안 읽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궁금한 게 있다면 인문서 한 권만 읽으면 되는데, 왜 길고 성가신 소설을 읽느냐는 거죠. 나이 많은 사람들의 꼰대스러움은 여기서 생기는 게 아닐까요? 기성세대들은 굉장히 많이 알아요. 그래서 문제에요. 실제로 피케티 책, 이런 거 한 권만 읽어도 정말 아는 게 많아지잖아요. 하지만 많이 알면 뭘 하나요? 다른 사람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데. 지식이 아무리 많은들 전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요? 제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전달이 안 되니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얼마나 고역입니까?

 

공감하는 바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잖아요. 공감이란 자기가 알고 있는 게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지 가능해요.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의 항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있나요? 특히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말이라면, 더욱 그렇죠. 그러니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해요. 이런 연습은 나이 든 사람들 이 많이 해야만 해요. 경직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나이 든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식이죠. 우리의 수많은 문제는,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그 모든 문제가 그래서 일어난 게 아닐까요?

 

선생님 친구들도 안 읽나요?

 

안 읽죠. 당연하다는 듯 안 읽어요. (웃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정말 많은 책을 읽으시던데요. 책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요.

 

어려서부터 나만의 서가를 가지려고 책을 쭉 모았는데, 서른다섯 살 정도가 되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이상 책을 꽂을 공간이 없었어요. 그때부터는 서가에서 뺄 책을 골라내는 게 일이죠. 계속 볼 책은 꽂혀 있고, 아닌 책은 다 바닥에 누워 있거나, 벽장 속에 들어가 있거나. 책에도 썼듯이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소설 365권, 비소설 365권을 제일 좋은 순서대로 꽂아놓은 서가를 가지는 게 꿈이에요. 그때부터는 새 책을 안 읽고 그 책들만 읽을 거에요. 오전에는 소설, 오후에는 비소설, 뭐, 이런 식으로요.

 

좋아하는 캐릭터로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을 꼽았습니다. 김연수의 작품 중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밤은 노래한다』에 나온 여옥. 여옥은 잘 뛰어서 편지를 배달하는 연락원이 됩니다. 생생한 캐릭터에요.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가지만 있어도 벽을 뚫을 수 있어

 

이야기에서 인물의 절망이 중요하다고 쓰셨잖아요. 실제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 고비가 없는 사람이 없을 텐데, 작가 김연수에게 고비는 언제였나요. 혹시 영화배우(김연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출연한 바 있다) 시절이었을까요.

 

영화배우 시절은 고비를 못 넘고 끝났고요. (웃음) 소설가로서는 스물일곱 살 때였을까요, 두 번째 책을 펴냈는데 반응이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나 미미했어요. 그래서 소설은 그만 쓰고 딴 일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고비였는데, 사실 그때는 고비가 아니라 막다른 벽이었어요. 그렇게 3년 정도 소설을 안 썼어요.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으니까. 이때 많은 걸 버렸습니다. 기대, 목표 같은 것들을요.

 

끝에는 딱 한 가지만 남더군요. “글을 쓰고 싶다.” 이거 하나요. 책으로 출판하겠다는 기대조차도 바라지 않았어요. 실제로 출판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책에 제가 하루에 3시간만 쓴다고 했잖아요. 그때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3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소설만 생각해보자. 직장에 다니던 시절인데 하루에 3시간 내는 게 힘들었어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무엇도 바라지 않고 계속 썼어요. 소설을 다 쓰고 나니 그게 벽이 아니라 고비였다는 걸 알겠더군요. 소설을 못 쓰면 벽이고, 쓰면 고비가 되는 거죠.

 

누구에게나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을 거예요. 다들 비슷할 테니까. 그건 뚫고 지나가고 나면 고비가 되는 벽이에요. 온갖 욕망들, 다른 사람들에게 원하는 거, 자신에게 바라는 거, 그런 것들을 그 벽 앞에서 하나둘 버리고 나면 돌멩이처럼 단단한 한 가지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하나를 믿고 벽을 뚫고 지나가는 거에요. 그 하나가 없으면 통과가 불가능하죠. 그 하나가 뭔지는 다들 다르겠죠. 제게는 '소설을 쓰는 일'이었어요.

 

이미 많이 받은 질문일 텐데요. 등단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이 세상에 기대를 덜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나쁜 곳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나쁜 사람이 세속적인 관점에서 성공하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죽기 전에는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에 제발트의『현기증. 감정들』을 읽는데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인 채 추이를 지켜본 재판은,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 이상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답니다. 즉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으며, 정의는 정의롭지 않다는 진실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관적인 세계관이 자리잡은 뒤로 오히려 예전에 비해서 인간에 대해 더 너그러워졌어요. 예전에는 괴로웠거든요. 악행을 하는 인간을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이해가 됩니다. 이 세상은 원래 그런 세상이고, 그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요즘은 개개인의 나쁨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은 줄어든 반면에 근본적으로 왜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소설가의 일』에도 밝히셨지만, 1991년 대학생들의 연이은 죽음이 창작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후 글쓰기 욕망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야기로 치자면 나쁜 이야기, 잘 못 쓴 이야기, 그러니까 읽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읽는 것을 넘어서 나는 심지어 그 이야기 안에 살고 있어요. 조물주랄까, 이 세계를 창작한 존재의 관점에서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씌어진 것이겠죠. 그렇다면, 왜 이런 세계를 썼는지가 저는 궁금합니다. 이렇게 나쁜 세계가 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작가라면 더 좋은 세계를 만들었을 텐데. 예컨대 가만 있어도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 세상, 얼마나 좋아요? 하지만 이 세계의 작가는 모두가 고통받는 세상을 만들었어요.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런 궁금함이 글쓰기 원동력이 되겠죠.

 

올해 한 북콘서트에서 되고 싶은 사람으로 할머니를 꼽았는데요.

 

할머니들은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하시고, 잘 웃으시죠. 무엇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세요. 아전인수라는 말 좋잖아요? 세상이 제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아전인수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을 이길 수는 없겠죠. 세상은 하나뿐이지만, 이야기는 사람마다 하나씩입니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을 잘 하는 사람이 좋은 거죠.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해도 멋진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할아버지는 왠지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일단 할아버지들은 모든 걸 너무 많이 알아요. 

 

김연수06-사본.jpg

 

김연수의 글은 79점

 

소설가 아니라 소설 쓰는 김연수라고 소개를 하시는데.

 

소설가라는 말이 이상하게 입에 잘 안 붙어요. 일찍 등단한 편인데요. 그때는 나이도 어리고, 내가 지금 소설을 잘 쓰고 있는지 어떤지 자의식도 강하니까 소설가라는 말이 잘 안 나왔어요. 그래서 소설 쓰는 김연수라고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말하죠.

 

배우로 연기에도 도전하셨잖아요. 선생님의 글과 연기력을 100점 만점으로 치면 어느 정도일까요.

 

배우는 50점. 소설가로는 글쎄요. 79점? 안타깝게 80점이 안 되는 정도.

 

시키면 다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혹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레너드 코헨처럼 목소리를 깔고 웅얼웅얼거려서 잘 부르는지 못 부르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현대소설이 추리소설의 일부라고 진단하셨잖아요. 본격 추리소설 써 보실 계획은 없나요.

 

계속 생각중입니다.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안 썼지만, 제가 쓴 소설은 대개 추리소설의 영향 아래에 있어요. 예전에는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써볼까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고 싶은 건, 북구 스타일의 추리소설입니다. 긴 분량에 알코올 중독에 절어 있고 폭력성이 강한, 쫓겨나기 직전의 형사가 등장하고 범죄자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나오는, 뭐 그런 소설.

 

지금 쓰고 계신 작품은?

 

지금은 없어요. 조만간 2048년을 다루는 짧은 소설을 시작해 볼까 하는 계획은 있어요. 다음에 어떤 책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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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김연수 저 | 문학동네
김연수의 신작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이 떠오른다. “산문은 모든 예술을 포괄한다. 한편으로 단어는 그 안에 온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자유로운 단어는 그 안에 말하기와 생각하기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설을 쓸 때보다 자유로울 단어들로, 김연수는 이 책에서 생각하기와 말하기, 쓰기뿐 아니라 어떤 삶의 비밀/태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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