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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떠난 유럽 배낭여행, 인간 김범수를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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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한도전>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해드립니다)’ 파티에 VVVIP로 초대된 김범수. 왠지 빠지면 아쉬울 것 같았는데 역시나 탁월한 예능 감각을 발휘했다. 며칠 전에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데프콘과의 단일화’를 거부하며 사퇴를 선언했다. 이유인즉,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F1(Face1)’ 네티즌 투표에서 김범수가 2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1위 조정치(신치림)를 이기려면 ‘데프콘과의 단일화가 시급하다’는 한 청취자의 의견에 “오늘부로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 김범수의 야권단일화 패러디에 청취자들은 폭소했다.

김범수는 지난해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얼굴 없는 가수’에서 ‘비주얼 가수’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스스로 말한다. “얼굴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늘 시달려 왔는데, 그 잘나지 못한 외모 덕에 더욱 주목 받는 가수가 됐다”고. 김범수는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 가장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라며 막다른 길에서도 준비하며 기다리면 언제든 길이 생긴다고 말한다. 김범수는 패티김처럼 일흔까지 노래하고 멋지게 은퇴하는 것이 꿈이다.


마음은 풍족했지만 몸은 지쳤다


“2012년 3월.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기대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3년 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살면서 내 안의 모든 응어리가 프로그램 하나로 완벽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는 보여줄 수 없는 가수였으니까. 길고 긴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무대에서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다. 인지도가 올라가니 노래도 덩달아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내 공연장을 찾아 주고 함께 즐기는 맛이 생겼다. 대중적이라는 매력이 이런 거구나. 그래서 가수에게 인기가 필요한 거구나. 마음은 풍족했지만 몸은 많이 지쳤다. 연말 공연까지 끊임없이 달려온 나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었다. 욕심만 낸 탓에 건강한 성대에도 조금씩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대책 없이 그냥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거다. 그래서 4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김범수가 나 홀로 유럽으로 향했다. 40일 동안 9개국 21개 도시. 벼르고 벼르던 유럽 여행이라 도시 하나라도 더 돌아보기 위해 빡빡한 스케줄을 짰다. 김범수는 유럽의 낡은 건물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붐비는 레스토랑과 거리에서 가득한 낯선 음악을 느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나는 가수다> 이후 너무 지쳐있었으니까요. 친구들과 함께 갈 수도 있었지만 혼자 갔어요. 지쳐서 떠난 여행이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르셀로나의 해변이에요. 그 곳의 풍광이 정말 잊히지 않아요. 원래 반나절 일정이었는데 하루 내내 있었어요. 번잡한 도시에만 있다가 한적한 곳을 가니까 마음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도시에서는 이것저것 열심히 했는데 여기선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오랜 기간 혼자서, 낯선 땅에, 그것도 몸집보다 더 큰 배낭 두 개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김범수는 연예인 아닌가. 여행 중에 동행인이 정말 없었을까 물으니, 그는 “정말 혼자 다녀왔어요”라며 싱겁게 웃었다.


“그냥 가까운 나라에 가서 며칠 푹 쉬다 오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도 있었지만, 제대하고 복귀하기 전에 유럽여행을 가지 못한 게 늘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디든 그림이 된다는 스페인은 정말 가보고 싶었고요. 오래된 맛집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려도 보고, 안 되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짐도 찾았어요.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온 것 같아요.”

『나는 미남이다』를 처음 기획했을 때는 여행 에세이로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 많았다. 이왕 책을 낼 거면, 가수 김범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흔한 유럽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김범수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담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책 내용이 엄청 솔직해요. 꾸며서 쓰는 건 싫었거든요. 내 어두운 부분까지도 털어놓아야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글을 잘 쓰지 못해 수려한 문장도 없고 어색한 부분도 많지만 뭔가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 꿈을 꾸려는 드리머(Dreamer)들에게 용기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김범수도 했는데, 당신은 더 잘할 수 있어요


“고된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지친 몸을 기차에 겨우 싣고 다음 여행지 일정표를 펼쳤다. 너무 힘이 들어 잠조차 제대로 오지 않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게 뭐지? 쉬려고 온 거 아니었나?’ 싶었다. 짜디짠 프리첼과 에비앙 생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있는, 여유와 쉼의 여행이어야 했나?’하는 잠깐의 후회가 스쳤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 고생스럽던 여행이 돌이켜 보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유럽 돌길을 걸으며 다리가 끊어질 만큼 아프기도 했고, 함께 나눌 동행이 없어 미치도록 외롭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정리하며 한 장 한 장 지난 사진을 넘겨보는 동안 ‘와, 내 여행 꽤 괜찮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유럽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수다>를 열심히 봤다는 외국인들도 만나고, KPOP, 아이돌그룹을 좋아한다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성수기를 피해서 떠난 여행이었기에 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국에도 한류가 많이 퍼져있더라고요. 사실 유럽에 가서 한국 사람 말고, 나를 알아볼 사람이 몇 있을까 했는데 놀랬어요. 런던에서는 공연을 많이 봤는데, 원래 <라이언 킹>만 보려고 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서 다음날 도미니언 시어터에서 상시 공연하는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도 보러 갔어요. 퀸의 음악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인데 정말 대단했어요. 우리나라도 소프트웨어는 참 좋으니까, 특색 있는 공연이 많이 늘어나고 그에 걸맞은 극장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나는 가수다> 무대 준비를 하면서 참 힘들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유럽 배낭여행 역시 ‘이렇게 고생스러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그립다. 김범수는 ‘열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당시에는 고되고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그게 모두 열망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써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랫동안 고민했다. 아직 인생을 깊이, 많이 살아 본 것도 아닌데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겸손이 아니고 사실이니까. 김범수는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평소에 잘 읽지도 않았던 책을 여러 권 꺼내 읽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이병률의 『끌림』. 요즘에는 이병률의 신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읽고 있다고 한다.

“책을 쓰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오히려 이런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 김범수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인생의 출발점에 선 사람들이라면,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미남이다』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페이지가 있다. 가수 박선주, 윤도현, 박정현, 심수봉, 신승훈, 인순이, 작곡가 윤일상, 김영희 PD가 김범수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썼다. 단순한 추천사가 아닌 자신이 느낀 김범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박선주는 ‘지독한 연습벌레’라고 김범수를 표현했고, 박정현은 ‘음원이 아까운 가수’, 윤일상은 ‘참을성 있는 가수’, 김영희 PD는 ‘가짜가 아닌 진짜 가수’, 윤도현은 ‘느낌 없음’이라고 말했다. 김범수에게 물었다. 가장 자신을 잘 표현한 사람은 누구이냐고.


“윤도현 형이 제 첫인상이 솔직히 느낌 없었대요. 아주 촌스러워 보였고 샛노란 염색 머리에 날카로운 선글라스, 색 바랜 블랙진을 입고 있었다며(웃음). 지인 분들한테 짧은 글을 부탁했는데 도현 형은 ‘김범수, 느낌 없음’ 이렇게 써줬어요. 정말 웃기지 않아요? 도현 형은 정말 꾸밈 없이 솔직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죠.”

김범수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고,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변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변하는 모습도 있겠지만 늘 초심, ‘얼굴 없는 가수’ 시절을 기억하려고 한다. 대중들과 새롭게 만나기 위해 책을 냈지만,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더 깊이 만나본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김범수에게 평소 좋아하는 글귀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겸손이 최고의 자신감이다”라는 말을 꺼냈다.

“늘 가슴 속에 품고 다니는 말이에요. 부족하면 더 포장하고 꾸미려고 하잖아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이미 멋있거든요. 자신감으로 저를 채워서 그것을 겸손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김범수는 “노래를 잘하는 법? 그런 방법 따위는 애초에 없다”고 말한다. 12년을 사랑한 사람과 이별하고 나서 ‘끝사랑’을 녹음했을 때. 정말 끝사랑을 경험했기에 음정, 박자, 고음 처리만 신경 쓰던 과거의 노래와는 확실히 달랐다고 고백한다. “노래를 하려면 아파도 보고 아프게도 해봐야지, 이런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나.”김범수는 말한다. “노래를 많이 불러 보면 안다. 인생처럼 부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인생이 담긴 내 노래로 만들어진 순간이 온다”고. 그렇다. 여기에 김범수가 노래를 잘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꽤 꼼꼼한 성격이라서 평생의 계획을 세워 놓았다. 20대의 계획은 가수가 되는 거였다. 30대부터는 좀 더 발전한 가수, 좀 더 알려진 가수가 되어 10년 안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것, 그리고 일흔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는 것. 은퇴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콘서트도 하고 많은 무대에 오르는 게 나의 목표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패티김 선생님처럼 살고 싶은 거다. 일흔이 되어서도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와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가수다 되고 싶다. 1960년대에도, 1970년대에도, 지금도 선생님의 노래는 여전히 인기니까. 그리고 54주년이 되는 어느 날 은퇴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멋지게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한다.”(p.218)

“나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인생의 출발점에 선 당신들,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녀온 긴 여행, 그 속에서 건져낸 보석이 되길 소원한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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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나는 미남이다김범수 저 | 스타일북스
가수 김범수가 유럽 여행을 떠났다. 모차르트의 도시 빈, 프레디 머큐리가 마지막 생을 살았다는 몽트뢰, 비틀즈의 런던과 물랑루즈의 파리. 40일 동안 삶에 쉼표를 찍으며 지나간 추억, 그리고 인생을 되짚어본다. 스무살에 노래를 처음 알았고, 좋은 목소리 하나로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13년이 흘렀다. 무모할 만큼 미련하게 보낸 연습생 시절. 음치, 박치를 극복하고 가수가 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얼굴 없는 가수로 보낸 수많은 세월들. ‘비주얼 가수’로 반전의 이미지를 선보이며 대중의 인기를 얻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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