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 위퍼(Weeper)로 대표되는 인디 1세대 뮤지션이자 여성 팬들이라면 한 번쯤 마음이 흔들렸을 꽃미남 가수 이지형이 젊은 날을 회고하는 어른이 되었다. 패기 있는 젊은 뮤지션과 로망을 꿈꾸게 하는 오빠보다는 이제 40대를 준비하는 선배 가수나 또는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모습 더욱 어울릴 위치에 서 있다. 젊음의 고속도로를 달려왔던 그가 청춘을 되돌아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청춘마끼아또 >라는 앨범과 함께 돌아온 어른 이지형이 그 이유를 밝혔다.
요즘은 정규 앨범 한 장도 나오기 힘든 환경인데 더블 앨범을 발표했다.
안 좋죠. (더블 앨범을 발표할) 필요가 없죠. 작업하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곡을 세어봤더니 분량이 처음에는 70곡이었어요. 이후에 50곡으로, 또 20곡으로 줄이고. 이제는 더 이상 줄일 수 없게 되었는데 사실 20여 트랙이면 CD 한 장에 수록할 수는 없잖아요. 이걸 다 담을 수 있는 포맷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제야 내가 더블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부터 로망이기는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인으로서 버킷 리스트가 있거든요. ‘저 사람이랑 협연하고 싶다’ 혹은 ‘저 무대에 서고 싶어’, ‘이런 앨범을 만들고 싶어’와 같은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처럼 더블 앨범 한 번 만들고 싶다는 게 중학교 때부터 갖고 있었던 꿈이었어요. (더블 앨범의 형식을 발매한다는 것이) 지금이랑은 물론 되게 안 맞는 일이기는 하죠. 뭐가 어떻게 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앞으로는 CD라는 하드웨어 자체가 없어질 것같이 보이거든요.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했죠.
예전에도 그렇고 커피에 관련된 앨범을 많이 발표한 것 같다.
네. 커피에 관한 앨범을 낸 적이 있었고 곡도 있었고. 공연 움직임도 관련이 있었고요. 지금처럼 홍대에 카페가 많지 않았던 7년 전쯤에도 카페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거든요. 정해진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공연하는 게 편했었어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이지형=커피’ 라는 인식이 많은데 “이번에 앨범이 <청춘마끼아또 >입니다”라고 회사 트위터에 올리니까 “이제는 커피를 아주 작정하고 끝을 보려고 그러냐”, “저 사람은 커피 밖에 할 말이 없나?” 같은 안 좋은 댓글들도 올라오더라고요. “이제 그 커피와 관련된 이미지 좀 벗지?”라는 말도 있고. 사실 이번 앨범은 커피와는 상관이 없는데 (웃음)
마끼아또라는 단어 자체가 커피를 떠올리긴 한다.
네. 그런데 마끼아또는 얼룩지다라는 의미에요. 사실 저도 뜻을 안지는 얼마 안 됐어요. 얼룩진 청춘으로 제목을 지었을 때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라고 고민을 했는데 ‘마끼아또’ 어감이 너무 좋았어요. 리듬감도 있고. 왠지 뜻을 알고 나니까 저는 커피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첫 곡을 뭐라고 읽어야 하나.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 기호가 파이래요. 얕은 대답일 수도 있는데 그냥 인트로에요. 그런데 인트로라는 제목을 쓰기는 싫고, 어떻게 보면 프롤로그도 아니고 너무 억지로 제목을 붙이려니 이 기호가 보였던 거죠. 파이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음악 레코딩할 때 쓰는 용어기도 하고, 마침 검색해보니 핏자국을 뜻하는 그리스 상형문자래요. 상처가 난 자국이라서 핏자국, 얼룩, 상처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그냥 한 번 그 모양을 넣어볼까 생각했는데 의미까지 일치되면서 우연찮게 얻어 걸린거죠.
<청춘마끼아또 >앨범의 일부 곡들은 위퍼 시절부터 만들려고 한 노래라고 하던데.
멜로디와 편곡 만요. 그 곡들은 위퍼(Weeper) 때 만들었는데 멤버들이 안 좋아했고, (웃음) 그래서 한 두 번 합주하다가 중단하고. 이지형으로 데뷔해서도 내 앨범에 써볼까라는 마음은 들었는데 뭐랄까 저 조차도 제대로 된 완성품 같은 느낌이 매번 안 들었어요. 그래서 더 멋있게 만들려고 편곡도 바꿔보고 멜로디도 바꿔보고 그러다보니 순간 아예 다른 곡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눈엣가시 같았죠. 애착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될까 싶은 애물단지처럼 곡이 17년 동안 묵혀있었죠.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서 그 당시의 느낌을 담아 이번 앨범에 실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만들었던 곡을 다시 완성하면서 이지형의 청춘 또한 완성한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지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만들 수는 있겠지만, 위퍼가 제 20대 초반의 느낌이 있어서 지금보다는 러프함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힘들고. (웃음) 어렸을 때는 그런 음악이 쉬웠는데.
앨범들이 마치 컨셉 앨범 같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원래 1, 2집도 그렇고 컨셉 앨범의 방식으로 곡 작업을 한 적은 없었어요. 1집 이후에 만든 음악이 2집이고, 2집 이후에 만든 음악이 3집인 이런 형식이지, 패션이나 사운드의 컬러에 컨셉은 있는데 정서적인 주제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앨범을 만든 적은 없었거든요. 많은 아티스트 분들이 그러실 거에요. 그런데 3집 <봄의 기적 >앨범부터 한 컨셉 잡고 하나의 앨범을 만드는데서 정말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컨셉 앨범에 대해 의미를 많이 부여하게 되었죠. 게다가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싱글 싸움의 시대로 변했잖아요. 더욱더 앨범에 가치를 부여를 하고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컨셉으로 가는 게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주제를 담아내었는가.
청춘이죠 청춘. 청춘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20대의 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런데 흔히들 생각하게 되는 청춘의 밝고 아름답고 멋있고 그런 이야기들보다는 그늘과 얼룩지고 어두운 반대의 이야기들로만 채우려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게 제 20대의 내면이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비슷했을 것 같고 저만 특별했던 건 아니었을 것 같고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숨기고 싶은 이야기, 지우고 싶은 이야기, 애써 고백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을 이때 아니면 말하지 못하겠다 싶어서 20대를 정리하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구성의 측면에서 첫 번째 CD는 밝은 느낌이라면 마지막 트랙 「악취」가 귀에 좀 걸리더라. 복선 같기도 하고 의도한 결과인가.
사운드를 의도한 거는 굳이 따지자면 욕설을 굉장히 아름답게 하고 싶었어요. 더러워. 너는 더럽고, 수상한 향기가 나고, 더러운 향기가 나고 역겹고 그런 가사를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언뜻 들으면 편안한 포크 송인데 가사를 파고 들어가면 “어? 왜 이런 가사가 있지?” 그런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어렸을 때는 이런 느낌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반항심인지 날이 서 있었던 건지 모르겠는데. 부모님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꼈던 적도 있었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면 안 됐었는데.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이 이랬던 것 같아요. 싸울 자신이 없었어요. 저 혼자서 자위하고 혼자 스스로 뒷담화 하고. 하지만 그 사람을 이기려는 용기는 없었거든요. 그냥 혼자서 일기장에다 쓰는 거였죠 뭐. 그 사람 앞에서는 착한 척, 듣는 척, 하지만 내심 심장은 괴로워하고 안에서는 이를 갈고 있고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바보 같았어요.
제 20대를 돌아봤을 때 나름 멋있어있을 줄 알았거든요. 기억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냥 멀뚱히 앉아서 기억하고 써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런 기억은 오랜 시간에 걸쳐 미화된 기억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부모님 집에 가서 제 정리함이 있어요. 성적표, 교과서, 연애편지, 친구들한테 받은 편지, 크리스마스카드 그런 게 있는 함이 있는데 가지고 와서 다 펼쳐봤거든요. 사진 안에 이 말도 안 되는 패션은 뭐지? (웃음) 성적표에 낙서되어있던 이 그림은 뭐지? 도색 잡지에서 접어놨던 이 페이지는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것부터 알리바이를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니 미화되지 않은 본연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첫 경험의 순간들은 「열아홉 밤공기」에 담았나?
열아홉이 아니고 열일곱이었는데, 열일곱으로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열아홉이 어떻게 보면 성인의 경계에 있는 선이잖아요. “우린 달콤한 선을 밟고 있어”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선이라면 열일곱보다는 열아홉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열일곱은 너무 발랑 까진 것 같아서 (웃음) 이런 거짓말을 했고요. (웃음)
첫 경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한건가.
기타를 배운 것은 중학교 1학년이었고요 밴드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요. 그 때 밴드는 학교 친구들과 했던 거고요. 위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결성했어요.
위퍼도 학교 밴드인가?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만든 밴드였어요. 학교 밴드는 따로 있었고. 학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밴드들 있잖아요. 그런데 학교 밴드 안에 있는 애들이 너무 유치해서 (웃음) 못 섞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멋있는 음악 하자고 해서 친구들끼리 따로 만든 밴드가 위퍼였죠.
멋있는 밴드이지 않았나.
멋있지는 않았고요 너바나(Nirvana) 카피 밴드였어요 (웃음) 그 당시에 얼터너티브를 좋아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고 순전히 메탈리카(Metallica), 메가데스(Megadeth), 스키드 로우(Skid Row) 이런 거 좋아했으니까요. 얼터너티브는 이제 막 시작했을 때라서 당시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죠.
당시 좋아했던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지금 마음속에 있는 커트 코베인의 이미지가 변하지는 않았나. 이번 앨범에도 커트 코베인과 관련된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라는 노래가 있던데?
20대 중반까지 커트 코베인은 이지형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가장 많이 흔든 존재였어요. 영웅이죠. 종교였고, 성경이었고. 그러다가 정신병이 들 정도로 제가 커트 코베인인줄 알았어요. 모든 걸 따라했어요. 뮤직비디오나 잡지를 보고 이태원에 가서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 사고. 노래를 만들어도 코베인이 쓸 법한 코드로 작곡하고, 퍼포먼스도 따라하려고 그러고, 머리도 기르고, 그리고 머리를 잘 안 감았죠. 그래서 제가 두 달 동안 머리를 안 감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금발은 두 달 동안 머리를 안 감아도 예쁜 머리가 나오는데. 검은 머리는 하루 이틀 안 감으면 멋있는 떡진 머리가 안 나와요. 정말 거지 같아요. (웃음)
또 제가 공부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외국 잡지들에서 나오는 커트 코베인 인터뷰를 다 해석했어요. 사전보고. 그리고 이 사람은 이런 말은 왜 하고, 이런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하는구나 하고 외우고 다녔어요. 커트 코베인이 되려고 표정도 연습했고 말도 안 했고. 제가 커트 코베인을 따라한 것 중에서 안 한거는 마약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마약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가 없으니까. (웃음) 다행히 커트 코베인이 성적으로 문란하지는 않은 사람이라서, 마약과 환상과 자아 밖에 없던 사람이라서. 무대에 올라가서는 내가 커트 코베인이야 하고 빙의를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드럭 클럽에는 전체 관객들의 절반이었을 정도로 미군들이 많이 왔었어요. 그 미군들이 제가 너바나 카피하는 공연들을 보고 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어요. 저한테 항상 커트 코베인이라고 해주고요. 그 당시에 너바나를 카피했던 수많은 밴드 중에서 위퍼하고 코코어(Cocore)가 있었는데. 거기서 노래하던 (이)우성이형이 진짜 커트 코베인이냐, 이지형이 진짜 커트 코베인이냐 항상 논쟁을 했었어요.
너바나는 인생 자체였던 것 같다.
너바나의 새 멤버로 영입되는 상상을 했을 정도였어요. 항상 그런 기대를 했어요.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한국에 여행하러 오는 일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지나가다 나를 만나서 인사를 해서 “너 커트 코베인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우리 팀에 들어올래?”라는 제안을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문제로 3일 정도를 고민하고. 위퍼 멤버들한테는 뭐라고 말을 하지? 또 미국 가면 스타가 되는데 몇 년간 부모님이랑 떨어져야 하는 걸 또 뭐라고 말씀을 드리지? 그런 고민들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굉장히 진지하게. 그 정도로 미쳐 있었죠.
솔로 활동을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토이의 「뜨거운 안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희열과의 만남이 이승환 때문에 성사되었다는 말이 있던데.
네. 이승환 선배랑 저희 대표님(이종현) 하고도 되게 친해요. 이렇게 셋이 다 친해서. 희열이 형이 「뜨거운 안녕」 보컬 구할 때 오디션을 본 가수들이 한 30명 정도 되었다고 해요. 저는 안 봤는데 기존에 다 앨범을 냈던 가수들이었던 거예요. 그랬다가 마스터링 1주일 전인가 (부를 사람이)없고 없고 해서 수소문 끝에 승환이 형이 “얘 요즘 홍대에서 ‘핫’하다는데”(웃음)라며 소개시켜줬죠. 그런데 희열이 형이 승환이 형의 상업적인 감을 존중해요. ‘디테일한 화성과 보이싱, 테크니컬한 면은 잘 모르겠지만 상업적인 감은 있는 사람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만나볼 필요는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대표님한테 전화를 했죠. “(이지형이) 종현씨 회사의 수석 가수라면서요?”라며 제가 있는 회사에 직접 오셨어요. 그러고는 다음 날 바로 녹음.
녹음이 조금 달랐나. 원래 하던 방식과 비슷한 느낌이었나.
저는 유희열하면 미친 천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부스에 들어가면 가수들 죽이는. 혼내기도 하고 정말 디테일한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소문도 그래요. 그래서 엄청 준비하고 갔죠. 전날에 소고기 먹고. 그런데 막상 가니까 별 이야기도 없고 집중도 안 해요. (웃음) 그런데 무사히 잘 끝나서. 원래는 앨범에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이 제가 불러야 했던 노래였고. 「뜨거운 안녕」을 (김)형중이 형이 불렀어야 했는데 형중이형이 뜨거운 안녕 녹음하는 날 극심한 감기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어요. 그래서 녹음 날 펑크를 낸 거예요. 그래서 지형씨가 부르라고 해서 부른 거고. 형중이 형은 이틀 있다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불렀어요.
요새 싸이 앨범에서 성시경도 그렇고 슈퍼스타 케이의 홍대광도 「뜨거운 안녕」을 불렀는데 원곡을 부른 당사자로서 어떻게 들었나.
성시경씨는 제가 좋아하는 목소리라서 성시경 스타일대로 정말 잘 부르시더라고요. 정말 부드럽고 밀키하게. 역시 성시경은 뭘 불러도 자기 노래처럼 잘 부르는구나라고 느꼈어요. 홍대광씨 버전은 제가 아직 다 못 들어봤거든요. 지나가다 누가 컴퓨터 펼쳐놓고 플레이하는 걸 살짝 들었는데 맨 처음에는 “어? (김)연우형이 「뜨거운 안녕」 부르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 알맹이 스타일이 약간 연우형과 비슷한 게 있어가지고 그런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인터뷰할 때도 정말 잘 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었는데 기사가 나기를 ‘이지형 극찬’이라고 나와서 (웃음)
가수에게는 늘 대표곡이 있는데 이지형의 경우에는 토이의 「뜨거운 안녕」이 되어버려서 속상하지는 않나.
별로 속상하지는 않아요. 언젠가 대표곡이 만들어졌겠죠. 저는 제 인생의 정점이 어디라고 생각을 별로 안 해서요. 어렸을 때는 생각을 많이 하긴 했죠. 난 언제 톱스타가 되나, 난 언제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 먹다가 사람들이 달려와서 싸인 해달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 열심히 연구해서 수많은 사람과 소재를 어떻게 음악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인가가 목표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점이 찾아올 수도 있는 거고. 그 안에서 이지형을 대표할 수 있는 곡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뜨거운 안녕」같은 곡은 저에게 정말 고마운 노래죠. 재미있는 노래고. 감사해야할 노래고. 저는 대중감성에 딱 맞는 곡을 만드는 재주가 별로 없어요. 대중의 구미를 완벽히 맞출 수 있는 재능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걸 탓하지는 않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많이 버렸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음악 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저는 창작을 스트레스가 아니라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그게 저의 목표죠.
최근 득남을 했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닐 텐데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이 앨범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얼룩진 청춘 이야기에요. 전 아버지와 소통이 없던 편이었어요.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는데, 명절이나 중요한 가족 행사 때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열 개 남짓이에요. 아버지께서 대학교 때 누구랑 싸웠던 이야기 몇 천 번 듣고, 엄마랑 결혼했을 때 이야기 한 3만 번 듣고, 옆집 아저씨랑 술 마시다가 홀연히 속초 갔다는 이야기 또 한 3천 번 듣고 매번 똑같은 이야기밖에 없는 거에요. 너무 지겹잖아요. 말릴 수도 없고.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에게도 1분 1초 반짝였던 순간들이 분명 나처럼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는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사시는지 전 정말 불만이었어요. 제가 연구해본 결과 기억력의 용량에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들에게 굳이 아버지의 얼룩진 그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았거든요. 진취적이고 좋고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아들에게 아버지의 비겁했던 모습과 찌질하고 거지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용기는 저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듣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언제 찌질했는지, 아버지는 언제 첫 경험을 했는지, 아버지가 언제 비겁했던 적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고 말씀해주시지도 않았죠. 저도 뭐 아들에게 2~30년 후에 이 아이가 성장을 해서 저도 그렇게 얼룩진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려주고 싶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사각지대에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그것을 궁금해 할 거예요. 그래서 기록을 남겨야겠다. 나중에 아이가 청춘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항상 힘세고 돈 많이 벌어오고 우리 집안의 아빠도 이렇게 바보스러운 순간이 있었다니, 이런 방황을 했다니 혹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었다니, 이런 용기 없는 겁쟁이였다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앨범 부클릿 마지막에 아들에게 쓴 것이 그래서 Thanks to인 거예요. 저는 뭐 이 시대 젊은 친구들에게 가르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 제 완벽한 고백을 하고 싶었고, 제 아이가 청년이 되어 들었을 때 아빠의 경우를 살펴서 시행착오를 겪지 말고 너는 잘 살아라 식의 이야기가 아닌 나도 아빠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구나와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걸 앨범에 담았어요.
멋진 아버지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아이가 80일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제가 잘 케어를 해서.
재킷은 어떤 의미인가. 야자수 사진인데.
앨범 디자인을 할 때 제일 고민을 했던 게 사진으로 할까 그림으로 할까 일러스트로 할까였어요. 계속 생각했어요. 좋은 정장 입고 사진을 찍을까, 이지형 얼굴을 들이대서 찍을까. 얼룩진 청춘에 제일 잘 맞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로모 사진기의 질감이 제일 청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척 거칠고 모호하고 초점 안 맞고 왜곡된 질감 자체가 어떻게 보면 되게 예뻐 보이잖아요. 아 청춘은 로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모 코리아에 제가 직접 찾아가서 브리핑도 직접 했어요. 거기 계신 분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로모 유저들한테 사진 부탁하고 그리고 오피셜 사이트에 들어가면 전 세계 로모 유저들이 찍은 사진들이 있어요. 몇 만장의 사진들이 있거든요. 다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사진을 찍은 분들에게 직접 이 메일을 보내서 “저는 이지형이라고 하는 한국의 가수입니다. 이러저러한 앨범을 만들고 싶은데 당시의 사진이 아름다워서 앨범 부클릿에 쓰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 중에 허락을 맡은 사진을 앨범 재킷에 쓴 것이죠. 또 제가 로모로 찍은 사진도 삽입되어 있고요. 이 앨범 메인 재킷에 쓰인 야자수 사진은 러시아 분이 찍은 거예요.
그래서 사진마다 이름이 다 다른 거였나.
네. 그래서 로모 크레디트도 따로 만들고 싶었어요. 기종이 무엇이며 언제, 누가 찍었는지 등의 정보를 담은. 탤런트 추소영씨랑 코요테 빽가씨 사진도 있고. 이 의미를 커버로 생각한 것은 야자수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오아시스나 휴양지의 느낌이 있는데 그 위에 떠있는 낙하산을 타고 있는 남자가 위태로워 보였어요. 「청춘 표류기」 같은 곡의 가사 같은 느낌이 있어서 쓰게 되었죠. 로모는 보면 항상 아마추어 같잖아요. 거칠지만 대충 찍어도 뭔가 잘 찍은 것 같고. 그게 청춘인 것 같기도 해요. 필름과 카메라에 따라서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어느 하나 계산된 작품이 나올 수 없거든요.
이번 앨범이 상처를 다독여준다, 힐링을 받는다는 피드백이 많았는데.
물론 그렇게 들어주시면 저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긴 한데요, 제가 생각하는 힐링의 첫 번째는 자기 고백인 것 같아요. 멘토의 것도 아니고, 좋은 도서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는 없거든요. 잠시는 좋을 수도 있어요. 커피 한 잔의 여유처럼 잠시 여유와 즐거움은 생길 수 있는데 청춘과 자아 발견은 그 어떤 멘토와 선배의 이야기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잖아요. 그 과정 중에서 첫 번째는 완벽한 자기고백이지 않을까 싶어요. 거울을 보든, 벽을 보든 아니면 이불 속에서, 머릿속에서 그냥 이래저래 하나라도 정리하는 것이 저는 힐링의 최소한 반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특별한 인생과 삶을 산 사람이 아니면 스무 트랙이 모두 제 이야기 때문에 한 두 개씩은 같은 경험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저 같은 경우에도 어렸을 때를 되돌아보면 난 지금 기분이 굉장히 더러운데 “다 필요 없어. 너 지금 괜찮아. 힘들어 하지마” 이런 선배들의 조언보다 앞에 있는 친구가 “그치? 나도 지금 엿 같거든”이라고 해주었을 때가 더 후련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왜들 그리 선생님을 찾는지 모르겠어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치유 능력도 대단한 것이 청춘이거든요.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에너지를 존중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 실패하기 싫은지 올바른 길로만 가려고 하는지 선생님들만 찾는 게 아쉽기도 해요.
이 시대 청춘에게 정말 필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청춘 마케팅이 나오면서 청춘 본연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왜 계속 아프라고 하죠. 안 아프면 뭐 청춘이 아닌가요? (웃음) 특별한 뭔가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너지를 강요하고. 어련히 알아서들 잘 사는데. 그리고는 결국 자기 이야기는 안 해요. 자기 혼자 아프지 왜 남들보고 아프라고 그래. 특정 인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거에 휩쓸려가는 현상이 싫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나이트를 가서 부킹을 하는 게 낫고 술을 더 마시는 게 낫고 차라리 못된 짓을 하나 해서 자아성찰의 기회로 삼는 게 낫지. 이 앨범 내고 인터뷰 같은 데서 “이 시대 청춘들에게 한 마디!” 같은 질문들이 들어오는데 “내 청춘 이야기를 한 거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고 그래요.
이지형을 성장시킨 앨범을 꼽아보자면?
저는 뭐 너바나의 < Nevermind >. 그게 제일 좋아요. 「Smells like teen spirit」가 제일 좋죠. (웃음) 뒤돌아 생각해보니. 커트 코베인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이 노래가 제일 잘 빠진 곡이지”라고 (웃음) 그거하고 동물원. 동물원은 방황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저를 다독여주면서 잡아준 음악이 동물원이고. 앨범 중에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수록된 앨범 있잖아요. 그 앨범으로 그냥 인생을 들은 것 같아요. 김광석은 모든 앨범이 다 좋고요. 아 비틀즈도 좋고요.
사진 : 이한수
정리 : 김반야, 이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