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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서 시작한 이야기, 오세영의 『대왕의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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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김양상은 후에 선덕왕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실을 『대왕의 보검』에서 밝히지 않았다. 1973년 발견된 황금 보검을 찾아가는 여정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대체 이 칼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보물로 지정된 이 황금 보검은 그 양식이 이국적이어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국내외에서 다큐멘터리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곧바로 나오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될 때까지 작가 안에서 쌓이고 쌓인다. 『대왕의 보검』을 집필하는 데 걸린 기간은 1년 반 남짓. 이를 작가는 빵에 비유했다.

 

“빵을 만드는 데, 밀과 씨를 뿌리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과 반죽과 숙성을 해놓고 걸리는 시간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제 경우 숙성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빵을 구운 거니까 1년이 좀 넘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야기는 중엽 신라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당과 연합해 삼국을 통일하고, 왕과 귀족은 태평성대를 누리지만 백성의 생활은 빈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족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정치 싸움을 벌인다. 그 과정에 누명을 쓰고 신라 땅을 쫓겨나게 된 김양상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경주에서 출발한 김양상의 궤적은 장안, 사막 등을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다다른다. 이 궤적을 따라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그 가운데 등장하는 당시의 풍경, 지명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작가의 철저하고 폭넓은 자료 조사 덕이다. 김양상이 여정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을 찾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인데 그러고 보니 『대왕의 보검』은 작가가 주는 종합선물세트가 아닐까 싶어진다.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중엽 신라에서 시작해 콘스탄티노플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대장정이에요.


제 책이 다 스케일이 커요. 넓은 데서 잘 뛰니까요.(웃음)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한복 입은 남자의 사진 하나에서 시작했듯이,『대왕의 보검』 역시 칼에서 시작한 거죠. 칼이 1973년에 발견되었고 1978년 보물 635호에 지정돼요. 그 칼에 대해 학자들이 입을 모아 6세기 즈음이라고 얘기했어요. 먼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뛰어요. 학술적인 접근을 하죠. 생김새로 시대 추정을 하고, 탄소연대 측정을 한다든지 해서 조각을 맞춰나가요. 하지만 지하철로 말하자면 역만 있고 노선은 없는 셈이죠. 논픽션에서는 그 이상 진행이 안 돼요. 그 부분을 메우는 게 작가의 역할이죠. 알려진 것 중에 역사적으로는 벗어나지 않으면서 픽션의 세계에서는 허용이 되는 스토리를 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밝히지 않았는데, 주인공 김양상이 신라 선덕왕이에요. 진덕여왕이 죽고 성골대가 끊기면서 김춘추로 넘어오고 무열계로 바뀌었거든요. 김춘추가 유명한 친당파 아닙니까. 삼국 통일 이후 대동강 이북은 다 넘어가고, 신라도 한때 계림도독(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663년(문무왕 3) 당나라가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노골적으로 신라를 지배하려고 함)이 되었다 김유신이 겨우 되찾았죠. 그 다음부터는 친당 드라이브 정책으로 나가서 계속 그 정책이 유지돼요. 이후 성덕왕, 김양상이 왕이 된 후에는 실제로 당나라에 공격을 합니다. 거기에 포인트를 잡은 거예요.

 

특별히 이 시기에 집중한 이유가 있었나요?


어느 한 순간 딱 ‘이거다!’ 하진 않고요. 칼을 보는 순간 뭔가 있다, 는 생각이 든 정도였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흉노와 경주 김씨와의 관계라든지, 흉노와 아틸라의 관계라든지 별개 사안이 떠돌았어요. 몇 년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되면서 시작되었죠.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마찬가지예요. 사진, 기록에 남아있는 조선인 사람, 이태리에 남아있는 꼬레아 사람이 개별로 떠돌았죠. 이 세 가지를 직접 연결해주는 고리는 없어요. 저마다 주장이 있는 것이고요. 저는 왜 그 사람이 그곳에 있느냐 하는 것을 스토리로 이은 것이죠. 『대왕의 보검』마찬가지에요. 강하게 각인되어서 따로 있던 것이 스토리로 올라가 연결시킨 거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작업하신 기간은 얼마나 걸리셨어요?


두 권 분량인데요. 제 기준으로 따지면 1년이 좀 더 걸리거든요? 하지만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빵을 만드는 데, 밀과 씨를 뿌리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과 반죽과 숙성을 해놓고 걸리는 시간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제 경우 숙성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빵을 구운 거니까 1년이 좀 넘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마침 거의 탈고를 할 때, ‘황금의 나라 전(展)’이 크게 열렸어요. 전시되었던 황금관이라든가 고옥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신라가 중국과는 상관없이 대륙과 통한 것이고, 그래서 각광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인 거예요. 이어진 자료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직접 교류, 그 다음에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황금 칼을 포함한 각종 금관이라든가 팔찌에 대해서 스토리를 입혀보자, 하게 됐죠. 8세기 중엽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도 넣어서 말이에요. 혜초부터 시작해서 고선지 장군도 있을 테고, 양귀비도 직접 나오진 않지만 그 시기에 있었거든요. 바그다드의 왕자도 실존인물이에요. 그런 역사적 사실을 끌어들이면서 우리나라 역사 소설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이야기에 녹아 있는 역사적 사실들


당시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현장감을 살려줍니다. 도서관에서 작업하시는 것으로 유명하시지만 자료만으로 이런 묘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요. 


도서관에서 살죠. 요즘은 인터넷에서 자료 조사하기도 좋아요. 예를 들어 전차 경주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영화 <벤허>에 그런 장면이 잘 나오죠. 독자 중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주인공이 돌아와서 어떻게 됐느냐고요. 황금 보검에 대한 것을 밝히는 쪽으로만 일단 한 것이고요. 날이 지기만 하면 싸웠다는 김지정이니 김주원이니 하는 사람들을 통합한 사람이 김양상이에요. 그 얘기도 재미있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은 칼을 찾는 과정, 거기에 비중을 뒀어요.

 

지명도 무척 눈에 띕니다. 사료 부족이라든지 작업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역사 소설이 종류가 많거든요. 근세사라든지 자료가 많은 시기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잘 쓰는 작가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죠. 조선시대의 경우도 자료가 많으니까요. 반면 그렇게 자료가 많으면 상상력이 끼어들어갈 틈이 없잖아요. 그건 제 전공이 아니고요. 이 책처럼, 또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살짝살짝, 사실의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을 살피는 것, 그런 부분이 제가 전공을 한 부분입니다. 미스터리한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낸 것, 그런 부분에 특별히 매력을 느껴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혜초, 고선지 등)을 되살리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실존인물이 조연으로 슬쩍 출연하는 건 제 스타일이에요. 보통의 경우 그 사람들이 주역을 맡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슬쩍 그 사람들이 나와 시대 배경을 맞춰주고 빠지거든요. 일장일단이 있어요. 새롭다는 건 장점이고, 낯설다는 건 단점이겠죠. 작가로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그쪽에 치중을 합니다. 혜초가 슬쩍 나왔다가 간만 보고 빠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고선지 장군도 마찬가지죠.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받아주시리라 믿고 씁니다.

 

실존 인물들의 등장이라는 점이 훨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새로운 건 없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같은 걸 중학교 때 읽었어요. 그때는 작가가 될 생각은 안 했지만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싶어서 전공도 역사학을 했죠.(웃음)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으로 없는 걸 만드는 쪽에 능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는 말씀도 하셨고, 다큐 등은 팩트를 다루니까 나갈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다고도 하셨는데, 이런 스토리텔링은 역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잖아요.


방금 언급한 월탄 박종화 선생의『자고 가는 저 구름아』같은 경우 인조반정 이야기를 다룬 건데요. 송강 정철이라든지 선조나 광해군이 나와요. 거기 강아(江娥)라는 기생 출신 여자가 나오는데, 송강 정철이 왕세자 책봉 때문에 싸우다가 귀양을 가는데 강아라는 여자가 거길 찾아가는 걸로 시작되거든요. 아, 월탄 박종화 선생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했는데 강아라는 기생이 진짜 있더라고요. 최근 드라마 <화정>에도 ‘김개시’라는 여자의 역할이 확 커지면서 김가희라고 나오죠. 이 사람이 실존인물인가 아닌가 굉장히 궁금했는데 김개시라는 상궁이 있었더라고요.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면 놀랍도록 풍성해져요.


요즘은 우리가 아는 역사가 얼마나 진실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요. 역사란 후세 사람이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예요. 밝혀진 것만 해도 그래요. 사마천의 『사기』도 지금은 바이블입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만들어 쓴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고, 그 안에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있어요.『플루타르크 영웅전』도 지금은 정설로 알려져 있잖아요. 사실 플루타르크는 소설가예요. 세상에 알려진 일화들도 그래요. 조지 워싱턴이 도끼로 나무를 다치게 했는데 거짓말을 못해서 아버지에게 칭찬 받았다는 이야기 유명하잖아요. 그건 전기 작가가 지어낸 거라고 딱 밝힌 거거든요. 에디슨이 닭을 품었겠느냔 말이에요. 나는 믿어지지가 않아요.(웃음)

 

그래서 말이죠. 소설을 책임을 가지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스토리를 만든다고 썼지만 이것이 전달될 때마다 사실로 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작가의 말에 ‘팩트와 픽션을 구별해내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 또한 재미일 테니.’라고 썼는데요. 지금은 좀 달라요. 선덕왕이 김양상이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은 것도 픽션에 무게를 두려고 했기 때문이죠. fiction based on the fact 해야겠다는 거죠. 그것이 제가 잘하는 것이고요, 나름대로 책임이 있겠다 싶어요.

 

픽션과 팩트를 구별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가 지금처럼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어떤 사건들을 관찰하면서부터였나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료를 보고 공부하면 할수록 생각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공부를 하다보니까 이것이 원래 사료에 접근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만날 때를 그린 자료들이 웃겨요. 볼 때마다 클레오파트라가 옷을 덜 입고 나와요.(웃음) 그래야 관심을 끄니까요. 원사료 쓴 게 다르고 그 다음에 쓴 게 다르게 되는 거예요. 사실 자체는 분명하겠지만 후세에 이야기가 가미되었으리라는 거죠. 적어도 제 책을 읽은 독자라면 구별할 수 있게 쓰겠다, 그렇게 된 거죠.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장면,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비교적 사료가 많았던 것이 탈라스 전투, 탈라스 강 유역에서 나흘 간 싸웠던 전투에 대한 것은 좀 수월했죠. 그 외에는 아무래도 스케일이 큰 장면이 어려웠어요. 마지막에 다뉴브 강에서 찾아가는 장면은 사료가 많이 없어요. 그 장면을 종결해야 스토리가 마무리 되는데 그 부분이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틸라라는 사람에 대한 자료도 많이 없습니다. 다뉴브 강 속에 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 없어요. 산 넘는 장면도 쉽진 않았죠. 설표범이 나오는 부분 말이에요. 어차피 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니까요. 그러다보니까 주인공이 슈퍼맨이 될 여지가 많았단 말이에요. 그 또한 마음속으로는 경계심을 갖고 쓴 부분이에요. 판타지 소설을 쓴 건 아니니까요.

 

환술 설정이 작품에 주요한 장치로 사용이 됩니다. 이 구상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농환(弄丸)이니, 하는 전문용어가 나오잖아요. 예전에는 아라비아 사람이 장안에서 그렇게 살았거든요. 궁파사((窮波斯)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파사’가 페르시아니까, 밑바닥 일을 한 사람들이겠죠. 그런 게 있기에 좋다고 생각해서 넣었어요. 구체적인 장면은 요즘 하는 것들을 참고 했어요. 사람이 사라지는 건 거울을 사용하거든요. 커다란 코끼리가 무대에서 없어져버리잖아요. 거울을 이용한 것들은 현대 마술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석연당이 죽는 장면에서 특히 로마 군사들의 거울 트릭이 굉장한 긴장감을 주잖아요.


실제 19세기 말이 아마 마술에서는 세계적으로 전성기였는데요. 당시는 컨저링(conjuring)이라고 했어요. 마술을 사람이 진짜라고 믿고 보겠습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재미로 보는 거죠. 연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 게 아주 발달해서 인형이 체스를 두는 것도 있고 그래요. 사람이 태엽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도 있고 그런 마술들이 있더라고요. 그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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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동서 교류에 깊은 관심 있어


신라 중엽이 혼란했던 시기고, 귀족과 왕족의 정치 싸움이 많이 펼쳐집니다. 당시 시대를 보여줌으로써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요?


그 시기에 귀족들이 녹봉이 아니고 녹읍으로, 땅에서 얻은 것을 바치고 월급으로 받는 게 아니고, 알아서 먹고 일정량을 주겠다, 이게 굉장히 심했거든요. 귀족들이 당나라풍으로 사치를 일삼았고요. 안정적인 사회가 되면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게 되거든요. 당시도 마찬가지죠. 문제가 터지기 직전에 인물이 나오는 거죠. 그런 상황이었어요. 이때 왕은 대중을 끌어들여서 귀족을 견제하거든요. 정찰(貞察)하는 사람이 문무백관을 규찰한다고 나와있는데, 당연히 개혁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게 마련이죠. 나중에 김양상이 둘 다 물리치게 되죠. 무열계를 대표하는 김주원을 물리치고, 귀족을 대표하는 김지정을 물리치면서 성덕왕이 되고요. 왜 그 시기를 시대 배경으로 잡았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요, 혼란 시기를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죠.

 

김양상의 영웅적 면모와 불의를 못 참는 계산적이지 않은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캐릭터가 완벽하고 철미하면 매력이 없어요. 주인공 김양상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욱하기도 하죠. 그래야 공감도 가고, 걱정도 돼요. 어쩌려고 이러나 할 정도의 일을 저지르는 면이 있어야 하거든요. 인간의 본성이 차가운 것도, 뜨거운 것도 있겠지만 뜨거운 쪽을 강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그래요. 나중에 안정된 시대를 지키는 사람이 또 따로 있고요. 혁명가들,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고 해요. 별명이 다 뻥쟁이에요.(웃음) 박영효가 김옥균에 대해서 그랬잖아요. 혁명가는 그런 면이 좀 있어야 돼요. 낙천적이고,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요.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고 혁명가가 되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이런 사람은 2인자는 될지언정 앞에 나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못 돼요. 

 

우리가 몰랐던 그 시기 풍속 중 인상적인 장면이 또 있나요? 자료 조사를 하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것들이 많아요. 장안에서 발견된 태자 무덤에서는 신라 사람과 동로마 사람이 같이 있는 그림이 있어요. 신라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실제로 간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혜초가 신라 사람인데 인도에 갔다가 돌아왔잖아요? 기록에 남은 사람만도 인도까지 다녀온 승려가 15명이거든요. 15명 중에 10명은 도중에 죽거나 돌아오지 않고 인도에 살기로 하고, 5명은 돌아왔는데 그 중 혜초 포함 3명은 그곳에서 생을 마쳤고, 두 명만 끝까지 경주로 돌아왔는데요. 그 정도 여정이면 콘스탄티노플도 갔을 거예요. 바다를 통한 길이 또 있잖아요. 당나라 때 이세민(태종)이 딱 막아버렸거든요. 초원으로 가는 길이 사라져버리니까 바다의 길이 더 활발하게 열려서 많이 다녔을 거예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도마도 인도에서 죽었다고 하잖아요. 당시 기록을 보면 로마에서 인도까지 배의 시간표가 다 있어요. 그만큼 활발하게 오갔다는 거죠. 급행, 완행이 다 있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동서교류는 옛날 사람이 훨씬 활발했구나, 싶어요. 동서 교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훨씬 자유분방한 것 같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이라는 것은 조선이죠. 조선 중에도 칠거지악이니 남녀칠세부동석, 이런 거는 후세기의 일이지 고려 시대도 각종 가실이니, 쌍화점도 보면 굉장히 자유롭거든요. 발견된 토우(土偶)도 보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은 것도 많잖아요. 조선도 그래요. 어우동이라든지, 세종의 며느리도 굉장히 자유부인 아닙니까. 그런 풍이 있었어요. 고려는 활달했고, 이혼도 많았잖아요. 여자에게 상속도 했고요. 조선이 폐쇄된 사회죠. 그나마 전반기 명나라 때는 사대라도 했지만 청나라가 된 후부터는 폐쇄된 사회로 있었던 거죠. 아는 게 조선이라 여자는 궁중 암투만 하고 칠거지악만 찾죠. 안 그래요. 훨씬 활발했죠.
 
신라시대에 대해서는 사실 자세한 건 나와 있지 않아요. 직접 기록한 것도 없는데요. 그렇지만 열린 사회였다, 개방적인 사회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출토되는 유물로도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요. 헌화가라든지 노래로도 알 수 있어요. 뒤집어보면 수로부인이라는 여자가 외간 남자를 만났다는 얘기잖아요. 서동요도 자유로운 풍경이고요. 처용가도 그렇잖아요. 다른 남자랑 누워있는 걸 봤다는 것인데, 조선시대 같으면 감히 노래를 싣지도 못했겠죠.

 

속칭 미드, 영드 라고 하는 외국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로마 역사가 대중적으로 친근함을 주기도 했어요. 드라마, 영화 등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수요도 많이 있고 다양한 시도가 있는데요. 역사 소설을 꾸준히 작업해오시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앞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많죠. 우선 제가 하는 건 외연을 넓히겠다는 뜻이 가장 크고요. 지금 한류라고 해서 많이 나가잖아요. 제일 먼저 노래가 나갔죠, 그 다음 드라마가 나갔고, 이어서 웹툰이라든지 게임도 나간다고 하고, 음식도 나간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 소설이 나간 게 뭐가 있느냐는 의문이에요. 있다면 소개 차원에서 지원 받아서 나간 정도겠죠. 싸이, 소녀시대 같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잖아요. 우리나라에 일본 소설 엄청나게 들어와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사람 작품은 융단폭격을 해버리잖아요. 아사다 지로, 요시모토 바나나 등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한국 작가는 그렇지 않죠.

 

때문에 되레 소설이 영상에 기대게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미디어셀러니 하는 말도 나오는데요. 작품 자체가 번역이 되어 나간 게 있느냔 말이에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해서 나가는 방법이 있고요. 아니면 문화적인 것을 줄여서 별 부담 없이 나가는 게 있는데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하기에는 한국이 많이 알려졌어요. 저는 포지셔닝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책이 안 팔린다고 하는데, 팔릴만한 책이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듣거든요. 불경기라고 하지만 천만 넘는 영화는 다 불경기 때 나오잖아요. 어차피 콘텐츠는 각개각층이니까요. 백만 부 팔리는 게 있는가 하면 만부 팔리는 것도 있고요.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역사적 시대가 있나요?


고려를 특화할 생각입니다. 조선은 너무 사료가 많고, 정형화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으니까 제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고려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아서 발굴의 여지가 많아요. 정설로 접근한 것은 많아요. ‘무신의 난’이라든지 ‘천추태후’ 같은 경우가 그런데요. 그것 외에도 새로운 면이 많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활달하고 개방적이었거든요. 남녀상열지사라고 해서 조선시대에 다 없애버리는 바람에 찾기가 어렵지만, 살아남은 것들, ‘쌍화점’ 같은 게 있잖아요. 자유분방함, 그런 인간성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대 독자가 볼 때는 훨씬 공감하기 쉬울 수도 있어요. 조선시대에 자유연애 했다고 하면 이상할 테니까요. 걸림돌도 많고요. 팩트에 바탕을 두고 픽션을 쓴다고 하는데 팩트가 작가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사실을 벗어나지 않고 쓰겠다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려고 하는 게 고려 이야기예요.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쓰다보면 다른 분야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왜 없겠어요? 현대물이라든지, 아니면 역사에서도 실존인물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시대만 따와서 쓰는 것 등등 하고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아요. 구상해본 것도 있는데요. 늘 찾는 기분으로 하려고 해요. 전에 한 인터뷰에서 한 얘기인데요. 우리나라 고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운영전>이에요. 유일하게 슬픈 결말로 끝나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게 있거든요? 거기 실존 인물인 안평 대군도 나오고요. 구성도 현대식으로 되어 있어요. 선조 때 쓰인 것 같은 작자미상의 작품인데요. 그런 스토리텔링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1925년인가에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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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보검 1오세영 저 | 나남
보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떠난 길은 욕망과 고난으로 점철된다. 안갯속 황금보검의 정체를 더듬던 신라왕족 김양상은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 다다른다. 온몸을 던져 황금보검의 비밀을 밝혀내는 김양상과, 그를 둘러싼 탐욕스런 무리들이 펼치는 전대미문의 활극을 펼친다. 타클라마칸 사막-바그다드-페르시아 등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스펙터클, 숨 막히는 클라이맥스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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