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쓴 책이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 배우나 가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그들 팬을 넘어서 널리 읽히는 게 쉽지는 않다. 무명 시절에서 스타가 되기까지의 사연은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팬이 아닌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타의 이야기가 더 넓게 확장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바로 보편적인 호소력이다. 그런 점에서 아웃사이더 신옥철이 쓴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그의 팬이 아닌 독자도 설득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 아니, 60억이 살아도 지구는 외롭다. 타인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외톨이이다. 마치 광대 피에로처럼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얼굴에 눈물을 그려 넣고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슬프지 않은 척, 행복한 척 웃고 있을 뿐인 외톨이 말이다. (21쪽)
<외톨이>, <주변인>, <피에로의 눈물> 등 명곡으로 많은 동시대인의 외로움을 다독였던 그의 언어가 책 속에서도 녹아있다. 신옥철 작가는 산문집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외로움이었다고 고백한다. 외로움이 어떻게 아웃사이더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고독이 신옥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갔는지를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외로움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감정이고, 모두가 기꺼이 외로움을 인정하자는 대목이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건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고독의 정체를 알아야 소통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또 하나 중심 키워드는 소통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모습을 그리며 쓴 책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소설가나 언론인이 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하면서 취미로 삼던 음악을 업으로 하게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 쓰는 게 꿈이었어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꿈이었죠. 원래 계획은 서른 살에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신옥철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본명으로 책을 낸 건, 랩퍼로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책 쓰기로 마음 먹은 곳은 군대였습니다. 그곳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 2.5집 때 저와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쓴 편지였어요. 전직해서 출판 편집자를 하고 있으니, 책을 내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는데요. 인터뷰 때 책을 향한 애정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나 봐요.
제목이 참 좋습니다.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출판사와 이야기하면서 최종적으로 3개를 올렸어요. 그중에서 최종으로 정한 제목인데요. 저는 제목에 외로움이란 누구나 겪는 감정이고 익숙하다는 뉘앙스를 잘 담아보고 싶었어요. ‘외로움을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도 후보 중 하나였는데, 너무 전형적인 책 제목 같아서 뺐고 결국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로 정했어요. 제목을 정하고나서는 왜 내가 이런 제목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할 때, “이 제목은 제가 정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할 수 없잖아요. (웃음) 저는 거짓말은 안 하거든요.
책을 쓸 때 염두에 둔 독자가 있었나요.
딱히 염두에 둔 독자라기보다는 이런 장면을 생각해봤어요. 부모님이 아이 손을 잡고 서점에 가서 제 책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들아,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들이 말해요. 엄마 당연히 이 사람 알지, 엄마가 이사람 어떻게 알아? 엄마가 답합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는데 책을 보니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 아이가 엄마에게 말하길, 이 사람은 원래 음악 하는 사람인데 음악도 잘해. 그렇게, 엄마는 아웃사이더의 음악을 듣고 아이는 신옥철의 책을 읽는 그림인데요. 일부 층만이 아니라 성별 세대 상관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혼자 읽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함께 사러 가는 책이었으면 하고요. 좋은 영화를 상대방을 바꿔 가며 두 번, 세 번 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기가 외로움을 가장 격하게 느끼잖아요. 외로움으로 몸부림 치는 청춘에 한 말씀.
띠지에도 있는 말처럼 ‘기꺼이 외로워지자, 끝까지 외로워지자, 그 힘을 믿어보자’라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외로움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외로움을 인정해야 극복하거나 나눌 수 있거든요. 쉽지는 않죠.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피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요. 이런 인식의 재변화를 주는 책이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제 음악의 목표가 비주류를 주류로 만드는 것이었듯, 외로움도 그렇게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더 많이 외로워했으면 좋습니다.
아웃사이더에게 고독이란
고독, 외로움이 전면에 등장하는데요. 선생님께 고독이란?
익숙한 설렘, 낯익은 낯섦 정도의 느낌인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을 만날 때 갖는 두렵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감정인데요. 저에게는 두려움이 더 컸어요. 두려움 때문에 그 대상과 거리가 생겨서 괴리감이 생기고, 괴리감 때문에 외로움이 태어났어요. 그 외로움은 제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고요. 그런데 같이 외로움을 느끼니까 따뜻하더라고요.
지금도 상당히 외롭습니다. 책을 내고 작가님, 선생님 이런 말을 듣는데 굉장히 고독해져요. 두 가지 의미의 고독감이 더 생겼는데요. 한 가지는, 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이 작품에 당당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어렸을 때부터 꿈이 책 내는 것인데도 낯선 호칭 때문에 괴리감이 생기면서 외로워져요. 두 번째는, 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영역이 넓어진 것 같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노력해서 써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장 외로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인 거죠. 기쁘든 그렇지 않든,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든 결국은 고독해진다는 말인데, 고독은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을 아내 분은 싫어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외로움이 익숙한 설렘, 낯익은 낯섦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니까요. 고독과 행복은 같이 물려 있습니다. 와이프는 제 생활의 중심이고 제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사람이에요. 무조건 내 편이지만, 약점이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다치거나 상처 입었을 때, 저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와 와이프의 관계는 그래서 가장 외로운 관계입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요.
아웃사이더 하면 스피드인데, 글 쓰는 속도는 어땠어요?
군대에서 시작해서 지금 나왔으니,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쫓기면서 글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음악 하는 방식으로 글을 대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좋아서 하는 게 음악이고, 힘들 때 풀기 위해 하는 게 음악인데 음악을 업으로 삼으면 음악으로 힘들어질 때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요. 글마저도 꼭 써야 하고, 짜내야 하고, 나를 알려야 하는 것의 일부가 되어버리면 글이 저를 풀어주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았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저를 치열하게 살도록 몰아붙일 텐데, 그게 싫었어요. 그렇다고 간절하게 안 썼다는 뜻은 아니에요. 방식을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글은 느리게 말하는 랩? 음악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예민하고 날카롭고 빠르고 치열하게 뭔가를 꽉꽉 채워넣었다면 책은 가장 편한 상태일 때, 감정을 끄집어내고 싶을 때, 힘을 뺀 상태에서 썼어요. 그렇게 해야 글을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죠.
책 쓰시면서 다른 의미로 힘들었겠네요. 힘을 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 책을 만들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그거였어요. 외로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적절하게 조율하는 게 중요할까. 책을 보시면, 처음에는 처절하게 시작하죠. 나중에는 제가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라 바뀌더라고요.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편하게 끄집어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프롤로그가 처절한데, 굳이 수정 안 한 이유가 독자도 제가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렵고 처절하고 두려운 감정이기보다는 설레기도 하고 낯익은, 친근한 감정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책 순서가 시간순은 아니던데요.
저는 삶을 살아온 흐름대로 음악으로 담아왔어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남자다운 척을 하고 싶을 때 <남자답게>를, 남자다운 척이 행복하게 하지 않다는 걸 알고 외로움을 인정하면서 <외톨이>를 만들었죠. 철저하게 혼자였던 외톨이가 갑자기 대중적 사랑 받으면서 그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때 <주변인>이 나왔고요. 함께 가기로 결심하면서 기쁨을 느꼈을 때 <주인공>을 내놓고 군대에 갔죠. 다시 단절을 느끼고는 <슬피 우는 사람>을 만들었어요.
글도 이렇게 테마와 감정에 맞춰서 배치를 하고 싶었어요. 글을 끄집어내는 게 제 몫이었다면 정리하고 재배치하는 데는 편집자와 소통이 중요했는데, 결과적으로 좋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편집자나 저나 고민했던 부분은 이 책이 연예인이 쓴 연예인의 책 느낌은 안 났으면 한다는 점이었는데요. 저도 어떤 내용을 쓰면 독자가 더 많이 궁금해할지는 알아요.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MC 스나이퍼와 물어뜯고 싸우고, 화해하는 등 이슈가 된 음악적 사건이 몇 개 있었잖아요. 그런 사건에 대한 저의 설명을 자극적으로 담았다면 힙합팬이나 음악팬은 상당히 더 관심을 가졌겠지만, 이런 걸 담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루더라도 테마에 맞게 수위 조절을 했고요.
왜 그랬냐. 그런 사건들은 제가 아웃사이더라는 특정 가수로서 느낀 외로움이지, 여러분의 외로움은 아니거든요. 소송해 본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누가 상대방을 마치 죽일 것처럼 싸우겠어요. 이런 이야기는 뉴스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굳이 책에까지 담을 필요는 없죠. 책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그 감정 안에서의 외로움을 주로 썼어요. 제가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외로움을 썼다고 해도, 그 외로움이 결국 비슷한 형태의 외로움이라는 점을 표현하려고 수위 조절 하는 작업을 책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했습니다.
첫 책이라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띠지의 사진? 이 사진을 보면 제가 되게 외로워보이고, 엄청 힘주고 문장 써가는 대문호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고독해지는 거죠. (웃음) 지금은 계속 보니까, 띠지 사진과 표지 디자인이 적당히 조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지가 각지지 않고 따뜻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면, 그 아래 띠지 사진이 무게를 주면서 완급 조절을 해 주는 것 같아요.
군대에서 책을 쓰기로 했고, 사실 군대가 가장 외로운 공간이기도 한데요. 책에서 군대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저라면 군대 상사나, 군대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인 일을 기록으로 남겼을 법도 한데요.
누군가를 욕하는 걸 싫어해요.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하고요. 군대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전역하면 떠나야 하고, 같이 있기 싫은 사람도 매일 봐야 하는 곳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하는 곳이 군대죠. 저 역시 안타까움과 스트레스가 컸지만, 어떤 공간이건 다 똑같이 힘들어요. 군대라고 특별한 건 없죠. 전역하고 나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군대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 다녀오고나서가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욕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안 갖게 됐어요.
수없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생긴 태도가 있는데요. 기대하지 말자, 입니다. 책이 나오고 불교계 큰스님인 정우 스님께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붙잡고 있지 말라고요. 붙잡는 순간 붙잡힌 거고, 붙들고 있는 순간 붙들린 거라는 말씀이었는데요. 갖는 순간 잃어버릴 두려움에 살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은 그냥 보라고 하셨는데, 이런 태도를 삶에서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기대하는 순간 실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첫인상이 좋은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첫인상이 좋으면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첫인상이 나쁘면 안 되죠. 안 보게 되니까요.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만날수록 그 사람의 장점이나 매력을 알아가면 설렘이 더 커지죠. 그 친구와는 다른 대화, 어떤 일을 함께 할 수도 있고요.
소통 안 되는 건 서툴러서
글쓰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는데, 그때 어떤 글로 상을 받았는지 기억나세요?
한민족공동체의식함양을 위한 전국논술글짓기 대회였어요. 아마 6.25 시기에 맞춰서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수시를 넣을 수 있는 마지막 전국단위 대회였죠. 전국대회 3위 안에 입상해야지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어서 나갔는데 그 전까지는 3위 안에 들지 못했어요. 마지막이니 정말 각오하고 쓴 글인데, 심사위원이 보기에 잘 쓴 글이 어떤 건지 고민하고 썼던 기억이 나요. 통보를 늦게 받아서 수시에 지원하지 못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정말 멘붕이었던 사실은 의도해서 작정하고 쓴 글이 1등을 받았다는 점이었는데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때는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심사위원에게 비춰질 모습을 생각해서 쓴 글이 좋게 평가받았다? 혼란스러웠죠.
그렇게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서 언론인이 되었다면 어떤 언론인이 되었을까요.
글 쓰는 게 좋아서 언론인이 되고 싶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할지와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내 이야기를, 사회 현상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꺼내놓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죠. 손석희 사장님을 존경하는데요. 그분이 서강대에서 개강 미사 하는 영상을 봤어요. 20대 젊은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문제의식을 뚜렷이 갖는 친구면 좋겠고, 그 문제의식이 건강했으면 한다고요.
전문가에 비해서는 정치 사회 경제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사회 현상을 보면 궁금한 게 있잖아요. 제가 정치할 사람은 아니라도, 정치인들이 왜 싸우는지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떤 순간부터 언론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선을 바꾸고 나서는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을 거침없이 하자는 쪽이었지,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려고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 사람에 기대를 걸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런 삶이 극단적으로 가면 무미건조하고 슬픈 삶이 될 수 있어요. 이랬던 내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질문이네요. 어쨌든, 사회가 건강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꺼내놓아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뛰어난 경험, 의견이 합쳐지면 더 건강한 사회로 가겠죠. 독설가가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저도 문제의식을 상기시키는 글과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책에서는 리스펙트는 사라지고 디스만 남은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한국사회에서의 소통에 관해서 말씀하실 부분이 있을 듯해요.
세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한민국 많은 사람이 억눌려있어요. 끄집어내지 못한 삶을 살아가죠.저희 세대만 해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하지 마, 안 돼’일 거예요. 이렇다 보니, 뭘 할 때도 안 되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부터 생각하게 되죠. 브레인스토밍도 안 되고요. 그러다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거치면서 많은 문화를 급작스럽게 수용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서툰 거죠.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일치한다는 말을 했는데, 서툴다 보니까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 행복을 대하는 태도 모두 서툴죠. 연예인도 그래요. 억눌린다는 말이 다른 말로 한다면, 쫓긴다는 의미일 텐데 쫓기다 보면 절실하고 간절해지겠죠. 연예인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힘든 무명시절 이야기거든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가창력만으로만 판단하지 않잖아요. 나중에 들통나서 마이너스될 건 생각 못하고 유명해지려고 없는 사연을 만들기도 해요. 그만큼 억눌려 있으니까요.
연예인을 바라보는 태도도 그래요. 영웅이 나타나길 바라다가도, 그 영웅이 기고만장해지는 건 보기 싫고, 꼬투리를 잡아서 다른 영웅을 만들려고 하는, 이런 태도가 억눌린 감정으로 인한 서툼이 만든 그림 같아요. 진부한 말이겠지만, 우리 모두가 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저에게는 느리게 걸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 인지하는 시점인데요. 눈 앞만 보고 가면 한 치 앞밖에 못 보지만, 천천히 걸으면 멀리 넓게 볼 수 있어요. 빠르게 가려고 앞만 보면 혼자서 자기 이야기밖에 못 하지만, 느리게 가면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며 갈 수 있어요.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할 여지가 많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여유가 있어야겠죠.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이유
책도 많이 읽으시잖아요. 요즘은 어떤 책 읽으세요?
저는 음악 만드는 작업 기간에는 외부 음악을 하나도 안 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미 저는 수많은 문화, 예술, 경제 등 여러 요소의 영향 받으며 사는 사람인데 음악마저 다른 작용을 받으면 제 정체성이 흐려진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렇다고 전혀 안 듣는 건 아니에요. 음반 작업 끝나면 미친 듯이 듣죠.
책 쓸 때도 다른 책은 한 권도 안 봤어요. 책은 군대에서 참 많이 읽었어요. 하지만 제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는 거의 안 봤고요. 책을 내고 나서 서점에 갔더니, 제가 좋아하던 작가의 책이 그 사이에 많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좀 책을 읽고 싶어졌네요.
좋아하는 작가로 꼽아주신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 독자보다는 여성 독자가 많은 작가인데요.
혹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성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지만, 저는 그런 점을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울프의 문학 세계가 비슷해요. 그 당시의 여성이라는 위치는 사회적으로 외톨이였어요. 울프가 묘사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에 제가 집중한 거죠. 단절, 괴리감, 외로움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울프가 보여줘서 좋아했고 운문과 산문 경계를 허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위적인 표현도 있지만, 그 표현이 오히려 복선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절묘하죠.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문장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주제 의식으로까지 확장되었어요.
어떤 작품 좋아하세요?
『파도』라는 작품입니다. 4집의 타이틀 곡인 <바람 곁에>의 시작이 됐던 작품이기도 한데. 주인공이 6명이 나오고, 나오지는 않지만 이들의 의식에 작용하는 친구가 1명 있어요. 이들과 상관 없이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제3자가 나오죠. 총 8명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어렸을 적의 기억을 공유하고 자라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얽히고설킨 관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인 독백으로 진행돼요. 외부 환경이 작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면 관계에만 집중하죠. 이야기 바탕에는 울프 특유의 우울함의 정서가 있고요.
이 책의 원제가 ‘모두의 인생’이었을 거예요. 여러 사람이지만 한 사람일 수 있고, 한 사람에게서도 여러 모습이 있다는 느낌을 담은 제목인데, 이 제목이 왜 파도로 변했는지를 고민을 해봤어요.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면서 밀려나가고, 연속인 듯 단절인데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삶이 파도와 같은 게 아닌가 하는 뉘앙스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책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아웃사이더 음악에 영감을 줬다고 하셨는데, 혹시 다른 음악도 그런 곡이 있을까요?
내면적 외로움을 섬세하게 꺼내는 데 버지니아 울프가 작용을 했다면, 섬찟한 표현력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어셔 가의 몰락』을 좋아했는데, 전혀 과학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건을 상당히 과학적인 복선으로 진행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포 덕분에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제 곡 중에서는 ‘삐에로의 눈물’ 같은 곡이 포의 분위기를 많이 반영했죠.
작가로서 신옥철로 인정 받을 때까지 계속 쓸 것
야구에서는 초반에는 구속으로 윽박지르던 투수가 기교파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웃사이더 랩은 ‘스피드’인데요. 앞으로도 이 부분은 변하지 않을까요.
스피드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까, 제 감성적인 부분이 기술적인 화려함보다는 덜 전달된 부분이 있지만, 저는 기술보다는 감성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제가 아니라 대중들이 “아웃사이더 랩은 빠른 게 전부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4집은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음반이었어요. 차트 1위를 하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죠. 의도적으로 빠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제 랩이 워낙 빠르니까 사람들이 빠르다고 느낄 거고요.
앞으로도 의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글 써서 1등했을 때 했던 생각이기도 했는데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고 만들었을 때 과연 내가 행복했을까요? 저도 사람들이 뭘 듣고 싶어하는지 모르지는 않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니까, 1위를 할 수 있는 확률적으로 높은 방법은 알죠. 그러나 그렇게 차트 1위를 했지만 자기 만족이 없다면요? 1위는 떨어져요. 1위보다 중요한 게 오래 살아남는 것이고, 오래 하려면 결국은 자기만족이 더 커야 하죠. 창작을 하는 건 힘들지만, 자기 만족조차 없다면 무조건 힘들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완급조절을 잘하는 음악입니다. 무조건 힘을 빼는 것도 아니고 힘을 주는 것도 아닌, 상황에 따라서 빼고 주고 그렇게 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책을 쓰며 느꼈던 감정이 다음 음악에 반영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음악으로 채우고 앞으로 달려가는 데 급급했다면, 책을 쓰면서 느리게 걷는 방식을 알아갔습니다. 해보고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해보지 않아서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느리게 걷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 쓰신 대로, <히든 싱어> 아웃사이더 편이 나오면 참 재밌을 것 같아요.
시즌 3 제작할 때 제가 거론됐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제안이 오진 않았는데요. 저도 되게 궁금해요. 그런데 과연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발음과 속도는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제 목소리까지 같아야 하는데 랩이 다른 음악보다 더 힘들죠. 노래보다 랩이 정말 더 정교해야 하거든요. 같은 시간 안에 더 촘촘하게 들어가잖아요. 특히 제 랩은 더 잘게 쪼개니까요.
책은 앞으로도 계속 쓰실 생각인가요?
책을 쓰면서 결심한 게 ‘계속 쓰자’였어요. 책 쓰는 게 재밌기도 하고, 연륜이나 경험 쌓는 데 도움도 돼요. 음악과 책 시너지 작용도 될 것 같고요. 하나만 계속 하는 사람은 장인이 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오만해질 수 있는데요. 저는 최대한 다양한 영역에서 저를 풀어내려고 해요. 그게 서로 영역을 높일 것 같고요. 지금 목표는 신옥철 이름으로 이 분야에서도 작가로서 인정받고, 글 안에서 만들고자 하는 저만의 스타일을 독자에게 뚜렷하게 각인할 때까지 계속 쓰기입니다.
북콘서트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여러 번 강연을 했고, 콘서트도 했지만 북콘서트라는 형식은 처음입니다. 처음으로 여는 시간이고 공간이고 자리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음악과 글이 서로 방해되지 않고 다른 공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려고요. 목표는, 책을 출간하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북콘서트 안에서도 청중들이 느끼는 거예요. 외롭지만,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서 덜 외로워지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책에 등장하기도 했고, 글 쓰는 데 영감 주기도 했던 많은 분들을 어렵게 섭외해서 모셨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신 존경하는 이은미 선배님, <슬피 우는 새>에서 함께 해줬고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는 데 많은 조언해주신 이수영 선배, 절친한 친구이고 저와는 다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배우 정경호, 랩퍼로서 동질감을 갖고 있고 외로움과 트라우마를 이겨내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력하는 동생인 타이미가 함께 해주십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책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외로움을 나누면서 적재적소에 그에 맞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고 하니까 북콘서트에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혼자 오셔도 좋고, 함께 오셔도 좋고, 혼자 와서 다른 혼자 온 사람의 손을 잡아서 함께 나가셔도 좋고요. 조만간 공연장에서 찾아뵙겠습니다.
⇒ 아웃사이드 북콘서트 신청하기 http://ch.yes24.com/Culture/SalonEvent/5160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 신옥철 저 | 웅진지식하우스
외로움은 혼자라는 데서 시작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였다 헤어질 때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걸까?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아무리 많은 이들과 함께 해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법, 그 힘으로 남과 다른 나를 사랑하는 법을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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