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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 “제발,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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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아이유의 「좋은 날」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로 그녀를 기억한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로 그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OST 「나타나」를 듣고 그녀를 기억해 내는 사람도 있다. 가인의 「피어나」 「파라다이스 로스트」 엑소의 「Lucky」 이효리의 「천하무적 이효리」 등도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사가’라는 수식어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실제로 김이나는 2010년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송라이터상을 수상한 이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저작권료 수입 1위의 작사가에게 수여하는 ‘KOMCA’의 대중 작사 부문 대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인피니트의 「Tic Toc」부터 조용필의 「걷고 싶다」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으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작사가 김이나에게는 많은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그녀를 동경하는 작사가 지망생들은 ‘작사가로서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묻고, 그녀의 노랫말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의아해 한다. 질문이 무엇이든 답변은 『김이나의 작사법』안에 모두 담겨있다. 작사가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들과 차곡차곡 성공을 쌓아올렸던 순간들에 대한 ‘고백’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한 곡의 이야기가 탄생하기까지 그녀가 보듬었던 삶의 순간들과 감정들, 그 안에서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 긴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 음악가들에 대한 기억들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결국 우리는 『김이나의 작사법』안에서 작사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작사가이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이나의 세계에 대해 엿보게 된다. 그 낯선 세계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들여다 볼 독자들을 위해, 김이나는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해왔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 만큼, 상업성을 도외시한 채 존재할 수 없는 대중음악 작사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그녀를 두고 “김이나는 교활한 작사가다. 그는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경계하는 대신 직업인으로서 산업의 톱니바퀴이기를 자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이나의 솔직함은 작사가로서 갖춰야 할 면모들과 대중음악 산업의 생리에 대한 조언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 속에 녹아든 자신의 지난 시간들과 상처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대중의 한 사람이 아닌 동료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았던 가수들의 진솔한 이야기까지도 담담하게 전한다. 그래서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고 나면 그녀의 노랫말이 담긴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그녀의 작품 속에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3분 안팎의 짧은 노랫말 속에서는 짚어낼 수 없었던 감성과 스토리와 노력들을 『김이나의 작사법』은 조명하고 있다.

 

작사가가 되고 싶다면 “제발,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이곳에서의 내 생존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적으셨는데요. 『김이나의 작사법』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작사가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들을 계속 받아왔는데요. 그럴 때마다 모든 걸 설명해 줄 수는 없으니까 아쉬움이 남았었어요. 작사가라는 직업이 생소하기도 하고 그만큼 정보도 희박하잖아요. 그 사이 작사가에 대한 환상은 커져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작사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김이나의 작사법』을 굉장히 솔직하게 쓴 이유이기도 해요. 꼭 작사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가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가사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서 순수성을 지향하면서 상업성은 경계하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상업적인 측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사가의 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책 제목을 『김이나의 작사법』이라고 정한 것도, 이건 저의 방식이라는 걸 말씀드리고자 했던 거거든요. 제가 대명사 같은 존재가 됐다는 의미가 아니고요(웃음). 저는 일을 대할 때 상업적인 부분도 고려해요. 하지만 다른 작사가들이 다 저와 같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독자 분들께서 제 책을 보시고 ‘작사가는 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게 몇몇 작사가 분들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됐죠.

 

그래서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상업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차이’를 설명하신 건가요?


아티스트로서의 글쟁이가 되고 싶으면 싱어송라이터가 되어야 하는 거고, 작사가를 업으로 삼으려면 자신의 이야기만을 쓸 수는 없거든요. 전문 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영역은 너무 다른데, 많은 분들이 혼동하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심지어 저도 그 경계에서 계속 선택을 하는 날들을 보내는 것 같아요. 예술성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재미있는 대중가요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선택을 하는 거죠. 저는 대중음악계에서 아티스트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가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작곡가 분들도 많을 거예요. 본인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가수를 위한 곡을 만든다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도 있거든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가사를 완성하기에 앞서 반드시 체크하시는 부분들이 있으신가요?


일차적으로는 가수에 맞는 이야기인지 확인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작사 의뢰를 받을 때 가장 먼저 가수가 누구인지 물어봐요. 나이라든지 가수로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곡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발음들, 그리고 어떻게 짧은 가사 속에서 임팩트를 줄 것인지가 제일 중요하죠.

 

작사가로 데뷔하신 이후에도 5년 정도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고 하셨습니다.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당부하시는 부분에서도 특유의 현실 감각이 눈에 띕니다.


작사가가 되기 위한 준비에만 올인하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 해도 되는 상황이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에요. 작사가는 데뷔하기도 힘든데다가 데뷔 한다고 해서 꾸준히 일이 이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밥벌이가 되기까지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작사가가 되고 싶다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벌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고요. 작사 스킬을 갈고 닦는 것만이 노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을 기르는 것도 노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밖에 작사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 역시 일을 하다 보면 싱어송라이터와 같은 마인드가 생겨날 때가 있어요. 특히 사람들로부터 ‘나는 김이나의 가사가 정말 좋더라’라는 칭찬을 듣게 될 때 그렇죠. 그런데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건 곡과 가수와 가사가 합을 이루었을 때의 상태거든요. 그걸 혼동해서 ‘내 가사가 정말 특출 난가 봐’라고 생각하면 가사 속에서 나의 자아가 나오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가수한테는 민폐가 되는 것 같아요.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김형석 작곡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기도 하셨습니다.


김형석 선생님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촬영한 사진들을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놨었고요. 직접 인사드린 건 그 이후의 일인데, 사석에서 우연히 뵈었던 거예요. 그때 제가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배울 수 있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작곡가님께서 한 번 와서 곡을 들려달라고 하셨는데요. 원래 누구든 배우고 싶다고 하면 기회를 다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선생님을 찾아가서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렸을 때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하셨었어요. 그래서 알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진심으로 선생님 팬이라고, 얼마 전에 콘서트도 갔었고 제 홈페이지에 오시면 선생님 사진도 많이 있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직접 와서 보셨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써 놓은 글들을 읽으시고는 가사를 쓰면 잘 쓸 것 같은데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그러고 나서 1년쯤 후에 가사 한 번 써보겠냐고 제의를 해주셨어요. 그 곡이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이었죠.

 

그런가 하면 “작사가로서의 나를 만든 가장 근본적인 계기는 윤상이다”라고 적으셨어요.


한 마디로 취향 저격을 당했던 건데요. 제가 좋아하는 곡들의 작곡가를 확인해 보면 윤상 선생님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화려한 가수들 뒤에 있는 이 분이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경을 가지게 됐어요. 지금도 윤상 선생님은 저에게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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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좋은 이별은 없어”


「10월에 눈이 내리면」을 작업하신 이후에 “첫 곡은 운이 좋아 발표된 것뿐이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쓸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기는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처음에는 아무 계산 없이 가사를 썼는데 괜찮게 나온 거였죠. 그런 일들이 굉장히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처음 해봤는데 결과가 잘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것 또한 경계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 믿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때 받는 평가에는 ‘처음치고는’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도 하거든요. 이후에는 제 나름대로 연구를 했는데, 아마 큰 메리트가 없는 가사가 나와서 채택이 안 됐었겠죠. 그렇다 보니까 ‘처음에는 운이 좋아서 채택된 거고 사실은 내가 재능이 없나’라는 생각을 한 동안 했었죠. 그건 피할 수 없는 기간인 것 같아요. 겪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정말 잘 쓴다고 착각하는 시간, 하염없이 거절당하는 시간, 하염없이 잘 되는 시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될 때까지 한다’는 주의라서 그렇기도 한대요(웃음). 작사라는 게 시스템이나 멘토가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잘 해내야지, 누가 나를 위해서 ‘한 번 더 해봐’라고 기회를 주지 않아요. 그래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혼자서 싸워나가야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인이면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사가 좋지 않으면 당연히 거절을 해야 되는 거예요. 상업적인 일이기 때문에 친분이 있다고 해서 가사를 채택해 주지는 않죠. 그래서 채택된 가사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가사는 왜 선택되지 않았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책에도 썼듯이 ‘채택된 가사보다 내 가사가 더 좋은데, 내가 아직 이름이 없어서 선택받지 못한 거다’라고 착각할 때도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그 시기도 다 거쳐야 돼요. 저는 그때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홧김에 포기해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A&R(Artist and Repertoire)로 근무했던 경험도 들려주셨어요.

 

A&R로 일했던 건 작사가로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A&R을 하면서도 가사를 쓰시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굉장히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고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요. 왜 이 가수에게 이런 가사를 채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요. 프로듀서의 기획에 따라서 어떤 작품들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자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었죠. 가사를 재차 수정해 달라고 해놓고 다른 작사가의 가사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는 A&R로 근무해 봤기 때문에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니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죠.

 

『김이나의 작사법』에 이성수 SM 프로듀싱팀 실장과 정병기 울림엔터테인먼트 총괄본부장과의 인터뷰를 싣기도 하셨습니다.


A&R이 생소한 일이다 보니까 독자 분들게 알려드리기 위해서 A&R로서 입지를 굳히신 분들의 이야기를 실은 거예요. A&R로 일하면 작사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요. 저도 지금 A&R을 겸하고 있지만,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A&R을 거쳐서 작사가가 되지는 못할 거예요. 책에서 인터뷰한 SM의 이성수 실장님은 작곡도 하시는 분인데 바빠서 곡이나 가사를 쓰실 시간이 없을 정도거든요. 그리고 A&R로 일하기 위해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기도 해요. 저는 A&R을 하면서 배운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고, A&R을 거치지 않더라도 작사가 역시 관련된 부분들을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박정현의 「서두르지 마요」 가사에 등장하는 여자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했거든요. 제가 「서두르지 마요」의 가사를 쓸 때 해뒀던 설정은 모든 게 완벽한 것이었어요. 단지 헤어졌을 뿐이지만, 헤어졌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상대 남자도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 둘은 너무 좋은 연애를 했고,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이인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 여자가 별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쿨해서가 아니라 둘 사이의 알 수 없는 유대관계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판타지인데,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실제로 헤어질 때 가질 수 없는 감정이잖아요. 대부분 억울하고 분하고 미련이 남는데, 노래 속의 여자는 상대를 완벽하게 존중해 주면서 ‘그럼 네 얼굴을 조금만 더 보고 보내줄게’ 라고 말하니까요. 그리고 가수 박정현 씨가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만나보니까 인간적으로 참 훌륭한 분이시더라고요.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아이유로부터 ‘정말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셨죠. 당시에는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그 나이 때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별을 상상하잖아요. 마치 영화 <러브 어페어>처럼 피치 못한 사정으로 헤어지는 거죠. 상대도 나를 너무나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하지만 섣불리 손을 못 내미는 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없다고 했죠(웃음). 단지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이별은 있다고 했어요. 비극적인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느끼는 좋은 이별은 없다고요. (이별하면) 둘 중 한 사람은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모두 좋은 이별이었다고 말한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하는 거겠죠(웃음).


가수와 작사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순간


가사 속의 캐릭터를 만드실 때 가수가 가진 이미지나 나이, 성별, 성격 등을 고려한다고 하셨는데요.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실제 가수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가장 높았던’ 노랫말은 무엇이었나요?


실제 모습이란 걸 제가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려운데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의 솔로앨범에 「그대가 잠든 사이」라는 곡이 있어요. 그 노래를 부를 때 제아가 일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노래도 부르기 힘들었는데요. 연습을 하다가 엉엉 우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무너진 거죠. 그게 꼭 싱크로율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가 제아의 연약한 부분을 소재 삼아서 가사를 썼는데 미안한 감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 노래는 편하게 감상할 수만은 없어요.

 

노랫말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럴 때 좋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요. 쿨의 노래 중에 「프렌즈」라는 곡을 부를 때도 이재훈 씨가 울컥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교감이 이루어졌나보다’ 싶을 때가 있죠.

 

「분홍신」의 가사 중에서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라는 부분은 아이유에게 보내는 최선의 응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아이유도 가사를 보고 작가님의 마음을 눈치 챘을까요?


제가 먼저 얘기했어요. ‘너에 대한 내 생각을 담아서 이런 가사를 썼다’고요. 그런데 아이유는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들뜨거나 하지 않아요. 항상 담담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아이유는 “타고난 그릇이 정말 큰 아이”라고 적은 거고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저보다 훨씬 그릇이 큰 아이라는 걸 매번 느껴요.

 

드라마 <궁>의 OST 「Perhaps Love」에 참여하신 후에 지하철, 미용실, 길거리 곳곳에서 직접 가사를 쓰신 음악을 듣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기분이 좋고요(웃음). 진짜 기분 좋은 건 제가 가사를 쓴 노래를 홈페이지 배경음악이나 휴대폰 벨소리로 지정해 놓은 걸 들을 때예요. 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최신음악을 무작위로 재생해 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음악을 직접 선택한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제가 그 사람의 깊숙한 사생활에 관계가 되어있는 느낌이 들어요. 노래는 생필품이 아니잖아요. 단지 좋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하는 건데, 그럴 때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마음이 뿌듯하죠.

 

3분 안팎의 노래 한 곡 안에서는 캐릭터의 뒷얘기를 전부 전할 수 없어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김이나의 작사법』을 집필하면서 그러한 갈증이 다소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에 적힌 이야기들을 모르고 들어도 좋은 곡들이긴 하죠. 그런데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메이킹 필름을 보고 싶잖아요. 그리고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도 재미있고요. 그런 것처럼 『김이나의 작사법』에 쓴 가사의 뒷이야기들은, 한 줄의 가사를 조금 더 맛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거장들과의 작업은 “신기하게도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내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느낌이 있는 구간은 그들이 정확히, 또는 그 이상으로 표현해냈다.”고적으셨어요.


제가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나왔다는 건, 예를 들면 호흡 같은 거예요. 이선희 선생님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는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이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큰 따옴표 안에 ‘그대’라는 단어를 넣어놓은 것 같은 느낌으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표현을 해주셨더라고요. 그리고 간절함의 정도를 배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슬픔과 담담함이 표현되는 순간이나 정도가 제 상상과 다르기도 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죠. 그런데 제 바람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쾌감과 뿌듯함이 있어요. 제가 행간에 담으려 했던 것까지도 세심하게 봐주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가사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고민하는 가수들은 제가 상상한 모습을 연기해 주더라고요.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도 마지막 후렴구에 음정이 조금씩 불안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야 되는 부분이었어요. 완벽하게 잘 부르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 흔들리는 부분이었거든요. 이선희 선생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불러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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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노래


임재범의 「어떤 날, 너에게」의 가사를 쓸 때는『칼의 노래』의 여운이 남아있었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정말 느낌적인 느낌인데요(웃음). 겉으로 고독을 풍기지도 않는, 그럴 정도로 자기 절제가 되어 있는 남자의 이미지 같은 거였죠. 그런 남자가 무너질 때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칼의 노래』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이전까지 쓸쓸함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던 이순신 장군이 갑자기 소리 내서 우는 장면이요. 그 부분에서 저도 눈물을 흘렸었어요. 마치 아빠가 우는 걸 보는 것처럼, 그 사람이 운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다가 우는 모습을 보니까 겁나고 무섭고 서글픈 거죠. 그 대목에서 제가 글자로만 느꼈던 느낌과 냄새를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상상하는 임재범 씨의 향기와 비슷하기도 했고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노랫말에서는 ‘아이유와 가인의 캐릭터를 빌려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작사가로서 김이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 대한 답답함이 아니라, 제가 옆에서 지켜 본 가수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 대한 답답함이었죠. 어떤 가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고 숨겼던 모습이 밝혀졌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신나하고 확신에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가수는 모든 의문들이나 소문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가 없거든요. 저는 그 아이들이 「누구나 비밀은 있다」처럼 이야기를 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노래를 빌미삼아서라도 입 밖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사람들의 많은 오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연예인의 운명인데,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답답해하거나 속앓이를 하지 말고, 연예인으로서 신비로운 매력 요소로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유와 가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죠(웃음). 오히려 그 아이들은 ‘언니 왜 그런 걸로 신경 쓰고 그래요’하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해요.

 

에일리의 노래 「저녁하늘」 가사에는 작가님의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상처를 이야기하시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들려주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극복이 되었으니까 얘기할 수 있는 거고요. 얘기를 하다 보면 극복이 된다는 건 강력한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저는 하늘이 어슴푸레해질 때 기분이 극도로 이상해졌었어요. 길을 가다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실내로 들어가서 아예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을 정도로요. 어른이 돼서도 그 시간만 되면 불편해 지고 초조해 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리학에서는 그걸 ‘인지도식’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기분에 사로잡힐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느라 몇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오셨었거든요. 다시 일본으로 떠나실 때마다 공항에서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면 해가 질 무렵이었어요. 당시의 기억이 잘못된 인지도식으로 인해 트라우마로 남은 거죠. 이유를 알고 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저녁하늘」 가사를 쓰시면서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셨나요?


나에게만 슬픔과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저녁 하늘이 왜 슬픈지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 반성하게 됐고요. ‘나만 이상한 종류의 쓸쓸함을 느끼는 게 아니고, 다들 비슷비슷하게 외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유가 되기도 했어요.

 

독자들에게 『김이나의 작사법』이 어떤 이야기로 다가가길 바라세요?


재미있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더 재미있는 요소들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요. 가수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대한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작사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요. 작사가를 꿈꾸지 않는 분들에게도 기분 좋은 느낌을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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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 김이나 저 | 문학동네
『김이나의 작사법―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은 작사가 김이나가 작사가 지망생과 음악업계에서 일하길 꿈꾸는 젊은이들은 물론, 글쓰기와 창작을 지망하는 이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들어준 수많은 청자들을 향해 쓴 책이다. ‘좋은 일꾼으로서의 글쓰기, 팔리는 글을 쓰기 위해 10년간 분투한 자신의 생존기’를 각 곡의 작사 테크닉, 그리고 아티스트들과의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과 함께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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