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동화작가, 임제다를 만났다. 독특한 이름의 뜻을 물으니,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다. 조선중기 시인 ‘임제’부터 <스타워즈>‘제다이’까지. “이제 다 나 세상이다”라는 의미에서 “내가 임제다”라는 농담까지. 독특한 필명을 지은 작가의 작품은 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탐험가의 시계』를 읽으면서 딱 들어맞았다. 한겨레아이들에서 펴내는 ‘징검다리 동화’ 21번째 작품 『탐험가의 시계』는 임제다 작가의 세 번째 책으로, 선원으로 일하는 아빠의 소식이 끊기자 탐험을 떠나는 영이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동화다. 작가는 서문에서 스스로를 ‘탐험가’로 명명하면서, 이 동화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실제 겪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헷갈린다. 어? 작가가 탐험가였다고? 이건 뭔 소리? 궁금증이 생기면서, 동화에 흠뻑 빠져든다.
2011년 『달팽이의 성』이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신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임제다 작가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시나리오를 썼으니 반 평생을 ‘습작생’으로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프랑스 영화학교 에섹(ESEC)에 입학했고, 귀국 후 시나리오를 쓰던 중에 제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시립도서관의 ‘동화 수업’에 등록했다. 동화보다는 SF, 판타지를 즐겨 읽었던 터라 ‘동화작가’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항상 ‘뻥’을 치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판’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임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아이’를 불러낸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심정으로 펜을 든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요? 나를 더 좋아해주세요
어린 시절,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먹으셨다고요? 서문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의 말’이 아닌, ‘탐험가의 말’을 쓰셨는데요. 어린이 독자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게 어떻게 보면 뻥을 치는 일인데, 정말 그럴듯하게 뻥을 치고 싶었어요. 작가가 책의 화자인 것처럼,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으로요. 제가 『반지의 제왕』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책도 앞 부분에 보면 작가가 뻥을 그럴듯하게 쳐놓잖아요. 호빗이라는 종족이 어쩌구 저쩌구. 저는 이 책을 성인이 돼서야 읽었는데도 ‘아 정말 이게 사실인가?’라고 착각한 적이 있어요. (웃음) 그래서『탐험가의 시계』를 쓰면서 “내가 진짜 탐험가”라고 뻥을 한 번 쳐보자고 생각했어요.
『탐험가의 시계』는 소녀 ‘영이’가 탐험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원인 아빠의 소식이 끊기자, 영이는 뒷산 ‘히말프키’로 별을 찾아 떠나요. 별에게 아빠가 빨리 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고 싶어서요. 어떻게 탄생한 스토리인가요?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떠오른 소재예요. 큰 고모부를 뵌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중에 친척 분께 들어보니까 배를 타던 분이셨는데 실종이 됐고 시신도 못 찾았대요. 사촌오빠들이 되게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흔치 않잖아요.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앞서 출간된 두 작품과 다르게, 제목이 먼저 떠오른 책이에요. 영이처럼 제게도 회중시계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홍콩에서 사온 시계였던 것 같아요. 시계를 열면 되게 예쁜 음악 소리가 나왔는데, 오빠가 소리가 시끄럽다고 분해를 하다가 고물이 됐어요. 그 시계에 대한 기억과 실종된 큰 고모부를 생각하다가 떠오른 작품이에요.
재밌는 장면이 있어요. 영이 아빠가 항해를 하면서 만난 꼬마들의 사연인데, 모두들 저주 받은 물건들을 하나씩 갖고 있었어요. 아빠가 저주를 풀어주자, 꼬마들은 하나같이 “아저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평생 아저씨와 아저씨 가족을 위해 기도할게요”라고 고마움을 표현했어요.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이야기가요.
프랑스에서 영화학교에 다닐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공연을 했는데, 제가 양복점에 양복을 맞추러 가는 남자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남장 연기를 했죠. 그런데 어떤 꼬마 관객 둘이 저한테 와서는,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면서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즐거운 연말을 맞길 바란다”고 하는 거예요. 애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되게 기억에 깊이 남았어요.
동화 속에 이안 소프, 히카르도 카카 등 실제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대거 등장해요. 저주 받은 물건을 갖고 있었던 꼬마들의 미래인데요. 어린이 독자들은 ‘엇, 이게 뭐지? 진짠가?’ 싶을 것 같아요.
제대로 뻥을 친 거죠. (웃음) 이것도 진짜 일인 것처럼요.
혹시 동화에 등장하는 강아지 ‘멋쟁이’도 실존했던 강아지인가요?
옛날에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에요. 엄마가 아는 분한테 얻은 강아지였는데, 너무 예뻐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밤새 인터넷을 다 뒤지고,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다 찾아봤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멋쟁이’라고 지어줬어요. 더 이상 어울리는 이름이 없어서요. 프랑스에 있을 때, 도둑 맞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밤낮으로 울기만 했어요. 동화를 쓰면서도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요.
윤예지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첫 번째 책 『달팽이의 성』도 함께 작업하셨는데요.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언젠가 영화를 하는 친구한테 『달팽이의 성』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데, 이 작품이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흘려 듣고서 출판사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는데, 어느 날 편집자 선생님이 화가가 정해졌는데 ‘윤예지 작가’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소름이 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는 사이는 아닌데요. 그림이 좋아 이번 책도 같이 작업을 하게 됐어요.
2011년 첫 작품 『달팽이의 성』이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신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하셨어요. 『탐험가의 시계』도 같은 해에 쓴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달팽이의 성』을 쓰고, 보름 있다가 『그림자 도둑』을 썼고, 또 보름 있다가 『탐험가의 시계』를 썼어요. 『탐험가의 시계』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원고인데, 연희창작촌에 있을 때 출판사 편집자 분을 만나 책을 내게 됐어요. 수정을 꽤 많이 했어요. 아마 네 번째 버전일 거예요. 『달팽이의 성』 같은 경우는 정말 하룻밤 만에 쓴 동화라서요. 저도 놀라워요. 어떻게 쓸 수 있었지? 정말 그 분이 와서 써준 느낌이에요. 물론, 오랫동안 문장을 많이 다듬었어요. 내용은 그대로지만 맨 처음 쓴 대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 동화를 쓰고 문학상 공모에 내려고 우체국에 갔는데, 국장님이 ‘투고’라는 글씨를 보더니 “행운을 빕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나와서 횡단보도를 걷는데 까치가 울어서, “웬 까치?”라고 지나치는데 집 앞에서도 까치를 만났어요. 또 발표 며칠 전에는 꽃다발을 받는 꿈을 꿨는데, 이대호 선수랑 롯데 야구선수들이 나왔어요. 속으로 ‘아,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웃음)
그림책 번역도 하셨던 데요?
2년 전쯤인가, 조금 친분이 있는 편집자 분께서 번역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어려운 작업이라서 거절했는데, “아마 책을 읽고 나면 재밌어서 하고 싶을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라는 책인데, 읽어 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특별히 어렵진 않을 것 같아서 번역에 도전했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2009년 가을이었을 거예요. 혼자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썼는데, 글쓰기를 제대로 처음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도서관에 ‘동화창작교실’이라는 글쓰기 모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모임에 나갔는데, 동화를 써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안미란 동화작가님께 배웠는데, 철학을 전공하셔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분이세요. 첫 수업이 두 시간짜리였는데, 되게 인상 깊었어요. ‘동화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기초부터 잡아주시는데, 제가 영화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랑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동화로 접근해도 좋겠다 싶었죠. 사실 그동안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게,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거였으니까요. 동화를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 동화를 많이 읽으셨나요?
동화책은 많이 안 읽었던 것 같아요. 『삼국지』나 『셜록 홈즈』같은 책을 좋아했고, 판타지나 모험 영화 같은 걸 즐겨 봤어요.
어른이 돼서 읽는 동화의 느낌은 어때요?
정말 재밌다, 하면서 읽어요. 동화를 배울 때는 맨날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수두룩하게 봤어요. 사서가 이상하게 볼 정도였어요. 신작 나오면 다 챙겨 읽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 보진 않아요. 다 볼 필요는 없더라고요.
애들아, 재밌는 책도 있어
프랑스에서 영화학교를 다니신 이력이 있어요. 영화감독을 꿈꾸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영화와 동화, 비슷한 점도 있겠지만 다른 매력도 있어요.
동화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화는 되게 도도하다. ‘네가 날 좋아해? 그래서?’라는 느낌이라면, 동화는 ‘내가 좋아요? 나를 더 좋아해주세요’”, 이런 느낌”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동화가 조금 어려워졌어요. 그래도 동화에 대한 느낌은 비슷해요. ‘되게 귀여운 아이’같다고 할까요?
영화는 주로 어떤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셨나요?
되게 다양해요.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 코미디 같은 작품도 있고, 연애물도 있고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좋아해요. <펄프픽션>을 좋아하는데 액션영화 같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이야기잖아요.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면, 딱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화들. 그런 작품들을 좋아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유학을 가시진 않았는데요. 그동안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스물 다섯 살 때 프랑스에 갔는데요. 그 때까지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어요.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서빙도 했고요.
프랑스로 간 이유는요?
예전부터 프랑스를 가보고 싶었어요. 제가 영화를 공부하러 간 학교는 사립이었는데, 영화전문학교 에섹이란 곳이에요. 항상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아는 사람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걸 보고 그게 불씨가 됐어요. 돈이 굉장히 많이 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학비는 적게 드는 편이지만 그래도 생활비가 꽤 들었을 텐데요.
프랑스는 유학생들한테도 주택 보조금을 줘요. 20%에서 많게는 40%까지요. 저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사설 숙소에 있었는데 밥도 하루 두 끼를 줬고, 2인실을 사용해서 가격이 꽤 저렴했어요. 어학비가 가장 싼 지역을 찾았는데, 더 싼 곳도 있었지만 거기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요. 항스는 파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한국인이 거의 없었어요. 일년 동안 생활비 다 포함해서 5백만 원쯤 쓴 것 같아요. 정부지원금도 받고 그랬으니까요. 정부지원금은 거주지가 확실하고 체류증이랑 은행 구좌, 학교 등록만 돼 있으면 꽤 많이 나와요.
꿈꾸던 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꿈 같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우선 말이 안 통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가장 컸어요. 한국에서 불어를 어느 정도 배우고 갔고, 학교에서도 꽤 높은 레벨이었는데도 초기에는 정말 너무 쉬운 단어도 못 알아 들을 정도였어요. 4개월쯤 지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 때부턴 재밌었어요.
영화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 시험 대신 직접 쓴 시나리오를 제출하고 합격하셨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학교 과정이 2년짜리였는데, 대부분 준비반부터 시작해서 1학년으로 들어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개 준비반으로 들어가고, 대학에서 영화를 1,2년 공부한 친구들은 1학년으로 들어가고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준비반으로 지원했는데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쓴 단편을 시나리오로 옮겼어요. 불어로 번역해서 어설픈 스토리보드도 그리고요. 지원하고 나서 3주쯤 있다가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프랑스에서 연락이 안 왔어요. 한 달쯤 됐을 때, 편지가 한 통 왔는데 직접 면접을 보러 파리로 오라고 써있었어요. 속으로 ‘설마 면접까지 보자는데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친구들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라고 하는 거예요. 확신 없는 상태에서 파리로 갔는데, 면접관들이 “우리가 너무 고민을 하느라 오래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준비반으로 보내야 할지, 1학년으로 보내야 할지 회의를 무척 오래 했다면서요. 저는 너무 떨려서 “그래도 준비반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준비반에서는 네가 따로 배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철학 같은 걸 배웠냐?”고 물어서,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웠으니까 “조금 배웠다”고 했어요. “아는 철학가를 대보라”고 해서 “플라톤,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했고요. 준비반에서는 대개 구도를 위해서 사진 촬영 실습을 많이 한대요. 제가 그 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들고 갔거든요. 그리고 사진관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니까, 1학년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려주셨어요.
이 이야기 너무 재밌는데요? 학교 생활은 즐거웠나요?
교장 선생님이 한국 학생들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면서요. 교장실에 들어가면 한국 학생이 주고 간 태극 부채가 걸려 있었어요. 이병률 작가님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버스 정류장> 이미연 감독님도 다니셨고요.
영화학교를 갈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컸는데. 지금은 동화를 쓰고 계세요. 미련 같은 건 없으세요?
친한 친구가 지금 장편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너무 바쁘더라고요. 옛날부터 저한테 그랬어요. “너는 동화 쓰기를 잘했어. 계속 써”라고요. 그 친구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많이 만드는데, 자기가 나중에 다 영화화 할 거래요. (웃음) 연출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하고 싶진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한 때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사실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한 번에 두 가지는 안 되더라고요. 제대로 글쓰기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배우러 갔다가 영화에서 멀어진 케이스예요.
저자로서, “『탐험가의 시계』를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요?
그냥 재밌게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커요. 『그림자 도둑』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모두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포기도 나쁘지 않아요. 제가 말하는 건, 굉장히 큰 꿈이 아니에요. 누구나 지금 당장, 되게 작은 소망이 있을 거 아니에요. 물을 마시고 싶으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요. 예전에 연희창작촌에 있을 때, 근처 중학교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40분 정도 진행했는데, 애들이 정말 뚱하게 앉아있더라고요. 너무 긴장이 돼서 “너희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다들 대답을 못해요. 선생님 눈치만 보고 있다가, 어떤 한 아이가 “물 먹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제가 “저기 정수기 있으니까 가서 물 먹으라”고 하니까, 질문한 아이를 포함해서 다른 애들이 모조리 일어나서 정수기 앞에서 줄을 서는 거예요. ‘물을 안 마시고 싶어도 마셔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한 거죠. 그 때 좀 쇼크를 받았어요. 이후에 담양에 있는 학교에서도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 인터뷰를 아이들이 읽진 않을 텐데요. 어른, 또는 부모들이 읽고서 『탐험가의 시계』를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들은 대개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선호하잖아요. 깔깔대면서 재밌게 읽는 책이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준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 모든 게 기록으로 남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책을 읽었는지가 대학교 면접까지 간다고요. 그러니까 부모들은 당연히 학습 위주의 책을 추천할 거고, 그러면 아이들은 책을 재미없는 존재로 인식하겠죠. 시간이 남는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일이 없어지죠. 되게 무서운 것 같아요. 독서가 재밌을 수 없어지는 세상이니까요. 저는 특별한 건 없어요. 다만 “애들아, 재밌는 책도 있어”라고 속삭이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쓰고 있어요.
책을 지루한 존재로 여기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코난 도일이 『잃어버린 세계』를 쓰면서 책의 앞머리에 “반쯤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반쯤 소년인 어른에게 한 시간의 즐거움을 주기를”이라는 문장을 썼어요. 제 마음도 그래요. 아이들이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제일 먼저 재밌게 해주고 싶은 사람은 저 자신이에요. 제 안에 있는 아이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써요. (웃음)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탐험가의 시계』를 보신 분들은 재밌다고들 하는데, 본 분들은 많지 않나 봐요. (웃음)
탐험가의 시계 임제다 글/윤예지 그림 | 한겨레아이들
이번 작품 《탐험가의 시계》에서는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모험 동화의 박진감 넘치는 서사, 작은 단서들이 모여 큰 그림을 완성해 가는 탄탄한 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여기에 아빠의 소식을 기다리는 아이의 애타는 마음과 따뜻한 가족애가 더해져 읽는 재미와 감동을 골고루 주는 판타지 동화가 탄생했습니다. 어른들의 품을 벗어나 혼자만의 길 앞에 서는 나이, 아직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간직한 채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상 속으로 탐험을 떠나기 시작하는 8~10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꼭 맞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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