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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나,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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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울었다. 잠깐 울먹이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자 남편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솔직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던, 아이 같은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모습이 돌연 그렇게 바뀌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이현주라는 사람의 삶과 고민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알코올 중독, 대마초 흡연과 구속, 자폐를 가진 아들의 육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딸과의 생활을 다 지나온 그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 생활을 여전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지켜봐야 할 것은 눈물 쪽이 아니라 웃음 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현주의 폭풍 같은 삶을 담은 책의 제목,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는 체념처럼 들린다. 어쨌거나 살아내야 했던 삶을 지탱하려면 이런 체념의 정서가 생명줄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감사와 희망,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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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주고 싶었다


솔직하게 적으며 치유가 됐다고는 했지만요.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어떤 결심이 있었던 건가요?


이렇게 다 얘기하면 어떻게 보실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래요. 그런데 제가 워낙에 많이 솔직해요. 이게 저한텐 이상한 일이 아닌 거예요. 적으면서 힘들거나 그런 게 아니었고요. 그냥 계속 발견을 한 거죠. 쓰면서 ‘맞아, 그때 내가 이랬구나’ 하면서 다시 한 번 발견하고, 힘들고 기억하기 싫어서 기억하지 않고 있던 거란 걸 발견했어요. 그것뿐이지 솔직하고자 해서 애써 적은 게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어? 안 힘들었어?’ 하는 반응이 도리어 예상 외였어요. 특히 주변에 신부님들 많이 계시니까 염려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책으로 나오는 건데 이렇게 솔직하게 적어도 되냐고 반문을 하시는 거예요. 다 아는 얘기 아닌가(웃음) 해요. 저한테 그렇게 이상하거나 힘들거나 한 일은 아니었어요.

 

이 ‘솔직한’ 글을 남편 김태원 씨나 딸 김서현 씨도 읽었겠죠?


남편에게는 글을 쓸 때마다 바로바로 보여줬어요. 남편은 만약 아침에 글을 안 보내면 ‘오늘은 없어?’했어요. 너무 재미있다고 기다리는 거예요. 딸은 읽기 싫어했었어요. 딸 이야기 중 제일 처음에 쓴 게 유치원 계단 이야기였거든요. 사람이 행복했던 걸 먼저 생각하게 되잖아요. 서현이가 어릴 때 아이에게 큰 울림을 받았던 그런 장면을 먼저 썼고, 나중에 안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썼죠. 서현이가 자살 시도한 날, 그날 낮에 제가 서현이를 안아주지 못한 그 이야기를 쓴 거예요. 딸 이야기를 슬프고 아파서 쓰지 못하다가 안아주지 못해 미안한 이야기를 적고 저는 이제 준비가 됐나보다 생각했거든요. 그걸 정말 뒤로 미루고 미루다 막바지에 썼는데 그날 딱 일이 생겼어요. 그러니 사실은 그게 버틸 힘이 된 거였죠. 그 다음에 오는 이야기는 사실 책을 안 내려고 그냥 솔직한 일기 형식으로 쓴 거였고요.

 

맞아요, 글이 뒤로 가면 약간 달라지거든요.


완전히 달라진 이유가 책을 안 내려고 했었기 때문이에요. 날짜만 적고 일기로 썼어요. 그러다 다시 책을 내기로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딸 서현 씨는 그렇다면 책으로는 아직 안 읽은 거예요?


안 읽었어요. 저는 특히 서현이의 자살 시도 이후에 서현이가 나오는 글을 꼭 봐야 한다고 했어요. 엄마가 염려가 된다고요. 그랬더니 자기 사적인 얘기 두 가지만 빼놓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남편과 딸에게 얘기를 했었어요. 설득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요. 우리가 아들을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잖아요? 그런데 딸이 우울증을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또 겪었어요. 지금 세상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알려주고 싶더라고요. 병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고가 너무 많으니까요. 이게 병이란 걸 알면, 마음에 지독한 감기가 걸렸다는 걸 알면 좋을 텐데 그걸 인지 안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 우울증을 알고 있는 것과 병이라고 인식하는 건 천지차이에요. 그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죠.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에 남편과 딸이 많이 수긍한 것 같아요. 심각한, 죽고 사는 문제니까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걸 확실히 알면 치료를 더 적극적으로 할 테니까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문제 등은 이제 큰 사회적 문제기도 하잖아요. 


필리핀 지인의 딸이 자해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엄마가 자기도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는데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괜찮을 것 같다고만 하고요. 얘기를 했죠. 안 괜찮다, 약 먹어야 한다고요. 정신과를 가야 하는데 정신과 가는 걸 꺼려해요. 제가 가야 한다고 했어요. 나도 이런 일 있었다고 얘기해주고요. 결국 그 친구도 한국에서 서현이가 갔던 병원에 가서 약 처방 받아 왔어요. 병이란 인식을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뼈저리게 느껴서 이야기를 쓰게 된 거예요. 이 책은 일반 독자 외에 장애인 가족 분들도 많이 읽을 테니까요

 

장애인 가족이 겪는 우울증이라는 게 또 중요한 부분이겠네요.


그렇죠. 아이는 안 힘들어요. 우리 아이 같은 지적 장애나 자폐 아이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에 대한 적응이 떨어지긴 해도 자기 자신은 행복해요. 그 아이를 키우는 주변인이 힘들죠. 그러면서 우울증이 오는 거거든요. 책에 아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히느라 힘들었다고 표현한 구절이 있는데요. 진짜 가족들이 서로 괴롭히느라 힘든 거죠. 제가 하는 장애인 가족 캠프가 바로 그거예요. 처음 이 캠프를 얘기하면 ‘장애인’만 생각해요. 아니거든요. 우리는 가족 치유 프로그램이라고 하죠.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

 

내 문제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주변을 계속 보는데요. 나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큰가 봐요.


우리는 이제 편안해졌으니까요. 편안해졌으니 알려주고 싶은 거죠. 그것도 성향인가봐요. 저는 맛있는 거 먹으면 주변에 맛있다고 얘기하고, 화장품 좋으면 좋다고 권하고 그래요.(웃음) 물론 그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요. 그게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삶을 선택하게 할 수도 있는 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죠. 그 뒤를 생각하면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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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삶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같은 거죠?


네, 책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요. 결심을 하게 된 건 장애인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예요. 장애인 가족 캠프에 아들 우현이가 장수초등학교 다닐 때의 특수반 선생님이 3년 동안 함께 해주셨어요. 그 선생님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제자들, 제자 가족들, 장수초등학교와 주변 초등학교의 아는 사람들이 캠프에 왔어요.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와도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무서운 문제가요. 한 번은 캠프에서 큰 사고가 있었는데요. 우리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잖아요. 그러니 사실은 캠프가 굉장히 위험하죠. 그런 게 너무 힘들어서 책을 쓰게 됐어요. 책이 나오면 강연도 갈 수 있잖아요. 장애인 부모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는데요. 놀랐던 건 아이가 장애 있는 걸 가족들에게도 숨긴다는 거예요. 그런데 김태원 씨가 자기도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얘기를 하니까 우리 가족을 보고 힘과 용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질문이 한 시간 넘게 쏟아졌어요. 그때 용기가 좀 생기더라고요. 이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써도 괜찮겠다,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들 장애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저는 힘들었죠. 지금도 힘들어요. 계속 무너지면서 이만큼 온 건데요. 이제 시작하는 분들은 무너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한순간에 100%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빨리 받아들이면 편하거든요. 빨리 알면 아이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고, 아이도 바르게 클 수 있어요.

 

꼭 장애인 가족이나 주변에 장애인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상식선에서 인식이 좀 더 생겨도 훨씬 상황이 나아질 테죠.


우현이를 키우면서 생각했던 건 진짜 나는 행운이었다는 거예요. 힘든 점도 당연히 있었지만 우현이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손을 빨리 놓을 수 있었던 거죠. 서현이가 가장 큰 수혜자라고 얘기하는데요. 보통 아이를 엄마 욕심으로 키우잖아요.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만 하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죠. 저는 그걸 빨리 깨달았어요. 어떻게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요.(웃음) 서현이는 내 마음대로 다 됐거든요. 엄마 이전의 제 삶에서도 자신감이 넘쳤고요. 안 되는 게 없다,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아들이 태어나니까, 안 되는 거예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아예 안 쳐다보는데 뭐가 되겠어요. 우현이를 통해 그걸 너무 뼈저리게 체험하고 나니까 그 다음엔 부모로서 하는 것들도 바뀌었어요. 내가 장애 아이가 없더라도 부모로서의 자세 같은 것은 정말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아들 우현 씨를 키우면서 깨달은 기본적인 자녀 교육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언니한테 배운 첫 번째가 ‘천재가 아니다’(웃음)예요. 그걸 보고 나중에 나도 그래야지, 하고 간직을 많이 했어요. 두 번째는 ‘안 돼’, ‘싫어’라는 말 안 하기로요.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되려면 우선 부모 교육도 중요한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는 그런 얘기까지도 하고 싶더라고요.

 

책을 쓰는 도중에도 일이 또 터지곤 했잖아요. ‘이게 뭐지?’, ‘이건 또 뭐지?’ 했다고요. 정말 지칠 법도 한데 어떻게 이런 꿋꿋함을 갖고 있을까 싶었어요.


견디는 거예요. 죽을 순 없으니까요. 견디는 거지 특별한 힘이 있는 건 아니에요. 두 달 간의 여행에 대해 썼는데요. 왜 가려고 하는지 모르고 떠났지만 다녀와서 글을 쓰게 된 거고, 그러고 보니 내 모습을 돌아볼 힘과 용기가 생겼던 거죠. 솔직하게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내 모습을 다시 봐야 하는 게 두렵고 힘들었던 거니까요. 그 치유된 힘으로 또 서현이 일을 견딘 거고요.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견디도록 저를 이끌어준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는’ 거죠.(웃음) 저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사람이에요. 신앙 생활이 없었다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런 얘기는 김태원 씨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요.(웃음)


제게는 남편이 전부였거든요. 김태원 씨가 나의 우주였어요. 그래서 김태원 씨가 나를 더 사랑해줬나보다 생각이 들어요. 그 얘기를 어제 남편에게 했더니 김태원 씨가 “그랬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었지” 하더라고요. 안 그랬으면 자기도 죽었을 거라고요. 자기가 없으면 이현주가 죽을 것 같아서 자기가 더 열심히 살았대요.(웃음)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남편한테 많이 미안했거든요. 용서하지 못한 시간이 길었어요. 남편을 원망했지만, 많이는 할 수 없었던 게 저한테 너무 잘해줬으니까요. 그 고마움이 너무 크니까 감히 화를 낼 수가 없었어요. 정신병원에 있을 그때요. 그 상태로 10년이 흘렀던 거죠. 이렇게 화가 나 있었는데 몰랐다고 이번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를 했어요.

 

며칠 전 평소 태원 씨와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수사님을 만나 요즘 우리의 심정이 어떤지 이야기했다. 많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진 못하겠지만 수사님의 폭풍의 언덕에 대한 해석이 일품이었다. 폭풍에 다 씻겨 내려가고 나면 우리 몸과 마음이 다시 정화되어 정돈될 거라고, 그 폭풍의 언덕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중략)서현이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듯 우울증의 끝이 어딘지 알 길이 없다. 우현이의 자폐증도 알 길이 없어 그저 기다려온 세월이 우현이 나이 만큼이니 적어도 그만큼은 버틸 수 있으리라 믿자. 잘 자고, 잘 먹고, 잘 견디자.(170쪽)

 

눈물을 흘리셨는데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남편 생각만 하면 제가 요즘 울어요. 많이 미안해서요. 남편은 저한테 산소 같은 사람이에요. 없으면 내가 죽는데 그걸 모르고 있던 거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당연한 게 아닌데 말이에요. 남편한테 더 잘해줘야 하는데 맨날 통보나 하고 말이에요. 남편은 미안해서 그런 거거든요. 결혼해서 잘살고 있으니까 그만 미안해도 되겠지 했는데 딱 아들이 태어나서 미안할 일이 또 생겼잖아요. 저는 그걸 알고 이용한 거죠. 연애할 때 대마초, 약, 이런 것 때문에 미안해했다면, 결혼해서는 아들 때문에 미안해하는 걸 제가 아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다닌 거죠. 허락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저 고마웠죠.(웃음)

 

이런 이야기를 다 따라가다보니 제목이 참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제목은 사실 이해인 수녀님이 지어주신 거예요. 수녀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요. 미리 원고를 보시고는 “제목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나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가 좋겠다”고 얘기를 주신 거예요. 처음엔 제목이 ‘네버 엔딩 스토리’였는데 그 제목이 너무 흔해서 못했고요. 새로운 제목을 원했는데 마침 수녀님이 그 제목을 짚어 내신 거죠. 다들 제목이 좋다고도 하셔서 만족해요.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아마 독자들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신기하리만치 어떤 순간들이 다음 순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장면들을 보면서요.


저는 항상 보이지 않는 힘, 신앙의 힘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제가 필리핀에 가게 된 것도 그렇고, 세례 받은 이후의 삶도 그렇고요. 신앙을 갖게 되면 여정이 있어요. 걷기로 표현을 하면 계속, 끊임없이 걸어가는 거예요. 쉬지 않고 말이죠. 계속 걸어가는데 그러면서 성장을 하거든요. 그 과정은 따로 배워서가 아니고, 정말로 나는 기도밖에 한 게 없어요. 기도도 그렇게 열심히 한 게 아니고요. 그렇지만 어쨌든 하나님 안에서 살려고 했더니 그걸 알아서 해주시더라고요. 10년을 느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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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이현주라는 한 인간의 성장기로 읽을 수 있어요.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엿볼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그 순간들을 저는 힘들다고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폭풍의 언덕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것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을 때나 그런 말을 한 거죠. 남편 알코올 중독으로 힘들었을 때라든지 그럴 때요. 그 외에는 그야말로 그냥 버틴 거예요. 특별한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일인데요, 정말.


그러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지나왔나 몰라요.(웃음) 김태원 씨 사랑이 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더 사랑을 해줬으니까 가능했겠죠. 우리는 멀리 떨어져있어도 서로가 무슨 생각하는지 느낌이 와요. 말 안 해도 알고요. 그러니까 싸울 일이 없어요.

 

부모님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자녀들에게도 그 에너지가 전달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딸 서현이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잠시 어려운 시기가 있었죠. 엄마가 안아주지 않고 밀쳐내고, 아빠와 떨어뜨려놓고요. 제가 아들 우현이에게 집중하는 시기에 아빠와 서현이가 돈독하게 갖고 있던 걸 제가 필리핀을 떠나면서 완전히 다 없애버린 거니까요. 그래서 서현이가 힘들어지기 시작한 거거든요. 혼자 남겨진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요. 저는 서현이에게 또 이렇게 얘기해요. 그것 때문에 네가 가사도 쓸 수 있고 그런 거라고요. 소용없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요. 힘들었던 것들이 또 예술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6학년 때부터 작사, 작곡을 했으니까요.

 

정말 대범한 엄마네요. 딸에게 네 상처도 네게 의미가 있는 거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요.


저희 엄마가 대범하셨어요.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자신감 있게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아빠가 같이 스케이트 타고, 영화 보러 가고, 놀이동산 가고 그랬어요. 방학 때마다 늘 그러셨는데 그런 영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그 전에 남편 곁에서 겪어온 것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연애 기간에 너무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요. 제가 처음 남편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었느냐면 “태어나서 자기 주변 사람들처럼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은 처음 봤다”고 했어요.(웃음) 그러면서 전혀 알지 못한 다른 쪽 세상을 본 거잖아요. 한 마디로 음지를 많이 본 거죠. 진짜 남편 옆에서 너무 이상한 일들을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그런 강단 같은 게 생기기도 했겠죠. 10년 연애 동안 일어난 일 중 책에 적은 건 정말 만분의 1 정도예요.

 

그런 경험이 자녀 문제에서도 큰 작용을 했군요.


아이를 키울 때 그게 굉장히 좋게 작용을 많이 했었어요. 화를 내지 않는 부모가 된 거예요. 이해의 폭이 커지니까요.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하고요.(웃음) ‘그럴 수 있다’가 기본적으로 있으니까 화를 안 내는 거예요. 그게 많이 성공한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가 더 명심하고요.

 

다시 태어나도 같은 선택을 하며 살까요? 문득 궁금하네요.   


결혼을 한다면 김태원 씨와 할 거예요. 더 좋은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삶을 선택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른 행복하게 보이는 삶이 또 뭐가 있을까요? 다른 인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솔직하게 말하면 수도자가 되어보고 싶어요.(웃음)

 

앞으로도 장애인 가족에 대한 꾸준한 계획이 있으시죠?


장애인 가족 드림센터 같은 걸 설립하고 싶어요.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건 그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장애인 가족 치유 캠프뿐 아니라 상담 치유라든지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아요. 그런 것들을 한 센터 안에서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치유 받고,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고요. 쉼터, 심리치료실, 놀이실 같은 것도 만들어놓고요. 그게 만일 교육적으로, 정책적으로 가능하다면 좀 더 확산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하고 있는 대로 가지만 이런 캠프가 전국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전주 교육청에서 1년 기획으로 장애인 가족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거였거든요. 내가 하고 있는 걸 다른 곳에서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몰라서 못해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알리고 싶어요.

 

강연도 많이 해주시면 좋겠네요.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원하는 곳이 있다면 강연을 많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태원 씨를 많이 이용해야죠.(웃음) 얼마 전 공연에 아들이 함께 올랐어요. 좋아서 그런지 우현이가 자꾸 오바를 하는 거예요. 이제 그만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자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많이 보여줘서 인식 개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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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이현주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가족은 늘 함께해야 할까? 가족이기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가족 때문에 아프고, 가족 때문에 지친, 그래서 죄책감마저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이다. 힘이 들 때는 각자 마음 놓을 자리를 찾아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 이 가족의 이야기가, 가족이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하는 요즘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찾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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