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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모든 음악은 결국 자기를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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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말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척박한 국내 재즈계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끈질기게 버텨왔고 대중들과 긴밀하게 호흡했으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빛깔을 만들어 냈다. 지난 해 말 그녀는 자신의 여섯 번째 음반< 겨울 그리고 봄 >을 발표했다. 이전의 두 앨범< 동백 아가씨 >(2010), < 말로, 배호를 부르다 >(2012)가 모두 한국의 옛 노래들을 담은 음반이었기에 말로가 자신의 새로운 노래를 발표한 것은 2009년 이후 5년 만이다.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재즈클럽 야누스로 향했다. 수요일 밤이면 클럽 야누스에서는 피아니스트 김가온이 이끄는 그의 트리오가 연주를 한다. 그리고 말로는 게스트 뮤지션으로 무대에 올라 그들의 반주로 대여섯 곡의 노래를 부른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말로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드러머 이도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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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연주할 때 어떤 문제라도 있었나?


마지막 곡으로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 Sweet Georgia Brown」을 불렀는데 내가 조금 흥분을 해서 템포가 빨라졌다. 원래도 이 곡을 빠르게 부르는 편인데 더 빨라졌다. (웃음)

 

하지만 즉흥적으로 연주자들과 '합'을 맞추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필요 이상으로 빨라지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다. 재즈는 즉흥의 음악이지만 너무 과잉의 감정을 넣는다던지 흥분하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

 

앨범에서는 자신의 작품이나 보통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지 않는 흘러간 노래들을 다뤘는데 클럽에서는 스탠더드 넘버를 주로 부르나 보다(그날 무대에서 말로는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 외에도 셀로니어스 멍크의 곡 「바로 너야 I Mean You」와 아서 슈워츠, 하워드 디츠의 「당신, 밤 그리고 음악 You and Night and Music」을 불렀다).

 
나의 곡을 여기서 부르려면 별도의 준비가 필요한데 클럽 연주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힘들다. 또 다른 이유를 들면 재즈 연주자라면 늘 스탠더드 넘버를 훈련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보다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야누스에서 노래한 지 얼마나 되었나?


신인시절부터 노래했지만 야누스가 이곳 서초동으로 이사 온 뒤부터는 매주 수요일에 계속 노래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8년 정도 된 것 같다.

 

매주 출연하는가?


그렇다. 정말 불가피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이곳에서 노래한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아울러 이곳은 박성연 선생님이 만든 공간이지 않은가? 이곳에서 매주 노래한다는 것은 내게 큰 영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은 1978년에 <야누스>를 시작해 현재도 계속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첫 음반 내고 활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그게 1998년이니까.......17년 되었다. 원로가수다. (웃음)

 

그런데 데뷔 음반부터 한국의 옛 노래들을 재즈 스타일로 부르지 않았나?


그렇다. 「희망가」, 「봄날은 간다」, 「이별의 종착역」, 「누구 없소」 등을 불렀다.

 

그렇다면 말로의 현재 음악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나?


직업가수로 활동하기 전에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재즈를 배우러 유학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미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노래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이건 기악 연주자들과는 매우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내가 아무리 영어로 노래를 잘 한다고 한들 내가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의 문화를 완전히 터득하고 있지 않은 한 그들만큼 노래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노래란 언어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그들은 그저 '신기해' 했을 뿐이다. 유학 시절에 많이 우울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리말 노래 가운데서도 말로 씨가 부른 노래들은 말로 씨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예스럽다.


그런가? 나도 재즈를 부르기 전에는 통기타 치면서 해바라기, 들국화 양희은, 김민기, 송창식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재즈 스타일로 편곡된 우리 노래를 찾으려니 오히려 그보다 더 옛 노래가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았다. 재즈로 편곡되었을 때 더 어울리면서 더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에 < 동백 아가씨 >나 < 말로, 배호를 부르다 >도 그런 맥락에서 작업한 것인가?


그렇다. 당시의 노래들이 재즈와 상통하는 면이 상당히 많다.

 

1집을 내고 나서 왕성하게 활동했나?


제작자가 가요계에서 경력이 있던 사람이라 음반이 나오고 여기저기에 홍보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리허설이 끝나자 피디라는 사람이 날 부르더라. 그러더니 '왜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부르냐.'고 내게 윽박지르는 게 아닌가. 피디가 초대한 가수에게 노래를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되나?

 

90년대만 하더라도 방송국 피디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있었다.


난 재즈가수이기 때문에 원곡을 그대로 부르지 않는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잠시 밖에 나가 혼자서 벽을 치며 울었다. 그때 다시는 TV에 나가려고 애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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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씨의 2집을 샘플 음반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은 왜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나?


1집을 우리말 가사에, 가요성향의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그 음반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방송 출연, 인터뷰에 전부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집을 만들었던 제작자가 이번에는 다른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2집을 만들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투자회사는 음악에 대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재즈 스탠더드 넘버나 실컷 녹음하자고 마음먹었다. 우리말 가사의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그 사이에 또 바뀐 것이다. (웃음) 그래서 미정 씨(피아니스트 임미정), 크리스 바가 (드럼) 등 평소에 자주 연주하던 재즈 뮤지션들을 모아 완전한 재즈 음반을 녹음했다. 그런데 녹음이 완성되니 투자회사가 황당해 하는 거였다. 누가 이런 음악을 녹음하라고 했냐고 하는 거다. 그래서 난 아무런 간섭도 안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되 물었더니 그 회사는 그래도 대중가요를 녹음해야지 이런 음악을 어떻게 파냐면서 결국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3집 < 벚꽃지다 >를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 2집을 내고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한국일보>의 장병욱 기자를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일간지 기자 중에서 유독 재즈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그런데 그 분이 어느 날 연락을 해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신문사 근처에 있는 어느 찌개 집에 들어갔는데 장병욱 기자가 원고 한 뭉치를 내게 건냈다. 함께 근무하는 이주엽 기자가 쓴 시라고 했다. 무척 양이 많았다. 장 기자는 이 시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볼 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살펴보겠다고 했다.

 

살펴보니 시가 마음에 들었나?


청승 떠는 게 딱 내 취향이었다! (웃음) 어릴 때부터 난 시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이주엽 대표의 원고를 살펴보니 한 눈에 몇 편의 시들이 금세 음악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녹음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이주엽 대표도 워낙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사를 만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가 내가 본인 가사에 음악을 만들겠다고 하니 결국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지금의 회사 'JNH'를 만들게 되었다.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어릴 적부터 곡을 썼다. 고등학교 때 곡을 만들었고 대학 시절에도 동아리에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곤 했다.

 

「벚꽃지다」와 같은 곡은 방송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재즈의 즉흥성을 너무 많이 억제한 음반이어서 불만은 없었는가?


재즈의 성격이 강한 노래들은 지금 내가 여기서 부르는 것처럼 클럽 연주를 통해 부를 수 있다. 음반을 녹음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어서 판매도 염두에 둬야 하고 앨범에서 즉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내 스스로가 충분히 이해를 했다. 다만 앨범을 발표하고서도 그런 노래를 재즈 클럽에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재즈클럽의 공연은 성격상 아무런 리허설 없이 모두가 연주할 수 있는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기 때문에 내 작품을 별도로 준비해서 무대에 올릴 수가 없다. 동시에 클럽 연주가 늘 그리 좋지 못한 음향 조건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나의 즉흥적인 노래에도 늘 한계가 있었다. 모니터 조건이 좋은 공연장이었다면 더 좋은 즉흥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늘 있다.

 

이번에 발표한< 겨울 그리고 봄 >도 먼저 이주엽 대표의 가사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말로 씨의 음악이 더해지는 과정으로 만들어졌나?


그렇다. 80%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어느 음반보다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앨범 전체의 컨셉 같은 것이 있었나?


더 깊이가 느껴졌다면 그것은 이주엽 대표의 가사가 심오해 진 것이다. (웃음) 컨셉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 작곡의 스타일이 그 사이에 바뀐 면이 있다. 전에는 곡의 선율보다는 편곡에 많은 신경을 썼다. 멜로디가 대충 나오면 이런 화성과 리듬을 써서 곡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좋은 멜로디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멜로디에 영감을 주는 시만을 선택했다.

 

말로 씨의 휴대폰 뒷면에는 노란 리본이 붙여져 있다. 「잊지 말아요」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곡으로 알고 있다. 지난 해 4월 19일을 지나면서 무엇을 느꼈나?


뮤지션들은 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기술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자 내 자신도 무엇에 의해 밑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네가 아무리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고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도 너의 현실은 그런 게 아니야. 현실은 이런 거야. 너는 지금 여기에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음반은 근원적인 슬픔 속에서도 음악적으로 그 어느 음반보다 재즈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캣도 그냥 음악적인 기교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의 내용과 완전히 부합한다는 느낌이 든다.


고맙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함께한 연주자들에게 거의 100%에 가까운 자율권을 주었다. 그 전의 음반들에서는 연주자의 즉흥솔로가 나오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연주해달라는 식의 주문을 늘 했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는 곡을 주고 여기에 자율적으로 연주해 달라고 맡겼다. 민경인 (피아노), 황이현 (기타), 정영준 (베이스), 이도헌 (드럼) 모두 최고의 연주자들이니 만큼 그들의 해석을 믿었다. 게스트 뮤지션으로 연주해 준 조윤성 (피아노), 배선용 (트럼펫), 정태호 (아코디언)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런 방식의 변화가 재즈의 느낌을 살려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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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발표한 말로 씨의 책 재즈싱잉의 비밀』(자음과 모음)을 보니 서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결국 재즈싱잉이다, 라고 정의했는데 맞는가?


그렇다. 하지만 아마도 모든 음악이 결국에는 자기의 스타일을 찾고 결국에는 자기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다만 재즈는 즉흥의 음악이고, 그래서 노래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이 열려있다. 아울러 재즈란 음악은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한 부분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냥 '슬픔'이 아니라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자세한 방식을 고민하게 해준다.

 

이해가 잘 안 간다. 좀 더 설명해 달라.


만약 일반적인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곡은 어떤 음색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즈에서 노래는 하나의 악기다. 기악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컬리스트들도 어떤 음색으로 노래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성으로, 어떤 리듬으로 노래하는가를 먼저 고민한다. 그것을 고민해야 즉흥도 되고 다른 반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 반면에 그 음색은 그 누구도 고민해주지 않는다.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가수 자신의 몫이다. 그 음색은 그 노래를 부를 때의 화성, 리듬 감정의 변화 등이 종합되면서 가수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재즈란 음악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꽤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노래를 들으면 막연하게나마 화성적으로, 리듬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 저 곡은 이런저런 곡이구나, 하고. 그런데 대학 시절에 우연히 한 카페에서 재즈를 듣게 되었다. 도무지 화성이 어떻게 되는지, 리듬이 어떻게 되고, 소절이 어떻게 나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누구의 음악이냐고 물었더니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다이나 워싱턴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 음성이 너무나도 멋졌다.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어디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태원에 있는 '올댓재즈' 클럽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가 연주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당시로서는 유학을 가야 재즈를 배울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학을 떠나는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나?


아니다. 이미 작곡 전공인 언니(정수란/ 부산대 음대 교수)가 유학을 떠난 상태라 집에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내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 검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재하 가요제에 참가했다. 그때 입상을 했고 그래서 내 자신도 '그래, 음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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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통해 가장 큰 배움을 얻었다면 무엇인가?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무엇보다도 그곳에 가니 내가 완전한 주변인이란 사실이었다.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어렵게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들의 노래를 불러야 했고 최고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뉴욕을 찾아가야 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든 뉴욕에 남아 그곳에서 활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비슷한 노래를 불러야 하고 또 좋은 음악이란 모두 뉴욕에 집결해 있다면 다른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다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뉴욕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이 그런 도시고 서울 안에서도 몇몇 지역을 찾아가야만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음악은 멀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은평구 진관동 안에서 자주 공연도 하고 모임도 갖고 있다. '북카페 물푸레'는 우리가 자주 모이는 장소다. 언젠가는 어느 분의 집 마당에서 이웃들을 초대해서 공연한 적도 있다. 좋은 음악이란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어는 안 되듯이 한 장소만이 독점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좋은 음악은 어디에든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음반 발매하고 또 앨범 발매 공연하느라 너무 진을 뺐다. 조금 쉬고 싶다. 아참, 전에 미셸 르그랑의 작품들만을 모아 피아니스트 이명건과 듀오로 녹음을 했다. 남들이 안 부른 그의 좋은 곡들이 많아 내가 불러서 나 혼자 들으려고 녹음했는데 이주엽 대표가 왜 혼자만 들어야 하냐며 음반으로 내자고 한다. 아마 얼마 후에 나올 것 같다. 또 북한산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 합창 지도를 하는 것도 계속 할 예정이다.

 

아이가 그곳에 다니는가?


3학년이다. 학부모 재능기부인 셈이다. (웃음)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박창현, JHN 뮤직 제공
2015/05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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