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빵'이 오픈한 지 어느새 22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 무용, 영화 등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복합 문화 커뮤니티'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홍대의 대표적인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4년에 이대 후문 쪽에서 지금의 산울림소극장 주변으로 이사를 왔고, 클럽의 이름은 먹는 '빵'이 아니라 감옥 '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푸른 새벽', '이장혁' 등 초창기 멤버부터 현재 '코가손', '사람 또 사람'까지 아직도 '모던록'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지키고 있는 라이브클럽 '빵'.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라이브클럽들 사이에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을 하나 내놓았다. 8년 만에 네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 라이브클럽 빵 컴필레이션 4 >를 발매한 것이다. 관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조금은 휑한 공연장에서 김영등 대표를 만났다. 그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야윈 모습이었다.
현재 대중음악 씬에서는 '싱글' 발매 형식이 대세이다. 그런데 46곡을 가득 채운 '앨범'을 발매한 이유가 무엇인가?
빵 컴필레이션 앨범이 4번째다 보니까 음반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가 높아졌고요. 지금 빵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많기 때문에 싱글 방식보다는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D를 내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낼 것도 생각했지만 손에 잡히는 기록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4집이 무려 8년 만에 나왔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됐나?
버릇처럼 2, 3년에 한 번은 '올해는 꼭 낸다.'라는 말을 했어요. 결국 2015년 초에 결심을 했어요. 관객들 활력이 약해진 것에 어떤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3집과 달리 참여하는 뮤지션이 컨셉이나 주제를 알아서 정하고 각자 녹음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뮤지션의 자율에 맡겼고 마스터링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일렉트로닉 뮤즈 대표 김민규 씨가 했어요.
한때는 '클럽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지속적으로 발매가 되는 곳은 '빵' 밖에 없는 것 같다. 각 앨범이 가지는 의미가 다를 것 같은데?
빵 컴필레이션 1집은 제가 오히려 신의 유행을 따라가다 보니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당시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어서 '여자화장실'이라는 녹음실에서 장비를 빌려와 빵에서 녹음을 했어요. 클럽에서 레코딩을 했기 때문에 빵 초기 음악 스타일이 기록되어 있죠. 2집은 뮤지션들 각자 녹음해온 것을 취합하는 형식을 택했어요. 현재 '빵'하면 팬분들이 그리는, 어쩌면 빵의 근간을 이루는 이미지가 담겨 있어서요. 온라인 유통을 하지 않았음에도 반응이 괜찮았어요. 2004년 홍대로 이사 온 후 2007년에 3집을 발매했는데요. 이때는 인디 신이 전반적으로 탄력이 붙은 상태여서 앨범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카바레 사운드, 비트볼 등 여러 레이블과 협업을 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나네요. 그 수익으로 이번 4집의 제작비 일부를 충당하기도 했고요. 4집은 아무래도 현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크긴 한데…. 앞으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까요.
요즘 라이브 클럽이 참 어렵다. 끈기를 갖고 빵 운영을 지속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주변에 기업에서 하는 공연장들이 참 많이 생겼어요. 확실히 찾는 사람도 줄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강한 자가 오래가느냐, 오래가는 자가 강한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후자를 택했어요. 개인이 신념을 지니고 정진할 때 인디신의 활력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열심히 불태워보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산소호흡기로 생명만 유지만 하는 것보다는 달려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빵뿐만이 아니라 프리마켓도 진행하고 컴필레이션 앨범도 만들고요. 활동가들도 다시 모집하면서 새로운 지속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고민을 하는 것이죠.
분명 라이브 클럽만의 역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우연히 공연을 왔다가 특별한 신인을 보물처럼 찾아낸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인디 뮤지션들이 데뷔할 수 있는 경로가 많지만 예전에는 별로 없었어요.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에 많은 팀이 빵에서 오디션을 보고 활동했죠. 그래서 신인을 발굴하는 공간으로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빵 출신 밴드는 어디 가서 욕은 먹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쌈싸페(쌈지 사운드 페스티벌)'가 활발할 때도 빵 출신들이 많이 활약했죠. 넬도 있었고 김사월X김해원, 얄개들, 오지은도 기억이 나네요.
'빵' 오디션의 선별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잘한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는 팝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경향은 있지만 '느낌'을 가장 중시하는 것 같아요. '실력파 뮤지션', 물론 좋은 말이지만 연주는 잘하는데 개성이 없다면 팬들이 먼저 알아차리더라고요. 보자마자 느낌이 충만하다 싶었던 뮤지션은 원맨 밴드 '아마추어 증폭기', 부산에서 올라와 멋대로 노래를 부르던 '김일두'였습니다.
클럽 '빵'에서는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콜트콜텍기타 노동자들을 위한 '콜트-콜텍 문화제'도 계속하고 있다. 이도 다른 라이브클럽이나 공연장과 큰 차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록은 저항입니다. 최근에는 음악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일종의 순수문학으로 보고 '참여는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말이죠. 빵은 이 점은 예전부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를 흥얼거리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은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인디씬을 지켜봐 왔다. 현재 인디씬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반적으로 연주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계속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새로운 개성은 좀 정체되어 있는 과도기라는 생각은 들어요. 요즘은 많은 뮤지션들이 혼자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해요.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신스팝과 슈게이징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우는 예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겠죠. 단지 여기에 밴드만의 유니크한 색채는 꼭 필요하죠.
어렵지만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라이브 클럽의 활기와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라이브 클럽의 공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 '라이브 음악문화 발전협회(라음협)'가 설립되어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궤도에 이르고 나서는 이해관계 중심으로 운영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친목을 위주로 하는 소박한 활동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라이브클럽이 잘 되어야 더 많은 뮤지션에게 무대와 기회가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체나 마케팅에 의지하지 않아도 인디 생태 자체가 더 건강해질 거고요.
앞으로 클럽 '빵'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디씬 초기부터 몸담은 관계자들이 있잖아요. 19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40대가 넘었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자연스레 경험도 쌓였죠. 그것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꼰대가 아니라 친근한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이기찬
정리: 이기찬, 김반야
사진 : 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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