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8510

이철환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

$
0
0

이철환 작가 (1).jpg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없다면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인간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 담긴 작가 이철환의 대답이다. 마음을 얻길 원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살펴라.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앞에서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이토록 명쾌한 해답을 두고 그토록 찾아 헤매었구나, 싶은 자각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과, 누군가의 마음을 얻지 못해 괴로워했던 순간들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아 나섰던 어떤 때에, 나는 왜 그랬는지. 작가를 따라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는 동안 이해는 더 깊어졌다. 그건,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끌어안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서 작가 이철환이 들여다보는 마음의 모습들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 것들이다. 질투, 배신, 이기심, 이중성, 속물근성, 허영심, 폭력성……. 나에게서든 남에게서든 발견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 덮어버리거나 도려내버리고 싶은 마음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른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그것은 사람에 대한 긍정이었다. 『연탄길』『행복한 고물상』 『눈물은 힘이 세다』『위로』를 통해 전해졌던 따스한 시선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천재를 만나고 싶다면 모차르트를 만나면 되고, 인간을 만나고 싶다면 모차르트 대신 살리에리를 만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140~141쪽)

 

작가는 질투를 자연스러운 마음의 반응으로 이해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데,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서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사람은 사람을 배신할까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인간의 감정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이 닥쳤을 때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148쪽)

 

그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슬며시 반론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은 작가의 질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대체로 지혜로우며 이성적인가요?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며 상식적인가요?”라는 그의 물음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게 되는 까닭이다.

 

“한 치의 허영심도 없다는 자의식, 어쩌면 그것 또한 모종의 허영심인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다른 이의 마음이 당신 안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자기보호 본능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그랬을 뿐이라고. 그렇기에 책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열두 개의 생각’은 “나를 위로하거나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누군가의 감정을 멋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나의 생각이 정답일 수는 없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긍정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지도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첫 번째 대답은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거죠.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지도는 이미 수많은 책 속에 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선배들이 제시해 준 인간의 지도, 삶의 지도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도 있었어요. 저는 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고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중에서 어려운 부분들은 더 쉽게 전하려고 노력했고요.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었어요. 한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전이 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깔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적으셨습니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는 의미일 텐데요. 그러한 시선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도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인간에 대한 긍정이었어요. 동시에 ‘나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누군가를 질투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제가 참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질투의 대상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요. 그런데 동서양의 지성사에 담긴 삶과 마음에 대한 지도를 살펴보니까,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질투 때문에 스스로를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요. 그건 누군가 나를 질투한다 해도 그를 밀어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질투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것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책에서 “인간은 대체로 지혜로우며 이성적인가요?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며 상식적인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답변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굳이 멀리 보지 않고 저를 보면, 때때로 이성적이고 때때로 비이성적인 것 같아요. 때때로 합리적이고 때때로 굉장히 비합리적이죠. 때때로 감성적이고 때때로 전혀 그렇지 않고요. 사회나 국가의 체계를 보더라도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우리 삶 속에 이렇게 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있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저의 삶만 보더라도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합니다. 저희 딸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잖니’라고 말하면서도, 혼자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그렇게 산 적이 많거든요. 현재 제 모습이 그럴 수도 있고, 앞으로의 삶 속에 수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순들인 거죠.

 

인간의 감정에 대해 살펴보시기 전에, 네 가지 생각의 도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일례로, 네 가지 생각의 도구 중에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물이 담긴 세숫대야의 가운데에 놓인 꿀을 먹기 위해서 천장에서 낙하하는 개미들의 이야기죠. 개미들은 꿀을 맛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의 도구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할 거예요.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살면서 극단을 선택하는 게 제일 위험한 거야’라고 말하면 쉽게 잊어버리지만, 이야기는 마음속에 오래 남거든요.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극단을 선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책에서 들려주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중용을 취하라는 이야기였죠.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피해야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마땅한 시간에 마땅한 일을 마땅한 방법으로 하는’ 분별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마땅히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에 마땅한 일을 마땅한 방법으로 하면 불행해질 일이 없죠. 비극적인 선택도 안 할 거고요. 그런데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릴 때가 많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확신에 빠져있는 경우도 너무 많죠.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는 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생각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환 작가 (6).jpg
 

 

인간의 이중성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인간의 이중성이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충격적으로 다가오는데요. “감정을 속이지 않는 것과 순수한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라는 말 속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가면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태로워지죠. 저 역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솔직하고 순수한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상대방의 생각까지도 헤아려야 순수한 것이더라고요.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꺼내는 것이 솔직하거나 순수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불편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마음속에 두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인간의 이중성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것만 아니라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고요.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그로 인한 고민들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새로운 가면을 보고 누군가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죠.


인간의 이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긍정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이중성도 긍정해 줄 수 있게 되잖아요. 만약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야, 이중적이야’라고 얕잡아 본다면 우리는 사람을 잃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요. 그의 모습이 나에게도 똑같이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지신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너무 도덕적이지 말라,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까’ 아울러 이런 말도 있죠. ‘그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무언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라는 거예요. 참 중요한 말이죠.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한 일이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자아와 이기심을 억눌러야 하거든요. 그것들은 반드시 폭발해요. 대부분 가족이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을 향해서 폭발하죠. 이중성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경계하고 버려야 하는 감정들은 무엇인가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은 ‘사람들이 악하다고 말하지 말라, 근처에 있는 바늘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찔러서 악하게 만든 바늘이 주변에 있을 거라는 거예요. 그를 악하게 만든 상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죠. 인간의 폭력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 대부분은 그런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쩌면 그건 상황의 차이일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참을 수 있는 상황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지나친 폭력성이라면, 그걸 긍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책에서 말씀드린 열두 개의 감정과 본성 속에서 반드시 제외되는 것들은 극단적인 것들입니다. 극단적인 것에 대한 기준도 다르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상식선에서의 극단성을 말하는 거예요.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 있어요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력하며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적으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를 기다려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을 갖지 못했어요. 그걸 갖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 공을 들였죠. 그 시간 동안의 절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어요.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의 가능성을 긍정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도 존귀하다고 말해 줄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 믿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이 눈앞에 있어도 언젠가는 그것을 넘을 수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거죠. 그냥 무작정 기다려주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견디는 거예요.

 

‘비판’에 대한 이야기에서 들려주신 경험담이 떠오릅니다. 『연탄길』을 출간하기까지 3년 동안 다섯 번이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셨다고요.


처음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는 한 달 안에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했어요. 원고에 대한 자신감이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안 왔습니다. 문제점을 듣고 싶어서 출판사를 찾아갔어요. 거절의 이유를 들었는데, 그때는 크게 공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확실히 메모해 두었죠. 두 번째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곳에서도 연락이 없었어요. 또 찾아갔죠. 저도 민망한 순간을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분들도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그런데 직접 이유를 들으니까, 전적으로 공감은 안 됐지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거절당하면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다섯 번 거절당했죠. 그러면서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제 원고가 형편없다는 걸요. 제 원고가 좋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원고가 좋다면 그렇게 거절당할 리 없거든요.

 

그렇게 긴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실 수 있었나요?


대부분 우리는 아픔을 통해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잖아요. 다섯 번 거절을 당하고 나니까 정직하게 제 원고를 볼 수 있었어요. 제 원고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선택할 수 있었죠. 없애버리든지 고치든지. 물론 출판사에서 거절당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고치기도 했지만 다섯 번 거절당하고 난 후에 제대로 고쳤어요. 그 분들이 해준 이야기를 전부 반영하면서요. 그리고 서른 장의 그림도 직접 그려 넣었습니다. 제가 화가만큼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글을 쓴 사람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거든요. 그렇게 그린 그림이 『연탄길』에 실렸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도 담겼죠.

 

당시의 경험은 작가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그때 알게 된 것이, 어긋남이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삶에서 무언가 자꾸 어긋나고 있을 때,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어긋남이 삶 속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예요. 융이 말했듯이 ‘어둠의 빛’ 즉,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 있다는 거예요. 캄캄한 시간, 아픔의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 거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안에서 인간의 내밀한 본성과 감정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책에 실린 그림도 직접 그리셨고요. 만약 작가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신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으세요?


그림을 그리라면 먼저 저를 그리겠어요. 그리고 저를 향해 다가오는 따뜻한 손길, 저의 상처 받은 마음을 보살펴주는 따뜻한 손길을 그리고 싶어요. 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곧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믿음을 갖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림 속에서 저를 보살펴 주는 손길은 저의 것일 수도 있어요.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줘야 하는 거죠. 그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의 손도 잡아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img_book_bot.jpg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이철환 저 | 자음과모음
내가 상대의 손을 잡는다고 해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민 손을 상대가 잡았을 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깔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관련 기사]

- 셀피족의 어머니 비비안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 자기 과시의 시대, 조용한 진짜 영웅들
- 김반장 "결국은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재미가 중요"
- 안주원 “구글러에서 주모로, 셰프로 부르진 마세요”

- 두 번째 음식 시집 낸 한복선 미식 작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8510

Trending Articles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