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이든 문학이든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따라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재미있는 소설, 재미없는 소설, 잘 쓰지 못한 소설은 있어도 진짜, 가짜는 따로 없다고도 생각했다. 굳이 진짜, 가짜를 따지자면 진짜 재미있는 소설, 진짜 잘 쓴 소설, 진짜 재미없는 소설, 진짜 잘 쓰지 못한 소설이 있을 뿐이었다. (44~45쪽)
제11회 세계문학상은 진짜 재미있는 소설을 추구하는 김근우 작가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선택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 PC 통신 시절에 판타지 소설로 책을 내긴 했지만 후속작이 연거푸 망하면서 지금은 벌이가 없는 백수다. 통장 잔고와 갖고 있는 현금을 모두 합쳐 전재산이 4,264원인 나는 우연히 구인 전단을 본다. 일당 5만 원, 젊고 건강한 사람을 우대한다는 그 일은 오리를 찾는 것이었다.
일을 의뢰한 노인은 자신이 아끼던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주인공에게 불광천에 있는 오리 사진을 찍어오라고 말한다. 조작하기 쉬운 디지털 카메라 대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쥐어주면서 성공 수당으로 1,000만 원을 제시한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실재하는지는 모르지만, 황당한 일을 받아들인 건 주인공만이 아니었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투자 실패로 빈털터리 백수가 된 여성도 불광천의 오리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에 노인의 손자까지 가세하며 식묘 오리를 찾으려는 소동이 커진다.
소설 속 주인공은 김근우 작가와 닮았다. 실제로 오리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없지만, 그 역시 판타지 소설을 쓴 작가였다. 『바람의 마도사』를 시작으로 장르 소설을 몇 편 썼고, 최근 3년간은 여러 문학상에 도전해왔다. 마침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로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불광천 오리를 보고 아이디어 얻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로 1억 원 고료 11회 세계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에는 말 그대로 꿈 같았었죠. 전화 받았을 때 믿어지지 않아서 “정말입니까?”를 몇 번이나 되물었는지 모르겠어요. 시상식 전까지도 계속 꿈꾸는 것 같았어요. 시상식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이 나네요. 솔직히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우수상 정도까지는 기대했는데 대상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세계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문학상에 3년 정도 투고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고 들었습니다. 장르문학에서 순문학으로 전향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떨어져서 힘들었다기보다는 다른 작가도 그렇겠지만 글 쓰는 일 자체가 힘들어요. 그런데 글 쓰는 일 말고도 다른 일도 다 힘들지 않습니까? 전향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전향까지는 아니고요. 원래 글은 형식과 장르 상관없이 다 좋아했습니다. 자유롭게 쓰는 게 제 소원이었어요. 저는 아직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많이 무지한 사람입니다. 다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서 썼던 대로, 저는 그저 재밌는 소설, 잘 쓴 소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굳이 말씀하자면 제 문학관이죠.
떨어졌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아쉽지는 않았어요. 예심에서 다 탈락했고 제가 봐도 그럴 만했어요. 지금 그 작품은 없습니다. 저는 가망이 없다 생각하면 그냥 지워버리거든요.
이 소설은 많지 않은 등장인물로도 이야기를 재밌게 끌어나갑니다. 소설을 구상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요.
역발상으로 소재를 잡았어요. 원래라면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은 이야기니 독자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불광천에 가면서 오리는 늘 봤습니다. 개를 산책하는 분은 정말 많은데, 가끔이지만 고양이를 산책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개보다는 고양이가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고양이와 오리를 연결한 거죠.
결국 모든 걸 다 잃고 마는 게 인생
대한민국의 현재를 묘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돈은 좀 있지만 쓸쓸한 노년과 몸은 건강하지만 돈은 없는 청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울의 변두리를 다룬 공간사이기도 한데요.
그렇게 시사적으로 읽어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큰 바람이라면 독자가 즐겁게 읽어주시는 겁니다. 저는 은평구에서 거의 30년째 살고 있어요. 지금은 지하철 6호선도 들어섰고, 아파트가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거의 단독주택이었어요. 서울이지만 서울 아닌 듯한 변두리 정서가 강했고요. 좋은 의미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삭막해졌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런 걸 소설에 담았어요.
변두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은 문학이란 가지지 못한 자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쪽인가요?
글쎄요. 특별히 어떤 계층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소명 의식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세상 전체를 폭넓게 넓은 시선으로 묘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모비 딕』오마주잖아요. 노인도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이라고 하셨고요. 에이허브 선장이나 이야기 속 노인의 모습을 보면 이 작품도 결국은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 같은데요. 작가님은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감히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시간에 의해서 하나하나 다 빼앗기고 결국은 모든 걸 다 잃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 속 노인도 그렇죠.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주요 갈등 축입니다. 작가님의 자전적인 경험일까요.
문학이든 영화든 어디에서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은 흔한 소재죠. 저도 그러한 클리셰를 활용했고요. 아버지와 아들은 숙명적으로 적대 관계가 아닐까요.
재밌는 소설 많이 써야겠죠
김근우 작가는 어릴 때부터 하반신이 불편해 거동이 편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중학교도 도중에 관둬야 했다. 그를 보듬은 건 어머니.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어머니 사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셨는데요. 그런 불편함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역시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사람들이 타고난 조건에 따라서 영향받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없죠. 그렇다고 몸이 불편한 게 글쓰기로 이어졌다고는 확실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밖에 잘 나가지 못하니까 집에서 혼자 공상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경험이 글쓰기에 바탕이 된 건 사실인데요. 글쓰기라는 특정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제 인생 전반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죠.
『바람의 마도사』를 쓴 게 언제였죠?
처음에 책 낸 게 17살이었거든요. 제가 잘 나서가 아니라 PC통신에 연재한 글을 출간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개나 소나 출판을 했거든요. 저도 그 개나 소나 중의 하나였는데요. 주제를 모르고 17살 때 책을 내니까 대단한 재능이 있는 줄 알아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죠.
그 뒤로 19년 동안 글을 썼는데 슬럼프가 온 적은 없나요.
슬럼프가 ‘내가 왜 쓰고 있지?’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계속 슬럼프죠. 지금도요. (웃음) 글이 잘 안 될 때나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할 정도예요. 예전에는 진심으로 관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밖에 없어서 그만두지 못했죠. 예전에는 줄담배를 피우면서 속으로 삭였고요. 담뱃값이 오른 뒤로는 끊고 나서는 스트레스 못 풀고 컴퓨터 앞에서 끙끙 앓죠.
책도 많이 읽으시잖아요.
자랑할 정도로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요. 중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열국지』는 많이 읽었고요.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책도 좋아해요. 서양 철학으로는 플라톤의 『대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정도? 가장 열심히 읽는 건 소설이에요. 스티븐 킹,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무라카미 하루키, 도스토옙스키, 이승우, 조정래, 황석영, 박민규, 김애란 등 나라와 장르에 상관없이 두루 읽습니다.
다른 곳에서 한 인터뷰를 보니 작가님께서 어머니 자랑 많이 하셨더라고요.
어머니는 강인하고 낙천적인 분이에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할 일을 다하십니다. 저는 게을러서 성실하지 못한데, 어머니가 존경스럽죠. 일단 어머니에게 제가 가장 큰 짐이었을 테고요.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장애인 자식을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나중에 건강도 안 좋아지셨어요. 고생 많이 하셨죠.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머니가 엄청나게 기뻐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요?
소설이 원래 대중적인 장르이니 재미를 추구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의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 의미가 있겠죠. 저는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제 세계를 넓혀서 포용하고 소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도서관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무당, 바리데기 이야기도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는 써보고 싶고요. 특별히 앞으로 몇 권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먹고 살려면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책이 안 팔리는 작가라서 저는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웃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김근우 저 | 나무옆의자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스타일』(백영옥), 『살고 싶다』(이동원) 등 개성 넘치는 문제작들을 발굴해왔던 세계문학상이 2015년 제11회 수상작으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선보인다.서울 변두리 개천인 불광천을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인 두 남녀와 남자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로를 알게 되고, 그들의 고용인인 노인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을 중심으로 가짜와 진짜 사이에 갇힌 것들이 혼재하면서도 양립되어지는 과정을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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