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이 눈앞에 앉아 있는데, 다른 인물 같았다. 『익숙한 새벽 세시』속 오지은은 ‘머뭇거리기 선수’ 같았는데, 눈앞의 오지은은 매우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가진 인터뷰이였다. 그는 질문에 답하기 전 종종 머뭇거렸지만, 틈이 길진 않았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하는 성격이 곳곳에 보였다. 배가 고프다며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키면서도 자책했다. “좀 참아도 되는데 결국 시켰네요. 이런 행동이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리광이 아직도 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책 속 오지은과 눈앞의 오지은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수 오지은의 두 번째 산문집 제목은 『익숙한 새벽 세시』다.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책을 샀다. 출간 한 달 만에 5쇄를 찍었다. “아껴 읽는다”는 독자평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가수 오지은의 팬이기도, 작가 오지은의 독자이기도 하다. 오지은은 2006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대학에서 서양어문학을 전공한 그는 음악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번역도 하고 날품팔이 기사도 썼다. 때문에 필자가 『익숙한 새벽 세시』를 ‘연예인이 쓴 책’이라고 분류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책이 연예인이 쓴 책으로 분류된 것에 생소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별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 정체성을 어떻게 두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자꾸 말을 끊죠?”
‘어른 적응기’라는 가제로 썼던 원고가 263쪽짜리 책으로 만들어졌다. 1981년생,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 오지은은 “별 뾰족한 수는 없는 책이지만 구멍을 감추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작가 후기를 썼다. 오지은의 자기검열은 올해도 어김없이 계속될 것이다. 스스로 어른답지 못하다며 자책하는 순간도 줄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독자는 그런 오지은의 모습 속에서 어른스러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진짜 친한 친구가 재밌게 들을 법한 이야기
12월 말에 책이 나오고, 한 달도 채 안 지났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마지막 원고를 보낸 후부터 음악인 모드로 바뀐 것 같아요. 오랜만에 곡이 나왔어요. 마치 부서를 옮긴 것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앨범 만드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시간은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이에요. 책 모드, 저자 모드는 마지막 원고를 보냈을 때 끝난 것 같아요. 남은 에너지가 있다면 전부 앨범에 쏟아야죠.
『익숙한 새벽 세시』는 오지은 씨의 두 번째 산문집입니다. 쓰면서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안하고 밝은 느낌입니다.
엇? 그런가요? 전 굉장히 긴장한 상태인데요.
그래요?
네. 저는 지금 ‘네! 옙’ 이런 느낌입니다.(웃음)
책을 내고 첫 인터뷰인가요?
그렇진 않은데요.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함의 극치예요. 처음 만나는, 전혀 의도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의도를 알 수 없다고요? 저는 지금 정확한 의도가 있는데요.(웃음)
하지만 이 인터뷰가 어떻게 쓰일지는 제 영역이 아니잖아요. 제가 뭔가를 던져줄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는 문제니까요. 만약 제가 머리가 좋다면, 인터뷰어와 줄다리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못해요. 저는. 그래서 굉장히 긴장한 상태입니다.
대개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면,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러면 안 되죠. 왜냐면 티가 나잖아요. 지면 하나가 돈이 얼마인데요. 지면을 저라는 인물로 채웠을 때, 그만큼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질문지를 다 짠 후, 오지은 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과거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패션 화보였어요. 왠지 화보 촬영은 어색해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떤가요? 새로운 작업도 즐기는 편인가요?
전혀 즐기진 않아요. 다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부터 찍었잖아요. 아주 아주 어색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이야말로 어색할 수 있지만, 지금은 누군가 ‘하나 둘 셋’ 하면, 노래할 수 있게 트레이닝한 상태예요. 사진도 그래요. 초반에는 어쩔 줄 몰라 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진 않죠. 제가 빨리 적응해야 모두가 빨리 퇴근하고 좋잖아요. 잘해봐야 저고, 못해봐야 저니까요. 할 수 있는 한 잘해야죠.
『지승호, THE INTERVIEW』에서 오지은 씨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 답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음악은 약간 이상할 때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글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오랜 시간 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했지만, 본업은 뮤지션이니까, 글은 조금 힘을 빼고 써도 괜찮지 않나요? 취미처럼요.
요령이 좋다면요. 하지만 저는 2년을 꼬박 바쳐서 이만큼, 겨우 요만큼 쓴 거라서요. 취미라면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겠어요. 게임을 하거나. 글을 취미로 쓴다는 건 상상이 안돼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의미는 어떤 걸까요?
음악은 흐트러진 마음 같은 데서 뭔가 나오기도 해요. 맨 정신으로 돌이켜보면 부끄러워할 마음 상태를 갖고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이래야 좋은 재료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를 무의식으로 몰아가기도 해요. 낙지처럼 늘어져 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은 이런 마음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늘어진 마음 상태로 글을 쓰면, 분명 다음 날 그 글을 지우게 돼요. 『익숙한 새벽 세시』를 쓸 때, 마지막 두 달은 거의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썼어요. 밤 9시, 10시에 자려고 노력했고요. 저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됐기 때문에 계속 글을 또 고치고 고친 게 아닐까, 싶어요.
가제도 『익숙한 새벽 세시』였나요?
첫 제목은 ‘어른 적응기’였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제한될 수 있는 제목이더라고요. ‘어른 적응기’라고 하기엔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한 것 같아서요. 어른이 이미 됐든, 될 생각이 없든, 아니면 어른과 전혀 상관이 없든, 새벽 3시와 익숙한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정할 때 많이 고민했는데, 그간 노래 제목은 되게 쉽게 정했더라고요. 용감하게 잘 지었더라고요. 새삼스럽게 생각났어요.(웃음)
요즘도 새벽에 자주 깨어있나요?
오늘은 새벽 5시에 잤어요. 오전 9시에 알람을 맞췄지만 최종적으로 일어난 시간은 10시입니다. 외부 생활이 흔치 않게 있는 시즌이라서요.
1월입니다. 새해라는 느낌은 있나요?
전혀 없어요. 책에 사인을 할 때, 2016년이라고 쓰는 생소함 정도요?
사인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물을게요. 독자나 팬들이 무척 서운할 이야기인데요. CD, 책에 사인을 할 때마다 버려질 것을 예상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사인본을 버리지 않는 팬이 더 많을 거라고 짐작하는데요.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서운해 하실 분도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점점 할 말이 없어져서요. 자꾸 방패를 치다 보면 할 수 있는 말, 해도 되는 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약간 섭섭해 한다면 미안해’ 그런 느낌으로 쓴 글이에요. 책을 준비할 때, 아무 것도 못 쓰는 시간이 있었어요. 할말은 너무 많은데 자꾸만 검열하게 돼서요. 써놓고서 ‘이건 의미 없을 거야, 자뻑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검열만 하다 보면 아무 글도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친한 친구가 재밌게 들을 법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오지은 씨와는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이니까. 저는 친한 친구가 아닌데요. 지은 씨의 글이 되게 재밌었어요. 특히 초반부 교토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글을 읽는데 교토 풍경이 떠올라서 좋았어요. 퇴근길에 책을 읽었는데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쳤어요.
우아, 감사합니다.(웃음) 음악은요. 누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뭐 누구누구는 싫어하고, 누구누구는 좋아할 수 있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직업인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글에 있어서는 제가 신참이니까요. ‘아 정말 괜찮아요?’ 하는 신인의 마음이 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 내 음악이 좋아? 정말 공감이 돼?’라고 묻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교토 여행을 떠난 시점이 결혼 후 한 달이 지난 때였어요. 달콤한 신혼을 즐길 때,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이 흔한 경우는 아니에요. 남편(스윗소로우 성진환)과 함께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친구랑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배우자와 모든 걸 함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걸 함께하면 좋지만, 모든 것은 아니에요. 이를 테면 제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너무 보고 싶은데 남편 스케줄과 안 맞아서 함께 못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못 본다? 하면 억울하잖아요. 이 영화를 나만큼이나 좋아할만한 사람이랑 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요. 다행히 남편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저를 이해해주는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분야는 약간 달라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제가 충족해주는 것과 그의 음악이 그의 팬을 충복해주는 방식이 달라요. 저는 팝가수 남편이라고 부르는데요. 남편은 조금 더 꿈을 파는 사람 쪽인 것 같아요. 제 음악은 꿈이 깨졌을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고요. 서로의 업계는 알지만,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겹쳐지진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만약 같은 장르의 음악을 했으면 작업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거슬렸을 거예요. “저 후렴구는 이렇게 불러야 하는데”라면서 지적할 수도 있고요. 서로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는 잘 알지만, 직접적으로 내 고생이랑 같지는 않아서요. 오히려 균형감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행히 그가 좋아하는 제가 이런 저예요. 그렇지 않다면 연애만 하다 헤어졌겠죠. 남편은 제가 안 그래도 되는 일을 자꾸 고민하는 성격,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요. 뭔가를 두고 꾸물거릴 때,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감사해요.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는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했어요.
뭔가를 하는 게 더 용감한 행동
책 프로필에 출생연도를 쓰셨더라고요.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굳이 나이를 잘 안 밝히는 세상인데요.
그래서 썼나 봐요.(웃음) 저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나이를 알면 재밌더라고요. ‘이 사람이 몇 살 일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짐작할 수 있어서요. 반면에 숨겨서 매력적이게 된다면, 오히려 그걸 드러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또 이 책은 나이와 관계가 있기도 해요. ‘36세 한국 여성은 이런 생각을 해’가 아니고요. 내 입장에서 35, 36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의 의미예요.
트위터에 종종 글을 올리시는데요. 책이 출간됐을 때 홈페이지 ‘지은닷컴’에 이런 글을 쓰셨더라고요. “트위터에서는 홍보랍시고 책 관련 얘기나 상황을 자주 쓰는데 얼마나 공해일까 싶기도 하고…” 글을 읽다가 픽 웃었습니다.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최근에 알았어요. 제가 자기검열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면 비겁한 일일 수도 있어요. 이미 민폐를 끼쳐놓고는 “민폐 끼쳤네. 죄송해요”라는 거잖아요. 하지만 검열만 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요. 그래도 뭔가를 하는 게 더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요. 하긴 하는데 어려워요.
간혹 “2년 전 내 글을 보면 낯간지럽다”는 저자들이 있어요. 동의하나요? 『익숙한 새벽 세시』도 2년간 쓴 책인데요.
지금 시점에서 낯간지럽고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글은 전부 뺀 것 같아요. 인쇄 전날까지도 계속 고쳤거든요. 작년 11월 말에 제게 통과된 글들이 살아남았어요.
마감 압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 지은 씨의 친구 분은 “마감 일이 지났어도 납득이 갈 때까지 작업하라”고 조언했어요. 지은 씨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았고 ‘번아웃신드롬, 탈진증후군’이라는 진단도 받았어요. 지금은 어때요?
많이 괜찮아졌어요. 번아웃신드롬은 일을 완성을 못 시키는 병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내 한계를 아는 게 정말 중요해요.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무조건 더 좋은 결과를 주는 게 아니라서요. 어떤 사람은 정말 잘해내지만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이게 용기더라고요. 한계를 뛰어넘는 게 오히려 너무 오만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책을 쓰면서 ‘내가 이만큼까지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한 달간 교토 여행에서 쓴 글이었나요? “외부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했을 때에는 실패했고, 바라지 않았던 순간에 얻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또 뭔가를 얻으시려는 모습이 읽혔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항상 놀랐어요. 스스로의 한심함에 대해서요.(웃음) 요즘은 “아, 또 이랬네?”하고 그냥 포기하게 됐어요. 20대 초반 패기가 많은 사람이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이런 사람이니까요. 후회를 해도 한 번에 코트를 두 번 사는 일이 앞으로는 없을 거라는 장담은 못해요.
만약 지금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고 가정할게요. ‘장점’이라는 빈칸을 채워야 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래도 조금은,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단점은요?
한심해요. 약간 진상인 것도 같은데요. 가장 자괴심을 느낄 때는 스스로의 이기심 때문에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끊임없이 할 때예요. 이 친구는 제 이야기가 엄청 재미없을 수도 있잖아요. 또 말실수라든지, 어색해 하는 것, 예민한 것도 단점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용서 받는 게 있다면 그게 너무 부끄러워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제가 용기가 난다면 인터뷰 영상을 볼 텐데요. 만약 기자님의 말을 끊거나 조리 있게 말을 못하는 장면을 본다면 스스로를 엄청나게 혐오하게 될 거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웃음) 오지은 씨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느낀 점이 있어요. “나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일, 대단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 안 해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맞아요. 항상 저는 회사원의 딸이라고 생각해요. 출근을 하지 않는데 벌어먹는 삶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린 게 얼마 안 됐어요. 오히려 무가치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이 강박을 조금 버려볼까 생각해요.
현재의 나를 위로 받은 기분
요즘 독자, 팬들은 눈치가 정말 빨라요. 저자가 조금이라도 겉멋을 드러내면 싫어하죠.
정말 무서워요. 정말 귀신같이 알아요. 음악을 할 때도 그래요. 가수가 자신의 음악에 취해서 부르는 것 같지만, 취하면 안 되거든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생각해요. 저는. 내가 먼저 울어버리면 남이 못 우니까요.
『익숙한 새벽 세시』를 읽은 총평은 이래요.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한 줄을 쓰고, 또 지우고. 그러다 이러면 아예 못 쓰겠다 싶어서 솔직하기로 작성하고 쓴 글. 독자들도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쓴 글이잖아요. 기왕이면 남에게도 가치가 있으면 좋잖아요. 또 돈을 받고 파는 책이니까요. 사실 이 책은 실패담을 읽고 싶어서 쓴 글이에요. 솔루션을 내주는 책 말고 실패담을 읽고 싶었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못 찾았어요. 저는 직장생활을 안 하니까 남들보다 시간이 많아요. 또 재주가 있다면 쓸데없는 걸 오래 생각하는 재주가 있어요. 누군가는 이별하고 빨리 잊을 텐데, 저는 뭔가를 길게 생각하고 곱씹고 음악으로 만들게 되는 인간이니까요. 베짱이가 사회에서 밥을 빌어먹는 방식인 거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단지 그들은 주구장창 생각할 시간이 없죠. 그러니까 압축적으로 음악이나 책으로 되새김질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고 과거의 나를 허락 받은 기분, 현재의 나를 위로 받은 기분, 미래의 내가 겪을 막막함을 미리 건네 받은 기분이었다”고 쓰셨잖아요. 지은 씨 말처럼, 만 원이 조금 넘는 돈, 500쪽짜리 글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책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렇다면 한심한 나를 잘 데리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덜 미워하고 덜 추해질까를 고민해야 해요. 이런 제게 하루키의 글은 고마운 존재였어요. 자신의 막막함을 털어놓는다는 게, 독자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가수 오지은의 음악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을 텐데요.
이제까지 해 온 노래들은 소위 뱃심을 많이 쓰는 음악이었어요. 사람을 '절규'라고도 이야기하는, 과한 창법을 쓰는 곡이 많았는데요 지금 준비하는 노래들은 낮은 음역대에서 힘없이 부르면서 더 슬프게 들리게 하려는 곡들이에요.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요. 책 띠지에 적은 문구가 다음 앨범 주제예요. “한줌도 되지 않아 꺼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고 하찭은 마음.” 어쩌면 이 책과는 대구가 될 수도 있어요. 청춘이 반짝이는 시절이라고 한다면, 이 반짝임이 없어진 후의 창작자에 대해 증명하고 싶은 게 있어요. 원숙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치부하고 싶진 않아요. 파도 타는 것 같은 감정의 격랑은 없지만, 격랑이 있어야만 음악이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안의 묵직함,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을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언뜻 들으면 쉽지만, 가사를 곱씹다 보면 약간 멈추게 되는 그런 류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하게 된다면 올해는 성공한 해일 텐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 힘을 갖기 위해 도망을 가야만 했던 것 같아요.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실제 나오는 일정과 상관 없이, 계획은 3,4월쯤이에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좋았던 작품이 있나요?
히가시무라 아키코의『그리고 또 그리고』를 재밌게 읽었어요. 일본 만화가의 작품인데요. 자기가 시골에서 그림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쉽게 읽히고 웃기지만, 사실은 엄청 묵직한 작품이에요.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뿐인데, 결실이 좋을 때 박수치게 되잖아요. 이 만화가 그래요. 올해 5권이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수많은 여행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오지은의 독자들은 오지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거예요.
새로운 한심함이 저를 괴롭히지 않을까요? 새삼 팬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사먹었는데, 예상한 맛이 아니었을 때. 새삼 놀라진 않겠지만요. 그래도 뭔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익숙한 새벽 세시』는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나이는 먹고 있는데, 자기가 꿈꿔온 어른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바보 같은 농담이, 트위터에 올린 귀여운 고양이 사진, 멍청한 드립 같은 게 삶을 구원할 수도 있어요.(웃음)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너무 노력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착해서 호구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넌 대체 왜 그래?라는 말을 들어도 웃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들. 도무지 자연스러워질 수 없는 사람들. 어두운 부분은 꼭꼭 숨기고 밝은 곳을 동경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사람들.
나는 기원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스스로의 아픔에 오히려 허용하고 있던 어리광, 이해받고 싶어서 오히려 세우고 있는 가시, 그런 것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부디, 있는 그대로 당신을 바라봐주고, 가끔 당신이 항상 빠지는 구멍에 또 빠져서 허우적댈 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구원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익숙한 새벽 세 시』 121~122쪽)
장소협찬: 카페 베를린
익숙한 새벽 세시오지은 저 | 이봄
그는 회색의 세계, 성장이 없는 세상, 단단하게 박힌 돌이 가득한 길을 용기 있게 대면하여 얻어진 것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은 세상이 하찮다 여긴 마음과 그런 작은 마음을 드러내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큰 외침의 방패막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가 체념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새삼 힘이 된다.
[추천 기사]
- 안민정, 중국인 남편과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상
- ‘대학로 대통령’ 손남목 “재미를 늘 고민하며 산다”
- 보컬코치 노영주 “노래를 얼마나 잘해서 휘성, 윤하를 가르쳐?!”
- 치유심리학자 김영아 교수 “나를 잘 대접하세요”
- 김경희 “부탄의 행복지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