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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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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저자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지금 우리는 과유불급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손 안의 작은 기기를 통해 전 세계와 만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마음속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공간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 어떠한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머무는 것은 더없이 어색한 일이 됐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오프라인에서 쇼핑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제품 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비싼 값을 주고 산 휴대전화는 수십 가지의 기능을 자랑하지만 정작 사용하는 것들은 얼마 되지 않고, 밥솥은 더 이상 밥만 하는 기계가 아닌 까닭에 밥 한 번을 하기 위해서 몇 번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결국 우리는 필요한 것들보다 불필요한 것들에 둘러싸여서 진짜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 그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보다 더 단순해질 수는 없을까.『단 單 :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이하『단』)은 바로 그러한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이치와 “최고의 실력은 단순함으로 발휘된다”는 믿음으로 단순함의 가치를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로 단순함을 정의한다.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하고 오직 핵심만 남겨 놓은 상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궁극의 경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맞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 “남의 기준이나 가치를 걷어내고 나만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함에 이르기 위한 공식으로 ‘버리고 세우고 지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사명과 정체성과 가야할 길을 ‘세우고’ 그것을 어떤 유혹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도록 오래도록 ‘지키라’는 것이다.

 

『단』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단순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끝에서 다시 찾게 되는 삶의 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케아, 무인양품, GE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CEO와 유수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경험담이 담겨 있는 것이다. <위클리비즈>의 편집장으로서 그들과 직접 만나고 동료 기자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저자는 그 안에서 ‘단순함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삶’을 발견했다. 그리고『단』안에 담아냈다. 버리고 세우고 지킴으로써 단순함을 추구하라는 그의 조언은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생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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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성 영화를 만든 까닭


지금의 우리에게 ‘버리고 세우고 지키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많은 제품과 정보, 규칙과 관습에 둘러싸여서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맥락에서 단순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적 차원, 기업적 차원, 지구적 차원이에요. 개인적 차원에서는 너무 바쁘게 살면서 점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어요. 제품, 정보,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 거죠. 기업적 차원에서도 이제는 무엇을 더 많이 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골라서 주는 게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큐레이션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언제까지나 생산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잖아요. 지구는 유한하기 때문에 이제는 임계점에 와 있다고 봐요. 이런 시대에는 삶의 가치를 바꿔야 하죠. 추구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이’가 아니라 ‘나만의 가치’예요.

 

단순한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나요?


『총, 균, 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통해서 ‘삶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 분을 인터뷰한 제 후배가 이야기하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연구실에는 컴퓨터가 없다는 거예요. 책상 위에는 컴퓨터 대신 구식 녹음기와 공 테이프만 놓여 있더래요. 그래서 책은 어떻게 쓰시냐고 여쭤봤더니,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녹음을 한다고 하셨대요. 테이프를 들으면서 타이핑을 하는 건 비서의 몫이고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방식이 아주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이유는 인터넷을 하는 동안 불필요한 광고를 볼 필요도 없고, 모든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해줄 필요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비서를 통해서 중요한 내용만 전달 받으면 되니까요. 그 분은 집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 동안에는 책을 읽고 아들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처럼 저에게 감명을 준 이야기가 없었어요.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죠.

 

『단』에서 들려주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분은 2D 영화만 만드시잖아요.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3D 영화를 만들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일부러 안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단편 영화 중에는 무성영화가 있대요. 계속해서 군더더기를 빼다 보니까 목소리까지 빼게 된 거죠. 그걸 보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너무 후련하고 좋았대요. 지금의 일본 문화는 너무 많은 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너무 많은 양이 오히려 질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질을 위해서 양을 포기하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단순함이죠.

 

IT업계의 대가들은 어땠나요?


『유리감옥』『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니콜라스 카도 그렇고 <와이어드>의 전 편집장인 케빈 켈리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컴퓨터 기기에 둘러싸여서 지낼 것 같은데, 직접 찾아가 보니까 산 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세계적 경영 석학인 짐 콜린스도 인구 1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고요. 그들이 IT 문명과 스스로 거리를 두는 이유는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특히 짐 콜린스는 자신이 하루에 소비하는 시간을 모두 기록해 놔요. 짐 콜린스의 연구실에 직접 갔을 때 그것들이 적힌 칠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하루를 ‘생각하고 공부하는 시간’ ‘강의하고 인터뷰하는 시간’ ‘그 외의 시간’으로 구분해 놓고 각 항목별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기록해 놓았더라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제가 만난 많은 대가들은 진정 중요한 것을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줄일 줄 아는 지혜가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고 그 다음으로는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깊이 있는 만남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까 잊어버린 것들이죠.

 

“개인적 차원의 단순함이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냄으로써 ‘중요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께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시나요?


앞서 이야기한 분들과 다르지 않아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줄였죠. 예를 들면 모임도 줄이고 술도 덜 마시고요.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해요.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도 일체형 컴퓨터, 스탠드, 연필꽂이가 전부예요.


버려진 천으로 만든 가방을 사는 이유


기업적 차원에서 단순함을 추구한 사례로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스는 50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버튼 한 번만 눌러서 음악을 체험을 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둔 회사예요. 현재 보스의 CEO인 밥 마레스카를 만났을 때도 감명을 받았는데요. 그 분 말씀이 창립 이래 지금까지 보스의 목표는 고객한테 음악적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지 좋은 기술적 경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기 바쁘잖아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 회사가 기술이 얼마나 많은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관심 갖지 않거든요. ‘나의 불편을 얼마나 해소해줄 수 있는가’ ‘나의 결핍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죠. 보스의 경우에는 고객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기술을 큐레이션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고객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단순화하는 데 주력했군요.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 복잡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기업이 복잡함을 끌어안는 만큼 고객은 편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복잡성 보존의 법칙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대교약졸’이에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큰 재주는 오히려 서툴러 보인다는 뜻이죠. 지금은 그런 정신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가진 기술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이고 줄여서 고객이 설명서 없이도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지구적 차원에서 단순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충분히 보여줬어요. ‘더 많이’를 외치면서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성장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는 GDP 라는 것에 목을 매고 있잖아요. 그런데 감옥을 짓거나 전쟁을 하는 것도 GDP에 포함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만족은 포함되지 않아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책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GDP와는 무관하단 말이죠. 그런 가치들을 성장의 지표에 반영해서 성장의 의미를 재정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표라는 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중요해요. 만약 GDP가 아닌 다른 것을 지표로 삼는다면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겠죠. 물론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요.

 

『단』에서 ‘자연 역시 자본의 하나’라고 바라보신 관점도 새롭습니다.


우리는 보통 공장이나 기계만을 자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자연도 자본이에요. 희소하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자연이 풍부했어요.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문명이 싹텄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자연이 희소해졌어요. 누릴 수 있는 맑은 공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위안, 가족들과 함께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과 같은 것들이 갈수록 희소해지고 있죠.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자연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해요. 그것이 지구적 차원의 단순함에서 이야기하는 바죠.

 

지구적 차원의 단순함을 실현하는 기업으로 ‘파타고니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아웃도어 의류업체인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최고의 기업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이 재킷을 사지 말고 헌옷을 수선해 입으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고요.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죠. ‘러쉬’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모든 제품을 만들고 제품을 포장하지도 않죠. 날 것 그대로 파는 건데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해요. 포장지가 없기 때문에 제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물성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향기도 맡을 수 있고 왠지 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주잖아요. 환경도 살리면서 고객도 만족시킨 거니까 좋을 수밖에 없죠. 이렇게 창의적이면서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한 기업들이 많아요. 프라이탁이라는 회사도 그렇죠. 이 회사의 제품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나요. 폐방수천으로 만든 가방이기 때문에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요. 이런 가방을 왜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나 생각되지만 프라이탁의 가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디자인이 없었어요. 유일무이한 제품인 거죠. 이렇게 친환경적인 기업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프라이탁은 기업의 정체성을 지킨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우고 지킨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죠. 특히 우리 사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개성을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처럼 획일화된 제품이 넘쳐나고 스펙 좋은 사람도 너무 많은 시대에는 오히려 개성을 조금 더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향기가 있잖아요. 그걸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것이 ‘세우기’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자기만의 것이 있으면 어떤 유혹이 있어도 ‘지켜야’ 하죠. 프라이탁의 정체성은 업사이클링이에요. 리사이클링을 해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죠. 결국 재활용, 환경 친화적 제품이 그 회사의 DNA인 거예요. 물론 유혹도 있다. 폐방수천은 우중충한 색깔 일색이잖아요. 다채로운 색깔의 방수천을 직접 주문해서 만들자는 생각이 들 법도 하죠. 그래서 저희가 프라이탁을 직접 찾아갔을 때 물어봤어요. 그런 유혹에 빠질 때가 없냐고요. 그런 유혹은 항상 있대요. 하지만 버텨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폐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모든 것이고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걸 버리는 순간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거죠. 그건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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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매뉴얼에 감춰진 비결


‘세우기’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왜’를 세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기업의 이윤 창출로 이어진다고요.


일례로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굉장히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에 도움도 주면서 회사의 이념에도 부합하니까요. 기업의 경우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창업 이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쉽지 않죠. 창업가들은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무엇이 주이고 무엇이 종인지 모르게 돼요. 성장률과 이익에 목매다 보면 창업 이념과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죠. 한 개인에게 ‘내가 왜 사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기업에 있어서도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느냐’를 찾는 게 중요해요. 이때 ‘왜’의 시각은 고객의 입장에 선 것이어야 하고요. ‘어떻게 하면 고객의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객의 결핍과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일이 좋아지는 거예요.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과 ‘나는 회사의 목표 성장률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연하게 다르죠. 일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요.

 

개인적 차원에서 ‘왜’를 세우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는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는 작년 이맘때쯤 하버드 대학에서 만났어요. 팔순의 노인답지 않게 너무나 생각이 명쾌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특히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죠. 윌슨 교수는 세계적인 개미 연구가이자 진화생물학자로 어렸을 때부터 개미를 연구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대요. 윌슨 교수는 그 일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했어요. 연구자가 적다 보니까 자신이 하는 모든 연구가 새로웠고, 그래서 학술 저널에도 계속 소개가 되었다는 거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군대에서는 보통 ‘총소리에 맞춰서 행군하라’고 하는데 과학의 경우에는 오히려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군해야 한다’는 거예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지금의 기업들은 타 회사의 것을 모방하는 게 일상이잖아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어필을 해야 하죠.

 

효율적으로 기업의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점검해 봐야 할 사항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케아의 창업자인 캄프라드 회장이 쓴 책 『작은 이케아 사전 A Little IKEA Dictionary』를 보면 관료주의라는 항목이 있어요. 회사가 복잡한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회의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는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모이는 인원이 10명 이상인지, 직접 관리하는 직원이 15명 이상인지 등을 점검해 보라는 거죠. 조금 더 조직적으로 말하면 복잡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략, 제품, 조직, 프로세스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봐야 하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CEO의 차원에서 전권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어요. 일례로 GE는 작년부터 단순화를 굉장히 강조했는데요.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난 성과는 서류의 숫자가 줄었다는 거예요. 30%~40% 정도 감소했죠.

 

단순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기업으로 모스버거, 무인양품, 이솝을 예로 들기도 하셨는데요. 그 중 가장 성공적인 변화를 이뤄낸 기업은 어디인가요?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회사의 태생 자체가 ‘심플’이잖아요. 디자인과 매장 모두 단순함을 지향하는데, 어느 순간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경기가 어렵다 보니까 유혹에 빠진 거죠. 다채로운 컬러의 다양한 제품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일탈을 한 거예요. 초기에는 매출이 상승했어요. 그런데 점차 사람들이 ‘내가 굳이 무인양품에 올 필요가 없다, 다른 곳과 비슷해졌다’ 라고 생각하게 됐죠. 결국 더 많은 고객이 떠나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하는 것 못지않게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그래서 무인양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요.

 

무인양품이 단순함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회사의 정체성은 말로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죠. 직원들이 저절로 지킬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해요. 그것이 기업 문화가 될 수도 있고 매뉴얼이 될 수도 있는데요.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매뉴얼을 잘 만들었어요. 매뉴얼이라는 게 사람을 구속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사람을 편하게 하거든요.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인양품의 매장 매뉴얼에는 마네킹에 옷을 입힐 때 실루엣의 형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옷에 들어가는 색깔은 몇 가지로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어요. 실제로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매뉴얼로 만들어 놓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걸 고민할 시간에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죠.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라는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건 결국 구조라는 거거든요. 회사 구성원들의 상태를 알고 그에 맞게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거죠.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


차별성과 혁신 사이에서 ‘아니면’이 아니라 ‘그리고’를 택해야 한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태양의 서커스>를 예로 드셨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자동차 회사 포르쉐의 디자인 모토인데요.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라는 말이에요. 핵심은 유지하되 껍질은 바꾸라는 거죠. 포르쉐의 디자인은 늘 바뀌지만 그래도 디자인의 일관성은 남아있어요. <태양의 서커스>도 늘 새로운 쇼를 만드는데 똑같은 버전이 하나도 없어요. ‘오’ 쇼는 물을 소재로 하고 ‘카’ 쇼는 불을 다루죠. 라스베가스에서 동시에 7개 정도의 공연을 진행하면서도 모두 달라요. <태양의 서커스>는 ‘늘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모토와 ‘동물 서커스는 하지 않는다’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거예요.

 

결국 지킨다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는 일’과 같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단기적인 시각에 휘둘리면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이윤이나 성장률을 달성하는 게 1차적인 목표가 되면 정체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죠. 유혹에 쉽게 빠져요. 길게 보면 크게 잃는 길이죠.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게 필요해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 중의 하나도 기업들이 너무 단기 성장에 목을 맸기 때문이에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돈에 눈이 멀어서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죠. 『단』에서는 비상장 기업 중 성공한 사례를 많이 소개했는데요. ‘보스’나 ‘카길’ 같은 회사들이죠. 비상장 기업이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상장을 하다 보면 주주들의 요구사항 때문에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제가 상장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장기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얘기죠.

 

『단』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어떤 이들인가요?


경영인들에게만 읽히기보다 젊은이들한테 꿈을 주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지친 젊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고요. 나의 향기를 드러내면서 단순한 삶을 살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총소리와 떨어져 행군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가 주로 경영인들을 만나다 보니까 『단』에도 경영 분야의 소재가 많이 실려 있지만, 사실 경영이란 것이 사람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거든요. 경영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에요.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고 인문학과도 뗄래야 뗄 수 없죠. 이 책에 소개된 경영 대가들도 경영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결국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한 거죠. 경영과 사람이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분들,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심플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피곤하고 복잡한 데 질린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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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저 | 문학동네
저자는 위클리비즈를 통해 만난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부터 이본 슈나르 ‘파타고니아’ 회장, 마크 콘스탄틴 ‘러쉬’ 창업주,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창업자, 경영 구루 짐 콜린스,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까지 수많은 대가들의 인터뷰에 더해, 예술과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자료 조사를 통해 단순함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세상의 복잡함’에 맞서기 위한 ‘단의 공식’을 제시한다.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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