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을 때는 그만큼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음을 의미한다. 중견 연주자로서 조금은 늦게 자신의 첫 정규앨범을 발표한 박상은의 <박상은의 대금-바람에 젖다>가 그렇다. 따지고 보면 완전한 첫 앨범은 아니다. 박상은은 “과거 <은혜에 둘러싸여>라는 앨범을 발표한 바가 있다”고 고백하며 살포시 미소 짓는다. 하지만 CCM 앨범인 <은혜에 둘러싸여>가 그녀의 신앙을 담은 것이라면 <박상은의 대금-바람에 젖다>는 오롯이 그녀, 박상은만의 대금 연주를 보여주는 첫 앨범임에 분명하다.
연주는 인생을 풀어 넣는 과정
앨범을 사이에 두고 조용한 카페에 마주한 그녀는 그런 평가를 뒤로 한 채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후회는 없다”고 한다. 충분히 고민했고, 모든 것을 담았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터뷰는 그렇게 담담하면서도 간간히 유쾌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첫 앨범을 발매한 소감은 어떠세요.
음, 감회가 새롭죠. 굉장히 신중했기도 했고 좋은 것만 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작기간도 길었어요. 곡의 콘셉트를 정하는 데도 2~3년이 걸렸죠. 사실, 녹음과정도 한곡하고 한동안 쉬면서 충전하고 또 한곡 하는 식이었어요. 그렇다고 녹음을 많이 한 것은 아니에요. 한곡 당 2번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거든요. 그 이상 하게 되면 억지로 짜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죠. 부족하고 아쉽고 그런 감정은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악, 그 중에서도 대금이라는 악기에 대해서 솔직히 일반인들의 인식은 막연하기만 합니다. 어떤 특징을 가진 악기인지요.
국악 안에서 대금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악기에요. 멜로디를 구성하는 악기가 보통 피리와 대금 정도거든요. 그리고 국악기 중에서 어떤 악기는 민속악에 주로 쓰이고 어떤 악기는 궁중악에 주로 쓰이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대금 같은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 쓰임이 많아요. 하지만 그에 비해 대중들에게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 악기이기도 하죠(웃음). 이제까지 연주자들이 그런 노력은 많이 안했던 것 같아요. 사실 대금만한 음색은 드물어요. 두꺼운 쌍골죽의 관을 타고 흘러나온 소리기 때문에 깊으면서도 바람소리가 섞인 음색이 나죠. 그리고 다른 악기와 구분되는 대표적인 것이 ‘청소리’에요. 대금의 청공에 청이라는 얇은 막을 붙이는데, 약간 높은음이나 강조할 부분에는 부드러움 가운데서도 날카로운 음색이 우러나오거든요. 그런 음색을 가진 악기가 세계에 별로 없어요. 외국인들은 그런 소리 때문에 대금을 신기해하고 좋아하죠. 저 역시 그런 대금의 음색 때문에 이 길을 선택했고요.
앨범에 들어가는 곡들을 연주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에피소드가 있다면?
다른 음반들은 기획을 하거나 콘셉트를 맞춰 곡을 받거나 하는데, 저는 몇 년간 관객들의 반응과 음악적 깊이 등을 고려해 선택했어요. 그리고 곡마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지 않고 버무렸죠. 사실, 그것을 통합하기가 힘들긴 했어요(웃음). 어떤 것은 전통, 어떤 것은 크로스오버, 어떤 것은 현대적인 연주라고 할 수 있죠. 이게 무슨 장르냐 했을 때는 딱히 어디에 속한다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단지 대금으로서만 들려줄 수 있는 곡을 넣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곡이지만 ‘인생으로 풀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모든 곡을 해석할 때 ‘이 부분은 인생의 어느 부분을 보여줘야지’라는 식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서 통일감을 줬죠.
대금에 빠진 열다섯 소녀
그녀가 대금과 처음 만난 것은 열다섯,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한다. 대개는 팝송이나 대중가요가 전부였을 사춘기 어린 소녀가 어떻게 대금에 매료된 것일까. ‘운명’은 이런 순간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많은 연주자들이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열다섯이란 나이는 다소 늦은 편이었을 듯 한데요.
그때는 아니었어요. 요즘은 국악고등학교 들어가려면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한다고 하지만, 저희 때는 대체적으로 중ㆍ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경우가 많았어요. 물론 가야금 같은 경우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고 대금도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었으니 빠른 것도 아니었죠. 중학교 때 우연히 대금 연주를 처음 듣고는 막연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울 길을 모색했으니까요. 그 전까지는 합창단이나 성가대 활동을 하는 정도였지 악기는 전혀 다뤄보지 못했거든요(웃음). 그저 사춘기 어린 마음에 막연히 첼로 같은 악기 하나를 배우고 싶어 했던 상황에서 우연히 대금을 만나게 된 거죠.
대금의 어떤 점에 마음을 뺏겼는지 궁금한데요. 평소 국악에 관심이 있었는지요.
사실 국악을 잘 몰랐어요. 저 역시도 TV에 국악채널 나오면 으레 다른 채널로 바꾸곤 했으니까요(웃음). 그런 제가 국악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대금 하나만 보고 접근한 덕분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연히 대금 소리를 실제로 들었는데, ‘내가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그 몇 초 안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음색이 나는지 너무나 신기했죠. 그러다보니 대금을 불게 됐고요. 국악은 국악고등학교 들어가서야 제대로 접했는데 생각보다 멋진 음악이 너무 많더군요. 물론 지금도 그 국악 안에는 저하고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국악에도 종류가 너무 많으니까요. 어쨌든 대금을 통해 국악을 알게 됐고 지금은 ‘이런 멋있는 음악이 한국에 있구나,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안도하고 있어요.
수련 기간 동안 대금 연주를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네요. 스승에게 사사 받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제 경우는 달랐어요. 중학교 때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주변에 국악고등학교를 가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어요. 선생님께도 국악고에 갈 거라고 하니까 ‘네가 알아봐라’는 말 뿐이었죠. 국악고가 국립인데도 그 정도 인식이었어요. 전국에서 딱 100명을 뽑던 시절이었는데 관심 있는 사람만 알던 시절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국악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대금을 하겠다고 하니 손가락도 짧고 몸이 말라서 안 된다며 다른 악기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자퇴한다고 했어요(웃음). 그때만 해도 ‘나는 대금을 배우러왔는데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결국엔 제 의지 때문에 대금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학교에서 처음 했던 말처럼 신체적인 한계가 대금을 배우는데 장애가 됐나요.
처음에는 되게 힘들더라고요. 손가락도 짧고, 폐활량도 못 받쳐주니까요. 처음 테스트를 할 때도 호흡이 달렸음에도 제가 하겠다고 고집 피워 한 건데 힘들긴 했어요. 조금만 많이 불면 손가락이 저려왔죠. 그런데 역시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되더라고요. 연습량이 많으니까 되더군요. 친구들끼리 누가 먼저 연습하나, 학교 문을 누가 먼저 여나 경쟁했어요. 심지어 수위 아저씨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누가 남아 있는지를 내기하기도 했죠(웃음). 그렇게 열정적으로 해서 그런지, 그 이후로 소리가 약하다는 평은 못 들어봤어요.
훈련을 통해서 핸디캡을 극복한 경우군요.
그렇죠(웃음). 남자 부럽지 않은 톤을 갖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는 뿌듯했죠.
처음 대금에 입문했을 당시부터 수련 기간을 거치시는 동안 대금과 자신이 하나 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단계가 있었을 듯한데요. 연주자로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단계가 많이 있었죠. 사실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자신만만했어요. 내가 대금을 좋아하는 만큼 잘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KBS국악관현악단에 들어가고 나서 한 3년간 슬럼프를 겪었어요. 이정도 하면 잘하는 줄 알았는데 더 잘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깨달았죠. 그 후로 ‘내가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많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공부하는 심정으로 연주하고 있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깨닫는 것도 많았던 것 같고요.
연주자가 완성되기 까지는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만의 감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다양한 예술 분야를 좋아했어요. 한동안 대금을 하면서도 재즈음악에 빠져본 적도 있고, 또 오빠가 미술을 했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을 다닐 기회도 많았고요. 집에서 자취할 때는 벽에다 그림을 그려놓고 감당을 못했지만, 그래도 그런 걸 좋아했어요. 글도 써보고, 책도 좋아하고, 그런 부분에서 되게 도움을 많이 받아요.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책 읽고 전시회 다니며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저는 그런 경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연주에 녹아들게 마련이죠.
한평생 연주자로서 살아가고 싶어
연주자로서 고민은 지금도 끝이 없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식부터 시작해 스스로 연주의 깊이를 더하는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연주자의 삶에 힘을 더해주는 것은 역시 가족이다. 연주자로서 그녀의 바람을 듣다가 문득 가족에 대해 묻자, 진지했던 표정에 순간 미소가 머금어졌다.
연주자로서 목표 설정은 계속 될 듯한데요.
요즘 고민을 많이 해요. 앨범이 나오니까 고민이 더 되더라고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그것으로 소통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나이 50~60세까지 대금을 잘 불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앨범이 나오고 기량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제 2의 인생은 대금과 연관된 어떤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끝까지 좋은 연주자로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부분으로 소통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모색하기도 해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저런 교훈도 생기고 인생에 있어 노련해지면서 대금과 연관해 이야기로 풀 수 있는 콘텐츠를 구상하기도 하고요. 남편과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나누죠.
갑자기 남편께서는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예술을 하는 분들에게 배우자의 역할은 꽤 중요할 듯한데요.
전혀 다른 분야에 일을 하고 있어요. 직업을 떠나서 인품이 좋아요. 잘 만났죠. 왜냐하면 음악 하는 사람들은 좀 예민하잖아요(웃음). 또 남편은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그것 때문에 반했죠. 제가 너무 바쁜 와중에 ‘어떤 그런 느낌이 필요하다’ 그러면 필요한 책을 권해주기도 하고요. 힘이 되는 조력자죠. 그리고 언제나 소통하는 것이 장점이에요. 우리 남편은 음악도 잘 모르고 국악 하는 사람도 모르고 아무튼, 이쪽 세계를 몰라요. 그럼에도 발이 넓어서 대중들이 생각하는 시각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조언해주고, 넓은 시야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7살 딸, 4살 아들, 정신없어요(웃음).
아이들도 어렴풋 엄마가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것 같은데요.
국악 중에 가곡이라는 게 있는데 대금으로 불기가 힘들어요. 그걸 아침마다 톤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불고 나가요. 제 스스로의 관리차원이죠. 아이들은 어떨 때는 ‘아 좋다’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시끄럽다’고 할 때도 있어요. 음반 틀어놓을 때는 흥얼거리면서 따라 하기도 하죠(웃음).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접하는 것이 정서에도 긍정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그렇죠. 음악 중에서도 국악의 깊이 있는 곡들 접하게 하는 것이 좋아요. 부모들이 몰라서 못하시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아침에 가곡하는 것도 아이들이 일어나서 멍할 때 들려주기 위해서예요. 물론 본격적으로 연주자가 된다면, 글쎄요. 말릴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전통적인 음악이지만 시대에 맞는 새로움도 추구하실 듯 한데요. 이번 앨범도 그렇지만, 연주자로서 본인은 어떤 시도를 하고 있나요.
요즘 크로스오버가 많아요. 개중에는 ‘우리도 이런 음악 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국악의 깊이 있는 곡들이 대중에게 어렵다면 좀 더 연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는 대금 연주자로서 대금의 깊이 있는 것들을 정성껏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노력한 만큼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국악도 좋은 음반들이 많아요. 대금 역시도 중심을 잡아가며 대금만 할 수 있는 것들, 좋은 것들만 보여줘도 정말 너무 많거든요. 그런 것들을 천천히 보여주고 싶죠.
그 시대의 음악은 당대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국악이 그렇지 못한 상황이 꽤 오래된 것 같네요.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시나요.
사실 요즘에는 국악계도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굉장히 많이 만들고 있어요. 개중에는 가요인지 판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파격적인 것도 있죠. 지금 노력을 하는 과도기적 시기에요. 바람이 있다면 접근을 다양하게 했으면 한다는 거예요. 국악에도 정말 여러 분야가 있거든요. 서양악도 시대적으로 구분해서 듣는 마니아들이 있잖아요. 국악 역시도 그런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국악인들이 노력을 많이 해야죠. 연주장도 반드시 국악전용 연주장이 아니라도 다른 음악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도도 해봐야하고요. 저의 경우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시는지 바람을 말씀해주신다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는 연주자이길 바라요. 그런 것을 염두하고 연주를 하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가 되려면 저 스스로도 마음이 동해야 되요. 그런 열정을 많이 채워서, 무슨 연주를 하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자로 다가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