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리트머스 종이 같아요.”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개인주의자 선언』을 두고 한 말이다. 제목을 읽었을 때 느낌이 팍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이 책의 독자가 되었다. 9월 말에 출간한 책이 벌써 5쇄를 찍었으니, 반응자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왜 한국사회는 ‘개인주의자’들을 사랑하지 않을까. 아니 사랑 받는 것은 원하지도 않는데, 왜 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을까. 선언까지 해야 하는 판국 속에서 문유석 저자는 “감히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 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인간 혐오’라는 글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라며,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은 ‘우리가 잃은 것들’이라는 마지막 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저자는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지적하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자의 결론은 이성적이면서도 따뜻했다.
문유석 저자는 “내 MRI에 ‘뽀샵’을 하고 싶은 욕구가 앞설 때쯤이 글쓰기를 집어치워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그는 최근 KBS <아침마당> 섭외 전화를 받았다. 책 판매에 지대한 영향이 미칠 것임이 분명한데, 정중히 거절했다. 모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라는 단어에 반응이 오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겠다.
개인주의자 선언, 커밍아웃이 필요한 이유
2014년에 출간된 첫 책 『판사유감』의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는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도 지금이 첫 번째 인터뷰시라고요.
겁을 좀 먹었던 것 같아요. (웃음) 요즘 사회를 보면 책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정말 소수잖아요. 열심히 보는 분들이 5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대개 합리적이고 점잖은 분들이 많으시니까, 인터뷰를 해도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아리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요.
독자 리뷰를 모두 읽어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밌게 읽은 리뷰가 있나요?
어떤 아내 분이 “이 책을 남편에게 주면서 ‘딱 너 같은 사람들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재밌는 건, 많은 독자가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데? 나도 개인주의자인데?’라는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저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수, 박해 받는 소수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는데 의외로 ‘내 이야기다’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회사 부장도 맨날 회식하자고 팀원들을 괴롭히는데, 사석에서는 자기가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더라”는 댓글도 봤어요. 원래 자신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나 그런 성향이 있잖아요. 모두가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너도 나도 커밍 아웃을 하는 분위기랄까요? 재밌었어요.
전작의 독자들이 두 번째 책으로도 많이 이어진 것 같더라고요. 반응은 어떤가요? 좀 다른가요?
의외로 많이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많이 드러나는 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썼는데, 다수가 공감을 해줬어요. 비교적 무난하고 편안하게 큰 저항감 없이 받아주셔서, ‘내가 지레 겁을 먹었나?’ 싶더라고요.
최근에 출판사에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 ‘페친 벙개’를 하셨어요. 개인주의자들은 이런 모임, 안 좋아하지 않나요? 좀 놀랐습니다.
(웃음) 다른 활동들은 딱 선을 그어놓고 있어요. 성향인지도 모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상 신뢰를 잃는 일을 하면 안 되고, 지금도 재판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저는 길을 가다가 제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면, 치가 떨리게 싫어요.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죠. (웃음) 첫 번째 책을 내고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생각보다 사회가 크다는 거예요. 제가 뭘 하나 했다고 누가 많이 알아보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이런 책을 읽는 분들은 저랑 비슷한 사람이에요.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애초부터 저와 성향이 너무 다르거나 센 분들은 페친을 맺지 않았어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라서 벙개도 하게 됐고요. 재밌었어요.
책 제목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헬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잖아요. 사는 게 너무 빡빡하고 힘든데, 직장에서도 치이니까 개인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회식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건 개인에게는 큰 일이잖아요. 저 역시 조직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고요. 오래 전부터 합리적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게 결코 사회를 해치는 나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라는 제목도 생각했는데 ‘선언’이 낫겠다 싶었어요. 스스로의 성향을 당당하게 밝히자는 의미로 정했는데 의외로 거부 반응이 별로 없더라고요. ‘한국사회가 그래도 이만큼은 왔구나’ 생각했죠. 책 추천사를 손석희 앵커님이 써주셨는데, 본인의 성향도 저와 굉장히 일치한다고 하셨어요. 이동진, 임경선 작가님도 같은 말을 해주셨는데, 사실 이 분들이 무난한 분들이잖아요. 아주 양극단의 색깔이 뚜렷한 분들을 제외하면 중간 다수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 책의 타이틀입니다. 전작에 이어 ‘유감’이란 단어를 또 사용하셨어요. 현재 <중앙일보>에 ‘일상유감’이라는 칼럼도 연재 중이시고, 페이스북에는 가끔 ‘기사유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 리뷰도 올리고 계신데요. 유감이 너무 많으신 것, 아닌가요?
(웃음) 유감이란 단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유감’을 자꾸 꺼낸 것도 유감입니다. 『판사 유감』이란 제목은 21세기북스 한성근 팀장님이 정해주신 제목이에요. 평소에 즐겨 쓰는 단어도 아니라서 망설였는데, 프로들의 말을 듣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유감이 많다는 거죠. 『판사 유감』을 낼 때, ‘유감’의 두 가지 의미를 밝혔는데요. 판사로서 재판하면서 느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뜻하는 유감(有感). 많은 사람들이 판사에게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알기 때문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의 유감(遺憾)이에요. 『개인주의자 선언』도 비슷해요. 저는 어쨌든 낙관주의가 되자는 입장이니까요. 일상에서 느껴지는 모든 게 유감이다, 이런 게 아니에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가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 줄임말로 ‘개취’라고들 부르죠? 요즘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개취예요’라는 부언 설명을 붙이게 됩니다. 내 발언에 대한 과한 공격, 오해가 두려워서죠.
사실 ‘개인의 취향’은 말이 안 되는 말이에요. 취향은 원래 개인적인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삼겹살을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빨강색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웃기죠. 대개 사람들은 이 말을 변명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아주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왜 너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냐?”고 반응하니까요. 취향이 개인적인 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리 사회에서는 서열이나 직급에 따라 취향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인 것을 강조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라는 말을 덜 썼으면 좋겠어요.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표현을 하고는 싶은데, 잘못 전달이 될까 하는 염려도 있고요. 특히 상사에게 말을 할 때는 더욱 경계를 합니다.
윗사람들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길 원해요. 그런데 거기에 순응하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해요. 나는 조금 다른 성향이라는 걸, 커밍아웃 하려면 스스로도 불편함을 감수해야죠. 조직에서 예쁨도 받으면서 자유도 누리는 건, 아직 이 사회에서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너도 나도 들이대라”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잘리는 상황에 있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다만 자기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면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 예쁨을 좀 못 받더라도 자유는 얻을 수 있죠.
법조계는 특히 더 보수적인 집단이잖아요. 판사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텐데요.
이렇게 책을 내는 것도 튀는 행동이죠. 다만, 너무 막 나가다 보면 책임을 다할 수 없으니까, 현명하게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색깔을 보여주면, 조금씩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가치관을 남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보이면, 상대에게는 조금 불편함을 제공하겠지만 그들도 명분이 없으니까요. 나는 내 일을 잘하면 되는 거고요. 중요한 건, 서로서로 거들어주는 거예요. 1:1 게임은 어려우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의견을 냈을 때, 옆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분 말도 맞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게 중요해요. 거창한 노동조합만 연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윗사람한테도 웃으면서 물러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죠. 그래서 커밍아웃이 필요해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마디씩 거들어주는 행동, 이런 게 용기고 필요한 것 같아요.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라고 하셨는데요. 이 문장을 읽고 꽤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개인주의자는 단결하는 종족이 아닌데, 뭐랄까.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않으면 평생 노예처럼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따져보면 ‘싫은 건 싫다’는 건 되게 소심한 표현인데 이게 참 어려운 거죠. 물론 조직에서는 까다로운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떡하겠어요? 감수해야죠.
하루키, 개인주의자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언급하면서,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내 지론과도 통해 무척이나 재밌었다”고 밝히셨는데요.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자가 된다면 희망이 있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키워드가 계속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워낙 시니컬하기도 했고, 직업상 인간의 가장 안 좋은 면을 보게 되니까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하잖아요. 강간범, 살인범을 20년쯤 보고 나면, 소매치기나 도둑이 천사로 보여요. 오히려 재판을 하면 할수록 피고인들이나 재판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아요. 그 사람들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면이 없지 않거든요. 극악무도한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에게는 여러 성향이 있는데, 내버려주면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역할과 위치가 주어졌을 때 특정한 성향이 발현돼서 남에게 큰 위험을 끼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같은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고만고만해요. 주어진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서 더 탐욕스러워지는 면도 있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고 해요.
동시에 누군가를 대단히 좋아하거나 존경하지는 않으시겠어요.
그렇죠.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좋아 보이는 거지, 본질은 모르는 거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판사유감』을 읽고 저를 과도하게 좋은 선입견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저는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자고 남에게 못되게 군 것도, 잘못한 것도 많거든요. 다만 제가 감명 받은 부분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까, 느낌이 그렇게 된 거예요. 제가 뭐 루소도 아니고 『참회록』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내 자신이 대단하지 않은데, 남들이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 되게 싫어하시죠?
완전 안 좋아하죠. 자유에 대한 구속이라고 생각해요. 겸손이 아니에요. 기대에 맞춰 살라는 강박이잖아요. 글쓰기에 대해서도 그래요. 자유가 중요해요.
책이 너무 잘 팔려서, 생각보다 훨씬 유명해지면 어떡하죠? 자유를 누리지 못할 정도의 유명세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웃음) 이렇게 말하는 게 오만일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나칠 만큼 조절하고 조심하려고 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범위에서 나머지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는 만들지 않으려고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요. 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요. 사실 ‘개인주의자 선언’을 한 건, “나 이런 사람이에요.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뜻도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부럽다”고도 하셨는데요.
개인주의자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니까요. 하루키가 대중 앞에 잘 안 나서는 작가잖아요. 일본을 아예 떠나서 부평초처럼 살면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인물인데요.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은 재수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유에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숨을 쉬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필요는 없고,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회적 관계를 갖고 살겠다는 게 하루키식 사고방식인데요. 제게도 그런 사고방식이 조금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직업이 판사니까요. 하는 일에 대해 일정 부분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그 이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글을 읽다 보면,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꽤 크신 것 같지만요. 혹 글이 무척 잘 써지고 반응까지 좋아서 전업작가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웃음) 오래 전에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너무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코즈모폴리턴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 문화에 대한 글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 같은 성향의 사람은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너무 없으면 풍선처럼 붕붕 떠다닐 것 같고 글도 웃겨질 것 같아요. 역설적으로 저라는 풍선을 땅에 붙들어 매는 건 제 직업이에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연결이 되니까 사회에 관한 고민을 하게 돼요. 저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글을 쓰면,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밸런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요. 균형감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판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니까요. 이 일에 피해를 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글쓰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본업 다음인 거죠.
‘자기검열’을 많이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직업상 많이 할 수밖에 없기도 한데요. 너무 지나치게 자기검열을 하면 자유로운 글쓰기가 어려워지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정도예요. 힘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요.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무지무지 야한 이야기, 인간 혐오에 극에 달한 것들을 소설로 쓰고 싶은 욕구도 있고요. 한국 사회의 틀에 박힌 정서들이 너무 답답하지만,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려고 해요. 10년쯤 시간이 흐르면 면역이 생기는 것처럼 서로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도 저에 대한 수용범위를 넓히고, 저 또한 표현범위도 넓어지고요. 점진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줄타기 같은 느낌이랄까요?
페이스북에 관한 이야기도 여쭙고 싶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 동지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페이스북 글쓰기의 효용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페친 분들이 서운해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페이스북이 실제 사회나 인간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각자 독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일기장으로 교환일기처럼 돌려 읽는다고 할까요? 각자 성향대로 얻어가는 것이 있고 재미있으면 좋고, 싫은 건 차단하고 안 보면 되는 거니까요. 자유가 있어서 좋은데 자유가 있는 만큼 한계도 분명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취사 선택을 잘하면 너무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잘 이용할 수 있겠죠. 좋은 정보의 소스라든지, 영감이 되는 글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거나 대단한 인간관계를 얻으려고 하는 건 망상이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재미로 하는 거예요. 단지 재미요. ‘단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착각하지 않으려고요. SNS를 통해서 뭘 하려는 생각을 하면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명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하는 실수가 여기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할 때예요. 그러는 순간, 부작용이 생겨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는 걸 인식했으면 합니다.
잘 듣는 판사가 되고 싶다
‘문학의 힘’이라는 글에서 “문학은 인간의 개별성과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고 말하셨는데요. 재판을 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문학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외적인 측면, 본성을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체로 평범하지 않잖아요. 특이한 일도 많이 벌어지고요. 제가 워낙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세고 사이코적인 작품도 많이 읽어서, 인간사에 대한 수용 범위가 조금은 넓은 것 같아요. 판사 일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문학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순문학뿐 아니라, 대중문학, 만화, 무협소설도 다 도움이 돼요. 영화 <타짜>를 열심히 봤는데, 언젠가 피고인에게 “이거 환목이나 병목이겠네요?”라고 말하니까 바로 자백을 하더라고요. (웃음)
영화<카트>, <제보자>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단순한 리뷰로 읽히지 않았는데요.
저는 글을 쓸 때도 실용적인 목적을 중시해요. 글의 아름다운 완결성보다 ‘내 글을 보고 이 영화를 정말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큰 거죠. 책에 관해서는 앞으로 권독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책을 안 보면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아서요.
초고에는 ‘육아 일기’를 포함한 더욱 사적인 이야기들도 포함됐다고 들었습니다. 왜 빼셨나요?
모든 편집자들이 말리셔서요. 독자 분들이 아직 저에게 원하는 건, 법과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뜻 아닐까요? (웃음) 육아 일기를 포함해 저의 성장기,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언젠가는 책으로 낼 수도 있겠죠.
판사라는 타이틀이 없었더라도, 책은 언젠가 내셨을 것 같아요.
아마 더 빠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주제나 소재는 달라졌겠지만요. 파산부에 있을 때, 파산이 뭐길래’라는 글을 법원 회보 <법원사람들>에 기고했는데, 그 글이 알려진 게 2005년이에요. 이후에 쓴 ‘하버드 연수기’도 일간신문에 게재되면서 책을 써보자는 연락을 꽤 많이 받았어요. 그 때는 젊은 판사라 조심스러워서 다 거절했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10년 정도를 망설인 셈이에요.
『판사유감』추천사를 고등학교 후배인 가수 유희열 씨가 써주셨잖아요. “지금, 당신은 어떤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는데,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이것도 소심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잘 듣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이 정말 중요한데, 이건 제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인 것 같아요. 판단이라는 영역은 신의 영역인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도 오판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늘 두렵거든요. 이미 많이 했을 거고요. 결과는 제가 100%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잘 듣는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이거 정말 어렵거든요. 진심으로 듣는 판사가 되고 싶은데, 정말 어려워요. 개인주의자라서 더 그렇고요. 저는 천성이랑 싸워야 해요.
전작이 법원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서 오히려 서운했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요. 그렇다면 『개인주의자 선언』은 어떤가요?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별로 없어요. 그냥 이 책에 마음이 가는 분들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것도 건방진 이야기인데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은 없어요. 그저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분들이 읽고 공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세대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이미 연세를 많이 드신 분들도 뭔가 와 닿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좁지만 깊은 관계가 좋아요. 방송에 나와서 한 방에 유명해지는 것도 원치 않고요. 그냥 진심으로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맞아 맞아”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 저 | 문학동네
『판사유감』을 통해 현직 판사로서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소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보고 겪었던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개인의 행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저자는 자신을 개인주의자로 명명한다. 그리고 책은 이러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인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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