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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뮤지션 임달균의 변화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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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임달균은 한국 재즈의 새로운 기대주였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 6년 동안 본격적으로 재즈를 연마한 그는 정통 하드 밥(Hard Bop)을 구사하는 테너 색소폰 주자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2005년 자신의 오중주단으로 발표한 첫 음반< 또 다시 혼자(Alone Again) >는 당시 꿈틀대던 한국 재즈의 새로운 에너지를 상징하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2007년 그는 대학에 몸을 담게 되었고 그로부터 그의 활동은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돌아왔다. 새로운 음반< 친구(Friends 'n' Swing) >와 함께. 첫 음반을 발표한지 정확히 10년만이다. 그 사이 그의 악기는 색소폰에서 트럼펫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그는 스윙 느낌이 넘치는 노래마저 구사하는 게 아닌가. 10년의 세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변신이었다. 그가 공연을 하고 있는 이태원의 재즈클럽 '올댓재즈'를 찾아갔다. 1부 무대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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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연주를 거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학교 일로 바쁘지만 클럽 연주를 하지 않으면 재즈 연주자로 끝장 날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연주하려고 한다. '올댓재즈'에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연주하고 있다. 이렇게 한 지 한 5년 된 것 같다.

 

아까 무대를 보니 마일스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던데 색소폰 주자일 때부터 연주하던 곡목이었나?


색소폰을 연주하든 트럼펫을 연주하든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래도 트럼펫으로 전향 한 후 레퍼토리가 조금 변하긴 했다.

 

대학에 몸담은 뒤 어떻게 지냈나?


경희대 전임교수로 온 뒤 부터는 수업을 비롯해 학교 일에 매달렸다. 소속되어 있는 예술 디자인 대학이 위치한 수원 근처로 이사했고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이제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얼마 전 < 또 다시 혼자 >를 다시 들으니 그때로서는 정말 앞서 나간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재즈팬들은 계속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하길 기대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혹시 공을 들여 음반을 발표했지만 재즈에 대한 주위의 냉담한 반응 때문에 좌절했던 것은 아닌가?


물론 그런 서운함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더욱 실망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유학 가기 전부터 그토록 열심히 불었고 유학 시절 그리고 다녀와서 죽으라고 연습했지만 결국 앨범으로 나온 성과가 그 정도였을 때 자신에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연주자로서 포기하거나 의욕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 들어오니 예상보다도 일이 훨씬 많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 시피 하니 연주 활동은 자연히 줄어들었다.

 

혹시 영화 < 위플래쉬 >는 봤나?


봤다.

 

교수로서, 교육자로서 그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에서 나는 칼럼니스트 원종우씨가 쓴 글에 제일 공감했다. 그 분은 <딴지일보>에서 파토라는 필명으로 많은 글을 써 온 분인데 외계문명과 UFO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다. 어쨌든 그는 플레처 교수와 그 영화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일종의 메타포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러한 성격에, 그러한 교육법을 가진 교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의 존재는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다 마음속에 갖고 있는 심리적 압박감의 상징이라는 게 원종우 씨의 해석이고 나도 그 점에 동감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영화의 내용은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사건의 개연성도 높아진다. 음악인들이라면 누구나 심적인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을 괴롭히며 수업하지 않는다. 단지 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종종 기본적인 의욕이나 열의가 부족한 학생들을 보게 되는데 그땐 정말 맥이 풀리지만 말이다.

 

의욕, 열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떻게 하다가 색소폰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꿨나? 보통 열의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색소폰은 마우스피스에 붙인 리드(reed)를 울려서 소리 내는 목관악기고 트럼펫은 입술을 진동시켜서 소리 내는 금관악기이니까. 악기의 종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 어려운 일에 왜 도전했는가? 트럼펫이 그 만큼 좋았는가?


재즈를 좋아하고 특히 하드 밥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트럼펫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나는 색소폰으로 재즈 연주를 시작했지만 항상 트럼펫 소리에도 호감을 느꼈다. 뭐랄까. 남성적이면서도 한 없이 섬세한 소리를 갖고 있는 악기가 트럼펫이다. 그래서 유학 마치고 막 한국에 왔을 때 주한이 형(트럼펫 주자 이주한)을 만나 트럼펫 좀 빌려달라고 해서 일주일 간 계속 불어봤다. 그런데 소리도 나지 않더라. 그래서 트럼펫 돌려주고 난 저 악기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했었다. 그러고서 한 참 지나 아마 2011년이었을 것이다. 클럽에서 트럼펫 주자 김진영과 함께 연주했는데 그날 그의 트럼펫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그가 솔로 하는 걸 옆에서 쳐다보면서 이제 더 이상 늦추면 난 저 악기를 절대 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트럼펫 한 대를 구해 죽으라고 불었다.

 

그땐 금세 소리가 나던가?


아니다. 얼마 만에 소리가 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학교에 출근해서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씩 시간 잡아 놓고 계속 트럼펫만 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소리가 나자 너무 기뻐서 한 음만 하루에 다섯 시간 씩, 지겨운 줄도 모르고 계속 불었던 것 같다. 소리 나고 나서도 한 옥타브를 정확히 부는 데 6개월 이상 걸린 것 같다.

 

그러면 소리 내고 한 옥타브 부는 데 거의 1년 소비했다고 치자. 그 뒤로 지금까지 4년 정도 밖에 시간이 안 흘렀는데 벌써 이렇게 분단 말인가? 정말 빠르다.


아직 멀었지만 그 뒤로는 조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색소폰을 통해 쌓아 놓은 재즈 이론과 기술들을 계속 트럼펫으로 이사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역시 트럼펫을 연마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였나?


아니다. 연주를 하고 나니 내게 트럼펫 음색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재즈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내가 연주하면서 색소폰 음색에 대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상이 트럼펫에는 아직 없더라. 어떻게, 어떤 소리를 내야겠다, 내겐 이런 소리가 어울리고 잘 낼 수 있다, 라는 개념이 서야 하는데 그것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색소폰을 병행해서 연주하지 않나? 지금까지 뛰어난 테너맨으로 인정도 받았는데 아깝지 않나? 해외에서도 트럼펫과 색소폰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는 거의 없다. 그 희소성만으로도 주목 받을 것 같은데.


힘들게 트럼펫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어느 수준에 올라 갈 때까지는 끝장을 봐야 하지 않나. 그런데 색소폰을 계속 연주하면 안이한 생각이 들 거 같았다. 트럼펫 안 되면 다시 색소폰으로 돌아가지 뭐, 하는 식의. 그래서 색소폰을 아예 손에서 놓기로 했다. 한 동안은 연주 때 두 악기를 모두 들고 다녔는데 2년 전 부터는 트럼펫만 들고 다닌다. 도망 갈 곳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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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균 씨는 둥글둥글하고 웃는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데 실은 매우 독한 거 같다.


그런가? (웃음)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본격적으로 노래도 부르게 되었나? 전에도 무대 위에서 간간히 노래를 불렀나?


아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른 적은 없다. 단지 연습실에서 혼자 불렀다. 색소포니스트 시절에는 노래 부르는 게 영 어색하더니 트럼펫으로 바꾸고 나서는 노래가 더 자연스러워 지더라.

 

트럼펫 연주하면 노래가 편해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글쎄.......정확히는 모르겠다. 루이 암스트롱, 쳇 베이커 등 트럼펫 주자들이 보컬도 겸하는 전통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트럼펫을 연주 한 뒤로는 무대에서 간간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컬 비중이 높은 이번 음반을 내는 건 본격적인 도전이 아닌가?


그렇다. 무대에서 색소폰을 치우고 오로지 트럼펫만 연주하던 시절이었는데 클럽무대에서 몇 곡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 있던 재진이 형(테이크원 뮤직의 이재진 대표)이 “야, 너 노래도 하는구나. 우리 음반 한 장 녹음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보컬지도를 따로 받았나?


음반 녹음할 때 재진이 형에게 받은 것이 전부다. 앨범에 담긴 「친구」, 「설레임」, 「커피 커피」 등을 모두 재진이 형이 작곡, 작사했기 때문에 노래 분위기, 창법 등에서 많은 지도를 받았다.

 

이재진 대표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버클리 음악원 유학 시절에 그곳에서 만났다. 그때 재진이 형도 유학을 생각하고 있어서 학교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한국인 학생이었던 나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연락해서 서로 만났다. 재진이 형도 색소폰 연주자다.


맨 처음 이재진 대표로부터 곡을 받았을 때 느낌이 어떠했나?


노래도 노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재즈와는 많이 달라 당황했다. 내가 연주해 온 하드 밥은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곡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훨씬 대중적이고 여성들도 좋아할만한 곡들이며 사랑에 관한 노래들이 많다. 이걸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 정말 이런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걸까,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면서 노래에 적응했고 서서히 감정이 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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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노래가 전문 보컬리스트의 느낌은 아니다. 목소리에 섬세히 공을 들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스윙이 그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린다. 오히려 남성적으로 툭툭 뱉는 창법이 멋지게 들린다.


고맙다. 아마도 스윙은 오랫동안 재즈연주를 하면서 몸에 배인 것 같다.

 

특히 즉흥적인 스캣(scat)이 일품이었다. 진짜 트럼펫 주자만이 부를 수 있는 스캣처럼 들렸다.


(쑥스러운 웃음)

 

「친구」에서 맨 처음 소절, “친구야.......” 부르는 대목이 재미있다.


맨 처음에 그 부분을 부르는데 재진이 형에게 지적 많이 받았다. 진짜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불러 보라고. 아마 수 십 번 녹음 했을 거다.

 

반면에 「후회」, 「되돌아오지 않는」, 「숲의 노래」 등 임달균 씨가 직접 쓴 노래들은 쓸쓸함, 삶에 대한 반성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어떻게 곡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숲의 노래」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게 바친 노래다. 「후회」를 완성하고서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아내가 “이제 오빠가 내 영향을 받았네.” 하더라.

 

아내도 음악을 하나?


건반을 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레이디버드'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앨범도 냈다.

 

지난 3월 20일에 있었던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에 갔었다. 그런데 확실히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는 시선 처리를 비롯해서 조금 쑥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 트럼펫 연주할 때는 당당하던데.


아무래도 관중들 앞에서 노래 부른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긴장도 되고 어색했다.

 

확실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특별한 끼, 그러니까 조금은 배우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점은 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드러머 T.S. 멍크가 쓴 글을 봤는데 연주자들도 옛날 재즈의 황금시대처럼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관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동감한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점이 필요할 것이다.

 

음반에서는 녹음 상의 문제 혹은 비용 문제 때문에 빅밴드 편성의 곡을 각 파트 별로 한 사람이 여러 번 오버더빙을 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풀(full) 빅밴드가 연주했다.


그렇다. 단원들 중 다수가 경희대 제자들이나 졸업생들이었다.

 

연주가 놀랄 만큼 좋았다. 리허설을 여러 번 했나?


아니다. 그렇질 못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이지영 씨의 편곡이 좋았기 때문에 금세 좋은 앙상블이 나왔다. 아울러 국내 재즈 연주자들의 수준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관악기 주자들의 숫자가 모자라 빅밴드 결성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면에 음향 기술의 문제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한국 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다.


아, 그랬나? 보컬 마이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나도 안다. 녹화화면을 보면서 그 점은 정비해 보겠다.

 

새로운 앨범을 내고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재즈를 많이 듣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 미국 음악 시장 통계를 보니 전체 시장의 1.4%를 차지해 여러 장르 중에서 꼴지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페스티벌도 가고 주말에 재즈클럽에도 많이 가지만 음반을 사거나 단독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재즈에 대한 실수요는 매우 적은 것이다. 미국 통계도 1.4% 나왔지만 대중적인 보컬 재즈를 제외하면 진짜 하드코어 재즈는 그 중에서 0.4% 이하 일 것이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앨범 < 친구 >를 통해 재즈에 대한 문턱을 많이 낮추고 싶다. 국내 음악에는 마이클 부블레처럼 스윙하는 보컬음악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음악이 있으면 대중들이 본격적인 재즈에 훨씬 쉽게 다가갈 것이다. 앞으로는 클럽 공연에서도 앨범에 담긴 곡들을 더 많이 연주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체중도 많이 뺀 것 같다.


대중들 앞에 서야 하는데 그래도 보기가 좀 좋아야 하지 않나. 다이어트 많이 했다.

 

역시 독한 사람인 거 같다.


(웃음)

 

그러면 이전 같은 하드 밥은 연주하지 않을 건가?


아니다. 트럼펫을 더 연마해 레퍼토리를 늘리면 다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시작할 것이다. 대중적인 보컬 재즈와 병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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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무대 시간이 가까이 오자 임달균은 인터뷰 틈틈이 벌써 버징

(buzzing: 금관악기 주자들이 입술을 진동시키며 푸는 행위)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는 주자들을 소개해 달라.


테너 색소폰에 김지석, 드럼에 이종원. 모두 나와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 온 연주자들이다. 피아노의 이지영은 이번 음반에서 편곡까지 담당한 일등 공신이다. 베이시스트 신동하는 내 제자인데 매우 똘똘한 친구다. 앞으로 기대가 촉망된다.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김명기(테이크원 뮤직)
2015/04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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