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황금시대는 언제나 저 먼 곳에 있다. 결코 다시 오지 않을 황금시대, 그것은 늘 다른 이들의 몫이다. 가닿지 못한 세계는 아름답게만 느껴지고, 현재는 늘 불만스럽다. 낭만과 아름다움이 모두 그곳에 있다면 여기 내가 놓인 현실은 구겨지고 답답해서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이 팽창하는 불평등, 기회의 불균형, 차별과 좁혀지지 않는 차이는 나라는 존재를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유수연은 말한다. “‘페스트’라는 건 어느 세대에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존재해요. 사회가 바뀔 때마다 차별과 갈등이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열린 상태에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인생 독해』의 유수연은 독설 날리던, 매서운 말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던 그와는 꽤 다른 모습이다. 삶의 이유를 찾던 방황기, 유수연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탐독하며 세상을 이해했고 흔들리는 삶의 매 순간에 『데미안』의 인물들에게 위로받았다. 어느 때나 ‘페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삶은 더 열린 눈을 가진 삶일 것이라는 그는 ‘사슴’ 같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헤세가 한 권으로 써낸 인간의 성장과 완성,
이반 데니소비치가 단 하루로 그려낸 인생을
미천한 나는 이렇게 길고 긴 세월 동안 주저리 풀어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생각들이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가도 여전히 미완의 좌충우돌이지만
그 성장의 과정들은 나의 역사이다.(139쪽)
강의를 할 때도 기술이나 특별한 공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유수연은 이번 책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지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만의 ‘인생 독해법’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는 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세상 안의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그의 강의처럼 힘 있는 문장을 따라가면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과정을 보여주는 것
무척 자기고백적인 책이에요.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 희망에 대한 불신도 읽히고요. 이런 생각을 전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들이 궁금합니다.
책을 쓴 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나처럼 존재감 없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주기별로 남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대 내 모습을 남긴 게 첫 번째 에세이고요. 이후 나온 책들 역시 30대에 이어 지금 40대의 내 모습을 남긴 기록 같은 측면이 있죠. 앞으로도 책이 나온다면 소설이 아닌 이상 그 과정이 주로 담길 거예요. 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이른바 ‘책에 대한 책’인데요. 누구나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하잖아요. 그 목적이란 관심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테고요. 책을 읽을 때 주인공보다 주변인의 삶의 태도, 현실 적용 가능성 등을 읽었다고 하셨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색이 많이 섞인 것 같아요. 전공이 경영학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전략적 사고 같은 것들에 대한 방법론을 많이 배웠죠.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여러 색깔이 섞이는 면이 있어요. 어떻게 양념을 치느냐에 따라 책이 다른 모습으로 숨 쉰다고 생각해요. 목적, 경험이나 과정이 녹아 나오는 것 같아요.
가장 먼저 소개한 작품 『데미안』은 아홉 번이나 읽으셨다고요. 이 작품에서 어떤 특별한 매력을 느끼셨나요?
10대에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싱클레어에 심취했고요, 20대가 되어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으려 했을 때는 데미안에 심취했었고, 현실과 역할의 한계를 생각하는 지금은 피스토리우스에 심취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 권의 책이 제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며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대 때 싱클레어만 보이는 이유가 있죠. 싱클레어가 학교에서 크레머라는 나쁜 친구들과 지내다가 데미안과 만나는 것이 전형적인 학교생활을 너무나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가정이라는 세계를 나와서 부모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학교잖아요. 저는 작가의 성장 배경도 많이 보는 편인데요. 헤세가 처음부터 완벽한 인격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성취했다는 것이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 것 같아요. 작가가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사실, 10대의 그 같은 생활을 기억하고 작품에 담아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요. 그 미묘한 감정들 말이에요. 10대가 하는 고민들을 『데미안』이 가장 잘 알아줬다고 생각해요. 또한 10대 때 저는 데미안을 만나게 되길 갈망했기 때문에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주변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피스토리우스에 머문 상태지만 언젠가 데미안까지 만나는 날이 오겠죠. 완성도 있는 삶이 되면 말이에요.
다른 작품에 대한 독해도 마찬가지지만 ‘피스토리우스’를 위한 변명이랄까, 하나 낮은 단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했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실현하진 못하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요.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를 떠나면서 한 말이 뭐냐면 시인으로 살든 광인으로 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역할 내에 얼마나 자신을 다 태웠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피스토리우스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이죠. 싱클레어처럼 말하기는 쉬워요. 이상을 버리고 자기 직분을 완벽하게 소화해서 다 태우는 것도 중요한 일일 거고요.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건 끊임없이 더 나아가려는 자아와 현실에 충실하려는 자아가 함께 있어야 살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에 충실하기만 하다고 해서 삶에 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카뮈라면 이 부조화 자체가 삶이라고 얘기했겠죠. 헤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자아를 태우는 게 삶이라고 얘기한 거고요. 카뮈와 헤세, 둘 사이에 제가 끼어 있어요. 그 단계가 지금 제가 멈춰있는 단계예요.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이 중요
흔히 좋아하는 구절이나 첫 문장 같은 것들을 많이 얘기하잖아요. 저자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읽어도 어려워요. 그런데 그 책에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시지프가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돌을 계속 올리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내용이에요. 돌을 정상에 올려놓으면 끝이 올 거라는 희망이 없는데도 계속하니까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모습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을 수 있어요. 학벌, 재산, 외모 등으로 이미 정해졌을 수도 있죠. 그러나 희망이 없어도 돌을 굴리는 게 인간의 의지예요. 헛된 희망에 행복해하지 않고 돌을 굴리는 일상 안에서 다시 의미를 재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이란 사회, 어느 대학을 나온 누구,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고 일어났을 때 엄청난 갑부가 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도 없어요. 그래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하루를 버티는 게 의미가 있는 거죠.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는 건 희망이 있었다면 그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또한 시지프가 희망, 쓸데없는 행복, 좌절 등에 유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이 된 거잖아요. 내 안에 그런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해요.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희망이나 비교 등에 좌우되지 않고 자기 우주를 만드는 것, 그래서 신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 그 대목을 굉장히 좋아해요.
카뮈의 작품은 두 개나 수록이 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데 역시 카뮈를 좋아했군요.
중학교 때부터 카뮈에 거의 미쳐있다시피 했어요. 아시는 얘기지만(웃음)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어요. 공부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어요. ‘쟤는 공부는 못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 놓고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 심취한 작가가 카뮈예요. 그의 작품에는 반항적인 요소도 많잖아요. 제가 카뮈의 실존적인 면, 부조리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상황이나 나이에 맞게는 이해했던 것 같아요. 10대, 20대에 이해할 수 있었던 카뮈를 좋아했고 지금 40대에 이해할 수 있는 카뮈를 좋아해요. 카뮈에 대해서라면 평론가분들이 더 잘 이해하셨을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위치하는 카뮈가 분명히 있는 거죠.
책이란 건 다 코끼리 같다고 생각해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다리만 만진 사람은 다리 밖에 못 보고 꼬리 만진 사람은 꼬리 밖에 못 보겠죠. 다리를 읽고 전체를 못 보더라도 다리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돼요. 이번 책도 그래요.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닌데 책에 대해 쓰는 게 맞느냐’고 말할 수 있겠죠. 저는‘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책을 읽고 침묵해야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람의 범위 내에서 녹여낼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책을 썼어요.
이렇게 카뮈는 자신의 창조물인 뫼르소의 죽음을 통해 우리 안에 사장되어 있는 이방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 부조리한 생애, 영원하지 않은 삶에서 오로지 옳은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니 거대한 세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기꺼이 오늘을 버텨낸 우리를 다독인다.(48쪽)
시, 소설은 물론 동화나 인문서 등 다양한 책을 ‘독해’하고 있는데요. 책 선정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사람들은 흔히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웠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현실을 먼저 겪고 그걸 설명할 책을 찾아요. 책을 먼저 읽고 배운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세상을 겪고 나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그걸 책으로 정리하는 스타일이에요. 때문에 중,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책들은 굉장히 어두운 책들이 많아요. 염세, 허무, 실존 쪽이 많죠. 그러다가 점점 읽는 분야가 넓어졌는데, 그건 현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현실에서 접하는 분야가 다양해지니까 책도 다양해진 거죠.(웃음)
그렇다면 후반부에 소개된 책들은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들인가요?
『콧수염 아저씨의 똥방귀 먹는 기계』는 최근에 읽은 거고요, 그 외의 책은 예전부터 계속 읽었던 책들이에요. 니체나 쇼펜하우어는 무척 오랫동안 손에 잡고 있던 책이고요.
이해가 안 돼서 책을 찾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책을 만나기기조차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책을 보다가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내 현실과 만나는 점이 있으면 현실과 책의 그 부분을 연결시키는 거죠.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더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 멈춰가는 거죠. 책을 만나기 쉽지 않다기보다 접목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읽은 책 권수는 보통 분들이 저보다 많을 거예요. 그런데 멈추질 않는 거죠. 계속 물 흐르듯이 책이 흘러가버려요. 사실은 굉장히 많은 책들을 만났으면서도 말이에요. 만일 『흥부와 놀부』를 읽는다면 저는, 나는 흥부일까 놀부일까, 흥부의 자기변명은 뭘까, 나의 자기변명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이런 생각들을 해요. 현대인들은 다 놀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소유, 자기 것을 지키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또 할 수 있겠죠. 이렇듯 책 안에 멈춰있기는 가까운 책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여행으로 치자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게 그냥 목표인 것과 중간에 어떤 정거장이 있었는지, 어떤 풍경들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은 다르듯이 말이죠. 계속 멈추기 때문에 그런 책을 만났던 것 같아요.
버티는 삶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냉소적인 것 같지만 응원으로 들리는 말들이 많습니다. 기존의 ‘독설’이미지와도 사뭇 다르고요. 변화로 봐도 될까요?(웃음)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매개체를 이용했느냐 뿐이죠. 『유수연의 독설』같은 경우는 간단한 명언 같은 것이 많으니까 좀 더 강하게 보이는 거고요. 근본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근본적인 메시지라면, 무엇일까요? 희망을 말할 수 없다고도 하셨잖아요.
희망 싫어해요.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해본 적이 없어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도 사실은 정확하게 한 적이 없어요. 흔히 오해하시는 부분인데요. 저는 다만 노력만 말해왔어요. 그것 또한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노력하라는 거였어요. 결과에 대한 약속을 보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요. 끝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약속할 수 있는 부분은 없죠. 제 강의나 책을 보면 과정에 대한 얘기가 많지 ‘이렇게 하면 네가 무엇이 될 것이다’라는 얘기는 안 나와요. 기본적으로 개인차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그러니까 개인차를 배제하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에요.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을 또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말이 책에도 많이 나와요.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과정을 말하는 거죠.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 채워가면서 사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책 『인생독해』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겠죠?
여기 소개한 책들을 이렇게 읽고 사고하면 성공한다, 가 아니에요. 일단 하루, 일 년, 십 년, 인생을 버텨내야 하잖아요. 버티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 버티는 삶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좀 더 가져가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죠. 노력도 마찬가지 같아요. 일이라는 게 결과보다는 나를 태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도를 높이며 그 시간을 버틸 것이냐 생각하죠.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제 모든 책에 담겨 있고, 그 고민을 공유하려는 의도로 쓰고 있어요. 누구도 답을 줄 순 없겠죠. 다만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유난한 것이 아니라는 공유에서부터 책이 시작하는 거예요.
‘유수연도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에서 응원을 받는 독자들이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사람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태어나보니 내가 누구였고, 능력이 어느 정도였고, 집이 어떤 환경이었던 거죠. 그 상태에서 자기 삶을 100%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계속 만들어가는 거죠. ‘유수연도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라는 반응을 가끔 봐요. 그건 저의 부각된 한쪽 면만 보는 데서 오는 반응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감정,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과정을 보여주려 했으니까요.
고민, 살면서 겪은 외로움, 성장통과 같은 과정을 솔직하게 적은 이유가 그것이겠네요.
많이들 잘못 생각하시는 게 제가 수업에서 공식을 강의할 거라고 여겨요. 기술을 강의할 거라고요. 제 강의 대부분은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강사가 직접 문제를 풀어보고, 막힌다면 그 부분에서 뭘 생각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요. 강의할 때 가장 좋은 건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더라고요. 책도 마찬가지 같아요.
부모님들, 어른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하잖아요. 그 마음은 알지만 거기서 간격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과정을 공유하는 건 소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출발점에서 함께 걸어가야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벌어졌는지, 어디서 틀어졌는지 생각할 수 있어요.
지금의 20대는 말이죠. 사슴 같아요.
아무래도 곁에서 자주 보기 때문이겠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 대한 감각이 훨씬 구체적이에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큰 희망이 없더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인생이란 건 하나하나가 다 신화죠. 신데렐라 동화처럼 아름다운 종류는 아니지만요. 그동안 취업을 앞둔 20대들을 세대에 걸쳐 봐왔는데요. 지금 40대가 된 사람들의 20대 시절은 호랑이 새끼 같은 느낌이었어요.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를 던져놓으면 낚아 먹는 그런 느낌, 순발력도 굉장하고, 생존력이나 소화해내는 힘도 강했고요. 지금 30대가 된 사람들의 20대는 표범에 비유하면 될까요? 좀 더 날카롭고, 냉소적이기도 했어요. 지금의 20대는 말이죠. 사슴 같아요. 정말 착해요. 겪어온 세대 중 가장 착하고 가장 순해요. 부모 말도 잘 듣고요. 그런데 잡아먹힐 것 같아요. 앞선 세대의 드센 기운을 당해내질 못해요. 그게 강의실에서도 느껴져요.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앞선 세대와 부딪쳐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버티는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요.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힘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요. 쓸데없는 희망이나 기대를 주기보다 이 버팀을 직시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거예요. 당신들 엄청나게 성공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만 하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20대들은 면역력이 없으니까 면역력 단계부터 가는 것 같아요. 멘트도 달라졌고요.
사슴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어떤 징후로 들리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그래도 졸업하고 토익 점수 따면 취업전선으로 내보낼 수 있었어요. 지금 20대들은 품고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요. 실질적으로 취업을 하려면 졸업하고 3, 4년 정도가 걸려요. 그 시간을 노력이라는 것으로 버텨야 하거든요. 지금 30, 40대들, 6개월만 취업 준비하면 가능했던 때에는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이 최우선으로 중요했다고 한다면 지금 20대들은 영어단어보다 3, 4년이란 시간을 존재감 없이 버티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니까 강의 내용도 달라지고요. 차이가 느껴져요.
SNS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도 적으셨거든요. 내면이 궁핍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셨고요.
SNS 아주 싫어해요. 악담도 많고, 허황된 얘기도 많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면 악플도 없을 거예요. 그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니까 악플이 생기는 것이거든요. 거기서 많은 것을 기대하고요. 그러다보니 그곳이 과포화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자기를 증명하려는 무대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는 외모 집착이나 성형에 관한 담론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보다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비춰지는지에 더 관심을 많이 두는 거죠. 세상은 또 그것만을 평가하기도 하고요.
성형보다 SNS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성형이나 겉치레, 현실에서의 어떤 역할 등은 자기가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렇지만 SNS는 만족감이거든요. 끊임없이 배가 고프니까 무언가를 먹고자 하는 곳이에요. 성형 같은 것은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될 수 있어요. 좋은 차를 타려고 한다거나 예뻐지고 싶다는 욕구는 현실 속에서 나를 가꾸는 면이 될 수 있거든요. SNS는 현실의 나를 가꾸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게 SNS가 더 위험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평가 기준이라는 건 시대마다 계속 있어왔죠. 누군가는 소외를 당하고요. 누구는 그것 때문에 피해를 받아요. 그게 외모일 수도, 돈일 수도 있죠. 어쨌든 그런 것들에 시달리고 있어요. 일종의 ‘페스트’죠. 그로부터 아주 자유롭긴 힘들지만 의식은 할 수 있어요. ‘페스트’를 이겨보겠다는 의지라도 있는 게 성형이라면, SNS는 ‘페스트’를 이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성을 짓고 사는 꼴이죠. 현실과 분리되어 공중에 떠 있는 거예요. 실체가 없어요. 돈, 외모, 학벌이 ‘페스트’라면 그걸 이겨내야 해요. SNS는 이겨내는 게 아니라 사람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게 하는 거거든요. 약간 마약 같은 거죠. 그래서 훨씬 더 위험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선택이 있다면 삶의 태도를 정하는 것뿐이다. 이 시대의 페스트와 차별을 극복할 것이냐, 아니면 각종 차별에 대해 불평하며 계속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갈 것이냐의 선택이 삶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타루의 말대로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더욱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84쪽)
말씀하셨듯,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강조하셨어요.
우리 세대만 피해자라는 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기성세대는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나약하다고 하죠. 젊은 세대는 또 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요. 그런데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반복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패턴을 읽는다면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페스트’를 이야기한 거예요. 내가 억울한 이유는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페스트’라는 건 어느 세대에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존재해요. 사회가 바뀔 때마다 차별과 갈등이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열린 상태에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얘기를 강의실에서도 하세요?
예전에는 많이 했는데 요즘은 못해요. 요즘 학생들에게는 뭘 하지 말라고 하기조차 힘든 게, 너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예전에는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뭔가 다른 관심사가 있으면 그거 끊고 공부만 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거든요. 요즘은 너무 많이 소외당해있고, 너무 많이 기가 죽어있기 때문에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참 힘들어요. 여기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은 앞으로 2~3년 동안 백수로 학원가를 돌아다녀야 해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들에게 SNS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죠. 그들은 현실에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일자리도 없고요. 가상이라도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어디에 있든 살아남기만 하면 돼요.
시대가 바뀌면서 덩달아 바뀌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아왔기 때문에 더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만나는 학생들이 항상 취업 준비생들이니까요. 늘 취업 관련 기사를 볼 수밖에 없고요. 20대의 눈높이에 맞춰질 수밖에 없죠. 이들과 하루 종일 호흡을 하면서 이들과 다른 세계에 살 수는 없으니까요. 사회를 보는 각도도 그때마다 20대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살아남아야 한다’(87쪽)는 문장에서도 볼 수 있듯 모두가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저자의 경우는 어떠세요?
20대 입장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과거에는 1년 만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니까 그걸 바라보고 노력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똑같이 일을 하거나 똑같이 노력을 해도 과거에 오던 결과는 오지 않아요. 요즘 집이라는 건 돈을 모아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에요. 보상이 어려운 사회죠. 지금부터는 아주 느리게 가야 해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내 안의 중심이 굉장히 강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보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반복을 오랜 기간 해낼 수가 없어요. 최근 인문학에 대한 많은 관심도 근본적으로는 장기간을 버티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인문학으로 가면 일단은 버틸 힘이라도 생기니까 인문학이 요즘 열풍인 것 같아요. 호흡을 길게 끌어가기 위해서 말이에요.
인생 독해유수연 저 | 위즈덤하우스
살아남기 자체가 화두가 되어버린 지금, 저자는 독한 인생의 혼란을 잡아준 책들을 소개하고, 그 책들로부터 선별하여 현실에 적용한 생존 전략을 알려준다. 즉, 남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메시지를 예리하게 포착한 인문고전 독해법과 거기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인생 독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독서 에세이가 아니라 책을 응용하여 인생을 경영하도록 도와주는 실천적 자기계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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