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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강헌 “모차르트는 신동 아닌 뮤직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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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이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음악 속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발굴해낸다. 동시에 역사가 낳은 음악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표지에 (제목만큼이나 큰 글씨로) ‘Music in history History in music’이라 적어놓았다. 이 말 속에는 음악평론가 강헌이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 음악을 말하는 방식, 곧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재즈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스페인전쟁과 흑인들의 한 맺힌 역사를 상기시키고, 1950년대 미국의 경제성장으로부터 로큰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75년 발매된 『신중현과 엽전들 2집』 앨범의 재킷에서는 암울했던 현실을 읽어내고 「목포의 눈물」을 통해 일제강점기 동안 “대중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엔카의 흔적을 짚어낸다.

 

음악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전복과 반전이 “어떤 동기와 역학”으로 일어났는지, 그것이 어떻게 “정치경제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어떠한 음악과 음악가도 자신이 존재했던 시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눈뜨게 된다.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음악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시간 역시 없음을 알게 된다.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내용들이지만 『전복과 반전의 순간』안에서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저자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만나 어려운 개념들을 쉬워졌고 복잡한 배경들을 명쾌해졌다. 스윙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강헌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왠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플로어로 막 달려가고 싶은 느낌, 그 순간의 감정”이 스윙이다. 영국의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로커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잘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근원을 상실하고 이미 부르주아가 되어버린 선배 로커들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짧게 깎았던 것이다.

 

전복과 반전의 기록들로 가득 찬 이 책은 독자들이 사실이라 믿었던 것들조차 완벽하게 뒤엎어버린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의 상징이고, 모차르트는 타고난 음악 신동이며,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연인 김우진과 함께 자살했다는 통념 앞에 ‘정말 그랬을까?’라는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합리적 의심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페이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상식이 전복되는 짜릿함, 가려졌던 진실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 좋은 배신감이 느껴진다. 그보다 먼저 찾아오는 반전은 이토록 방대한 양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막힘없이 읽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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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10대에게 문화 권력을 쥐어주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소개된 장면들은 “음악사에서 장르와 시대에 상관없이 나한테 가장 매력적인 순간”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에 실린 내용들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연의 첫 번째 시즌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인데요. 제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사의 많은 순간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여기는 순간들이에요. 음악과 인간, 시대와 예술가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닌가 싶고요.

 

“사회적이고 인문적인 시각에서 대중음악을 논하는” 평론가로 인정받고 계시고,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한 접근 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접근 방법이 새로운 건 아니에요. 일반적인 것들 중 하나일 뿐이죠.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양식사적인 이야기, 테크니컬한 요소들이 중요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 비평의 독자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들, 음악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들을 뿐입니다. 음악은 굉장히 감각적인 수용을 하는 예술이죠.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리, 단어들의 의미를 언어학적으로 추적하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잖아요. 스쳐지나가듯이 듣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음악이, 젊은이들 식으로 말하면 ‘꽂히게’ 돼요. 그런데 음악이라는 텍스트의 안에, 혹은 그 뒤나 밑에는 많은 요소들이 숨어있죠. 음악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우연히 바람에 실려 온 것이 아니잖아요. 인간이 창조한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 혹은 그 시대와 사회가 꿈꾸는 욕망이 음악을 현실화시키게 된 거죠. 그 동력을 추적해 보면 조금 더 비옥한 음악 듣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죠.

 

재즈의 탄생과 관련해서 다양한 역사적 배경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흑인 노예가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던 소리인 필드 홀러”(field-holler)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상적으로 책에서 재즈를 설명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죠. 장르적으로 접근하거나 학술적으로 설명하는데요. 저는 그런 책에서는 별로 감동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재즈는 굉장히 감동적인 음악인데 재즈를 설명한 책에서는 별로 감동을 못 느낀다면, 그 설명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재즈를 들을 때 바라는 건 틀에 짜여 있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틀과 규범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자유분방한 욕망의 에너지 때문에 재즈를 듣는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재즈의 가장 깊은 본질에 대한 이야기 안에 있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에너지가 있어야 독자들의 빠르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즈뿐만 아니라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들을 설명할 때 신경 썼던 방식이에요.

 

“로큰롤은 이전까지 아무런 문화적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던 10대라는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들이 문화의 주인이 된 사건”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재즈는 노예 계급 출신으로 미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백인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거죠. 재즈의 연장선에 있는 로큰롤은 20세기 중반에 백인 10대라는 역사적인 세대 혹은 계층과 만나면서, 어떻게 보면 재즈와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게 돼요. 재즈의 전제는 빈곤이었는데 로큰롤의 전제는 중산층적 풍요였거든요. 이 풍요는 납득하기 어려운 새로운 지옥(학교 안과 밖에서 경쟁이 가속화된 현실 - 필자 주)을 가져다 줬죠. 한국사회도 80년대에 그런 걸 경험했잖아요. 마찬가지로 ‘풍요 속의 치열한 빈곤’이 혁명적인 반전을 이뤄낸 거예요. 로큰롤이라는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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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못하게 하는 ‘노래의 힘’


많은 이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면 놀라운 ‘반전’을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가 10대들의 반항을 대변했던 시기는 1년 10개월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그만큼 당시에는 ‘기존의 백인 중산층 성인 세대들이 지배해 왔던 문화’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등장한 것이 악몽이었던 거죠. 미국의 백인 기득권 계급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권력을 동원해서 (로큰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로큰롤은 거의 죽었죠. 그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위협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제일 먼저 와해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10대 문화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큰롤이 사멸되지 않고, 인류 역사에서 어른들이 가져왔던 거대한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야 마는 것은, 예술사에서 가장 큰 전복의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로큰롤이 부활하는 데 있어서 비틀스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을까요?


음악적으로는 가장 결정적인 공헌자이지만, 저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 존 F 케네디의 암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큰 정치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유권자들 중에는 로큰롤과 함께 10대를 보낸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존 F 케네디는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존 F 케네디 이전의 미국 대통령은 가장 보수적인 기득권자들의 대변인이었고 상징이었어요. 그런데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대통령인 데다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었고 가톨릭교도였어요. 이른바 백인 사회의 마이너리티 출신이죠. 물론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기는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문화적으로 탄압받던 로큰롤 세대들은 케네디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꼈을 거예요. 마치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던 진보적 젊은이들처럼요. 실제로 케네디는 굉장히 진보적인 정치 철학을 폈죠. 그것이 미국의 주류 사회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암살 사태가 일어난 거고요.

 

로큰롤이 겪어야 했던 박해의 역사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에 기성세대가 질겁하는 일은 우리사회에도 있었으니까요. 문화에 대한 유연성을 잃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화야말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자기 세대의 감수성에 맞지 않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나올 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신이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문화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기득권을 와해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죠. 자기 세대의 문화의 와해는 결국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 권력의 와해를 상징합니다. 왜 한국의 노태우 정부가 그토록 트로트를 옹호하면서 전통가요라는 왕관까지 씌워주려고 몸부림쳤겠습니까. 왜 50년대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언론과 보수 정치인들까지 동원하면서 로큰롤을 사탄의 음악으로 몰아가고 그것을 죄악시했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취향이 판단이 아니라는 거죠.

 

한국에서는 70년대에 ‘청년문화’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면 ‘청년문화’가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시대에 기득권층은 ‘자유’라는 한 단어 때문에 ‘청년문화’가 두려웠던 겁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종래에는 권좌에서 끌어내릴 거라는 걸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치도록 ‘청년문화’를 증오하고 마약쟁이 나쁜 놈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금지시켰던 거예요. 사실 한국의 ‘청년문화’라고 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문화였습니다. 그들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장호 감독이나 송창식 김정호 같은 가수들이 등장하자, 기존에 이미자로 대표되던 트로트 진영이나 패티 김으로 대표되던 스탠더드 팝 진영이 일거에 시장에서 무너졌죠. 그때 기득권층이 가졌을 공포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화 외적인 논리를 들이대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대한민국판 분서갱유’라고 불렀던 1975년의 금지곡 조치와 대마초 사건이라는 마녀사냥입니다. 

 

금지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아침 이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이 곡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기도 하셨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추모 행렬이 불렀던 「아침 이슬」을 잊지 못하신다고요.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잊을 수 없는 장면이죠. 100만 명이 하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음악 중에서도 특히 가사가 있는 노래는, 모든 예술 중에서도, 집단적 일체감을 분만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양식입니다. 87년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 국가 대표 경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하면서 없던 애국심이 순식간에 생겨나잖아요. 노래 안에는 그런 무서운 전염성이 있습니다. 긴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진 노래 안에는 그 시대를 가장 힘겹게 살아냈던 다수의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는 거예요. 유행가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잊히지 않고 살아남는 노래에는 시대를 넘어서 많은 집단에게 일체감을 주는 어떤 진실이 있는 거고요. 그런 고양된 흥분감은 노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노래의 힘이죠.  

 

 

베토벤은 역사상 최초의 로커


80년대에는 우리사회에도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집섭의 「희망사항」이 분기점을 형성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그 노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1980년대 초중반에 한국의 10대 여학생들은 50년대 미국의 10대와는 달리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gender)의 벽에 갇힌 자신들의 억압을 순정만화적인 상상력으로 해소하려고 했어요. 이성에 대한 극도의 추상성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 80년대 여고생들의 발라드는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구체적인 일상성이 없습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나 「비련」 같은 노래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80년대 후반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이른바 X세대라고 부르게 되는 진짜 10대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과도적 상황에 나오는 노래가 바로 변진섭의 2집에 있는 「희망사항」입니다.

 

「희망사항」이 이전의 노래들과 다른 점이라면 무엇인가요?


신예 작곡가인 노영심이 만든 「희망사항」은 너무 생소한 이미지를 가진 노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들을 쓰지 않았어요. 여자는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가치들을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하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처럼요. 그 중에서도 백미는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예요. 거의 현미경 적인 사고죠. 「희망사항」은 이전까지 한국의 사랑 노래가 가지고 있던 운문적인 상상력을 산문적인 상상력으로, 관념적인 상상력을 일상적인 상상력으로 바꿔갔어요. 이른바 러브 발라드가 랩이라는 새로운 10대의 문화로 가기 전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한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베토벤이라고 하셨는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적으신 것처럼 그가 ‘역사상 최초의 로커’이기 때문인가요?


네. 베토벤 이전까지의 음악가들은 정치와 종교의 후원 없이는 사실상 자기의 뜻을 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민사회가 도래해서 시민에게 자신의 음악을 직접 팔아서 먹고 사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요. 베토벤은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에 살았지만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새로운 시민사회가 오버랩 되는 굉장히 미묘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베토벤은 긴 바지를 입고 빈 시내를 활보했어요. 그건 ‘나는 공화주의자다’라는 상징이었죠. 그래서 베토벤은 자신을 지배했던 계급들과 엄청난 불화 속에서 지내게 돼요. 신분 사회에서 예술가들이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자신의 취향과 욕망에 의해서 음악을 만든 최초의 작곡가라고 봅니다. 자신의 오너의 의지와 취향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 게 아니죠.

 

대부분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삶도 여유로웠을 것 같은데 『전복과 반전의 순간』 속의 모차르트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예요.


모차르트는 신동이 아니었어요. 철저하게 조립된 뮤직 머신이었죠. 그런데 그에게는 인간의 영혼이 있었다는 거죠. 그것이 결국 그를 현실 속에서 패배하게 만들었어요. 어차피 뮤직 머신으로 키워진 존재라면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거죠.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 작곡을 했고 열두 살 때 오페라를 썼고 열네 살 때 교향곡을 썼지만, 스물다섯 살 이전에 쓴 작품 중에서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곡은 거의 없어요. 열일곱 살에 쓴 25번 교향곡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습작 수준이죠.

 

만약 모차르트가 베토벤과 같은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가 없지만 ‘모차르트가 1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하고 생각할 수 있죠. 책에도 썼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의 예술적 결전장을 빈이 아니라 프라하로 잡았다면 요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그때 프라하는 시민 계급들의 권리가 굉장히 신장되어 있었거든요. 모차르트는 묘지도 없이 부랑아들이나 묻히는 시체 더미 속에 묻혔어요. 저는 그것이 궁정사회에서 시민음악가를 꿈꾼 자에 대한 상징적인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묘비명조차도 남기지 못하게 만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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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도전자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의 죽음에 대해 “기획 자살”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신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요. 일본의 한 신문사 사주가 이탈리아에 갔다가 ‘윤심덕과 김우진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만났다는 기록입니다.


저는 그들이 윤심덕과 김우진이었을 거라고 봐요. 그때 윤심덕은 굉장히 심신이 피폐해 있을 때예요. 김우진은 아버지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고요. 「사의 찬미」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이 레코드와 축음기 회사인데, 그들이 유럽행을 권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에 있는 두 일본인이 윤심덕과 김우진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온 뒤에 한국 언론도 난리가 났어요. ‘우리 언니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윤심덕의 여동생 윤성덕도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고 이야기했죠. 김우진의 동생 김복진은 총독부 외사과에 공식적으로 수색 청원을 냈고요. 그런데 그 뒤로는 보도도 없고 유가족들도 전부 입을 닫습니다. 그 순간에 시작된 침묵이 우연일까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평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음악계에는 어떤 전복과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주 잘생기고 정말 음악을 만들 줄 아는, 능력도 탁월하고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며,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로커가 나와서 ‘음악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아니면서도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죠.

 

초인을 기다리고 계신 것 아닌가요?(웃음)


(웃음)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예요.

 

올해 10월 즈음에는 故 신해철 씨에 관한 책을 출간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그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신해철이야말로 자신이 수행해냈던 결과물에 비해서 가장 저평가 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신해철은 활동 중에 대부분 사전심의라는 검열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발상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대중과 너무 멀어지게 되는 것이기도 했고, 어떤 건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들어가서 사람들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시행착오들이 존재했지만 그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데뷔할 때 스타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도전자의 자세로 도전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몸을 사리지 않았어요. 그런 점들이 신해철이 우리 대중음악에 끼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대중음악계에도 똑똑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거죠.

 

『전복과 반전의 순간』다음 이야기도 준비하고 계시죠? 벙커 1에서 진행하신 강연 시즌 2, 시즌 3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내년 초쯤에 2권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연 시즌 2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실을 생각이에요. 음악의 변방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어떻게 뮤지컬을 가지고 콧대 높은 오페라의 권력을 뒤엎고 새로운 음악극의 주연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뮤지컬의 전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80년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와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을 비교하면서 가장 막강한 음악 산업 시대에 어떻게 대안적인 움직임들이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될 거예요. 3권은 내년 후반기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즌 1과 2 강연에서 빠진 부분들과 시즌 3의 강연 내용이 함께 실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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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저 | 돌베개
이 책은 이렇듯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나 네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서 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 개의 각 장은 각각 다시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지는 듯하더니 그 두 개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야기 네 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로 합해져 결국 개별적인 정보와 사실 관계의 정리를 넘어, 음악을 통해 문화사 전반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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