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답다.” 소이가 첫 산문집『꿈,틀』을 펴내고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제목부터 표지,글과 사진들에는 소이 감각이 흠뻑 들어있다. 1세대 걸그룹 ‘티티마’ 멤버에서 영화배우, 단편영화감독, 인디밴드 라즈베리필드의 싱어송라이터까지. 소이는 끊임없이 창작하는 일을 자신의 숙명이라 여긴다. 『꿈,틀』은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꽤 더워진 한낮, 홍대의 한 카페에서 소이와 마주했다. 전날, 전주국제영화제 사회를 보느라 잠을 푹 자지 못했단다. 왼쪽 눈이 부었다며 신경을 쓰는 모습이 예쁜 사춘기 소녀 같았다. 책을 펴내고 인터뷰를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란다. 만들어진 책을 처음 봤을 때, “슬펐다”는 그녀. 연예인이 쓴 책으로 미리 예단하지 않고, 그냥 김소연이 쓴 책으로 읽으면 꽤 공감이 간다. 무료할 틈이 없어 보이는 소이는 무료해질까봐 걱정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평생 그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넌 가장 무서운 게 뭐야?”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떠한 열정도 남아있지 않을까 봐, 그런 아침이 불현듯 찾아올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라고 대답했다.
무섭다.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어느 날 아침(혹은 오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졸린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양치를 하고 있을 때 문득 무엇인가 달라진 걸 느낀다. 양치질하고 눈곱도 떼고 코도 풀고 나서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얼굴을 한참 바라보니 그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조금의 열의와 두근거림도 없이 해야 할 일들만 두 발 앞에 나열되어 있다. 열정이라는 것을 지난 수십 년간 조금씩 조금씩 흘리고 다녀, 오늘에 와서는 바닥이 난 것이다.
이것은 공포이다.
(넌 가장 무서운 게 뭐야? 81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쓴 책
2년간 책을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생각을 깊게 하고 글을 쓰는 편인가 봐요.
글은 예전부터 많이 썼는데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쓴 게 아니고 그냥 편하게 쓴 글이었는데, 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하니까 너무 안 써지더라고요. 써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쓴 글들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고, 그래서 가식적으로 써진 글은 다시 폐기하고 그랬어요.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세 번은 엎었나 봐요(웃음). “손가락 끝으로 글을 쓸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 거예요.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차마 전하지 못해, 의식적으로 손가락이 대신해서 글을 적곤 했어요.
새 앨범 제목도 『꿈, 틀』이에요.
자다가 문득 떠오른 제목이에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는데 다 맘에 안 드는 거예요. 나다운 제목이면 좋겠다, 재기발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꿈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꿈을 향해 꿈틀거리는 나의 움직임? 좋은 느낌이 들어서 바로 정했어요. 아, 처음 생각했던 제목으로는 ‘대동소이’도 있었어요. 재밌지 않아요? (웃음) 앨범은 책과 같이 준비한 건 아니에요. 예전에 써놓은 곡이 있었는데 가사가 안 나와서 발매를 못했다가, 책을 완성하고 나니까 가사가 써져서 그 때부터 바짝 앨범 작업을 했어요. 같이 나오면 더 좋겠다 싶긴 했어요.
책을 쓰다 보니, 곡도 완성이 된 거네요. 완성된 책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슬펐어요. 마냥 속 시원하고 ‘아 드디어 해냈다’는 느낌도 있었는데요. 가장 큰 감정은 슬펐던 것 같아요. 왜냐면 이제 이 책은 제 몫이 아니고, 이 책을 읽는 분들의 몫이 됐잖아요. 이젠 제 손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슬프더라고요.
“내 안의 소녀를 찾기 위해서 아동서적 코너에 간다”는 이야기가 재밌더라고요.
요즘도 종종 가요. 아이들 틈에서 책을 읽어요(웃음). 그림책을 좋아하거든요. 가장 순수하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바로 영감을 받아요. 꿈꾸는 걸 멈추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장례식을 미리 기획해 놓았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드레스 코드는 가장 현란한 의상을 입고 와야 한다면서요. 배경음악은 필수, 댄스 플로어도 있어야 하고, 구 남친들은 반드시 와야 한다고요.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너답다”라고 말해준 친구도 있고 그냥 웃어넘기는 친구도 있고 가끔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아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에 진짜 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난 뭘 해야 해?”하고 묻더라고요. 부모님한테는 아직 이야기를 못했었는데, 책을 먼저 읽으셨더라고요.
책을 되게 솔직하게 썼잖아요. 영화 촬영이 불발된 이야기도 쓰고 전세금 걱정하는 상황도 밝히고.
마지막 교정을 볼 때쯤, 어머니가 집에서 종이뭉치를 발견하곤 다 읽으셨더라고요. 제가 집을 비웠을 때였는데, 문자가 왔어요. “언제 이런 글을 썼니?”라고 하시면서 우셨다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울 정도면 내가 정말 솔직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사실 최종본을 교정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 상태로 정말 내가 내야 하나? 진짜 다시 엎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상태였는데 엄마 문자를 받고 나서 ‘이대로 그냥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솔직하게 쓰긴 했지만, 또 비겁하게 인칭을 바꿔서 쓴 글도 있어서 저 스스로 ‘아, 끝까지 비겁하네’ 이런 생각도 했어요(웃음). 가수 오지은 씨랑 친구거든요. 그 친구는 한 번 책을 낸 경험이 있어서 조언을 많이 구했는데, 마지막 원고를 보내고 지은이한테 “내가 잘 썼다고는 스스로 이야기 못하겠지만 한 가지 자신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다 보여준 것 같아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러면 잘 쓴 거라고 말해줬어요. 좀 힘이 났어요.
스스로를 ‘창작 중독’이라고 말했어요. 책을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단편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어요. 재능기부 형식으로 문화인들이 여러 명 모여서 소설집을 냈는데요. 『아무도 몰라』라는 책이에요. 어후, 소설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어떻게 보면 자적적인 이야기에요. 캐릭터 자체가 1인칭이었고, 독백을 하듯이 쓴 글이에요. 예전에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써놓은 걸 모놀로그로 바꾼 셈이에요.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밴드를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해서 만난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에요.
글 쓰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를 많이 왔다갔다해서 그런지 저만의 공간이 꼭 필요로 했던 거 같아요. 새로운 곳에 대한 적응력은 항상 빨랐지만, 모든 게 붕 떠 있던 시기였고 발을 내딛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림을 못 그리니까 그 상상력은 글로 옮겨졌고요. 또 단어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단어가 모여서 말이 되고, 문장이 되고. 아직도 단어를 많이 동경해요. 단어를 조합하는 재미를 느껴서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요즘 ‘도담도담’이라는 예쁜 단어를 발견했는데, 유아용 단어래요(웃음). 아이가 잘 노는 모습을 뜻하는 말인데, 다음 책 제목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가장 무서운 게, “어떠한 열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라고 했는데요.
서른을 넘기면서 가장 큰 장점은 여유를 갖게 된 건데요. 그만큼 날 선 열정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게 더 무뎌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드는데, 최대한 그렇지 않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노력하는 건, 너무 멀리 보지 않으려는 거예요. 멀리 보면 더 무서워지는 거예요. 두려운 게 아니라 이건 무서운 거예요. 제가 내린 결론은, 하루하루를 살자,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거예요.
사랑은 정말 좋은데 연애는 너무 힘들어요
요즘은 어떤 생각에 몰입해 있나요?
다음 달에 갈 여행 생각이요(웃음). 영국 글래스턴베리 락페스티벌에 갈 거거든요. 이 책을 쓸 때만해도 예매에 실패했었는데, 얼마 전에 취소표 예매를 성공했어요(웃음).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함께 갈 친구들도 점점 없어지고 그래서, 올해는 꼭 가고 싶었거든요. 예매를 성공해서 어찌나 기쁘던지. 요즘은 하루하루, 다음 프로젝트만 생각하려고 해요. 올 봄에는 앨범이랑 책을 내는 일이었고, 최근에는 전주국제영화제였고 이제 글래스턴베리 락페스티벌이에요. 저는 일상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프로젝트별로 살아야지, 안 그러고 멀리 보면 너무 무서워요.
구 남친 이야기를 많이 해서 놀랐어요. 그 분들이 책을 읽어도 괜찮을까요?
쓰면서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근데 이게 난가?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왜냐하면, 추억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히잖아요. 그 사람이 생각하는 순간과 제가 생각하는 순간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데 대부분의 글에 있는 주인공은 이 책을 못 읽을 거예요. 왜냐면 한국말을 못 읽는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와 관한 이야기는 편하게 썼던 것 같아요. 제 추억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너드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요. 평소 좋아하게 되는 남자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약간 자기 일에 있어서 천재적인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그 천재성이 드러나지 않아도, 제 눈에는 그 사람의 특별한 빛이 보여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색깔을 내가 볼 때, 되게 좋거든요. 그래서 제가 너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 사람이 뭔가에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색깔인데요. 제가 갖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연예인 소이가 아닌, 사람 김소연으로 물을게요. 연애할 때는 어때요? 성격이 많이 바뀌나요?
아, 좀 지랄 맞아요(웃음). 저 같은 여자랑 연애하면 제가 남자라도 정말 힘들겠다 싶어요. 예전에 MBTI 성격 테스트를 했는데, INFP가 나왔어요. 옛날에는 믿지 않았는데, 얼마 전 제 성격에 스스로 지쳐있을 때 INFP의 성격 분석을 읽었더니 정말 공감이 됐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나는 그냥 INFP구나, 싶었어요. 20대 때는 정말 심했거든요. 사랑 지상주의인데 사랑을 못 믿는. 그런 모순을 안고 살았어요. 30대가 되면 괜찮겠지 했는데, 또 별다른 게 없는 거예요.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는데, 그럴 수는 있는데, 연애는 아직 힘들어요. 사랑은 정말 좋은데 연애는 너무 힘들어요.
열정은 많고 창작도 좋아하는데, 또 귀차니스트다. 이건 좀 모순인 것 같은데요. 정말 이것만은 안 귀찮은 일이 있다면?
노는 건 절대 귀찮아 하지 않아요. 뽀로로가 명언을 남겼잖아요. 노는 게 제일 좋아요. 페스티벌 다니고 그럴 땐 정말 행복해요.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 사회를 봤는데, 매니저를 버리고 하루 먼저 내려갔어요. 영화제를 즐기고 싶었거든요. 김꽃비 배우랑 친한데, 그 친구는 바이크를 타고 전주에 내려온 거예요. 서울에서 전주까지. 저에게도 바이크를 전도하고 있어요(웃음). 관심이 살짝 가긴 하는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때문에 지출이 커서 아직은 안 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곧 설득 당할 것 같아요. 이번에 전주에서도 바이크 연습하면서 재밌게 많이 다녔어요. 여행을 가서는 최고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혼자 가는 여행도 즐길 것 같아요.
좋아요. 혼자 다니는 여행이 제일 편해요. 물론 친구들과 가서도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지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성격이라서요.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서도 하루 정도는 꼭 혼자서 보내는 것 같아요.
늙어 죽을 때까지 표현하면서 죽고 싶어요
책에“집 앞 책방에서 숨막힐 정도로 건조한 외로움을 그린 글을 읽고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어떤 책이었나요?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읽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첫 장부터 너무 건조한 거예요. 글들이. 두 번째 장부터는 눈물이 막 계속 떨어져서 ‘어떡하지? 미안하네’ 그랬어요. 그 때 영감을 받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쓴 글이에요. 타블로 씨랑은 옛날엔 친했는데 그 친구도 가정이 있고 바쁘다 보니 잘 만나진 못해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요?
신해욱 시인의『일인용 책』이요.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김애란 소설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런 글들을 좋아해요. 사뿐 사뿐한 그런 글들을 좋아하는데, 신해욱 시인의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누가 추천해줘서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아껴서 읽고 있어요. 하루에 두 세 개씩.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때는 언제에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누워있을 때, 좋아요. 가장 행복할 때는 햇살이 내리쬐면서 정수리가 따뜻한 상태에서 짬뽕을 먹으면서 졸 때. 자면 부으니까 앉아서 조는 거예요. 자장면 먹고는 잠이 잘 안 와요. 토요일 오후에 따뜻한 햇살이 내 정수리에 닿을 때, 짬뽕을 먹으면서 졸고 있을 때가 너무 좋아요. 혹시 연남동 홍게라면 먹어봤어요? 아, 정말 맛있어요.
다음 생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가수, 배우 말고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
피부과에서 여드름 짜고 싶어요. 정말 잘했을 것 같아요. 꼼꼼하게 성실하게 진짜 잘했을 것 같아요. 정말 꼼꼼하게 짰을 때의 그 쾌감(웃음). 가끔 어머니 여드름도 짜드려요. 그런데 피부가 좋으셔서 많이 없어요. 대신 귀도 잘 파드려요. 진짜 완벽하게 해야 돼요. 시작하면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여드름 짜기하고 귀 파는 거예요.
꼼꼼한 걸 좋아하면 뜨개질 같은 건 어때요.
그런 건 진짜 못해요. 손으로 뭘 만드는 걸 못해요. 마이너스의 손이라서. 그래서 글을 썼어요. 그림은 못 그리니까.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 하나 할게요. 책 속 사진들에 등장하는 남자 모델은 누군가요?
<초인시대>에 나오는 김창환 배우에요. 책을 만들면서 사진 찍어주는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진에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사랑에 관한 글이었으니까요. 아쉽게도 당시에 썸 타고 있던 남자도 없고 애인은 당연히 없었고. 누굴 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마침 연락이 온 친구가 창환이었어요. 사진 찍어달라고 하니까 바로 OK해서 같이 찍었어요. 누나의 작업에 함께해서 너무 좋다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며칠 전에 책을 선물했는데 엄청 좋아했어요. 자기가 생각했던 이미지대로 잘 나왔다고(웃음).
아직도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꿈이 있을 것 같아요.
평생 꿈꾸는 표현가였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그건 좀 추상적인 거고요. 멋지고 싶어요. 찌질한 짓은 그만하고 싶어요. 너무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예민하고 싶기도 하고. 멋지고 싶은데 아니야. 또 찌질하고 싶고. 아! 멋진 찌질이가 되고 싶어요.
멋진 찌질이, 되게 멋진데요.
(웃음) 늙어 죽을 때까지 표현하면서 죽고 싶어요. 어떠한 도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표현을 하면서 동시에 돈도 벌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버는 건, 정말 축복이거든요. 돈을 벌어서 놀고 싶어요. 여행도 많이 가고요. 가능하다면 금전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지금도 여러 형태로 지원은 하고 있지만, 좀 크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지금 20살 소이, 10살 소이와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요?
10살 소연이는 힘든 상태였어요. 그때 왕따라는 걸 당했을 때였거든요. 얼마 전, 폴 매카트니 공연을 갔는데 정말 좋았어요. 비틀즈는 제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줬거든요. 4살때부터 음악을 들었으니까요. 6살 때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나, 9살 10살 때 왕따를 당했을 때나. 다 외국인학교를 다녔을 때라, 적응을 못했을 고등학교 때도 항상 제 인생에는 비틀즈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노래를 폴 매카트니가 내 눈앞에서 불러줬을 때는 이건 현실이 아닌 거에요. 실제로 처음 본 거였거든요. 진짜 계속 울었어요. 예전에 리버풀에 혼자 놀러 갔었거든요. 그 때도 정말 큰 위로를 받았어요. 아, 이곳에서 그들이 실존했구나! 그 느낌 때문에 계속 울었어요.
예전의 기억들이 다 겹쳐졌겠네요.
네, 폴 매카트니 공연 때도 그 느낌을 받았어요. 폴 매카트니가 매 곡마다 곡마다 진짜 저의 추억이 있거든요. “너 이때 이랬지. 잘 견뎌냈어.” 또 이 노래는 “너 그때 이랬잖아. 너 10살 때 이랬잖아. 넌 잘해냈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 같이 느꼈어요. 10살 소연이에게 폴 매카트니가 노래로 해줬던 말을 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이것만 버텨내면 돼. 10년, 20년 후에 나아진다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강해져 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근에 대림미술관 앞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팬들에게 매니큐어를 칠해줬던데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 공간을 선택한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플리마켓을 좋아해요. 사람들에게 손톱을 칠해주고 싶었어요. 책에도 나온 것처럼. 세 번째 손가락에 까만 매니큐어를 칠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검지 손가락>이라는 단편영화도 그래서 찍은 거고요. 책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이유를 썼으니까 그걸 읽은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었어요. 플리마켓은 뭔가를 꼭 파는 게 아니라 소소한 재미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이 기회다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이『꿈,틀』을 읽으면 좋을까요?
구 남친들? (웃음). “니가 이랬어”하면서. 사실 저도 극복을 못한 상태에요. 저도 지금 부단히 부단히 싸우고 있는 상태고. 미래에 나와 싸우고 과거의 나와 싸우고 현재 여러 나와 싸우고 있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포기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이는 상관없는 거 같아요. 10대가 그럴 수 있는 거고, 50대 60대 어르신들이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는 거고요. 어떤 싸움 한가운데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서 “아 우리 다 똑같구나. 다 똑같으니까 열심히 해보자” 이런 생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꿈,틀 소이 저 | 이덴슬리벨(EAT&SLEEPWELL)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소이가 산문집 《꿈,틀》을 출간했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누구나 공감하도록 표현하는 게 꿈인 그녀는 그동안 연기, 음악,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감성을 공유해 왔다.《꿈,틀》은 그런 그녀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펴낸 감성 에세이다. 조금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이 메모된 포스트잇처럼 이 책 안에 조각조각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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