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이 쓴『문명의 충돌』은 여러 지엽적인 부분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큰 틀에서는 세계 정세를 유효하게 분석했다. 즉 탈냉전 시대 충돌 양상은 다양해지리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충돌 원인이 꼭 문명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동기 역시 중요할 텐데 어쨌든 세계 각지에서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는 충돌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지점을 가장 기초적인 곳에서 찾는다. 즉, ‘자아’다. 저명한 두 문화심리학자는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 두 개념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자, 인종, 계층 간 갈등 양상과 극복 방법을 제시한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 충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충돌의 양상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갈등 중에서 상당 부분이 사회경제학적 충돌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즉, 엄청난 부와 소득을 지닌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71억 명을 넘어서고 자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경제적 충돌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조차 지금은 빈부 격차를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갈등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의 두 개념을 통해 세상의 주요한 갈등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요. 사실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자아’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희미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사회 갈등을 자아의 충돌로 해석하기보다 주변 환경이나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 혹은 타인의 자아를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씀해 주신다면?
한국인들이 갈등의 원인을 개인적, 심리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차원에서 발견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상호독립적인 자아를 강조하고 있다는 우리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상호독립적인 자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사하고, 전통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독립적인 자아는 따로 떨어져 있고, 고유하고, 전통과 지역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적 배경들의 고유한 조합에 따라, 사람들은 둘 중 특정한 하나의 자아를 기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호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접촉할 때, 종종 갈등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적 배경과 그 배경들이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충돌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두 자아를 모두 지혜롭게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를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신다면?
충돌이 빚어지는 경우, 가장 먼저 우리는 상호의존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상호의존적 자아를 끄집어낼 때, 우리는 상대방에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상대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왜’ 충돌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충돌을 해소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상호의존성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독립성으로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독립적인 자아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현재 상태에 도전하고, 그리고 “상자 밖에서 생각”을 합니다. 독립성은 특히 부조리를 해결하고, 참신한 해결책을 발굴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지만, 상호의존성을 중심으로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고 난 뒤에야 최고의 효과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자아를 비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원을 두 배로 확충할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타이거 마더』의 저자 에이미 추아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녀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독자들에게 자녀 양육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우리의 연구 성과들은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를 똑같이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그리고 언제 어떤 자아를 끄집어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21세기의 성공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독립성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던 미국인들은 지구가 점점 더 좁아지고 뜨거워지면서, 자녀들에게 더 많은 상호의존성을 주입함으로써 그들이 더욱 협력적으로 움직이고, 서로를 존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많은 교육자와 부모들이 종종 창조성과 혁신의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는 독립성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 내 인종 갈등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미국만큼 다민족 국가를 잘 이뤄낸 사례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도 점점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데, 이런 한국을 위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많은 다문화 사회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한 가지 실수는, 다양한 배경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다르지 않고, 그리고 문화는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 혹은 “피부색깔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일종의 “색맹”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색맹”에 걸린 사람들은 비록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 인종, 민족, 성, 사회 계층, 지역 등의 요소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커다란 에너지를 부정하려하며, 바로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문화적 색맹”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차별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차별이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도록 방치합니다. 또한 다양성의 힘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의 놀라운 능력을 위축시킵니다. 어쨌든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온 사람들은 다양한 힘의 원천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놀라운 에너지를 외면하고 썩혀둔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다문화주의를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감사해야할 슈퍼파워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테러사건 등 IS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책에도 이슬람교를 둘러싼 갈등의 양상으로 덴마크 <율랜츠포스텐>의 만평 사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만, IS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IS 사태는 어떤 점에서 서구 사회의 독립성과 중동 지역의 상호의존성 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 독립적인 서구 사회는 개인의 권리,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회적 기관의 권한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상호의존적인 중동 지역은 가족 관계, 공동체 기대에 대한 부응, 그리고 종교적 단체의 권위를 우선시합니다. 이 두 가지 접근방식 모두 문화를 가동하는 실질적인 기반입니다. 그러나 IS는 극단적인 상호의존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립성의 유입에 대해 극단적인 경계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몸살을 앓는 충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분열입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점진적으로라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에서 우리는 어떤 문화적인 여정도 고정되어 있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문화는 구성원들을 형성하지만, 구성원들 또한 문화를 형성합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매일 다양한 문화들을 창조하고 변화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심리적 차원(한국적 사고와 감성, 그리고 행동), 그리고 두 가지 외부 문화적 차원(사회적 규범 및 언론과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관계를 포함하는 상호작용의 차원, 그리고 한국의 정책과 법률을 포함하는 제도적 차원) 모두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책에서 다룬 주요한 소재 중 하나가 여성과 남성이었는데요. 20세기 이후 페미니즘의 활약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가부장제가 공고합니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을 왜곡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데요. 남녀 갈등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한국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조직을 운영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에도 불과하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소위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즉, 기업, 교육, 정부 조직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춘 남성들이 올라설 수 있는 높이만큼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리 천장은 여성들을 좌절시킬 뿐만이 아니라, 조직 전반을 불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더 많은 여성들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조직일수록 혁신적으로, 재정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여성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상호의존성을 더욱 확장해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직 내에서 여성들의 승진 기회를 확대하고, 여성들이 이룩한 성취를 언론 및 직장 내에서 보다 긍정적인 차원으로 알리고, 그리고 여성들의 아이디어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좀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충돌 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이 무엇인가요?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일 등등)
동료들은 우리에게 보다 상호의존적 자아를 중심으로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이 말은 비록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상호의존성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아에 아직까지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일 겁니다. 번역하자면, 아마도 이런 뜻이겠죠.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들어라.’
끝으로 한국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1세기 다문화 시대의 주인공은 독립적인 자아와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모두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북미 지역의 사람들은 잘 개발된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잘 발달된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조화를 이루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과 미국인은 서로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즈니스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 협력관계는 그 미래가 대단히 밝다고 하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헤이즐 로즈 마커스,앨래나 코너 공저 | 흐름출판
스탠포드대학 문화심리학의 권위자인 헤이즐 로즈 마커스 교수는 이 같은 충돌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글로벌 규모의 연구를 진행했다. 신간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원제: CLASH!)에 그 결실이 담겼다. 그런데 저자인 마커스 교수가 이 복잡하고도 심각한 충돌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 다소 의외다. 그는 ‘서로 다른 자아’의 갈등이 이 세상의 온갖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루는 문제는 사뭇 심각하고 큰데,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일상적이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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