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고물상을 하는 부녀가 있다. 딸 해미는 아버지를 ‘지창씨’라 부른다. 죽음에 관한 커다란 기억을 공유하는 이 둘은 그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며 자리를 지킨다. 무뚝뚝한 듯 애틋한, 좌절인 듯 희망인 이들의 일상을 그 자체로 ‘삶의 의미’라 이름 붙인다면 지나친 걸까. ‘열심’, ‘희망’, ‘의미’ 같은 단어가 이 소설과 과연 어울리는지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열심, 희망, 의미가 아니면 무엇이 열심, 희망, 의미인가. 예쁜 빛깔로 덧칠하지 않은, 이 삶에서 진짜로 도사리고 있는 민낯 그대로의 희망, 소설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며, 바로 그것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모두가 뒤엉켜 사는 곳, 바로 여기, 당신이 발붙인 그곳.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그저 구멍이 뻥 뚫린 채 있고, 내 손에 피 묻어 있지만 또 그대로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외롭지 않다. 모두의 손에 피가 묻어 있고, 그의 가슴에도 구멍이 뚫려 있으니. 그 사실을 말해주는 작가가 있으니 외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이 세상의 축소판인 ‘고물상’과 이 세상의 끝자리인 ‘유품 정리’의 현장에서 외로이 서 있는 주인공 해미에게도, 그러니 홀로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 건네고 싶다.
꼭 써야했던 이야기
먼저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웃음)
어떠셨어요? 수상 소식 듣고요.
너무 좋았죠. 저는 되게 좋은데 인사를 다니다보니 마냥 좋아할 순 없었어요. 안 만났던 친구도 만나고, 글 쓰느라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고 했는데 다들 상태가 안 좋아서요.(웃음) 오히려 만난 이후에 기분이 좀 가라앉았어요. 연말 같은 시기에 친구들을 몰아서 만나게 되는데요. 작년에도, 재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는 특히 이상하게 연말 같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수상 얘기보다 사는 얘기 하느라 좀 그랬어요.
좀 다른 얘기긴 한데요. 유독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도 주변 지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예, 이번에 심하게 그렇더라고요. 집에만 있다 사람들 만나기 시작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저도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거예요. 올해는 정말 심하다, 생각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어요. 언론에 나오지는 않지만 각자가 다들 제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했는데 제 또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요. 수상하거나 하면 술도 마시고, 축하도 나누고 하는데 이번엔 안 그랬어요. 밥만 먹고, 바쁘기도 해서 일찍 헤어지고요. 어쩐지 미안한 느낌이었어요.
책도 그런 느낌이거든요. 굉장히 애써 썼을 거란 짐작이 생기더라고요. 쓰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땠나요?
그게 느껴지나요? 몰랐으면 좋겠는데요.(웃음)
작가가 힘들었겠다, 이런 의미만은 아니고요. 정말 밑에 있는 이야기들이라 끌어내서 써야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을 했었어요. 수상 자체는 기쁜 일이지만 쓰는 중에는 아주 고됐겠다 싶었던 거예요.
쓰기 쉬운 얘기는 아니죠. 어려운 이야기였는데요. 읽은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고 빨리 읽힌다고 해서 저는 이렇게 말씀하는 걸 처음 듣긴 해요. 주변에 다른 일 하는 친구들이 많고, 저도 계속 문학 공부를 했던 게 아니라서요. 자비 출판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었어요.(웃음) 읽어줘야 하는데 재미있다니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읽힐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거든요. 그 고민을 제일 많이 했기 때문인데요. 이야기가 어둡잖아요. 저로서는 꼭 써야만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여서 써야했지만요. 그 지점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가볍고, 그러면서도 꼭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말이죠.
꼭 써야만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거기 나오는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에 관해서는 제 어릴 적 경험도 있고요. 그런 부채감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 건데요. 극복한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그게 제 이야기기도 해서요.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약간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 같기도 해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프셨던 경험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계속 아프셨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게 생각보다 오랫동안 저를 지배했던 거예요. 이 소설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고물상 얘기는 쓰고 싶었어요. 제 생각에는 이 시대 전체가 고물상이었어요. 이미 우리는 쓰레기가 된 거고요.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계속 사로잡혀 있을 순 없잖아요. 다들 지구가 쓰레기가 됐다고는 하지만요. 거기서 뭔가 건질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 거죠. 그런 생각으로 고물상 얘기를 시작했고요. 조사를 하다보니까 고물상 하시는 분들이 유품정리사 일을 함께 하시는 걸 알게 됐어요. 고물상이 열악하니까 그쪽으로도 많이 넘어가서 명함을 봐도 한쪽에는 고물상, 한쪽에는 유품정리, 이렇게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그 얘기가 제 안에 있던 과거 기억을 많이 꺼내더라고요. 그럴 수 있는 소재였던 것 같아요. 일단 쏟아 부으니까 쏟아 부어지게 되더라고요. 애초에 의도했던 건 아닌데 결국엔 이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었나, 이게 나에겐 과제였나, 이런 생각을 뒤늦게 했어요.
뒤집어 생각해보기
고물상이라는 상징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네요. 쓰레기가 된 세상이지만 어쨌든 살아내야 하는 것은 고물상 안에서의 작업과 아주 가깝게 닿아있어요. 고물상 얘기를 쓰려고 한 것도 그 이유일 텐데, 작가가 집중하게 되는 소재, 주제는 주로 어떤 것들일까요?
주로 어떤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들을 보는데요. 이게 왜 일어나는지 저도 모르게 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건 그렇게 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얘기가 아니라 분명히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얘기일 테니까요.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고민들을 많이 하게 돼요. 주변의 것이 극적으로 치달아 거기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글을 쓰기 전에도 혼자 많이 공상을 했어요.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됐을까 하고요.
한 번은 여고생이 도둑을 때려잡았다는 뉴스가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여고생은 유도를 하던 사람이었고, 도둑은 정말 비리비리한 남자였던 거예요. 우리는 그저 미담으로, 여고생이 용감하다는 말을 하는데요. 그게 아니잖아요. 이면에 뭔가 다른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다시 뒤집어 생각해보는 게 굉장히 재미있어요.
수학 전공 이력이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전에도 어떤 사건과 인물 뒤에 있는 이야기들을 늘 궁금해 했던 거군요.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계속 했던 거죠?
어렸을 때 계속 좋았던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늘 소설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지금은 물론 많이 달라서 영화나 다른 것들로 위로를 받지만 저한테 소설은 절대적이었어요. 언젠가 쓰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어릴 때 계속 책을 읽으니까 나중에 크면 방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 책을 놓고 읽어야지(웃음) 그런 상상도 했었어요. 대학을 가고, 직장에 다닐 때는 이쪽은 아닌가보다 생각을 했었는데요. 나이 먹으면서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게 있어서 쓰게 된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쓰겠다고 결심을 굳힌 때는 어떤 순간이었어요?
작가들이 비슷할 거예요. 저도 하루키 책을 읽고 마음을 먹었어요. 『상실의 시대』를 계속 읽었는데요. 하루키에게 내면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하루키와 장정일을 어느 시기에 걸쳐 읽게 됐는데 그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강의하는 것도 들었고요. 직장 다니면서 조금씩 써보는 형태였죠. 신춘문예에 도전을 하잖아요. 일 하다가도 생각이 나면 또 내보고 그랬어요. 끝까지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나이도 있고, 정말 포기해야지 했는데 그때 신춘문예가 됐어요.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진짜 포기하려던 순간에 등단된 것도 참 흥미로운 것 같아요. 정말 포기를 했다면 독자는 이유라는 작가를 못 만났을 테니까요.
저는 행복했겠죠.(웃음) 계속해서 발을 빼려고 하면 약간씩 입질이 오는 느낌 있잖아요. 최종심에 오르거나 하면 다시 해볼까 싶다가도 결국은 안 되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제 안에 있는 얘기들을 꼭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건 너무 진부한 거예요. 온갖 트라우마를 다 가지고 있는 인생이잖아요. 저로서는 어떤 강렬한 얘기도 재미가 없었어요. 내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그다지 끌린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내 얘기도 별로 재미가 없었고요. 그런데 오히려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는 다른 시각으로 이 삶을 바라봤을 때 내가 쓸 수 있는 게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번 장편에서 그런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작가가 역경을 이겨낸다, 이런 게 아닌 다른 관점으로 말이에요. 사실 이 소설도 그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쓰고 싶었어요. 나를 짓눌렀던 것을 다 쳐내는 작업을 더 하고 싶었는데 충분히 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움이 좀 있는 거군요.
네, 그랬다면 어쨌든 사람들과 공감한다는 면에서는 공감을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더 썼으면 했던 이야기들을 여기서 전해줄 수 있을까요? 아픈 부모를 둔 아이의 감각을 상상해보면 충분히 그것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말이죠.
그냥 기억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아프셨어요, 계속. 늘 흐린 날이었던 느낌이죠. 세상은 밝았던 적이 없고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쓰다 보니 소설에도 나왔는데요. 엄마가 아빠한테는 말도 못하고 엄마대로 아픈 상황에서 저한테 엄마가 병원에 갈 수 있게 아빠한테 말 좀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엄마가 그러면 제가 아빠한테 가서 눈치를 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을 해요. 물론 아빠는 좋아하지 않으셨고요. 처음엔 아빠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다 상황이 반복되니까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았던 거예요. 아버지도 너무 병원비가 계속 많이 들어가니까 힘드셨겠죠. 그런데 제게 그게 좋아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장면을 쓰고 나서는 조금 울었어요. 아빠를 계속 너무 미워했었거든요. 쓰면서 비로소 아이 심정이 아니라 어른 심정으로 보게 됐어요.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객관화시키는 작업들인데요.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처음으로 생각해본 거예요. 아빠도 결코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하고 처음으로 이해가 됐어요. 저 역시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아빠를 이해하는 것까지는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나왔던 장면인데 쓰고서 생각하니 아빠가 정말 이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서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구나, 싶었어요.
그냥 우리 모습
소설은 절망에 관한 이야기죠. 그런데 그 절망은 꽤 씩씩한 절망이에요. 그 점이 참 좋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어요. 특히 끝까지 아버지와 척을 지지 않고 살아나가잖아요. 두 사람이 크게 의지하진 않지만 상처를 공유하는 그런 것들이 저는 하지 못했던 것들이라서요. 저는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인물은 그랬으면 했어요. 그런데 제 아주 친한 친구는 주인공 해미를 보고 “이거 조증일 때 너잖아”(웃음)라고 하더라고요. 내면에서 곪았던, 아빠와 끝까지 화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렇게 그렸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저는 아빠와 결국 화해하지 못한 채로 아빠가 돌아가셨거든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강남 일대도 의미심장해요. 흔히 생각하는 강남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데요. 이야기는 그런 강남의 그림자 같은 이야기예요. 배경을 강남으로 설정한 이유도 있었을 텐데 얘기 좀 해주세요.
어릴 때 강남에 살았어요. 잘 살아서가 아니라 아빠가 하던 일이 망해서 강남으로 가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엄마도 아프시고 그러니까 상황이 좀 몰려있었는데 친구들은 다 잘 살았던 거죠. 여러 트라우마 중에 그것도 상당했어요. 살던 곳이 논현동, 영동시장 인근이었는데요. 사실 강남 특성상 대로변은 아주 넓고 건물이 늘어서 있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길도 좁고, 아파트나 대형 상가가 들어설 수 없어요. 중간 지역이 없죠. 지금도 그대로 골목 안에는 원룸이 몰려있고요. 제가 살 때는 수영장 딸린 주택들이 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못하더라고요. 강남이라는 곳이 화려해보이지만 그 골목을 들어가 본 사람이 없어요. 겸사겸사 이 공간은 자신 있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말씀처럼 그런 그림자 같은 느낌으로 쓴 거죠. 화려한 모습은 썼다가 다 뺐어요. 주인공 입장에서 그런 건 너무 가까이 있지만 결코 접할 수 없는 세계니까요. 그리고 강남이란 장소에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으니 그걸 굳이 쓸 필요도 없었고요. 힘을 줘서 쓰진 않고, 가볍게, 옆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처럼 쓰는 게 소설의 감각하고는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결말이 무척 비극적이잖아요. 어차피 현실이라는 게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니고, 그것은 작가가 가지는 현실인식이기도 할 것 같아요. 잠시 행운이 잡히는 듯하다 손가락 사이로 싹 빠져나가요.
결말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어요. 내용도 전체에서 3분의 2정도는 뺀 거예요. 주인공도 남자였는데 여자로 바뀌면서 제가 투영이 되고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쓰기 시작한 거고요. 1년 넘게 붙잡고 있던 부분인데요. 묻지마살인 같은 게 많잖아요. 대로변 행인을 치고 간 운전자 기사를 접했어요. 그걸 보고 든 생각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거였어요. 혹시 이 사람에게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각자는 생각보다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어떤 무언가를 겪고 있는데요. 이 사람이 진짜 사람으로 행인이 보였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가정을 한 게 ‘사람으로’든 ‘사람이’든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면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랬을까 생각했어요. 그의 일상과 아픔을 생각했기 때문에 소설 마지막 장면은 꼭 있어야 하는 거였어요.
결국 나는 가해자면서 피해자고요. 나는 그걸 잘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또 희망하는데요. 그 모습이 그냥 우리 모습인 것 같아요. 어쩌면 소설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저를 발견한 것 같고요. 우리는 그저 구멍이 뻥 뚫린 채 있고, 내 손에 피 묻어 있지만 또 그대로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것이죠. 누가 ‘그렇다면 작가로서 어떤 비전을 이야기할래?’라고 물으면 주인공의 태도를 말하겠죠. 파도가 언제 날 덮칠지 모르지만 거기서 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어쨌든 살아나가는 태도요. 굳이, 굳이 여기서 희망이라는 걸 찾자면 그런 모습일 거예요. 책에 있는 허리케인 파티처럼요.
“허리케인 파티라는 게 있대.”
해미가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뭔데?”
지창씨가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지었다.
“태풍이 가장 세게 몰아칠 때를 기다렸다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담도 크네.”
“태풍이 절정에 이르면 꼭 지구가 죽음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것처럼 느껴진대. 그 순간을 기다렸다 파티를 하는 거지.”
(중략)
“인생을 완전 쫑내는 파티지. 그래도 멋지잖아. 사람들이 지하대피소에서 숨죽이고 있을 동안 촛불을 켜고 수영복 입고 미친듯이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거야.”(200쪽)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가요?
당연히 저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요. 지금 당면한 문제를 고민해요. 내재해 있다가 나타나는 현상들은 사실은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 거잖아요. 당장 보이는 모습들이 이상할 뿐이죠. 그런 것들을 심층적으로 얘기하고 싶어요.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어쨌든 자기 일을 하지만 아프잖아요. 그걸 우리는 내가 왜 그런지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데요. 한 번 쯤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망가지고 있다는 걸 불편하더라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 거라고요. 지금은 그런 것에 많이 심취해 있어요.
말씀이 공감이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충격적인 뉴스가 쏟아지지만 그냥 ‘재생’해요. ‘잠시 멈춤’하면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게 발견될 텐데 말이죠.
너무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그런 기사의 댓글을 보면 자기가 뭔가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 일은 무엇 때문이라고 자기 입장에서 얘기하기도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요. 삶이 너무 다양하니까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못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어떤 부분이 닿아 있다면 이해할 수 있는 거죠. 댓글이 예리하더라고요. 그것은 어쩌면 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고, 과거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야기될 수 있는 걸 찾아서 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면서요.
참 힘든 일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봐야 하잖아요. 왜 그랬을까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렇지만 그게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재미없으면 못해요. 막상 쓸 때는 좀 힘들지만 구상하고 그럴 때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 구상하다가 엉뚱한 게 튀어나올 때 정말 행복하죠.
서로 잘 만났으면
인터뷰 초반에 다들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힘들고 바쁜 사람들이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어요. 실용적인 시대기도 하고요. 소설가로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작가가 문학을 하는 이유와도 닿아 있겠죠.
책을 많이 읽어달라, 이런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작품으로 보여주고, 나로서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고요. 잘 만나지면 좋은 거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잘 모르겠어요. 문학이 어떤 효용가치가 있는지 말이에요. 그걸 따진다고 만나지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이 의무감 때문에 뭘 하는 때도 아니죠. 다만 친구들을 보면 위로 받고 싶을 때 책을 읽으려고 하더라고요.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때 영화를 보거나 한다면 혼자 있는 시간, 조용한 곳에서 울고 싶을 때면 책을 찾는 것 같아요. 그때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서로 잘 만났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고 싶을 때 그런 책이 발견되면 좋겠죠. 바람이라면 그 정도예요.
잘 모르겠다는 말이 가장 솔직한 답이겠네요. 어떻게 어떤 용도를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저 눈에 잘 띄어서 그 시간만큼은 덜 힘들었으면 해요. 그 만남이 지금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나라 작가들 보면 정말 재기발랄하고, 저도 좋아하는 작가들 정말 많은데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소설은 진입장벽이 좀 높으니까 그런 것들이 안타깝죠.
구체적으로 지금 들려줄 수 있는 작품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올해 하반기에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에요. 이 작품 쓰기 전에 써놓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약간 장르 쪽이긴 해요. 그것도 사실 꼭 써보고 싶은 얘기였는데요. 좀 다듬어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로 단편을 좀 더 쓰고 싶어요. 바쁠 것 같아요. 계속 쓰려고 해요.
소각의 여왕이유 저 | 문학동네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와 유품정리사인 그의 딸 해미, 두 부녀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쓸모없어 함부로 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는 소중한 수단이 되고 또 그렇게 모여진 것들은 분류작업을 거쳐 쓸모 있는 것들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순환과정 안에는 비참한 세계에 기거하는 부녀의 일상, 그들이 꾸는 꿈의 다소 허황된 속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텅 빈 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갈 수밖에 없는 산다는 일의 슬픔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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