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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함께 사는 삶이 진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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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빠가 그랬다. 힘이 약한 존재들은 그렇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라고. 짝을 찾지 못한 한 살배기 까치들도 가을이 되면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겨울을 난다고. 언제나 혼자보다 여럿이 나은 법이라고. 작은아빠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안 보일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면 땅과 하늘의 다른 생명들로 눈을 돌린다고 했다. (322쪽)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한다'고 했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지금 우리네 삶은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다. 각자의 삶은 짧게 분절되어 있기만 하다. 내 것, 나의 울타리 안에만 집중하다 보니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불안하게 휩쓸려 떠다니곤 한다. 숫자로 대변되는 SNS 지인들은 뜬구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을 잃었다. 불필요한 것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느라 진짜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병들고 사회는 기괴한 신음을 낸다. 뿌리 약한 나무들은 약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조금만 가물어도 샘은 제 바닥을 드러낸다. 경계, 불신, 배타와 고립이 정녕 인간의 삶이 되어버린 걸까.

 

도시의 팍팍함을 떠나 농촌으로 가는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 농촌행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들이 꿈꾸던 '전원일기'는 곧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으로 바뀌기 일쑤다. 작가 김중미가 '농촌을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하는 이유다. 


작가가 농촌으로 갔다. 어느 덧 농촌 생활 13년이다. 작가는 강화에 정착해 농촌에서의 삶을 몸으로 느꼈다. 훨씬 절실하게 다가오는 공동체의 삶, 그곳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생각했다. 유정의 작은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였다. "꿍어, 꿍안, 꿍떰" (194쪽)

 

『모두 깜언』에서 '깜언'은 '고맙다'는 의미의 베트남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 유정이가 소설 말미에서 하는 말이다. 유정이가 '모두에게 고맙다'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정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그 인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유정이와 할머니, 작은아빠와 친구들, 이들이 뿌리 내린 농촌에서의 삶을 통해 작가는 농촌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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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농촌은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어

 

제목이『모두 깜언』입니다. 베트남어로 고맙다는 뜻인데요. 특별히 고마움, 감사를 이야기한 이유가 있으셨던 건가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유정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시골에서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혼자 자란 것이 아니고 자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가족에게서 영향을 받은 거예요. 처음에는 자존감 같은 것들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사랑을 받고, 인정받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배워가잖아요. 그렇게 성장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려고 했어요.

 

“우리 비엣남 사람들 꿍어, 꿍안, 꿍떰 중요해.”(194쪽) 작은 엄마의 할아버지가 늘 가르쳤던 것도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다’는 것의 중요함이었습니다. ‘연대’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아주 단순한 진리이긴 하지만 저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함께 살아가는 삶이 가난하거나 불편해도 그게 진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좋은 길이잖아요.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닌데요. 저는 공동체로 살고 있고 가난한 삶을 살다가 농촌으로 가서 생활하고 있어요.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농촌 생활의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게 그곳에서 살다보니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거죠. 동물, 식물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 같은 것들이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살면서 경험으로 아는 것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사람을 키우는 일이나 작물을 키우는 일이나 거의 똑같은 거죠. 애를 태우게 되고, 모든 노력과 마음을 쏟아 부어야 하고요. 사람도 교육을 하거나 자녀를 키우거나 할 때 사실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농사도 똑같거든요.

 

어르신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농사는 어차피 하늘하고 나눠지는 것이라고요. 이 이야기를 제주 강정에서 들었는데요. 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온 사람들은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올해 흉년이고, 내년에 또 흉년이고, 작년에 흉년이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됐어요. '사람은 혼자 살면 안 되는구나, 함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공동체 식구들이 계절별로 와서 울력을 할 때도 굉장히 즐거워요. 공동노동을 통해 관계 역시 더욱 돈독해진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소설의 배경되는 덕정산과 진강산 골짜기는 시골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버스로 신촌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도시와 완전히 다른 삶이 있어요. 농촌이라는 공간에 대해 물리적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먼 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의 농촌은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는 현실이에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면 여길 빨리 떠나느냐가 핵심이거든요. 농업 한다는 것 자체를 인생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요. 논농사를 한다면 이만 평 이상은 지어야 연봉 4~5천 정도가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가족농 형태로 하는데 무척 힘들고요. 국가 정책은 계속해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농업의 몸을 불리고 황금작물을 키워서 돈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요. 실제 농촌 생활이나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공동체 삶을 유지하고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별로 안중에 없고요. 농사로 먹고 살려면 정책이라는 것에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농촌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도시 사람들과 농촌 사람들의 삶의 거리를 좁혀야겠다거나 하는 의도를 갖고 했던 것도 아니에요. 농촌 역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어찌 보면 굉장히 중요한 자리잖아요. 삶의 방법이기도 하고요. 아직까지도 이걸 위태롭게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국가의 농업 정책이 이장님 입을 통해 나오고, 패배주의적인 말이 동네 아저씨들에게서 나와요. 농촌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농촌을 아름답고 전원적으로만 인식하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귀농을 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고요.

 

시골의 텃세이야기를 하는데요. 텃세라는 게 외부 사람들에 대해 반응을 하는 거잖아요. 도시의 삶은 들고 나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어떻게 살든 상관없지만, 농촌에 계신 대부분의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요. 저희는 친환경 농사를 하고 싶었지만 농사는 그냥 어른들에게 관행농으로 배우고, 남편이 동네 어르신들 쫓아다니면서 배웠어요. 그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제가 농촌 생활 13년차인데 저희 동네도 한쪽에는 펜션 단지가 있고, 처음과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산언저리는 거의 전원주택이거나 펜션이거든요. 대안학교도 들어오고요. 그런데 주민들과 유리돼서 살아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눈이 와도 안 쓸고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못마땅하죠. 마을에서 회의한다고 이장님이 방송을 해도 아무도 안 오고요. 귀촌이라는 말도 요즘 있잖아요. 저희는 귀농을 한 거니까 그런 방식과는 다르죠.

 

마을 어른들 중에 뚝뚝한 사람들은 10년을 인사해도 안 받아주는 분들도 계세요. 그렇지만 그런 분은 어디에나 있죠. 도시 생활이 더 삭막한데 사람들은 농촌은 텃세가 더 심해, 이렇게 말해요. 물론 강화사람들이 대가 세고 그런 건 있죠. 역사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존댓말과 반말 사이 같은 강화 사투리도 좀 애매하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받아들이고 가야해요.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가 되려면 바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유정이네 마을도 작은 아빠의 막내 유경이가 태어난 게 3년 만의 일이었어요. 선생님 계신 곳도 아이들은 거의 없겠죠?

 

없죠. 아기가 태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자녀들이 아이를 낳고 맡길 데가 없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곳에 놓고 나가는 경우는 있죠. 그런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거고요. 귀농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귀농하는 경우는 없어요. 저희 동네에 하루 일곱 번 버스가 들어오는데요, 아침 7시에 타고 나가요. 저희 딸이 마지막이었던 거예요. 농어촌 기숙학교라고 해서 기숙학교에 들어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까요. 살다보니 버스 운영도 걱정이 돼요. 딸이 졸업하면 여기는 버스가 장날만 설 텐데 '제 시간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요.

 

"소쩍새 울면 참깨 심고, 꾀꼬리 울면 고추 모 심고, 뻐꾸기 울면 콩 심고, 보리 베고, 모 심고, 피 뽑고 그러다 보만 여름 가고, 가을 오고, 겨울 오고." (33쪽)

 

할머니의 농사에 대한 몸의 감각, 양봉채집가들의 삶, 베트남 식재료 반찬트럭 등 잘 몰랐던 사실이 많이 있었어요.

 

검정콩을 심어보고 싶었어요. 남편이 어느 날 '콩 심을 때가 언제지?' 이러는데 남편 선생님 중에 민재 할아버지라고 계시거든요. 할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하고 남편이 물어본 거예요. '콩은 언제 심어요? 할아버지?' 그랬더니, '꾀꼬리 울 때 심지'(웃음)하셔요. 우리는 꾀꼬리가 대체 언제 우는지도 몰랐던 거죠. 또 남편이 처음 논을 빌려서 부지런히 다니니까 어르신들이 지금 잘하고 있다고, '작물들은 주인 발소리 듣고 큰다.'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죠. 그렇게 배우는 게 정말 다른 거죠. 아마 책에서 우리도 봤을 거예요. 삶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거죠. 어르신들은 계절 보는 것도 달라요. 정말 놀라운 게 어촌에 가면 바람 맞는 걸로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오늘 바람은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거야.'하는 걸 알거든요. 하늬바람이니, 이 바람이 불 때는 뭐가 나니, 하는 것들을 다 알아요.

 

그러고 보면 도시의 삶이 자연과 거의 유리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감각해요. 내가 누구랑 같이 사는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거죠.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직접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듣고 경험하신 거였군요?

 

네. 그런 이야기들은 콱 박히니까요. 도토리들이 나는데 할머니들이 유난히 많이 다니시는 해가 있어요. 그러면 그 얘기를 하시는 거죠. 들이 흉년이면 도토리가 풍년이라고요. 그렇게 배운 거죠.

 

그런 어르신들을 만나지 못하는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몰라요. 거의 잃어버릴 위기인데요. 이 책을 통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희도 안타깝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 때 피난오고 이런 1세대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어쩌면 이분들이 돌아가시면서 역사도 사라지는 거고요. 자녀들은 다 외부에 있고 말이에요. 정말 오랫동안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마을을 정말 잘 알고, 농사짓는 분들은 이미 7, 80대거든요.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너무 안타깝죠. 단절인 거예요. 정말 그분들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여름에 보면 진짜 놀라는 게 할아버지들의 근육이에요. 운동해서 만든 근육이랑 달라요. 70대 중반, 후반의 할아버지들이 지게지고 하시면서 만들어진 근육들이 참 아름다워요. 그런 것을 보면 많이 안타깝죠.

 

그런 면에서 광수가 농업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주목할 만해요.

 

강화에서도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안 가요. 제가 아는 아이는 농업 고등학교 갔다가 군대 다녀와서 다시 자동차 기술 배워 카센터에서 일하는데요. 농업학교도 요즘은 특성화학교라고 해서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가공 식품 만드는 과 같은 경우나 조금 높고 나머지는 안 그래요. 강화 아이들은 아직까지 고등학교는 농업고등학교를 가지 않지만 농수산대학이라고 3년제는 가는 친구들이 간혹 있어요. 그렇게나마 이어가면 어쨌든 좋은 거겠죠. 하지만 어른들, 부모 스스로 '농사짓지 마라, 내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너는 대학 보낼 거다,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니까요. 이것저것 해도 안 돼서 농사짓는 것과 처음부터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것과는 다르죠. 저희 딸 친구들 중에도 공부는 못하지만 정말 농사일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지지를 받거나 존중 받지는 못하는 거죠. 결국 떠밀려 도시로 가서 빌빌 거리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때문에 광수를 일부러 좀 그런 모습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정말 일 잘하는 애들이 있거든요. 대부분 존중받지 못하지만요.

 

취약한 존재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 모두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같이 결핍이 있어요. 할머니는 물론이고 심지어 완벽해 보이는 우주까지도 말이죠. 작가님께서는 꾸준히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내 아이에게 결핍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아요. 사실 그 안달과 불안감이 아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를 주잖아요. 엄마나 사회가 정한 목표까지 아이를 키워야 하고, 계속 성공해야 하고요. 아이들은 다 다른데 거기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다 보니까 문제가 생겨요. 결핍을 있는 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채워도 되는 거잖아요. 일단 사람 하나만 봐도 저는 그렇게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사람이 결핍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핍이 어떤 것이든 간에요. 경제적인 결핍이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받게 되는 결핍이든 결핍을 경험하거나 이해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취약한 존재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화에 가서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길에 까치 한 마리가 죽어있었어요. 그 곁에 다른 까치 한 마리가 계속 왔다갔다해요. 저희가 장을 보러 나갔다 들어갈 때까지 계속 있는 거예요. 그때 까치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11월쯤 되면 들판에 까치와 까마귀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그게 이상했어요. 찾아보니까 그 해 태어나 겨울 전까지 짝을 맺지 못한 독신 총각, 처녀들은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겨울을 난대요. 저렇게 사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빈민 지역에서 살아왔지만 그건 자기가 인식해서 실천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잖아요. 근데 자연 속에서는 이미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이 들어요.

 

자녀분들에게도 결핍이 있겠죠?

 

저는 저희 아이들을 키울 때도 결핍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난하게 살아도 결핍이 뭔지 모를 수 있잖아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안전하게 지내니까요. 그러면 인위적으로라도 결핍을 겪게 해요. 소비를 통제하거나 그렇게 하는 거죠. 어떨 땐 아이들이 불만을 갖기도 해요. 불만을 가질 땐 함께 토론하고 다시 생각해봐요. 그러면 아이들 스스로 통제하는 힘이 생겨요. 내가 이걸 가져도 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저희 아이들이 모두 여자애들인데 얘네가 자기들을 표현하기를 구제녀래요.(웃음) 계절 바뀔 때마다 광장시장 가서 훑어보거든요. 저는 그것도 몰랐죠. 시킨 것도 아니고요. 어려서부터 그런 결핍과 소비에 대한 자기점검이 있어서 그게 돼요. 휴대전화도 3년 약정해서 끝날 때까지 절대 안 바꾸거든요. 저희는 그 규칙을 지켜야 해요. 만약 우리가 이런 소비사회에서 남들과 똑같이 했다면 경험하지 못했겠죠. 남들과 똑같이 하고 다니고 떠먹여 주는 걸로 대학가고 이러면 아쉬움이나 역지사지의 마음도 모르고요. 억지로라도 결핍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 땜에 나 다문화 됐잖아. 엄마 창피해."(중략)


"용민아,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진짜 무식한 거야. 나도 못 가 봤지만 베트남도 우리나라랑 똑같대. 우리나라에도 도시에는 높은 빌딩 있고 화려하지만 우리 마을만 해도 별로 그렇지 않잖아.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러는데 용민이 엄마 아빠가 결혼한 호치민은 굉장히 예쁘고 역사도 오래되고 유명한 도시래. 우리 선생님은 대학교 다닐 때 한 달이나 배낭여행 했는데 엄청 좋았대. 그래서 누나도 대학생 되면 꼭 베트남으로 배낭여행 갈 거야. 그리고 베트남은 우리나라랑 무역 같은 것도 되게 많이 한 대. 누나 생각에는 용민이가 베트남 말 배우면 좋겠는데?" (206~207쪽)

 

동생 용민이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 창피하다고 투정부릴 때 유정이가 정말 어른스럽게 잘 가르쳐요. 유정이처럼 심지가 단단한 아이가 드문데요.

 

'요즘 이런 애들이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건 사실 어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저희 아이가 반쯤 읽다가 '이거 우리 얘기잖아, 소설 보는 것 같지가 않아' 이러고 덮어버렸거든요.(웃음) 저희는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알잖아요. 친구들이 그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저희 딸들이 친구들을 붙들고 계속 그런 얘기를 해요. '요즘 아이들이 어디 그래?'라는 말은 도리어 어른들의 무책임인 거죠. 아이들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설명해주고 이야기하면 돼요. 지적인 것은 막 집어넣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가치는 아이들이 못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1월 초에 오체투지 시위할 때 공동체 자녀들을 데리고 갔어요. 유아들하고 중고등학교 애들까지 같이 갔는데 고등학교 아이가 오더니 '사진 찍는 기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이런 데 왔다고 뭐라 그래.' 라면서 화가 난 거예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남자 아이가 '어? 나 오체투지 왜 하는지 아는데?' 이렇게 얘기를 해요. 아이들도 다 아는 거죠. 아저씨들이 민복을 입고 기어가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고, 그러나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초등학교 아이들은 더 잘 알고요. 지금 낮은 사람, 가장 약한 사람이 저 아저씨들이고 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사회의 역할인 거죠. 물론 아이들 따라 다르죠. 관심사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알아요. 약한 게 어떤 거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말이에요. 고등학교 입학할 정도 되면 애어른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아는 것도 있고 놀라울 때가 있거든요. 예전에는 다 그렇게 자랐잖아요. 그걸 안 하는 거죠.

 

"유정아, 이 벼도 말이지, 주인의 발소리를 달아듣거든. 이렇게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또 한낮에도 논에 내려와서 주인 발소리를 들려주면 벼가 아, 내 주인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하면서 쑥쑥 자라는 거야. 뭐든 살아 있는 건 말이지, 사랑이 가장 중요해." (116쪽)

 

작은아빠의 살아있는 교육과 유정이만 아는 밤길 산책의 호젓함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밤늦도록 공부하고 흔히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말하는 우주는 모르는 것들이에요.

 

우주가 계속 대학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애들이 그렇거든요. 아이들도 연애 많이 하잖아요. 중학생 애들도요. 그럴 때 걔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사실 어른들 생각들이거든요. 우주랑 광수를 대비하고 싶었던 거예요.

 

동네에 가끔 부모님을 따라 오거나 잠깐만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내신 잘 받으려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과학고나 예술고 가려고 오는 경우도 간혹 있고요. 강화는 개신교의 뿌리가 굉장히 깊어서 목사 아들도 물론 있고요. 그런 애들은 때깔부터 다르죠. 매일 보는 애들과 다르니까 여학생들의 마음이 당연히 설레요. 그런데 저는 그런 아이들이 항상 뭔가 하나 빠진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우주라는 아이를 만들었어요. 

 

우주만 놓고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알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데 모르고 지나가는 아이들이요. 칼럼니스트 김규항 씨가 '농사짓는 것과 같이 아이들에게는 때가 있다. 어린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걸 못하니까 아이들이 망가지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게 뿌리가 없잖아요. 한 곳에 살지 않고 목적에 따라 옮겨져요. 그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건 지식이나 미래에 대한 것뿐이고, 지금 여기 아이들의 삶에 대한 배려는 없어요.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어떻게 뿌리 내리는지에 대한 무관심이죠. 당연히 아이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죠. 반면 유정이나 광수 같은 경우는 거기서 나고 자랐잖아요. 거기가 태어난 곳이고, 늘 보는 사람들이고요. 심적인 뿌리가 다르죠. 당연히 세상에 나가서 어떤 일에 부딪칠 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그런 것 역시요. 도시에 나가 어리바리 할 수는 있지만 근성 같은 게 있을 수 있어요. 사실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우리는 다들 우주 같은 아이들을 좋아해요. 예의 바르고, 찔통 안 부리는 아이들이요. 아이들은 당연히 찔통을 부려야 하고,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유정이가 착한 것 같지만 화도 내고 고집도 부리잖아요. 그런 과정들이 없이 크면 나중에 언젠가 터진다고 하잖아요. 지랄 총량의 법칙, 그거 진짜거든요. 그걸 청소년기에 안하고 장년기에 하면 진짜 끝난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런 시기가 필요한 거죠. 광수 같은 경우도 그렇게 찔통을 부리니까 나중에 철이 들 수도 있는 거고요.

 

사회나 커뮤니티가 조금만 더 유연하면 그런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은데, 도시에서는 빽빽하게 스케줄이 짜여 있고 조금만 비뚤어지면 그대로 벼랑 끝이잖아요. 아이들은 항상 초조하고요. 유정이가 갖는 안정감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아이들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안타까운데,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요. 저희 딸이 기숙사를 간다고 했을 때도 반대했어요. 기숙사 자체도 나쁠 뿐 아니라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가족들과 밥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인데 그걸 빼앗기는 건 가족 간의 중요한 시간과 유대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기러기 가족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가족이 필요한 시기가 있잖아요. 아이들이 스무 살 이후가 되면 가족에서 벗어나는 거니까 그 전까지는 같이 있어야죠. 꼭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도 말이에요. 요즘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불쌍하잖아요. 또 너무 착하잖아요. 그런데 마음이 착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최소한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애들 머리에도 이미 있는거죠. 얼마나 많이 갖고 얼마나 소비하고 살 수 있는지가 관심사다 보니까 아이들 스스로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세상이 온통 불안하죠.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거죠. 

 

목소리 커서 이득 본 사람 없다는 할머니와 이에 반발하는 작은 아빠 대화를 생각해봤습니다. 일제와 독재를 거친 우리 현대사적 경험이 그런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세요.

 

농사를 짓다보면 어른들도 화날 때가 있죠. 저희 동네만 해도 저희가 갔을 때는 버섯 농장이 많았어요. 느타리버섯이든 팽이버섯을 하려면 내내 온도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그걸 석유로 해야 하는데 유가가 오르면 점점 유지하기가 힘들어져요. 처음에야 대부분 정부나 농촌진흥청에서 장려하느라 시설장비 같은 경우 무이자로 해주거나 이런 시스템이었어요. 초기에 돈이 많이 들지 않으니까 대부분 시작을 하셨죠. 그런데 유가는 올라가고,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처음과 달리 자기 자본도 더 들고, 나중에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그 작물만 키워서 가격이 폭락하고, 계속 그런 악순환이 됐어요. 그런데도 어른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뭐라고 하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불만이 있지만 나아지지 않는 거죠. 농촌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목소리 내봤자 나만 타깃이 된다는 피해의식들이 있죠.

 

강화는 특수해서 그런 부분이 더 많아요. 강화 같은 경우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전쟁까지 국가 폭력의 경험이 많으니까요. 교동도, 보도연맹까지 학살당한 경험도 많고요. 잘 안 드러났지만 그런 피해의식들이 좀 많이 있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쌀 문제로 전국에서 농민들이 서울에 가서 시위한다고 해도 강화 사람들은 거의 안 나가고요. 그러다보니까 똑같은 거죠. 그런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거예요.

 

작은 아빠로 대변되는 비교적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으로 성공할 수는 없을까요?

 

성공할 수 없겠죠. 계속 그럴 수밖에 없고요. 저희 동네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중 저희가 제일 어린 세대예요. 후배 하나 있는 정돈데요. 다른 마을에는 토박이지만 친환경 농업 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친환경 농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도시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애들은 끝까지 농업을 유지하면서 살겠죠. 여자가 없어서 문제죠. 결국 결혼하려면 동남아로 가야 하는 거니까요.

 

실제로 농촌에 이주 여성들이 많이 있나요?

 

많아요. 저희 면에도 좀 있고요. 그게 싫어서 마흔 중반이 됐는데도 장가 안 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어쨌든 가야해요.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어요. 어느 면 같은 경우 그렇게 결혼해서 잘 살았다, 하면 그 동네에는 유난히 더 많고 그런 게 있어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가 가족 중심이고 그러니까 연결, 연결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증가하는 만큼 구조적인 준비도 돼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좀 더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당연하지만 이상적인 이야기인데요, 현실은 너무 달라요.

 

아주 시골 같은 경우는 인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주 여성들이 와서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도권 쪽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이 사실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런데 지원이라는 것은 한글 공부 정도고요. 강화에도 이주가족센터가 있지만 국가 정책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들만 하는 거고요. 같은 나라 여성들끼리의 모임도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킬만한 동력을 가질 수는 없는 거죠. 이주 노동이나 이주 여성들을 위한 민간 NGO 활동들도 있지만 지역별로 난립하고 있고요.

 

어려운 이야기이긴 한데요. 그런 단체들이 열악하게 각자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주 노동자들은 한 곳에 매여 있고, 4년 있으면 다시 돌아가거나 혹은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구심력을 가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이주 여성들이 이주민들끼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나 좀 더 활동을 하게 되면 좋은데 대부분 가난하니까 열악한 상황에 있어요. 농사일에 매여 있거나 공장에 다니는 거죠. 그것들을 단체들 간에 연대의 틀을 만들어서 함께 변화해 나가면 좋은데 그게 안 돼요. 그러니까 지원이 가능한 관에서 운영하는 곳에 가서 한글 공부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거죠. 그래서 가정 폭력 같은 것에도 더 대처하기가 힘들고 아이들에 대한 것도 시혜적인 것만 있는 거예요.

 

다문화 특성학교라는 게 있어요. 교육청에서 지정을 해요. 다문화 엄마들을 불러서 예절 교육 시키고, 김장도 같이 하고요. 이렇게 프로그램, 이벤트 중심으로 가요. 성공 여부도 그저 개인의 성격에 맡기는 거죠. 한국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은 잘하고 안 그러면 힘들어지고요. 그런 게 없어져야 해요. 다문화라는 걸로 또 다른 벽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다문화라는 게 너무 싫거든요. 예전처럼 혼혈이니 튀기니 이런 말도 업신여긴다고 했는데 다문화라는 건 또 다른 블록이 되어버렸어요.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다시 놀림의 대상이 되었어요.

 

지금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피해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아요.

 

도시에도 많아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시골에만 있는 건 아닌데요. 일단 언어 문제가 있으니까요. 심지어는 중국 동포인 경우도 그래요. 농촌이나 어촌은 폐쇄적인 공동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왔을 때 그 공동체 안에 잘 녹아들지 않아요. 문화도 다르고, 자기들 스스로도 위축되고요. 공동체 안에는 그 사람들과 같이 할 여력이 없고요. 대부분의 농촌 공동체들이 피폐해져 있으니까요. 문제예요. 자녀들 역시 언어문제 등으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어렵고, 그것이 자기 안에 열등감으로 자리 잡아요. 중국 동포와의 결혼은 꽤 오래 됐고 그 자녀들이 벌써 20대거든요. 그런데도 엄마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부분에 대한 열등감들이 다 있더라고요. 엄마와의 갈등도 있고요. 안쓰러움과 연민이 뒤엉켜 있어요. 또 어떨 때는 터미널에서 술 취한 남자가 아기 엄마를 막 끌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피해 사례가 엄청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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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버티는 힘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인형극을 올리시기도 하고, 기차길옆작은학교 활동가 등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회 참여 활동이 작가님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건가요?

 

끼치겠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는 게 아니고요. 이런 방식이 저에게 맞는 방식이고 이렇게 살아서 이만큼 만족하고 서로 의지가 되고요. 이렇게 살면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하더라, 이런 경험이 있는 거예요.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요. 그런 부분이 작품 속에 반영이 되겠죠.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이 작품은 원래 중단편 모음집『조커와 나』에 넣으려고 했어요. 중편으로 썼었어요.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장편으로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장편으로 내게 됐어요. 또 강화로 가서 10년이 넘어서야 이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잘 모르니까요. 제가 모든 걸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거의 비슷하지만 시골 아이들과 도시 아이들도 약간 결이 다르거든요. 그걸 제가 느껴야 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겉돌지 않으려면 시간이 필요했죠.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길 바라세요?

 

우리는 죽으면 끝이잖아요. 버텨야 하는데요. 버텨야 하는 몫을 전부 개인에게 떠맡겨놓은 상태라 문제죠. 저희는 버티겠죠. 버틸 수 있는 힘은, 저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건데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각개전투인 거잖아요. 우리는 각개전투를 포기하고 함께 가기로 선택한 거죠.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손해를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느냐고 말하고요. 물론 물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줄어들 수 있겠죠. 자유롭지 않겠죠. 여럿이 있어 덜 누릴 수도 있고, 제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때로는 적어질 수도 있고, 더 많이 신경 써야 할 것도 있지만요, 그래서 얻는 것들이 더 많아요.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 볼 것 같아, 영역이 깨질 것 같아, 하면서 불안감을 갖고도 지금 삶 역시 만족하지 못하죠.


때로는 치고 나갈 필요가 있어요. 우리 사회는 모험을 못하게 하잖아요. 했다가는 데미지가 너무 크고요.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있는 공동체 안에서는 한 둘이 삐져나가도 복원력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다시 왔을 때 받아줄 수도 있고요. 그런 작은 공동체들을 넓혀 가는 것, 그게 꿈인 거죠. 유일한 대안일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회잖아요. ‘사람답게’라는 걸 어떻게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의를 믿거든요. 함께 살아가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이기적인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 안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요. 그걸 더 키워주는 게 예전의 사회였는데 지금은 그걸 완전히 닫아버리고 남들은 짓밟아도 나 혼자 가라고 얘기를 해요. 그걸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나 혼자 죽어도 못 가'라고 해야죠. 혼자는 못 가잖아요. 다 해고되고 나 혼자 남았다, 그럼 내 자리가 얼마나 남아 있겠어요. 사람들은 그 생각을 하기가 싫은 거죠.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이것만 있으면 끝까지 간다고 믿고 싶은 거죠. 아닌 거 알면서도요. 아닌 걸 인정하려면 혼자는 안 될 것 같아요. 여러 사람들이 공동체에 모여 있으면 덜 불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 만들어가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 다른 가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대상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 것 같아요. 처음 가난한 동네에 들어가 공부방을 열기 전에, 창비아동문고를 보면서 이런 걸 아이들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읽히려고 보니까 애들이 못 읽는 거예요. 한글을 뗐다 하더라도 활자로 책을 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 아이들과 십 년 넘게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으면 했던 것이거든요. 이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그런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고만 계속 생각을 했던 거고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처음 쓸 때도 누구를 대상으로 뒀다기보다 저희 아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예요. 가난과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또 저는 글이 쉽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대상을 먼저 정한 게 아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책이 필요한 거였어요. 그 후에는 주제나 소재가 더 중요하지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고 더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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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깜언김중미 저 | 창비
『괭이부리말 아이들』 『조커와 나』의 작가 김중미의 신작 장편 『모두 깜언』이 창비청소년문학 64권으로 출간되었다. 강화도 농촌에 사는 여중생 유정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김중미표 성장소설로, 서로 연대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농촌 공동체 속 인물들의 따뜻한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일치시켜 온 작가 김중미는 『모두 깜언』에서 다문화 가정 문제, FTA, 구제역 등 농촌 사회의 여러 이슈를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 낸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며 청소년 주인공의 시선에서 희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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