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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죄책감을 가진 엄마는 가정에 도움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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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만나 여자에 대해 말한다. 남성의 시각에 치우친 표피적인 이야기가 오갈 거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이 둘이 만나면 다르다. 한의사 이경제와 정신건강전문의 양재진, 그들은 현대의 2040 여성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연애, 결혼, 섹스, 일과 가족, 외모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고민들, 심리적 신체적 병리 증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아우른다. 이름하여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2040 여자들을 향한 돌직구 인생상담’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 속의 이야기들은 부지불식간에 훅 하고 폐부를 파고든다. 날카로운 시각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정평 난 저자들이니 낯설 것은 없다. 그들은 명쾌한 진단과 냉정한 조언을 들려준다.

 

서른에 접어들며 ‘안녕하세요’만큼이나 ‘결혼은 왜 안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는 여성들에게 “왜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미혼 남녀 또는 비혼(非婚) 남녀를 괴롭히는 것일까요?”라는 문제제기는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함을 안겨준다. 모성애라는 단어로 포장된 희생을 강요 받는 여성들은 “모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견해에는 남성 우월주의의 가부장적인 시각이 깃들어 있어요”라는 말 속에서 통쾌함을 맛본다.

 

반면 “외적인 변화를 통해 타인의 관심과 칭찬을 받는 건 일시적으로 만족감과 우월감을 줄 수 있겠지만 자존감을 높여주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라는 조언은 뜨끔하다. 외모만 달라져도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이들에게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말을 못 하겠다고요? 그럼 지금처럼 상처 받으며 사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살짝 숨을 고르게 된다. 부인할 수 없는 그 사실이 아프게 가슴을 찌르는 까닭이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두 저자는 한국의 2040 여성들이 숱하게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들려준다. 공감에서 시작돼 위로와 성찰을 거치며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현대 여성의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여성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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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가진 엄마는 가정에 도움이 안 돼요


두 분이 함께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경제 원장님은 <황금알>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동치미>에도 같이 출연했고요. 이경제 원장님은 한방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융통성이 있는 분이시고, 저 같은 경우는 치료법에 정답이 있기보다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사회적인 현상, 특히 우리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여성이나 삶의 돌파구를 잘 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어요. 정신건강의학과적인, 그리고 한방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현대의 여성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다고 생각하세요?


과거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인권이나 권익이 굉장히 올라갔죠. 그렇다 하더라도 남녀평등지수로 보면 여전히 후진국이거든요. 세계 140여개국 중에서 90~100위권이에요. 물론 과거 서양의 경우도 심했어요. 지금도 결혼하면 성이 없어질 정도니까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건 더 심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여권의 신장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변화가 왔거든요. 길면 100년, 짧으면 수십 년 사이에 서서히 변화가 왔는데 우리나라는 불과 20~30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권리와 파워를 쥐고 있었던 남성들이 볼 때는 당황스러운 거예요. 달라진 여성의 권익 앞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 많이 느끼면서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강해졌던 것 같고요. 여성들의 입장에서도 급격한 변화 속에서 목소리를 내다보니까 조금 과격하게 표현이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가정 내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간과할 수 없겠죠.


이제는 경제적인 이유로도 맞벌이를 해야 되는 세상이 됐고요. 여성이 자아실현을 위해서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가져야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남자들의 마인드가 그걸 못 쫓아간다는 거예요. 결국 일을 하는 여성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거죠. 직장에서 일도 해야 되죠, 가정주부로서의 일도 해야 되죠, 거기다 아이 양육도 책임져야 되는 상황까지 돼버렸거든요. 남자들도 과거보다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남자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권력이나 파워 중의 일부분을 내어준 건데,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그걸 조금 얻은 대가로 훨씬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이 늘어났어요.

 

외모와 관련해서도 압박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압축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건 황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 그런 것들인 것 같아요. 외국이라고 해서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요. 남한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터치 하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해서 평가나 잔소리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좋게 이야기하면 정이라고 하는 오지랖에 거미줄처럼 얽매여있고요. 그렇다 보니까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아요. 예를 들면 회사나 조직 내에서 나의 옷차림에 대해서 평가해도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너 요즘 살쪘어’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허용되는 문화고요.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직장에서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도 너무 많은데다가, 거기에 더해서 자기 관리를 해야 돼요. 예쁘거나 날씬하지 않으면 사회적 패배자가 되는 것 같은, 혹은 약간의 잉여가 된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들거든요.

 

상당수의 워킹맘들은 아이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합니다. 여성들 스스로가 모성 신화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결혼을 한 후에도 일을 하려면 남편과 시어머니가 허락을 해야 된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죠. 남편이 결혼한 다음에 집안일은 안 하고 일을 하겠다고 해서, 그거에 대해서 부인이나 장인어른이 허락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잖아요. 사회적인 나, 직장인으로서의 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인생의 1/3을 차지하는데 그걸 왜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이 결정을 내리나요?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 일을 하는데 남편이나 시댁의 눈치를 봐요. 허락은 받지 않아도 된다 하더라도 눈치가 보여요. 아이까지 낳으면 양육도 부인이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리죠. 집안 살림도 부인이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었던 집이니까요. 당연한 걸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죄책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 죄책감 때문에 ‘얼마나 더 벌겠다고 아이도 돌보지 못하면서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월 250만원을 버는 워킹맘이 아이를 돌봐주는 아줌마를 고용했고, 그 분 월급을 드리고 나니까 20만원이 남았어요. 그러면 남편이 ‘얼마나 남는다고 일을 하냐, 직장 그만둬라’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 비용은 남편과 아내가 반반씩 부담하는 게 정상적인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드는 돈이잖아요. 그러면 부인이 일을 해서 벌어온 돈 중에서 130만원이 남는 거죠, 20만원이 아니고요. 그런데 많은 남편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그러면 부인이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기에 쫓아가요. 집안 살림과 양육이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맞벌이를 한다면 집안 살림의 책임은 반반이에요. 그리고 무슨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아이를 혼자 낳은 게 아니잖아요. 남편하고 같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건데, 돈과 노력이 필요하다면 반반씩 부담해야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모성 신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일부 남성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요(웃음).


죄책감을 가진 엄마는 절대 아이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지나친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이 될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안 써야 될 돈을 쓸 가능성도 크고요. 그래서 죄책감을 가진 엄마는 가정에 도움이 하나도 안 돼요. 남편이 자기 자식과 가정을 생각한다면 부인이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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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골드미스터’는 없는 걸까?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골드미스가 아니면 다 쭉정이냐’는 푸념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연 ‘골드미스’의 범주에 드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라는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3040 미혼 여성이 100명 있다면 골드미스의 객관적 기준에 해당되는 분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골드미스라는 것도 결국은 기성세대 혹은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만들어낸 거거든요. 옛날에 나왔던 올드미스를 미화한 것뿐이에요. 그런데 올드미스터나 골드미스터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결국 남자들의 시각인 거예요. 여자가 스물다섯이 넘어가면 어떻고 서른이 넘어가면 어떻고, 그거 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나름의 평가를 내리는, 굉장히 되먹지 못한 말들인데요. 그걸 여자들이 사용한단 말이에요. 골드미스에서의 골드가 의미하는 게 뭘까를 생각해 보면 남자가 바라볼 때 쓸 만하다는 거예요. 저 여자는 값어치가 있어, 아직 쓸 만해, 라고 평가를 내리는 말이 골드미스인 거죠. 여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면, 골드미스가 아니라 ‘커리어우먼’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여자’ ‘독신을 즐기는 여자’라는 표현이 나와야죠.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잘못된 단어나 개념을 여성들이 활용하지는 않는지, 그걸 가지고 여성들끼리 너는 골드미스냐 나는 쭉정이냐 하고 싸우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죠.

 

왜 결혼 안 하는지, 왜 애를 안 낳는지, 묻는 것에 대해서 “관심과 걱정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 던지는 사적인 질문은 언어폭력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건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거든요. 필수가 아니에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결혼을 하고도 어른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결혼하고 나면 왜 아이를 안 가지냐고 물어보고, 첫째를 낳고 나면 둘째는 왜 안 낳느냐고 물어보는데, 아이를 못 갖는 불임부부일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만나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아이를 가지지 않냐고 물어보는 게 언어폭력인 거예요.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아이를 낳았건 안 낳았건, 그걸 물어 보는 건 굉장한 실례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관심과 사랑이라고 포장된 오지랖이 있어요. 사실은 그렇게 관심도 없어요. 그냥 인사치레예요. 그런데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엄연한 언어폭력이죠.

 

그런 질문을 받는 사람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죠.


사람이 혼자 태어나서 혼자 살아가요.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서 가정을 꾸린다는 건 그 사람 인생에서는 패러다임 쉬프트예요. 혼자 사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왜 결혼하셨어요?’ 라고 물어보는 게 맞는 거예요. 예전의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언어폭력입니다’라고 말하다가 요즘에는 결혼하셨냐고 물어봐요. 결혼했다고 하면 왜 결혼하셨냐고 물어보고요(웃음). 대부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죠.

 

책에는 다이어트와 성형 중독에 대한 고민도 등장합니다. 이런 문제의 바탕에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자존감이에요.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나’ 이외에도 ‘남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나’가 있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가 있거든요. 대부분은 자기가 가진 시간과 노력과 열정과 돈의 많은 부분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에게 쓰고 있어요. 그런데 타인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에게 현혹되지만, 대화를 해보고 몇 번 만나다 보면 그 안에 숨어 있는 ‘내가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제일 투자하고 신경 써야 하는 건 ‘내가 바라보는 나’인 거예요. 그런데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 속에 숨어 있는 ‘내가 보는 나’가 들킬까 봐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를 더 키워요.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외모에 있어서는, 성형 중독이나 다이어트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나’가 커지면 외적인 변화도 따라와요. 성형수술보다 더 그 사람을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게 표정이에요. 스스로한테 자신이 있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감 있고 행복감이 충만한 표정을 짓는데, 그 표정보다 더 좋은 성형수술은 없어요. 자존감이 높다는 건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키워야 될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고요. 자존감을 제대로 키워 놓는다면 남들이 뭐라 하건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거죠.


그 외에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까요?


외모 이외에 다른 걸로 사람들의 시선을 옮겨갈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는 건 필요해요. 남들이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하는 거에 대해서 내가 신경을 덜 쓸 수 있게 하는 거죠.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찾아서 더 부각시키면 돼요. 단점으로 꼽히는 외모만 가지고 힘들어하지 말고요. 그러려면 나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관계 속의 나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요. 남편으로서 부인으로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자식으로서 형제로서, 그 관계 속에서의 나는 많이 생각하는데, 본연의 나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거든요. 자신의 장점, 단점, 성향에 대해서 알아가는 작업들이 필요하고요.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것도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 있거든요. 어떤 부분을 바라보고 부각시키느냐는 내 몫인 거죠.

 

<렛미인>에 출연하시면서 목격하신 바는 어땠나요? 달라진 외모만으로 자존감이 높여지는 건 아니었나요?


사실은 <렛미인> 시즌 1 때부터 출연자 선정을 할 때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외모가 변하는 게 본인 인생의 로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조건 반대했어요. 외모의 변화가 하나의 계기가 된다든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외모가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건 굉장히 좋은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렛미인>에 선정만 되면 모든 게 다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반대했어요. 외모라는 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여러 모습 중에 하나인 거거든요. 그런데 ‘외모만 바뀌면 내 인생이 다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의 수많은 부분 중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게 거의 다라고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힘든 현실을 사는 이유가 전부 외모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외모가 변하면 엄청 많은 것들이 바뀔 거라고 환상을 가지고 있다가, 사실은 조금밖에 바뀌지 않은 걸 보고 좌절하죠. 이 사람들은 뭔가 핑계거리가 필요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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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섹스하면 변태인 걸까요?


섹스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는 “익숙함을 깨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섹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섹스에서 여성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하나의 이유겠죠.


그건 잘못된 성교육 탓이죠. 남자는 선택하는 존재이고 여자는 선택 받는 존재처럼 여겨져 왔고 살아왔잖아요. 재미있는 게, 섹스 파트너가 많다고 했을 때 여자는 문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자는 능력 있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그런 차이겠죠. 남녀 역할의 차이와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남녀 성에 대한 고정관념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성교육들 탓이 큰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엄마들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교육은 별로 안 해주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콘돔 없는 섹스는 안 된다든지,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콘돔이 준비가 안 됐다면 준비될 때까지 강하게 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든지, 이런 중요한 이야기는 안 해주시는 것 같아요. 초경을 한다는 건 임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고요. 바꿔서 이야기하면 섹스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피임이나 성병 등등에 대해서 위험성이나 준비물 등을 알려줘야 된다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덮어놓고 하지 말라고 하죠. 음성적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그 안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사실은 양성화해서 ‘관계를 해도 된다, 대신 이렇게 해라’라고 알려주고 보호해줘야죠.

 

부부 사이에서도 성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는 여성들이 많은데요. 이유가 뭘까요?


남편한테 먼저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시도를 한 여성들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한 번이라도 거절을 당하면, 남자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큰 상처를 받아요. 정말 오랫동안 참다가 큰 맘 먹고 이야기했던 거기 때문에 그런 거죠. 사실은 남자들의 시각도 문제죠. 여자가 먼저 섹스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는다거나 리드하면, 그걸 즐기는 게 아니라 의심부터 하죠.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놀았길래’ 이런 생각을 하니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처녀막 재생 수술을 하는 거고요. 첫째는 잘못된 사회적 편견, 고정관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잘못된 성교육의 영향이죠. 여자가 먼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성적으로 문란했거나 문란한 혹은 지조에 문제가 있는 여자처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요. 남자가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여자는 가만히 있어야 된다고 잘못된 교육을 해주는 엄마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중요한 건 부부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 밝히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고, 상대방이 그런 걸 밝혔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죠.

 

섹스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다가도 자기 검열에 발목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 행위가 변태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자기검열은 교육에 의해서, 자신의 직간접적 경험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변태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오럴섹스부터 변태라고 생각하고요. 심지어 정상위를 제외한 나머지 체위는 다 변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반대로 애널섹스까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성관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걸 맞춰가는 거죠. 나는 정상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면 하지 않는 거고요. 내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상대가 요구한다면, 그럴 때 어색하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행위도 정상인 거예요. 정상이라는 게 하나의 기준점이 아니에요. 범위(range)예요. 그 범위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같이 맞춰가는 작업이 필요한 거죠.

 

이때에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거절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려움이 생길 텐데요.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거고요. 상대방이 뭔가를 요구했을 때 불편하거나 싫으면 ‘나는 싫다, 하지 않겠다’ 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돼요. 자기검열이라는 게 자기가 죽어도 지키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걸 깨는 게 두려운 건지 스스로를 잘 돌아봐야 되고요.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섹스란 어디까지인지’ 그 기준을 어디에 잡을 건지는 나 혼자 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상대방 혼자 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준을 잡는다면 그건 성폭력이 되는 거예요. 만일 상대방이 나의 거절을 못 받아들인다면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사람인 거니까요. 협의점에서 멈추는 거예요. 내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해줘야 되고요.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죠.

 

연인과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이별을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한데요. 이 모순된 심리에 대해 “그냥 나쁜 사람 좀 돼주면 안 될까요?” “그냥 욕 좀 먹으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지자고 하면 너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그건 비겁한 거예요. 사귈 때도 서로 동시에 반하지 않듯이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한 쪽이 먼저 마음이 식었을 거고, 먼저 멀어지기를 원할 거예요. 자신의 마음이 멀어지는 걸 스스로 느꼈을 때, 그리고 돌이키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거나 돌이킬 필요를 못 느낄 때, 그럴 때는 이별을 통보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죠. 그리고 이별 통보에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아직 나를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끌어내려고 한다면 어떤 짓을 하겠어요? 정 떨어지는 짓을 계속 하겠죠. 그건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질하는 거죠. 비겁한 거고 나쁜 거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해서 고민이라는 사연도 있는데요. 이런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나요?


여성에게 ‘착한 딸 신드롬’이 있다면 남성에게는 ‘착한 아들 신드롬’이 있죠. 보통은 부모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타고난 성향 자체도 그렇고요.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안도나 긴장도가 높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그런 생각 때문에 거절도 잘 못하고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요. 타고난 성향도 그렇겠지만 어렸을 적 환경에 의해서 그럴 가능성이 커요. 부모님,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엄마가 굉장히 무섭거나 냉정한 경우에 아이들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죠. ‘네’라고 하지 않으면 혼나니까요. 아니면 ‘네’라고 안 하면 엄마가 나를 버리거나 떠날까 봐 공포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20대 초중반까지는 부모님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게 통하죠. 서른이 넘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건 미성숙한 거예요. 스스로 바꿔나가야죠. 선택을 해야 돼요. 요구 받은 일이 힘들면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거고, 못하겠다는 말을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면 감당해야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이 책을 보시고 재미있다는 분들도 있고, 여전히 까칠하다는 분도 있어요(웃음). 너무 냉정하다는 분도 있고요. 기본적인 제 가치관이 그런 것 같아요. 본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진다는 거죠. 내가 어제 살아온 결과가 오늘이고, 오늘 살아온 결과가 내일이거든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내 인생이 변했으면’하고 바라고, 그래도 변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나의 모습은 이전에 내가 선택한 것들의 결과물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한 선택에 따른 결과는 이후에 나타날 거예요. 내가 선택한 것의 결과를 살아간다는 이야기이고, 결국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의미죠. 지금 현실이 내가 책임지기 싫은 모습이라면 오늘은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해야죠. 그래야 다른 내일이 올 가능성이 크겠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2040 여성들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2040 여성들 스스로 본인들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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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이경제,양재진 공저 | 세종서적
골드미스가 아니라 쭉정이 취급받는 것에 대한 분노, 중독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모습, 재미없는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 남자친구에게 의존하는 성격 등 결혼, 외모 집착, 일과 직장, 가족, 심리적 병리 증상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의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걱정해봄직한 것들이다. 이런 여자들의 치열한 고민에 대해 한의사 이경제는 호쾌한 평소 이미지대로 시원시원하고 간단명료한 진단을 내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재진은 똑부러지는 인상 그대로 조밀조밀 설명하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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