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듯, 감각적인 듯, 담백한 만듦새의 책이다. 제목을 적은 손 글씨도, 『파이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도 무척 잘 어울린다. 책에서 저자가 느껴진다. 물론 저자의 글도 그 예감을 배신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을 기꺼이 흥미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소중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SK텔레콤 현대생활백서,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등 히트 광고의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 김하나는 “나뭇잎을 들어 햇볕에 비춰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 잎맥은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며 “한 번도 연결 지어 본 적 없는 것들을 연결 지었을 때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과연 그의 글은 다름 아닌 ‘새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가전제품으로 시작해 조르주 페렉을 얘기하는가 싶더니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등장하고 마침내 16이 없는 달력으로 끝난다. 의외의 것들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 시작된 듯했다.
순풍에 돛 단 듯, 책을 만들 때 하나도 걸림돌 없이 진행되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다. 14년차 담당 편집자의 전언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책에서 팀워크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관계’ 그 자체가 하나의 책이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다 기분이 좋다
책을 읽는 혹은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책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 책은 만져보는 재미, 살펴보는 재미가 있어요. 그림을 해치지 않도록 그 부분에는 쪽수를 매기지 않았고요. 책을 준비하면서 책의 만듦새가 어땠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림 부분에 쪽수가 빠져있는 건 몰랐어요. 그래서 비어있는 느낌이 더 강한가 보네요. 지금 알려주셔서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웃음) 책이 딱 나왔을 때 마음에 들었는데요. 책 준비하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대해 트위터에 칭찬이 있는 걸 보고 부산역 서점에서 사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탐독을 했거든요. 근데 그 책이 딱 느낌이 좋은 거예요. 표지도 그렇고,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표지, 표지를 접은 방식이나 본문 디자인도 너무 단정하고요. 그게 김영사 책이었던 거죠. 혹시 그분이 제 책 작업하는 게 가능하실지 했더니 된다고 하셔서 그분이 해주신 거예요.
본문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도 디자이너 님이랑 같이 상의하고, 조언도 해주시고 그랬죠. 그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책 제목도 제가 쓴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아니라 디자이너 님이 쓰신 거예요. 젓가락에 잉크 묻혀서요. 이게 그림체와 잘 맞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제목도 참 좋죠. ‘농담’이란 말도 좋고요.
원래는 ‘지의 연결’이란 제목이었어요. 개론서처럼요. 제목을 바꾸니 책의 색깔이 확 달라지면서 그게 책을 더 반영하고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자 분이 이 제목을 갖고 오셨을 때 디자이너 분도 좋다고 하시면서 뭐라고 했냐면 한 단어, 한 단어가 다 기분이 좋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진짜 좋은 거예요. 좋은 제목이죠.(웃음)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라고 한 말처럼 책 작업에서도 ‘사람’이 중요한 요소였던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어제도 추천사 써주신 김명남 님과 서촌에 앉아있는데, 그 안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지나가는 누구를 또 만나고, 동네 인기 강아지가 지나가서 또 나가서 인사하고, 계속 이랬어요. 진짜 여기는 사람들이 퍼진 가족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저희 사무실에도 하도 사람들이 놀러오니까 ‘우리 일한다’고 할 정도였어요. 친구인데, 가족 같기도 한 그걸 기본으로 서로 도와주는 관계들이 돈독하게 있어요. 그 관계들이 저한테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거죠.
예전에는 사람을 좁게 사귀었어요. 몇 마디 듣고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요. 한 번은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날 눈물을 닦으며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그 모임의 수장으로 3년 간 있었는데요. 너무 활발하게 잘 됐어요.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지만 제가 살겠다고 만든 모임이니까 새로운 사람이 오면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재미있게 하려고 했죠. 그런 생활을 3년 간 했더니 체질개선이 일어난 것 같아요. 과거의 제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아요.
변한 지금, 나의 어떤 면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하세요?
말 잘 통하면 몇몇 친구들만 사귀잖아요? 너무 편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알아듣고, 잘 통하죠. 그 대신 같은 얘기만 해요. 그게 좁은 화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다양한 사람과 있는 것은 세계가 훨씬 넓어지는 거예요. 그런 게 이어지다 보니 사람을 이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것도 재미있네, 이렇게 됐어요.
책에서 말씀하신 ‘유연성’이 바로 그런 것이겠군요.
제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준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괴이한 뭔가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면서 얼마나 이상한지 먹어보겠다고 해요. 저는 초콜릿만 먹거든요. 제가 맛있는 것을 취하는 게 돈을 지불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 친구는 실패를 하더라도 이런 시도를 했다는 걸 돈을 주고 맛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진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예전처럼 판단 내리는 게 되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흔히 나이가 들면 싫어하는 게 많아지고, 고집도 강해지는데 반대로 가셨네요.(웃음)
그런 것 같아요.(웃음) 아빠는 고집의 화신이고요, 엄마는 개방성이 화신이에요. 엄마는 어려서부터 어떤 얘기도 잘 들어주는 편이고, 대화가 잘 되는 편이었어요. 아빠랑은 거리가 있었고요. 살면서 개방성과 주관성이 함께 조율되는 게 무척 중요할 텐데요. 나이가 들면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아지잖아요. 그렇다면 개방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실 아빠를 정말 많이 닮았고, 아빠를 보면서 경계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엄마를 보면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매일 요가를 하면 유연성이 늘어나는 것처럼 노력하려고 해요.
보고 나면 아는 것들
“책이라도 어설프게 읽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똑똑했을 사람”에 밑줄을 그었어요. 지식에 갇힌 상태를 경계하는 거겠죠. 다만 새로움에 열려있기, 매순간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하세요?
예전에는 나는 뭘 좋아하고, 이런 취향이고, 이런 게 정말 명확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누가 뭘 좋아한다고 하면 데리고 가달라고 얘기해요. 좋아하게 될지 안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경험해요. 한 번은 친구가 승무를 보러간다고 해서 같이 갔었거든요. 지금까지 그렇게 강렬한 인상은 없어요. 잊기가 힘들어요. 승무에 빠져들고 이런 건 아니지만 그걸 한 번 본 저와 보지 않은 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 친구한테 정말 고마운 거죠. 보고 나면 어쨌든 뭔가는 달라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조차 봐야 아는 거예요. 어쨌든 같은 것만 하는 것보다는 이득이죠.
구체적으로는 트위터에 ‘BBTT_NOTE’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하루에 하나씩 우리에게 영감 주는 아이디어를 적어둡니다, 라고 해서 온갖 것들을 올려요. 거기서 건졌던 것들이 책에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친구들이 제보를 해줘요. 아무리 작아도 우리가 좋아할 만한 각도가 있다는 걸 친구들도 알고, 친구들도 그걸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친분 있는 김민철 작가나 박웅현 작가처럼 카피라이터의 책 출간이 눈에 띄거든요. 이 책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맞는지 모르겠지만 박웅현 CD님의 힘인 것 같아요. 다른 카피라이터도 많이 만나잖아요. 근데 박웅현 사단에 들어가면 어떤 색을 갖게 돼요. 유행어가 뭐고, 힙한 사람이 누구고, 이것들로 쌔끈한 광고를 만들겠다, 하는 쪽이 전혀 아니에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책을 쓰신 것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어떤 것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개발하고 만드는 것을 계속해서 배우니까요.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귀에 탁 걸리는 말, 감각적인 것들을 중요시하는 팀들이 있다면 여기는 본질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요. 기초 체력을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이제는 각자 다른 방향을 갖고 있죠. 저는 박 CD님 책 보면 저와 생각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럼에도 기본적인 생각은 많이 배웠고, 고마운 일이죠. 만약 다른 카피라이터가 쓴 책을 제가 다 읽었다면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들어주세요.
“글자를 읽은 뒤엔 다 잊어버려도 좋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는 글자가 아니라 문단과 문단 사이에 있다”고 했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신다면요?
광고 쪽 사람들 강연을 가끔 보면 세계적으로 정말 트렌디했던, 아주 혁신적인 캠페인을 보여주거든요. 어린 친구들은 ‘와, 멋있다!’ 하겠지만 그걸 보고는 당장 회사에 가서 뭘 해야 될지 알 수 없어요. 너무 어마어마하고, 거창하고, 이미 완성돼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회사에서 해야 되는 건 아주 조그만 단어 선택, 생각의 각도 차이, 이런 것들인데 너무 거대한 것들만 계속해서 보여주면,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책에서 했던 얘기가 나뭇잎을 들어 햇볕에 비춰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 잎맥은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처럼 아주 조그만 것도 아이디어가 반짝인다면 그 자체가 거대한 것과 같은 반짝임을 갖고 있다는 거죠. 작은 반짝임을 얘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공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죠. 거대한 것은 높이 볼 수는 있겠지만 공감하고, 용기를 주기에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단과 문단 사이를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것과 저것이 차이가 있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러니 이것을 바꾼다면 저것까지 바꾼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죠.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터법 같은 척도 얘기를 하다가 사랑의 크기로 가서 정지용의 시 「호수」가 나오고, 보고 싶은 마음은 호수만 하다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거죠. 한 번도 연결 지어 본 적 없는 것들을 연결 지었을 때 거기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문장력도 아니고, 지식 전달도 아니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대한 천재였고 다행히 생전에도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수많은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일에 대단한 열정을 쏟아서 여러 종류의 비행 기계를 고안하고 제작했지만 모두 하늘을 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실패에 낙담했다. (중략)그의 실패한 착상과 설계는 미래의 기술자들에게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멋진 시간여행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할 때다. “철도를 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철도가 생기는 게 아닌가. 그전까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178~180쪽)
<언어는 사고를 프레이밍한다> 라는 글을 무척 즐겁게 읽었어요. 카피라이터로서 더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할 텐데, 긍정적 프레이밍 혹은 부정적 프레이밍을 의도적으로 썼던 사례가 있나요?
사례들을 다 모아서 글로 쓴 거라 다른 사례가 떠오르진 않고요.(웃음) 그 글을 썼을 때는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책을 눈덩이로 빌려다 읽던 때였어요. 오바마가 선거 때 토론에서 누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죠. 그 질문은 대답을 어떻게 해도 상대가 공격할 수 있는 질문이었어요. 그때 오바마가 일어나서 “바로 그런 질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라고 말을 했대요. 프레임을 깨서 벗어나는 거였죠. 얼마 전 트윗한 내용도 있는데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에게 외모 공격을 했죠.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가 “Look at that face”라는 말을 뒤집어서 “Look at this face”라고 하는 캠페인을 만들어서 프레임을 확 바꿔버렸잖아요.
프레임에 대해 한 번 고민하면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성을 가리키는 ‘된장녀’, ‘김치녀’ 같은 말은 엄청 많은데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죠. 언어가 이미 기능하고 있다는 거예요. 프레임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중구난방이에요
영화 대사나 책 인용한 부분이 많아요. 『파이 이야기』는 두 번이나 언급이 됐고, 표지 그림도 그 작품에 관한 장면인데요. 좋아하는 책, 영화 대사는 어떤 종류인지 들려주세요.
워낙 많아요. 『파이 이야기』는 특별히 정말 많이 생각했던 작품이에요.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요. 저는 종교적인 것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종교를 믿지 않음에도 내게 위로를 주는 효과에 대해 굉장히 존중하거든요. 종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인간 삶이 어떨 것인가도 상상해보고요. 그에 대해 『파이 이야기』는 너무나 절묘한 방식으로 뒤집으면서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듭니까?”라고 딱 질문을 던지잖아요. 제가 종교에 대해 상상했던 것들을 다 모은 대사예요. 파이가 온갖 종교를 섭렵하는 데서부터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식의 구원을 받고, 살아남게 되고, 어떤 식으로 인생을 이어나가는지 그 관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질문을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제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대사가 되겠죠.
이를 테면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그런 대목에 끌리시는 거군요?
그렇기도 하지만 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로켓이 일어나서 ‘됐냐? 한심한 녀석들이 빙 둘러서 있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너무 좋거든요. 그것도 관습을 알고 있는데 내가 여기 정착해야 하냐고 생각하는 쿨한 캐릭터가 ‘What the hell’을 내뱉고 일어나는 그 장면이 진짜 재미있어요. 그건 절대 인생의 질문도 아니고, 엄청난 질문도 아니지만 너무 반짝반짝하잖아요. 저는 중구난방이에요. 너무 무거우면 그게 또 싫거든요. 좋다가도 싫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농담에 대해 얘기를 하니 갑자기 농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봤어요. 『1984』처럼 말이죠. 말하자면 지금은 우리에게 농담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검정치마’ 1집의 명곡 <Antifreeze>를 들어보면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농담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국정화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 ‘련세대’학생들, ‘리화여대’학생들이 써놓은 대자보를 보면 그렇죠. 저는 사회운동 할 때 혼자 고매하고, 사람들에게 호통 치는 거 정말 싫어요. 무관심을 탓하는 것만큼 못난 게 없어요. 학생들이 했던 농담 섞인 방식이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서 넓게 퍼뜨리죠. 그게 더 강력한 힘이 있는 거잖아요.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이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모두가 패배해버릴 것 같아요. 물론 압력밥솥처럼 꽉 물고 있으면 나중에 폭발할 수는 있겠지만요. 어쨌든 계속해서 농담과 춤과 노래를 섞어서 이 힘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력이 너무 나버리면 아예 닫아버리잖아요. 그나저나 노래 정말 좋아요.(웃음)
흥미로운 것들을 기꺼이 좋아하는 눈을 가진 것 같아요. 글에서 그런 게 많이 읽혀서 반가웠다고 할까요. 반면에 저자가 싫어하는 것들은 뭐가 있나요?
엄청 많아요. 뭐가 있을까요. 음악을 들을 때 새롭고 좋은, 새롭고 안 좋은, 뻔하고 좋은, 뻔하고 안 좋은, 네 분류로 생각해요. 새롭고 좋으면 제일 좋겠죠. 진짜 뻔하지만 좋은 것도 있어요. 이를테면 샤이니의 <View>는 진짜 뻔하게 만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좋아요. 제일 안 좋은 건 뻔하고 안 좋은 거겠죠. 그건 나한테 아무런 뭐가 없기 때문에 이런 걸 되게 싫어해요. 시간 낭비 같아요. 하지만 저는 긍정적이기 때문에(웃음) 만약 그걸로 시간을 보낸다면 ‘내가 이런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달았군’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블로그 글을 보니 ‘삼성’ 때문에 가족과 싸운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싫어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엿볼 수 있는 일화예요.
신입 사원 시절에 사회공헌 활동 비디오 교육을 막 시키는데 너무 보기 싫어서 그냥 집에 가버렸어요. 다음 날 인사팀에서 불러서 ‘자네 신입사원 교육 받다 가버렸나?’하더라고요. 치과 약속이 있었다고 했죠.(웃음) 이게 어떤 교육인지 아느냐고 막 혼을 내더라고요. 제가 물었어요. ‘팀장님 이게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이 맞습니까?’하니까 그렇대요. ‘그러면 제가 나가는 게 맞습니다’하고 왔거든요. 그땐 어려서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랐죠. 그때 팀장님이 박웅현 팀장님이었는데요. 위에서 아주 싫은 소리를 듣고 왔을 거예요. 신입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제게 와서 ‘하나야, 너 멋있다?’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어렸을 땐 그랬는데 지금은 절대 안 그래요.(웃음) 현명해진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패기는 없어진 것이기도 하겠죠.
얕은 지식 모임
‘얕은 지식 모임’을 특별히 책 뒷부분에 별도로 할애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모임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CJ E&M에서 발행하는 <트렌드 C>에서 동네 작은 모임에 관한 특집이 있었어요. 그때 ‘얕은 지식 모임’에 대해 쓴 거죠. 이 글을 편집자 님에게 보여드렸더니 글이 책과 결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셔서 뒤에 따로 빼서 넣게 된 거예요.
나는 한 번도 관심 안 뒀던 건데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있는 거죠. 자기가 그걸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한테 설명해주면 일단 얘기하는 사람 눈빛이 달라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에요.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게 되면서 그의 표정을 보는 게 일단 즐겁고요. 그 사람의 관심사를 들여다보면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도 참 좋아요. 그걸 또 편안하게 얘기하잖아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 없고요. 원래 모여서 늘 수다 떨고 그랬어요. 어차피 만나 수다 떠는 거,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떨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렇게 됐어요. 기획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됐다, 는 말이 많은 걸 설명해주네요.
모임을 애써 조직하지 말고 그냥 어차피 보게 되는 사람들이 해보는 거죠. 제 친구들도 다 비루해요. 그럼에도 그가 관심 있는 얘기를 들으면 나에겐 지식이 되는 거죠. 잘난 사람이 있어서 그의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건 태도건 배울 게 있으니까요. 전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요.
책에 ‘준비, 조준, 발사’를 뒤집어서 ‘준비, 발사, 조준’이라고 했는데요. 그것처럼 일단 시작해보면 뭐가 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통해 새롭게 관심 갖게 된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패션이요. 한 사람의 철학이 반영된, 주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바를 옷으로 구현해낸 걸 보고 있으면 너무 매력적이에요. 르네상스 때 잘 나가던 화가들 있잖아요. 마크 제이콥스가 그 역할을 지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패션과 예술,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고요.
영화도 그래요. 옛날 흑백영화나 6, 70년대 뮤지컬 영화 잘 보는데요. 모임에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Ozu Yasujiro),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Mizoguchi Kenji),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 Naruse Mikio) 세 명의 일본 영화 거장들에 대해 영화를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는데 그 세계가 또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일본 영화 한 편이 아니라 그 시기의 일본 영화라는 일종의 장르를 소비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죠. 이런 게 너무 좋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걸 여러 사람과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하나 저 | 김영사
[네이버-세상의 모든 지식][SK텔레콤-현대생활백서][SK텔레콤-사람을 향합니다][현대 카드]등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으로 광고계를 흔드는 카피라이터 김하나. 수많은 히트 광고에 카피를 올린 그녀가 아이디어의 원천을 얻는 방식을 훔쳐볼 수 있는 책이다. 문학, 음악, 미술, 정치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촌철살인의 문장 뒤에는 다양한 생각의 도구들이 숨어 있어 읽는 즐거움은 물론 활용하고 싶다는 의지마저 자극한다. 굳어진 사고의 패턴, 프레임에 갇힌 두뇌의 흐름을 깨는 지식의 신선한 조합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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