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주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의 환기, 새로운 경험에의 갈구 혹은 변화에 대한 막연한 희망.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길 위에 오른다. 길 위에서 진짜 세상을 만나고 특별한 일들을 만든다. 그곳에서 조금 달라진 자신을 찾는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의 저자 이애경에게 여행은 ‘그리움의 몸짓’이다. ‘열정의 몸짓’이다. 일상에 익숙해지고 마음에 감기가 걸렸을 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열쇠다. ‘떠나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걸 지금까지의 여정이 증명해주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을 때는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행에 들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았을 거라고 친구들이 말하지만 저자 이애경은 움직이며 길을 내는 게 더 좋다. 자신을 온실 속에 두고 싶지 않다. 잡초처럼 세상을 맛봤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까지 경험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낯선 곳의 풍경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알기 때문에 머물 수 없다. 전 세계 30여 개 나라를 다니면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으로 그녀의 일상은 넉넉해졌다.
여행을 다닐 때 다소 감상적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굳게 다잡고 있던 마음의 끈이 풀어져서가 아니라 아이처럼 단순하고 무능력해진 나 자신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중략)그래서 혼자서도 잘 해내는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아이의 본성이 만족되자 돌연 나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81쪽)
여행으로 저도 모르는 자신을 찾게 돼요
에필로그에서 북유럽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셨어요. 가장 최근 여행일 텐데, 어땠어요?
어두웠어요(웃음). 세 시에 해가 져요. 해가 일찍 지니까 할 게 없어서 ‘호텔로 들어가자, 잠이나 자야겠다.’ 그렇게 됐어요. 북유럽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늦게 뜨고 일찍 져서 많이 아쉬웠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네 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얼마나 다녀오셨어요?
열흘 정도 갔다 온 것 같아요. 북유럽은 처음이었고 물론 좋긴 좋았는데 너무 어두운 게 흠이었던 것 같아요. 점심 먹고 디저트 먹고 돌아보면 어두워지는 거예요. 놀라서 ‘어? 저녁 먹어야 하나?’ 하고 시계 보면 네 시 밖에 안 됐어요. 그러니 그냥 숙소 들어가서 있다가 다시 나와 저녁 먹고 들어와서 자고 그랬어요. 아침도 깜깜할 때 먹고요. 북유럽 쪽이나 이런 곳의 음악들이 약간 싸이키델릭한 트랜스 음악들이 많은데 이런 음악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라고요. 이렇게 음(陰)하니까 겨울에 그런 음악 만들어 내는구나(웃음). 그런데 분위기는 좋았어요. 정말 예쁘고 아름답고요.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진짜 예뻤죠. 액세서리나 인형 같은 것도 많이 있었고요.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어요. 재미있었어요.
사진 말인데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글을 더욱 감성적으로 읽도록 돕더라고요. 사진 찍는 활동이 글을 쓰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에 어떤 즐거움을 주나요?
책에 수록된 사진은 70% 정도 제가 직접 찍은 거예요.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잡아내기에는 사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다니면 첫날 많이 찍는 편이에요. 첫날 느껴지는 감정이 ‘새롭다, 익숙하지 않다’하는 느낌이 많잖아요. 그 다음날만 되어도 벌써 익숙해져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사실 컬러감이나 분위기를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잖아요. 사진을 찍다보면 그것에 맞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고 그러면 글도 쓰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가장 안타까운 건 사진을 찍었을 당시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내놓지 못한다는 건데요. 어떤 때는 사진이 그 장면을 실제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표현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스스로가 ‘오, 멋있는데!’이러기도 해요(웃음). 정말 좋아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는데, 여행이 직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글은 소재가 참 중요하잖아요. 인생을 에피소드라고 생각할 때, 제가 여기서 그냥 살았으면 에피소드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아요. 직장 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친구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고 그러면 말이에요.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그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고 할 얘기도 많고 그러다보면 쓸 수 있는 아이템들도 많아져요. 여행과 글쓰기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저도 모르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네?’이런 때가 있어요. 가끔 이런 짓을 하는데요(웃음). 한국에서는 사실 외출할 때 메이크업을 하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에, 온천하고 나서 곧바로 전철 타고 시내 돌아다니고 이러거든요. 그럴 때 묘한 쾌감도 느껴요. 안 해본 것들을 하는 경우도 참 많고, 못 겪어 봤던 것들을 겪는 경우도 엄청 많으니까 새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좋죠.
여행 외에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요? 음악, 글, 사진처럼 좋아하는 것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건, 떡볶이를 진짜 좋아하고요, 맛있는 거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굉장히 까칠해요(웃음).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영화 보거나 드라마 보거나 이런 식으로 남의 인생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소설 보다는 위인전이나 사람의 일생, 일대기가 담긴 에세이 류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저 사람은 무슨 생각하고 살지?’ 이런 것들이 궁금해요. 제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 그런지‘저 사람은 어떤 생각하고 살까? 저 사람은 어떻게 이런 고난들을 극복해 나갔을까?’ 그런 게 참 궁금해요.
한켠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동양 여자를 처음 본 것인지 그가 신기한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몇 살이에요?”(중략)나는 그의 얼굴에 대고 “Yes!”하고 소리친 뒤 밖으로 나왔다. 그 기분을, 열여덟 살이 된 그 기분을 밤의 번잡함 속에 잃지 않고 싶어서였다. 별빛이 달처럼 도드라진 밤길을 따라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니와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그곳에서도 오롯이 빛난 나의 청춘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62~63쪽)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아무래도 쿠바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혼자 가기에는 좀 위험한 도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처음에 갈 때는 몰랐고 ‘가면 되지.’ 했어요. 캐나다에 있었거든요. 캐나다에서 쿠바 가는 비행기 표를 끊기가 쉬웠어요. 그래서 그냥 갔는데 다녀오니까 사람들이 큰일 날 뻔했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웃음). 쿠바는 음악도 워낙 좋았어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 있었잖아요? 거기에 감명 받고 간 도시라서 더 기억에 남아요. 헤밍웨이가 자주 드나들었던 바에 가서 앉아서 있으면 할아버지들이 진짜 그런 음악을 하는 거예요. 제가 유일하게 아시안이다보니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저를 쳐다봐요. 정말 제가 연예인이나 된 것처럼 사람들의 눈동자가 다 따라와요(웃음). 그것이 어떤 면에서 저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다 지켜보니까요. 또 그곳 사람들의 자유로움도 참 좋았고 음악과 함께 하는, 음악이 있는 삶도 좋았어요. 생활수준이 그렇게 고급화되거나 이러진 않잖아요. 소득도 좀 낮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아름답게 살아가는 거예요. 제가 퍼커션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어느 집에 간 적이 있는데요. 부부가 단칸방 같은 데 사는 거예요. 방 한쪽 구석에는 부탄가스 같은 것으로 화덕을 만들어 놓고 여기는 식당, 다른 쪽은 침대, 이쪽은 의자를 두고 거실, 이런 식으로 꾸려놓았어요. 진짜 조그만 방에 말이에요. 그렇게 살면서도 무척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란 게 별 거 아닌데. 너무 많은 걸 원하면서 갖지 못하니까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쿠바는 진짜 다시 꼭 가고 싶고 그래요.
저 역시 쿠바 트리니다드를 언급한 부분이 가장 마음을 당겼습니다.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더군요. 얼마나 계셨던 건가요?
일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간지 십 년 정도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웃음). 사실 물가가 엄청 비싸긴 해요. 이중 과세처럼 외국인에게 다른 시스템을 적용하거든요. 현지인들에게는 예를 들어 코코아가 백 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육천 원 정도, 육 달러 정도를 받아요. 그런데 저는 환전을 해서 현지인들이 쓰는 돈을 가지고 살았었어요. 밥 한 끼를 먹어도 이백 원, 삼백 원이면 한 끼가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되게 좋았죠(웃음). 지금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정말 스스럼이 없어요. 매일 동네에서 노는 거예요. 하루를 끝냈으니 사우나 하고 들어가는 것처럼(웃음). 다들 순박하고요. 지금은 개발이 많이 됐다고 하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여행은 일상의 연장
가끔 럭셔리함이 필요하다(232쪽), 눈에 여러 번 밟히는 것은 사야한다(236쪽), 일본여행 둘째 날에는 염색을 한다(238쪽)같은 나름의 규칙이 재미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다면 몇 가지 더 들려주세요.
보통은 여행을 간다는 게 일상과 동 떨어진 일탈의 행위를 하고 온다는 식의 생각을 하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여행을 계속 하다보니까 여행이 일상의 일부인 거예요. 연장인 거죠. 여행을 일상에서 동 떨어진 것이라고 해버리면 좀 멀어지는 것 같은데요. 일상의 연장이라고 하니 같이 아우를 수 있는, 좀 더 넓게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기념품을 사오는 횟수가 많았었는데 요새는 집에 와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와요. 예를 들어 어느 곳 잼이 맛있다하면 잼을 사온다든지요. 그 나라에 가서 생활에 좋은 것들을 찾으면 그걸 가져오게 되는 거예요.
이곳 생활 속에 끼워 넣을 수 있게요. 그러다보니까 여행지에서 하는 행동도 일상의 행위가 되는 거죠. 염색을 하게 된 계기도 그래요. 어차피 염색할 건데 여행 가서 예쁜 색, 우리나라에 없는 색 있는지 가서 한 번 체크해보자 하고 봤어요. 마침 정말 예쁜 색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게 됐죠. ‘우동 먹으러 삿뽀로 갔다’하잖아요(웃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제 생활을 채워주는 요소가 어느 나라의 어떤 곳에 있는 거죠. 그게 굉장히 재미있고 쏠쏠한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여러 사람들에게 할 때가 있잖아요. 그걸 여행 간 김에 미리 다 사는 거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남겨 놓더라도요. 독특한 선물을 구하기가 힘든데 선물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여행지에 갔을 때 ‘이걸 크리스마스 때 줘야겠네.’하고 쟁여 놓았다가 주고 그래요. 받는 사람들도 엄청 좋아해요. 여행지에서 나를 생각했구나, 하는 특별함이 있으니까요. 가방이 무겁죠(웃음).
즐거울 때와 힘들거나 슬플 때 어느 쪽이 여행에 더 좋으세요?
힘들고 머리 아파서 떠나는 여행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되도록 혼자 있으면서 생각들을 비워내고 그래요. 그렇지만 여행하면 저는 에너지가 많이 나거든요. 사람들과 함께 다녀보면 알아요. 제가 돌아다니는 속도나 페이스를 사람들이 잘 못 쫓아와요. ‘안 피곤하니?’하고 다들 물어봐요. 아직 반나절 밖에 안 됐는데!(웃음) 저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행 다녀오면 엄마가 ‘그래, 너는 피부도 좋아졌다.’ 항상 그러세요(웃음). 공항 갈 때부터 좋아요. 공항버스 타거나 이럴 때부터 기쁘고 정말 좋아요.
‘그’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사랑에 힘들어하는 2,30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하는 일들이 사실 흔히 있는 일들이잖아요. 최소한 한 번 씩은 겪고 지나가는 그런 아픔이자 즐거움일 텐데요. 문제는 나만 힘들고, 나만 아프고, 나만 죽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언젠가 인생의 고민들을 꼽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카테고리가 만 개, 십만 개 이렇게 다양하지 않아요. 대략 열 개 안에 다 있어요. 예를 들면 학업, 취직, 연애, 자식, 건강, 돈... 또 뭐가 있을까요? 결국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내 고민이 가장 힘들고 아플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여행을 다니면 ‘다들 이런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차원에서 이별의 아픔을 가지고 여행을 할 때 가장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세상은 넓다, 남자는 많다.’(웃음)
연애를 하다보면 갇혀 있게 되잖아요. 여행을 하면 틀을 깨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사람만 바라보고 한 사람에 집중하던 시각을 조금 떨쳐버리고 다른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이별 후 여행의 좋은 점이죠. 여행을 가면 내가 좋은 것만 하잖아요. 남들 신경 안 써도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가장 이기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나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거죠. 그러다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이별 후의 여행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좀 더 준다고 할까요? 물론 ‘그’에 대한 생각, 헤어진 애인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나겠죠. 어떻게 칼처럼 자르듯이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이기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여행지에서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는 거군요.
나를 자꾸 보게 되는 거예요. 뭘 먹더라도 내가 좋은 것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요. 나한테 집중하게 되니까 시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죠. 연애를 하다보면 여자분들 대부분 상대방 배려하고 상대방만 생각하고 그러시잖아요. 우리를 생각하다보면 내가 희생하게 되는 부분이 참 많은데요. 그 시각에서 벗어나서 나만 바라보는 시간이 되는 거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없어요. 로맨스를 꿈꿨다면 꿨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정말 용감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가까이 다가가 치유하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다.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워너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의 과거와 상처를 인정하고, 극복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 마음속에도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이 피어날 테니까. (200쪽)
‘용기’에 대해 언급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34쪽),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98쪽)처럼요.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사소한’ 것들을 하기 위해서까지 용기가 필요하게 됐을까요? 붙들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건 기자 그만 두면서 가장 크게 했던 것 같아요. 얻는 것도 많고, 내 손에 들어오는 것들이 여러모로 많은 직업이었어요. 제가 일할 당시에는 그랬어요. 다들 기자님, 기자님 이렇게 불러 주시고, 초청해주시고요. 혜택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그것을 딱 놓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거거든요. 선배들도 많이 얘기를 하셨었어요. 기자 그만 두고 나니까 누구 씨 누구 씨 이렇게 부르더라, 속상하더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그게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몰라, 그냥 내려놓아보자.’그랬어요. 어차피 원래 저한테 없었던 거잖아요. 이런 일을 하고 타이틀을 다니까 나한테 왔었던 것이고요. 없어지면 어때, 하고 딱 내려놨어요. 내려놓으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나름대로 큰 결정을 하고, 오던 것들이 다 떠나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려놓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아요. 가지고 있다가 내려놓아도 ‘내 것이면 오겠지,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의 생각이 저한테 확실하게 잡혔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힘든 건 손에 쥐고 있는 걸 내려놓지 못해서 힘든 거거든요. 새로운 걸 잡으려면 손에 있는 걸 놓아야 잡을 수 있는 건데, 아무것도 놓지 못하면서 다른 걸 잡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애를 두 배나 써야 하고요.
한 번 해보면 쉬운 거죠. 근데 한 번 하기가 사실 참 어렵죠.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일수록 아마 힘들 거예요. 좋은 직장, 내가 여기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내려놓기 어렵죠.
그 도전이 상당히 큰 용기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월급이(웃음). ‘아, 내가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 생존의 고민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그냥 했던 것 같아요. 아주 무모하다 싶게요.
비행기가 연착된 에피소드가 하나의 글이 됐어요. 여행이란 사실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일 텐데요. 가장 황당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제가 『그냥 눈물이 나』때 한 번 책에 쓴 적 있는데요. 파리에서 소매치기 당한 적이 있어요. 제 남동생을 보디가드로 데려갔는데 제 역할도 못하고(웃음). 끈으로 잡아서 매는 가방이 있었어요. 그걸 매고 갔는데 누가 저를 툭 치고 지나가서 ‘뭐지?’ 이러고 말았는데 나중에 느낌이 이상해요. 가방을 둘러봤더니 그 순간에 손을 넣어서 지갑만 싹 빼가지고 간 거예요. 정말 프로였어요(웃음). 그 와중에 지갑을 어떻게 딱 잡는지 몰라요. 지갑 안에 정말 많은 게 있었거든요. 현금, 각종 상품권, 쿠폰... 액수가 진짜 컸었는데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기부했고요(웃음). 재미있었던 건, 그 일을 당하고 나서 경찰서에 신고하는데 정말 잘생긴 프랑스 경찰이(웃음) 있었어요. 너무 잘생겨가지고 정말 기분이 좋았던 그런 에피소드였어요.
여행지에서 아프거나 그런 적은 없으세요?
그렇게 아픈 적은 없었어요. 가끔 감기는 걸릴 때 있는데 그 때는 약 먹으면 싹 나아요. 그리고 저는 여행 다닐 때마다 공항에서 홍삼을 꼭 사서 먹어요. 에너지를 써야 하니까 그렇게 준비를 하죠. 아무래도 걷는 양이 많잖아요. 거의 일 년에 걷는 걸 여행 가서 다 걷는 것 같아요. 가서 아프면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안타깝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컨디션을 최상으로 지키는 노력을 해요. 홍삼과 각종 영양제(웃음)를 챙겨가요. 가기 전부터 마음과 몸을 준비하죠. 걷기 편한 상태를 만들고요. 이건 비밀인데, 5일 정도 어디 가잖아요? 그러면 옷 두 벌 갖고 가요(웃음). 매일 새로운 사람 만나니까요. 짐이나 옷을 많이 가져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혹시 문제가 되면 사면 되고요. 비워서 갔다가 채워서 와요.
제가 슈퍼마켓 가는 걸 엄청 좋아해요. 현지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과자들을 먹는지, 어떤 것들을 구비해놓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많이 봐요. 제가 우유를 되게 좋아해서 우유를 꼭 마셔보고요. 다른 나라 우유 맛있어요(웃음). 일본 우유도 맛있고요. 그리고 과일 꼭 사먹어요. 어떨 때는 과일로 배를 채우는 때도 있어요. 밥을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망고 먹어야지(웃음). 제가 좋아하는 과일 중에 두리안이라고 있어요. 냄새 나는(웃음). 태국 가면 그걸 먹는데 한 덩어리 정도 먹으면 엄청 배부르거든요. 밥 먹을 시간이 없죠.
나는 소설 속의 인물을 보듯 사에코를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경외감과 새로 난 생각의 길이 내 머릿속에 잠겨 있던 어떤 문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같이 산다는 건 저런 거구나. 수만 평의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성에 살지 않아도, 개발해낸 플랫폼이 히트를 쳐 재산이 수조 원에 달하는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멋진 인생을 갖는다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128쪽)
여행에 크게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생활 방식이 여행을 중심으로 돌아갈 정도로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중독’처럼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저를 계속 잡초처럼 밖에다 내놓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자꾸 바람 맞고, 비바람 맞으면서 쌩쌩해지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요. 고정된 환경에 있으면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거잖아요. 그건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저를 어디로 내놓는 거죠. 추운 나라에 내놨다가 뜨거운 나라에 내놨다가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나라에 내놨다가(웃음). 저는 그렇고요. 대부분의 분들은 아마 일상이 너무 재미없고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없으니까 여행을 가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좀 동적인 걸 좋아해서 스노우보드도 타고, 암벽등반도 하고, 등산도 하고 좀 그래요. 그런 것도 용기고 도전일 수 있잖아요. 재미있지 않아요? 가끔‘남극에 가서 살아볼까?’ 이런 생각도 해요(웃음).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 늦었고, 시간도 없고, 할 것도 많고, 하는 갖가지 이유로 안주하거나 도전을 계속 미루고 지연시키잖아요. 그러다 결국 못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누군가가 나이 들고 할아버지 할머니 되면 유람선 타고 해외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그런데 그 때는 되게 힘들거든요(웃음). 소원이 있으면 ‘지금하면 안 되나? 그냥 지금해도 될 텐데.’생각해요. 저는 지금 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많이 쳐주는 편이에요.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행이 힘들거든요. 비행기 오래 타는 것도 쉽지가 않고요. 그러니 지금, 더 젊었을 때, 빨리 많이 다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여행 초보자나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권이 가장 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덜 이질적이기도 하고, 한문을 같이 쓰니까요. 일본이나 중국 같은 곳을 추천해 드리고 싶고요. 조금 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느끼고 싶다면 대만, 필리핀, 홍콩 이런 곳도 괜찮고요. 여행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시면 편하게 쇼핑하러 가신다고 생각하고 홍콩이라든지 싱가폴이라든지 가셔서 분위기를 좀 느껴보셔도 될 것 같아요. 여행마다 많이 다르지만 처음 여행할 때는 저는 좀 많이 돌아다녀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여행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니다를 좀 알 수 있고, 어떤 여행이 어울리는지 알 수 있어요. 리조트 가는 건 결혼해서 신혼여행으로 가시고요(웃음), 계속 많이 걸으시면 좋겠어요. 걷는 게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하니까요.
30대 여성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 드려요.
책 제목처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냥 떠나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상황이 된다면 말이에요. 여행은 스스로를 굉장히 자라게 하고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자신을 온실 안에 그냥 두지 않고 자꾸 내놓아버릇하면 좀 더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떠나시고 열심히 성장하셔서 아름다운(웃음) 삶을 누리시기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이애경 저 | 북라이프
전작들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로 서른 즈음에 겪는 불안과 심리를 감각적이고 솔직하게 그려냈다면, 이번 책은 ‘떠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상에 지치고 삶이 버거워질 때면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났던 작가는 전 세계 30여 개국의 길 위에서 만나고, 보고, 겪으며 기록해둔 소중한 순간들과 단상들을 모아 다시 한 번 ‘서른 썸싱’의 그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추천 기사]
- 김세현 “굶거나 운동 많이 해서 살 찔 수 있다”
- 유영만 오세진이 알려주는 음양오행으로 소통하기
- 유은실 “1980년대는 변두리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시대”
- 청년장사꾼 김윤규 “열정을 맛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