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이미지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앞에 나올 것은 ‘재미’가 아닐까. 우리는 원래 ‘옛날 옛날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 틈에 낀 생활, 문화와 배경이 모두 역사다. 낯선 단어와 외워야 하는 숫자들 탓에 역사를 그저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역시 역사는 재미있는 것이다. 엄청난 인기를 끈 TV 드라마, 영화, 소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36만이 구독하는 카카오스토리 채널 <5분 한국사 이야기>의 운영자 박문국은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역사는 지금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조선의 과거제도를 들어 지금 입시제도를 생각하고, 사대주의와 조공에서 무역을 본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발견할 이야기들이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백 년 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수천 년의 기록을 남겨주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저자는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읽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다양한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것이다. 수십 만 ‘역덕’의 탄생을 기원한다.
언제나 양면이 있다
처음,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지인과 얘기하다가 우연히 하게 됐어요. 제가 문예창작과 사학을 전공했고, 글 쓰는 것과 역사 모두 좋아하니까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처음엔 그냥 썼는데 점점 보는 사람들이 늘더라고요.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굳이 말하자면 재미있어서 한 거예요. 바른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 보다는 제가 재미있고, 보는 분들도 재미있어 하시니까요. 그것도 감사하고요.
어떤 이야기를 다룰 때 보는 사람들이 특히 늘던가요?
처음엔 몇 백 명 정도였다가 안창호 선생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였나, 그런 것들이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확실히 있으니까요. 기억나는 건 과거제도에 관한 글인데요. 지금도 학생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잖아요. 옛날 과거제도는 훨씬 힘들었다(웃음), 그런 글이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있게 쓰는 거고, 그런 걸 좋아해요.
연재와 책은 다르겠죠. 책 작업의 어려움을 적기도 하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어요?
시간이요. 책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 올리던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러니 작업 시간이 두 배가 된 거죠. 저도 일단은 학사 학위 정도고, 박사 학위나 이런 게 아니니까 제가 독자적으로 학설을 전개한다거나 이러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일단 자료들, 논문 같은 것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국회도서관을 간다든지요.
재미로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들이 계속되면서 즐겁지 않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네요.
지금은 ‘하권’을 쓰고 있어요. 역시 시간 부족이 문제죠.(웃음) 독자 분들도 책을 빨리 읽으시더라고요. 댓글로 언제 하권이 나오느냐고 물으시고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힘들다는 느낌까지는 안 들어요. 시간도 없고, 잠도 많이 줄었지만 보는 분들이 재미있어 하시니까 그게 제일 재미있죠.
글을 쓰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재미있는 역사적 장면이 있을 것 같은데 들려주세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요. 세종대왕 같은 경우 성군이잖아요. 훈민정음 창제를 제외하더라도 말이에요. 노비에게 출산휴가도 주고, 그런 것들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세종대왕이라고 뭐든지 다 잘한 건 아니거든요. 책에도 썼는데요. 화폐개혁 이야기예요. 그건 저도 자료조사 전까지는 몰랐거든요. 명나라 화폐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에도 화폐를 도입해야겠다고 했는데 이게 조선 실정과 전혀 맞지 않았던 거죠. 사람들은 화폐를 안 쓰고 쌀로 물물교환 하고 이러는데 세종대왕이 이것을 법으로 다스렸어요. 전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요.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라도 단점은 있었고, 양면이 다 있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복합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능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는 왕들에게도 공훈은 있었을 테고요.
드라마 <징비록> 보시면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선조가 엄청 못났잖아요. 확실히 선조는 추한 짓을 많이 했어요.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의주로 피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아예 명나라로 가려고 했고요. 분명 단점들이 많이 있어요. 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선조가 의외로 정치를 되게 잘한 면도 있다는 거예요. 흔히 임진왜란 때 아무런 준비를 안 해서 전쟁에 졌다고 하는데요. 실록이나 잡록 등 기록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선조의 전쟁 준비거든요. 조정에서 전쟁 준비를 하려면 지방에서 반발해요.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으니까요. 왜 갑자기 전쟁 준비를 하느냐고 상소들이 막 올라오는데요. 그래도 진행하죠. 선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선조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역사 공부의 방법이랄까,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셨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논문 중심으로 했고요.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는 신병주 교수님 책도 좋고요. 오항녕 교수님이나 임진왜란 쪽에 한명기 교수님 이런 분들 책도 좋아요.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재미있다고 하세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이 책을 잘 쓴 게 아니라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석학 분들 중에도 방금 언급했던 분들은 무척 재미있게 잘 쓰세요. 그런 것을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연재할 때도 이런 말을 남기는데요. 제가 올리는 내용이 절대불변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진 말아달라고요. 제 글에도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결국 독자 분들이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더 확장해서 많은 걸 알아가셨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건 틀린 거라고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하고요. 그게 더 바른 방향이라고 봐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
일종의 다이제스트 역사서인데, 대중이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말씀처럼 역시 오독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도 있어요.
<관상>을 예로 들어볼게요. ‘김내경(송강호 역)’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사료에는 안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걸 역사왜곡이라고 할 이유는 없죠. 그런 건 감독의 상상력의 범주니까요. 다만 수양대군(이정재 역)이 호랑이를 잡고, 김종서 대감에게 보내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왕 놀이 하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계유정난 직전까지 김종서 쪽 힘이 훨씬 강했어요. 수양대군이 그러는 걸 봤다면 역모꾼이라 해서 죽이기 딱 좋았겠죠.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위험한 부분인 것 같아요. 불편한 소리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거든요. 좀 더 여러 방향으로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수양대군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실제는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나와서 더 재미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워낙 영향력이 강하고, 일단 재미있으니까요. 특히 사극 장르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것 같아요.
학계 입장이 무시당하는 경향이 요즘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공부를 많이 한 건 근현대사거든요. 과거 정부를 불신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이 쭉 이어져서 역사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돼 버린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식민사관 이런 것 다 배우는데, 그런 것도 다 역사학자들이 한 거거든요.
사도세자의 경우 ‘노론음모론’이 있는데요. 노론이 이간질시켜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있었다는 거예요. 노론이 아예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건 너무 과중한 측면이 있어요.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전 대중화 서적에서 노론음모론이 많이 다뤄졌고, 그런 기조를 지금까지 계속 따르는 것 같아요. 물론 언제든지 그런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옳다고 하면 또 안 된다고 보거든요. 학계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비교적 검증된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학계는 잘못된 걸 말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학계 의견을 최대한 따른다는 거예요.
최대한 따르되, ‘이것이 진짜다’라고 받아들이진 말라는 얘기군요.
그래서 말하고 싶은 건, 이 책만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웃음) 이걸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좀 더 재미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시작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 관심 갖게 되는 곳이 필요한 것 같고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곡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중매체가 무척 효율적이라고 봐요. 저는 드라마 <용의 눈물>을 무척 재미있게 봤고, 역사 만화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같은 책들도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소설 등 관심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게임도 있겠죠. 어쨌든 접해서 재미있다고 느끼면 좋은 것 같아요. 그 다음은 흐름 파악이라고 할까요. 이 책도 그래요. <5분 한국사 이야기>라는 카카오스토리 채널에서 어느 정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할 것은 흐름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의 흐름을 다루게 된 거예요.
역사는 인류의 경험
조선 왕조 외에 꼭 다뤄보고 싶은 한국사의 한 장면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공부를 많이 한 건 근현대사거든요. 광복 이후가 저는 제일 재미있어요.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은 광주민주화운동도 있었고 그때 일들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죠. 87년의 헌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개정되지 않았잖아요. 우리에게 영향도 가장 많이 끼치고요. 민주주의라는 기조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유시민 씨가 한 발언 중 공감 가는 게 있었어요. 역사 공부는 현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요. 이 책도 조선에 대한 이야기지만 지금과 겹쳐지는 것도 분명히 있거든요. 역사에 모든 게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세종대왕의 말 중에 이런 것도 있어요. 과거의 바른 정치와 잘못된 정치를 다 바라보고 그것을 정치에 대입해야 된다, 그 기록들은 오직 역사로써 바라봐야 할 것이다, 라는 얘기거든요. 이 말이 무척 공감이 가고, 역시 성군이구나(웃음) 생각도 하게 돼요.
제 생각은 언제나 그래요. 과거는 단지 고루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분명히 대입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 또한 인류의 경험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백 년 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수천 년의 기록을 남겨주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부분은 기존 시각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대목들이거든요. 말씀하신 세종의 화폐개혁 실패라든지, 악명 높은 문정왕후에 대해서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든지 말이에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저의 독자적인 해석이거나 이런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논문으로 나왔고, 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는 거예요. 이미 논의가 많이 됐는데 대중들은 잘 모르잖아요. 만약 역사를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이게 신선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쨌든 이미 있던 얘기를 제 문체로 그나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썼어요. 저는 이야기꾼 정도라고 생각해요.
역사에 왜곡문제도 많고,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역사 공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제일 위험해요.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아리아인은 우수한 인종, 다른 인종은 열등한 인종이라고 하고 특히 유대인들을 학살했잖아요. 그것을 독일 국민들은 믿었단 말이죠. 물론 그들도 믿을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1차 세계대전 때 졌고, 경제대공황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했는데 히틀러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이끌어주길 바랐죠. 어떤 면에서는 히틀러가 리더십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패망이었죠. 그런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민족주의적인 게 불필요하다까지는 아니지만 그게 과도해진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갈 수 있겠죠. 민족주의 자체는 의의가 있고, 그게 없었다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도 언제든 우경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 책을 전적으로 믿으면 안 돼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런 의견이 있다’는 식으로 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좀 거리를 두고 싶어요. 제가 권위를 갖게 돼도 안 되고요. 열린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죠. 내가 알았던 것과 다른 게 있을 수 있다, 정도로요.
예종이나 인종처럼 단명한 왕들에 대해 독살설이 늘 제기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들이 있겠죠?
재미있으니까요.(웃음) 예를 들면 독살설로 제일 유명한 건 정조일 텐데요. 이인화 『영원한 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죠. 학계에서는 독살설이 별로 의미 있게 나오진 않아요. 일단 왕 암살이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고요. 차근차근 따져보면 굳이 독살할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아요. 이건 야사에 나온 얘긴데요. 문정왕후가 배 다른 아들인 인종에게 오색 떡을 줬는데 그걸 먹은 후에 급사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물론 문정왕후는 인종이 죽길 바라긴 했을 거예요. 그런 정황이 많이 보이고요. 인종이 9개월 재위했는데요. 보통 3년 상이라고 하는데, 왕의 경우 3년 상을 다 치르면 일처리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6개월이 졸곡이라고 해서 그때부터 식음 전폐하던 걸 멈추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인종은 그걸 철저히 지켰어요. 6개월 동안 진짜 미음만 먹어서 몸이 완전히 상했거든요. 그 이후에도 음식을 못 넘겨요. 거식증에 걸린 거죠. 인종이 죽기 한 달 전부터 거의 앓아누웠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문정왕후가 위험을 무릅쓰고 독살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독살하면 제일 먼저 의심 받을 사람이 본인인데 말이에요. 인종 예만 들었지만 이 외에도 여러 독살설이 나오는 왕 중에는 정황 상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가 꽤 많아요. 논리적으로 그래요.
그렇지만 일단 독살설은 재미가 있고, 매력적인 소재기 때문에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아요.
음모론도 그렇고 이런 이야기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니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로마 경구가 있잖아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칭키스칸 같은 경우 오히려 몽골에는 기록이 많이 없어요. 그에게 때리고 밟혔던 이슬람 쪽에 기록이 많이 있거든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단정 짓는다면 역사를 우습게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기록은 무수히 많아요. 패자의 기록도 많고요. 그런 여러 가지를 교차검증해서 내놓는 게 학자들이에요. 그러니 음모론 같은 것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모론이 있고, 재미있으니 책으로 내서 넘겨짚고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고 보거든요.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훈구파, 사림파 등 왕과 대립되는 세력들이 결국 붕당정치로 귀결되었잖아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사회갈등의 뿌리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종을 예로 들어볼게요. 세종 때 무척 중요했던 게 토론이에요. 허조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반박을 많이 하는데 세종은 그 사람도 중용했어요. 하지만 세종이 언제나 그랬던 건 또 아니에요. 훈민정음 창제 때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요. 설총이 이두로 만든 건 아무 말 안 하면서 감히 왕한테 너희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반대를 하느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거든요. 훈민정음은 확실히 세종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잘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은 효율성은 있죠.
붕당은 신사적이긴 하거든요. 학연, 지연이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정책을 일궈냈던 과정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500년 유지된 왕조가 드물잖아요. 500년 조선 왕조의 힘은 이렇게 왕권과 신권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책은 왕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요. 이건 조금 옛날 느낌이기도 해요. 왕 중심으로 역사를 풀었으니까요. 민중도 있었고, 조선은 신하들의 나라였다는 말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더라도 조선은 왕이 가장 강하지 않았나 생각하거든요. 대간이라고 언론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왕한테는 권한이 있었어요. 법을 초월하는 권한 말이에요. 견제관계가 점점 맞아 들어가기는 했죠.
대간과 왕의 갈등에서 흥미로운 게 성종과 연산군이었어요.
역사의 흐름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연산군이 대간을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종이 엄청나게 대간들한테 눌려 지냈기 때문이었어요. 성종이 구리로 수조를 만들었는데 대간들이 사치스럽다고 반대를 해요. 성종이 결국 구리로 만든 것을 치우고 다시 돌로 만들어요. 당연히 그 과정에서 돈이 더 많이 들었죠.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연산군이 대간들을 혹독하게 대했다고도 보거든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은 왕이 어떤 붕당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해요. 저는 언제까지나 그 주체가 왕이었다고 보는데요. 그게 깨진 게 훗날 세도정치죠. 조선이 약해진 걸 붕당 탓을 많이 하는데요. 조선 멸망 때는 오히려 붕당이 완전히 깨져버려요. 한 세력이 전횡했던 거잖아요. 세도정치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견제도 없어지고요. 조선이 500년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세종이 다져놓은 토론 문화도 있었고, 후에 붕당으로 적절하게 유지한 이유 등이 있었다고 봐요.
야매역사가
사대주의에 대해 설명한 부분, 실리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내용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북한을 예로 들어볼게요. 북한은 매우 주체적이잖아요.(웃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요. 하지만 다 잘 알듯이 모두 가난하게 살아요. 사대는 어쩔 수 없어요. 중국이 강하잖아요. 사대를 하면서 받아올 건 받아오고 해야죠. 조공 같은 경우 세종 초반까지도 비극적인 일이 많았지만, 동시에 받아온 것도 많았어요. 명나라 황제는 너희들이 이런 걸 보냈으니 나는 더 좋은 걸 내려야겠다, 하는 명분론이 무척 강했거든요. 그게 무역의 한 형태로 돼요. 언제나 사대에 눌려있던 것도 아니죠. 실록에는 사신이 왔는데 함경도 관찰사가 돌려보낸 일도 나와요. 고려 때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송나라에서는 고려가 조공 보내는 것에는 실리가 없고 손해만 되니까 그만 좀 오라고 한 일도 있거든요. 사대주의를 그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된 부분도 많이 있었어요. 물론 비극적인 일도 있었지만 말이에요. 언제나, 뭐든지 양면적인 게 있어요.
역사의 재미기도 하고 어려움이기도 한데, 사실 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종합적인 이야기들이 있는 거잖아요. 전후 사실을 다 안다는 게 참 쉽지 않아요.
힘든 일이긴 해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지금 한국사를 공부한다면 무조건 외워야죠.(웃음) 역사 공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가 재미있었어요. 역사라기보다는 전래동화나 만화가 좋았겠죠.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이것저것 보다가 흐름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전공도 하게 됐고요. 최근에는 인터넷에 재미있는 글들도 많이 있으니까 참고를 하고요.
흐름 파악이란 게 짧은 시간에는 안 될 거예요.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저도 다 알진 못하고, 아는 것만 알 뿐이고요. 책을 쓰면서도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했어요.(웃음)
조선시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주 나오는 것이 바로 사약입니다. 여기서 ‘사’는 줄 사( 賜)입니다. 즉, 왕이 하사하는 약이라는 뜻이지요. 결코 죽을 사(死) 자가 아닙니다. 이런 형 집행의 정식 명칭이 사사(賜死)입니다. 죽음을 명한다는 뜻이지요. (중략)
사약이 언제나 잘 드는 것도 아닌지라 한두 잔으로는 죽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귀양지에 사약을 내리게 되면 여분의 양을 더 가져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여러 잔을 마셔도 멀쩡하면 병졸이 활줄로 목을 졸라 형을 집행하거나 사약을 추가로 가져오기 위해 집행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29~131쪽)
코끼리 선물, 사약이나 과거제에 관한 뒷이야기 등 중간에 삽입된 이야기들이 흥미롭습니다. 또 다루고 싶은 뒷이야기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당장 생각나는 건 경종인데요. 실록에 적힌 바로는 경종이 간장게장과 감을 같이 먹어서 죽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한의학에서 안 좋다고 한다는데, 그런 것도 무척 재미있죠.(웃음) 고종의 커피 이야기도 할 수 있겠죠. 차도 좋아했다고 하고요. 철종의 첫사랑 이야기도 있는데요. 철종이 원래 강화도령이라고 해서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해 왕이 된 거거든요. 철종이 강화도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작가로 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고, 궁금한데요.
얼마 전 돌아가신 남경태 선생님이 저술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분 책 정말 재미있어요. 남경태 선생님이 늘 자기소개를 하는 게 ‘야매역사가’라고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저도 그렇다면 ‘야매’일 거예요. 야매더라도 최대한 학계 의견을 반영하려고 하고요. 학부 정도의 지식인데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학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지금은 역사 이야기를 썼지만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으니까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국가 발전, 민족의 사명 이런 건 아니에요.(웃음) 재미있어요.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박문국 저 | 소라주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한 박문국 저자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더 정확한 고증을 위해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책과 논문을 살피고 관련 글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유연한 글솜씨와 탄탄한 역사상식을 기반으로 한 《5분 한국사 이야기》를 신뢰하는 구독자들이 이제는 그가 구술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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