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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황두진, 출퇴근 시간 줄여 삶의 질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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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난민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다보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하고 점점 직장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 수도권 지역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담은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그럼에도, ‘뜬다’는 지역에는 빼곡하게 마천루가 올라가고 사람들은 빚을 낸다. 누구의 잘못이라 하기엔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건축가 황두진은 건축가가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별 건물이 갖는 도시적 논리’를 따져본 것. 아파트 시대 이후의 대안으로 그가 내놓은 것은, 바로 ‘무지개떡 건축’이다.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이란 ‘중층고밀도주상복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최소 3단계, 건물과 길이 만나는 저층부와 사무실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층부, 건물과 하늘이 만나는 상층부로 나누는 개념이다. 이 상층부에 거주 공간이 있어 직장과의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다면 개개인의 삶의 질은, 당연히 훨씬 좋아질 것이다. “이것이 사회에 잘 뿌리내렸을 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그의 말에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한 도시를 상상해본다. 그 ‘동네’는 무척 생기가 넘치는 곳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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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후


최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평균 시간이 2시간 46분이라는 보도가 있었어요. 책에서도 삶의 질을 확실히 높이는 방법은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개념이 이 대목에서 특히 시사하는 바가 참 많습니다.


서울도 따지자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예요. 출퇴근 시간이 짧으면 최고겠죠. 통상적으로 교수, 평론가가 아닌 기성 건축가가 책을 쓸 때 몇 가지 방향이 있을 텐데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건축에 대한 담론을 쓰시죠. 이번 책은 그런 책은 아닌 거예요. 어찌 보면 사회에 제안을 하는 거니까요. 어떤 분들은 그게 뜻밖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시는 것 같아요. 국내에 건축가가 제안하는 방식의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요. 저도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내용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 부분이 제 개인 경험이에요. 굉장히 특별한 경우긴 해요. 아주 극단적인 경우니까 이걸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인 경우가 갖는 나름대로의 보편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추출해서 쓰려고 노력했어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여러 정책이나 사업들이 있죠. 문화센터나 공원을 짓는 식으로요. 그럼 뭐하냐는 거예요. 집에 가서 쉴 시간이 없는데요.(웃음) 어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든 하루에 출퇴근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이 넘어갔을 때 10년을 더하면 거의 학위 하나 딸 수 있는 시간을 길에 보내는 셈이잖아요. 물론 그 시간이 완전히 무의미한 시간은 아닐 수도 있지만요. 문제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도시라는 것이죠. 그것이 이런 책을 쓰게 된 발단이었어요.

 

기성 건축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네 번째 책인데요. 저 역시 독자기도 하잖아요. 책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느냐는 거예요. 이 책 쓰면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 등을 사용하긴 했지만요. 기본적으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쓰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것이 제가 현실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기도 했고요.

 

도심 공동화 현상 등에 무척 일찍부터 관심이 있던 이유가 뭐였을지 궁금하네요.


학교 때 도심 공동화에 관심을 가졌던 건 솔직히 말해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잘못된 학문적 문화 때문이었어요. 서울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도심 공동화를 얘기할 정도가 아니었는데요. 보통 공부할 때 미국 책을 가지고 하잖아요. 미국 도시는 도심 공동화가 너무 심하니까 서울에도 이 현상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예요.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국 같은 상황은 아니었죠. 어쨌든 일단 그때는 범죄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도심 공동화란 텅 비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위험해지는 거니까요. 이후 공부를 할수록 도심 공동화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란 걸 알게 됐어요. 도시 만들기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면 미국식, 유럽식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제 책은 유럽식 도시 만들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책입니다. 사실 미국의 도시 만들기는 배울 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자본이 도시를 만드는 방식에 불과하고, 에너지의 무한 소비를 전제로 한 것이 때문인데요. 게다가 지금 얘기하는 저성장 시대라면 더더욱 도심과 교외라는 사고방식에 기초한 도시 만들기는 현실적 의미가 약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무지개떡’ 개념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 같아요.


개별 건물이 갖는 도시적 논리가 중요하다고 봤어요. 단독 주택 그 자체가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유형인 건 맞아요. 거주자가 많지 않고, 토지 밀착형의 삶을 산다면 정말 아름다운 유형이죠. 그러나 도시에 직장이 있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산다면 결국 그런 단독 주택은 도시를 끊임없이 수평적으로 키워 나가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인 거예요.


모두들 아파트 시대가 갔다고 말하는데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제가 보기에는 다 답이 아니었어요. 이제는 단독 주택의 시대다, 하는 게 헤드라인으로 뜨기도 했는데요. 너무 사회적 관점이 결여된, 오직 개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이었죠. 이것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대안이 무엇인지 얘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했고요. ‘무지개떡’이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하거나 짧은 글을 쓴 건 5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오다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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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유형, 무지개떡 건축


‘비워야 쾌적하다’든가 건물에 공극이 많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원래 우리 건축, 한옥에 많이 있던, 우리가 갖고 있었던 모습이에요. 의문점은 이것들이 왜 제거되는 방식으로 흘러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이후 담론들이 사회적 맥락 없이 진행되는 이유도 궁금하고요. 이를 테면 건축적 마인드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건축가지만 냉정하게 얘기했을 때 건축가들이 그런 것에 대한 합리적인 관점을 제공했느냐에 대해서도 자신이 좀 없는데요. 왜, 를 생각하면 이건 비단 건축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 전체가 그렇게 사회적인 사고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고요. 그 중에서 건축은 미학이라는 너무나 좋은 출구가 있어요. 미학 이야기 자체가 즐겁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잖아요. 그 얘기를 하면 모두가 행복한 거예요. 땅의 깨달음, 하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관점만 갖고는 우리 현실이 갖는 여러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다는 거죠. 맞는 말이지만 좀 찬물 끼얹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건축 쪽에서는 좀 안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아주 젊었으면 안 썼을 책이 아니었을까 싶어요.(웃음)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게 문화나 사회적인 소프트웨어와 잘 결합해야겠죠. 이것이 사회에 잘 뿌리내렸을 때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생각을 나누고자 한 것이에요. 여전히 집을 짓는 것 자체는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주는 행위기 때문에 개인이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무지개떡 건축을 가장 잘 지을 수 있는 행위 주체라고 생각하는 건 현재로서는 사회적 기업 같은 것들인데요. 좋은 부동산 개발 주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해요. 개발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리 넓게 생각해도 제 영역은 아니기 때문에 상식선에서만 언급을 했어요.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이란 말씀에 공감이 돼요. 어쨌든 요즘은 개인의 주거 문제가 큰 화두고 그에 대한 논의도 많아지면서 협동조합 같은 방식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 안에서 ‘무지개떡 건축’이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이에요. 이제 협동조합법도 만들어져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인 것 같은데요. 협동조합 주택은 개발하는 방식, 소유하는 구조에 대한 방식이고, 무지개떡은 하나의 건축적 유형이니까 이 둘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어요. 협동조합 역시 거주하는 분들이 100% 그 건물 안에서 자기 일을 할 수는 없겠지만요. 예를 들어 저층부에 어떤 상업 시설이 있고, 중층부에 사무실이 있고, 상층부에 여러 주거 세대가 있을 수 있는 건물이라면 그 중에 저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 자유직에 계신 분들은 건물 안에서 일을 할 수 있고요. 자기 사업체가 아니라도 그 건물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봤을 때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건축 유형이죠.

 

핵심은 복합, 결합이네요. 책에서도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죠.


이것이 하나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죠. 부동산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 이 논리를 받아들여서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지었을 때 보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으로 연결된다면 가장 좋겠어요. 그것을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단순 개인의 집합체든 고민해서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된다면 굉장히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게 어떤 것이냐를 설명하는 데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져 있고, 잘 어필할 수 있는 건축물로 카사밀라(Casa Mila)를 생각한 거죠. 워낙 유명하면서도 아무도 그 건물을 이런 관점으로 보지 않았는데요. 들여다보면 보편적인 유럽 도시 주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든요. 이 관점에서 카사밀라가 아주 좋은 예죠.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건축물, 토지가 부동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다른 상상력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 같거든요. 사회가 부동산을 건축학적 시각으로 보는 게 어떻게 하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게 사실 제일 어려운 거예요. 일반 시민들이 건축가들처럼 조직화된 관점을 갖길 기대하기는 사실 힘들잖아요. 관심 갖고 살아야 할 분야가 이 사회에 워낙 많고요. 여러 분야를 기본적으로 알고 살아야 하지만 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들만큼의 관점을 가지라고 하기는 어려운 거죠. 결국 이쪽에서 만들어서 전달해줘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시장에 통용됐던 부동산 상품 유형 중 건축가가 만들어낸 유형이 어디 있을까 물으면 사실 없다고 봐야 하거든요. 그 어느 것도 어떤 건물들이 도시 여러 곳을 점유하게 됐을 때 그 결과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도시일 것이냐를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여전히 아파트는 1층을 못 팔아서 난리고요. 그런 점에서는 제가 한 번 세상에 유형이라는 걸 던져보자고 생각했던 거고요.


무지개떡 건축을 ‘중층고밀도주상복합’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주상복합이라는 용어 자체가 갖고 있는 오염된 느낌이 있죠. 우리나라에 바람직한 주상복합은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책에 몇 가지 사례를 들기도 했지만 건축적 가치가 그리 높지 않아서 이런 걸 지으라고 얘기는 못하겠고 그래서 책 쓸 때 좀 답답했어요. 잘된 예를 보여드리면 참 좋겠는데 말이에요. 오히려 그 답답함이 이 책을 써야겠다고 분발하게 만들기도 했죠.

 

아파트를 ‘단지라는 섬으로 분절된 중세적 상황’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게 무척 인상적이에요.


여러 챕터 중 쓰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던 게 아파트 단지를 해체하면 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아파트 살고 계신 분들 입장에서는 아주 불편한 얘길 수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통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다시 말해서 도시는 건물 못지않게 거리가 중요한 거예요. 아파트 단지의 가장 큰 문제는 그 거리를 없앤 거죠. 건물과 거리의 관계가 없어지니까 단지 안에 들어오면 평화가 있는 것 같지만요. 실은 단지 내부의 모든 모순을 외부로 방출하는 시스템이죠. 모든 건물은 길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지개떡 건축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각론으로 접근하는 건 별로 효과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신, 도시가 좋아?’라고 물었을 때 주저 없이 ‘좋아’, ‘밀도가 좋고, 거기서 생기는 경제적, 문화적 활력이 좋아’라고 하면 이 사람이 거의 100% 도시인이거든요. 그 100%짜리 도시인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세대도 아니에요. 실제로 도시 출신이 아닌 분들이 대부분이고요. 이 책은 그런 도시인들이라면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도시인이 아니고, 이런 데 살기 싫다고 한다면 그만인 거죠.

 

도시 안에서 아파트라는 건축 형태도 이제는 역사가 꽤 됐잖아요.


아파트의 품질은 올라갔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측면에선 그런데요. 하나의 건축 유형, 건축적 생각 측면에서 보면 한국 아파트는 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가 훨씬 개념적으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단지 내에 수영장 있는 아파트도 있었고요. 상가아파트들도 꽤 많이 있었거든요. 낙원상가도 주거층으로 올라가면 가운데 엄청나게 큰 중정이 딱 있고 벽면에 큰 부조가 있고 아주 멋있어요. 지금 그런 거 하나도 안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했을까 하면요. 자기 집 안에서는 지금 형태가 최고였기 때문이에요. 남향이 좋죠. 개인의 행복이 늘어나는 게 사회적 행복까지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파트예요. 개별 유닛 안에서의 아파트 환경의 질은 아주 높아요. 그건 부인할 수 없어요. 편리하고, 햇볕 잘 들고, 경치도 좋고요. 그걸 모았을 때 형태라는 것이 군대 병영과 뭐가 달라요? 거기 사회적 가치가 없는 게 아파트의 가장 큰 비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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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해야


친환경의 허상을 짚어낸 부분도 주요한 지적이에요. 도시가 오히려 친환경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죠.


국내나 해외 강연을 할 때 항상 강조했던 건 집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는 거였어요. 개인적이고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똑같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방은 180도 다르게 나올 수 있어요. 개인 입장에서야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사는 게 친환경적인 삶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죠. 집합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참 쉽지 않은 문제예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게 다 틀렸다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받아들여지는 책이에요.


『도시의 승리』라는 책에서 그 얘기를 해서 반갑게 읽었는데요. 지금 중요한 건 도시 문제, 농촌 문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 아무리 도시라 해도 시민 대부분이 교외에 살고, 건물이 다 단일용도 건물이라면 그건 그렇게 도시라고 하기 힘들죠. 어느 정도 평균적 밀도가 되고, 복합이었을 때 비로소 교외 인구를 다시 도시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도시는 별로 크지 않게 유지될 수 있는, 그것이 소위 그린 시티가 될 확률이 높아지죠. 유독 뉴욕이 그 성격이 강해요. 뉴욕은 도심 공동화 거의 없어요. 시내에 사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복합 건축물도 굉장히 많고요. 노인들도 그 도시를 안 떠나요.

 

그럼에도, 도시와 친환경에 대한 논의가 결합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친환경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개별 건축물에 소위 친환경 성능을 높여주는 거죠. 이것이 물론 중요해요. 지열, 태양열을 쓴다든지 하는 방식이요. 당연히 중요한데 대부분 시장에서 친환경 논의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다 그쪽뿐이에요. 산업이니까요. 얘기한 것처럼 복합과 밀도, 두 관점에서 도시를 만드는 건 산업처럼 안 보이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갖는 친환경적 기여도는 개별 건축물의 성능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거예요. 굉장히 매트리스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인데요. 결국 기업들이 움직여줘야 해요. 비즈니스적 체감이 태양열 패널 만들어 파는 것에 비해 약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두 가지 접근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친환경 건축에 대해 얘기할 때 어떤 유형이 등장하는지 자세히 보면 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 유형으로 발표를 해요. 아무리 그렇게 해봐야 단독주택이 건축 유형일 때는 거기서 절약한 에너지를 다 사회적으로 소비해버리고 말 거예요. 아파트 같은 것에 어떻게 이걸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훨씬 더 보람 있고,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하는 건물들이 보편화된 도시에 살면 따로 헬스클럽 가서 운동할 필요도 없겠죠. 결국은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구글에서 ‘서울시 옥상 면적’으로 검색하면 정말 재미있는 자료들이 나온다. 2015년 1월 9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서울시 전체의 옥상 면적은 166제곱킬로미터로 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 여의도(2.9제곱킬로미터)의 무려 60배 정도다. (중략)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한 가구당 47.4제곱킬로미터(14평)가 조금 넘는 숫자가 나온다.(121~122쪽)

 

도시의 밀도가 조금 더 높아져도 된다고 하셨는데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일어나길 바라는 현상은 서울을 비롯한 국내 도시들이 작아지는 거예요. 저밀도로 펼쳐 나갔던 것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오면서 평균 밀도가 2.5층에서 5층 정도로 올라가고 다시 회복된 땅에서는 농업, 임업을 하거나 해서 생산하는 자연으로 해주면 우리가 도시 안에서 조금 과밀하게 살아도 인근에 자연이 있으니까 괜찮겠죠. 도시가 작아지는 게 지금 시대에서도 필요한 생각인 것 같고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좀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 시급하게 요구됩니다.


지금 총량적으로는 건물을 지을 만큼 다 지은 사회고요. 인구도 거의 안 늘기 때문에 기존의 도시에 무지개떡 건축을 도입하는 방식 상당수는 아마 고쳐서 만드는 걸 겁니다. 개조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요.


신축으로 이걸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라면 그게 평화로운 남북교류라고 생각해요. 교류가 일어나면 인구도 늘어날 텐데 그 인구를 이런 아파트에 수용할 수는 없다는 거고, 그때 이런 고밀도 복합 도시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그게 상당히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한국 상황에 맞고요. 전 세계 수많은 도시 중 우리처럼 이렇게 지형이 있는 도시는 별로 없어요. 때문에 옥상을 잘 활용하는 게 더군다나 말이 돼요. 옥상에 마당을 만들면서 거주자로 하여금 주변에 있는 산을 볼 수 있게 하고, 지붕 모양도 적절하게 공명을 줘서 마을이 모여 있는 것처럼 되면 그 지붕의 곡선이 멀리 산과 함께 만들어지는 풍경이 지극히 한국적이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요. 지금 올라가면 다 깍두기 같잖아요. 저는 파주 헤이리 같은 곳도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게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어쩌면 그렇게 지붕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했을까 하는 거예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옥상은 거의 전원에 대한 대안이다, 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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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현실 인식

 

집이 개인의 사적 재산 안에서만 인식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말씀하신 아이디어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긴 하잖아요.


인구 감소 현상이 곧 올 거예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상당수가 미분양이고, 드디어 범죄가 들끓기 시작하고, 밤이면 인적이 끊어져서 단지 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해지게 되면 개인이 이 선택을 안 하면 안 되게 될 거예요. 유럽은 기존 주거 단지들에서 인구가 빠져나가 이걸 어떻게 하느냐가 온 사회의 큰 관심 중의 하납니다. 일본은 푸드 데저트(food desert)라고 해서 근처에 식료품 가게가 없는 지역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어요. 노인들이 장을 못 봐서요.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오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 그쯤 되면 이것이 문화적 선택 차원이 아닌 거예요.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해 너무 안이한 것 같아요. 항상 낙관적일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인구 감소, 저성장 시대에 살게 됐을 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책은 사실 무지갯빛 환상은 아니고 굉장히 처절한 현실 인식이 있는 거예요.

 

실제로 저자는 ‘목련원’이라는 극단적인 ‘무지개떡 건축’에 지내고 계신데요. 장점 외에 단점은 없을까 궁금했었어요.


이 목련원은 제가 관리하기는 너무 커요. 저와 아내가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써요. 아직은 즐겁고 좋은데 저희가 훨씬 더 나이 먹었을 때도 이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못하죠. 여기는 마당도 있고, 너무 분산된 구조다보니 그런데요. 단일 건물이라면 한결 수월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통념상 직장과 집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 ‘멀리’가 ‘너무 멀리’면 안 되는 거죠. 적당하게 심리적인 거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좋을 텐데요. 그것도 어찌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소위 직장이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억압적이고,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가 않아요. 직장이 새롭게 변화한다고 했을 때 지금처럼 직장이 그렇게까지 멀리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죽기 전에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적어봤어요. 그때 생각하며 계획한 책이 제 첫 책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의 강남 버전이에요. 그 책은 주로 강북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거든요. 서초동 사무실 생활의 경험, 프로젝트하며 생긴 경험들이 있으니까 주변 지인들 얘기를 종합해서 강남에도 동네가 있다, 이것이 소중하다, 갈아엎고 그러면 안 된다, 는 얘기를 해볼까 해요. 아파트 단지가 동네로 작동한 이야기도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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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떡 건축황두진 저 | 메디치미디어
저자는 도시 역사나 사회학 등 인문적 지식과 건축공학, 개인체험을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한국 도시만의 해법을 찾는다. 한옥 연구도 ‘다공성’,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수학한 황두진은 2000년부터 독립하여 서촌 골목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왔다. 2012, 2015년에는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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