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심리 백과』는 구급상자 같은 책이다. 마음이 베이고 데여서 아플 때,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듯 펼쳐 보아야 한다. 응급조치를 해줄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를 위한 방법도 제시해준다. 그러니 『가족 심리 백과』를 상비해 놓고 있는 것은 주치의를 곁에 두고 있는 것과도 같다. 마음이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목차를 펼치고 자신의 증상을 찾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밥을 안 먹어요”, “아이가 저한테서 떨어지려 하질 않아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공부를 시켜도 따라가질 못해요”, “사춘기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가 온종일 게임만 해요” 같은 육아와 양육에 대한 고민부터 “왜 자꾸 나쁜 남자만 만나게 되는 걸까요”, “거절이나 싫은 소리를 못하겠어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어요”, “짜증이 많아지고 화가 나면 분노조절이 안 돼요” 등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에서 겪는 문제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심리 처방전’이 실려 있다. 노화와 죽음, 치매에 대한 두려움 등 노년 세대가 호소하는 괴로움에도 귀를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불안, 우울, 중독 등 다양한 정신적 심리적 증상과 부부 또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제목 그대로 ‘마음을 위한 백과사전’인 셈이다.
그러니 정신과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을 끌어안고 있을 이유도, 자신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이나 네티즌에게 상담을 요청할 필요도 없다. 『가족 심리 백과』 안에는 10명의 정신과 전문의들이 토론을 거듭하며 이끌어 낸 ‘객관적이고 실효성 있는’ 해결 방법들이 담겨 있다.
『가족 심리 백과』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채널예스가 만난 주인공은 송형석 정신과 전문의였다.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위험한 관계학』, 『위험한 심리학』, 『까칠하게 힐링』을 통해 마음과 정신의 이야기를 쉽고도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무한도전>의 ‘정신감정 편’에 출연하며 족집게 의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10일, 서교동의 작은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가족 심리 백과』에 수록된 “촌철살인 심리 해법”을 공개했다.
3살이 될 때까지 어린이집에 보내지 마라? 정답은 없습니다!
책이 묵직합니다. 이렇게 많은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많은 분들이 (책을 통해) 의견을 내놓으시지만, 저희가 보기에는 너무 딱딱하게 쓰인 것 같거나 일생의 한 순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은 책들도 있었어요. 소아기에 대한 책들 중에는 『가족 심리 백과』와 형식이 비슷한 책도 많지만, 소아기의 문제만 가지고 인생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많이 겪게 되는 가족 문제가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가족 전체의 삶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고민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가족 심리 백과』를 통해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고민들을 보고, 자신의 인생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려 10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모여서 쓴 책입니다.
보통 공동으로 집필을 하면 각자 파트를 맡아서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전문가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서로 다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처음 출간을 제안했을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대답을 내보고 그걸 다 섞자’고 이야기했어요. 같이 회의를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평가하고, 잘못되었다거나 사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다 잘라냈죠. 그러면서 원고도 몇 번씩 다시 썼어요. ‘이 정도면 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견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다’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만 남기려고 했던 거죠.
대부분의 심리 서적들은 하나의 시기 혹은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연애, 결혼, 중년 등을 주제로 집필되었죠. 그런 점에서 『가족 심리 백과』는 차별화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심리학의 모든 요건이 상호작용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아이가 왜 이렇게 말썽을 부리죠?’라고 이야기하는 엄마가 있다면, 사실은 부모의 문제도 같이 봐야 해요.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 듣다 보면 그들의 조부모와 시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엮여있어요. 그런 부분을 동시에 보지 않으면 어느 한 쪽 편만 들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육아 문제와 관련해서 부모의 탓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면 잘못된 거죠. 그런데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각 나이대에 대한 고민들을 종횡무진 하면서 계속 연결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양육에 있어서 ‘애착’을 맺는 게 중요하다는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데요. 그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분들은 ‘세 살까지는 아이 곁에 있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하시고요. 정답이 있을까요?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참 애매한데요. 어린이집에 보내기 좋은 시기라는 게, 대개는 많은 선생님들이 평균적으로 관찰하면서 ‘이 정도 나이가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거거든요. 저도 예전에는 3세 이후의 아이들만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 전에 보내면 아이에게도 결핍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지금 사회 자체가 그게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1세라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너무 많죠. 그래서 요즘은 그때그때에 맞춰서 하시라고 말씀을 드려요. 엄마가 너무 힘든데 아이를 돌볼 수는 없으니까,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면 된다고요.
너무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 애정 결핍 또는 분리불안이 생기지 않을까요?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그 책에 보면, 애착 이론이 좋고 맞는 이론이지만, 애착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느라 어른이 가지고 있을 권력을 모두 아이에게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저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자인 다비드 에버하르드가 이야기하는 건,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연적 치유력이나 스스로 재건해 가는 능력을 믿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아서 그런 능력들이 형성되지 못하는 게 아니고, 어른들이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서 오히려 잘 안 될 정도라는 거예요. 공감이 가요.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전업주부로 살아야 하는 건가’ 하고 고민하는 엄마들도 많은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언제까지 아이 곁에서 애착을 형성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요즘과 같은 경우에는 1세 이후에도 가능하다고 보이고요. 18개월 이전에는 아이가 자기 의사 표현도 전혀 안 되고 너무 어리니까 불가능하고요. 3세냐 4세냐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봐요. 만약 분리불안이 일어났다면 그 시기가 지난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거고요. 분리불안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씩 떨어져 있는 시간을 늘리시는 게 좋아요. 분리불안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점진적으로 해야 되는 거거든요. 어린이집도 그런 식으로 이용하시면 아이들한테 큰 문제가 없어요. 아이의 심리적 반응을 무시하고 룰대로 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죠.
수업시간에 산만한 우리아이, ADHD일까요?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성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타고난 거예요. 대인관계 지능이 따로 있거든요. 다만 평소에 아이와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맺고, 그래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다면 대인관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요. 그리고 떼를 쓰거나 힘을 써서 상대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항상 대화와 올바른 행동으로 인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몸에 익어 있어야 돼요. 제가 대인관계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무조건 착해라’예요. 공격적으로 굴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으라는 거죠. 그렇게만 해도 다른 사람과 척을 지진 않죠. 그런데 착하기만 하면 바보로 볼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포인트에서는 자기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라는 거예요. 이 두 가지만 하면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사회생활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무리 공부를 시켜도 따라가질 못해요”라고 걱정하시는 부모님들도 많습니다. 이럴 때에는 지능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는 걸까요?
아이들이 교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할 때, 저희가 꼭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말씀 드리는 경우는 정말 뚜렷하게 (징후가) 보이는 경우예요. 예를 들어서 수학은 100점인데 국어는 0점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누가 봐도 (징후가) 뚜렷하다고 생각되시면 진료를 받으셔야 하고요.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면 정신과 검진을 한 번 받아보시는 것도 괜찮아요. 이건 심각하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에요. 소아과나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게 괜찮은 것처럼 똑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정신과 검진을 받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지능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건 잘못된 거고요. 분명하게 특징이 보일 때는 빨리 진료를 받으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검사를 해보시면 지능 문제나 산만함, 언어 장애 같은 걸 발견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4~5학년 때까지 미뤄두시면 많이 늦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서, 아이가 산만하면 ‘혹시 ADHD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죠. 부모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드니까요.
전체 아이들 중에 ADHD 아동은 5% 정도예요. 정신분열증이 1%니까 굉장히 높은 비율이죠. 보통 우리는 정신과적 문제를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감기처럼 흔한 거예요. 우울증만 보더라도 그렇죠. 그래서 이런 부분은 어릴 때 체크를 해 두는 게 좋은데요. ADHD 검사를 해보면 모든 항목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한두 개 정도에 해당되는 아이들이 15%예요. 그렇다 보니 의사들 사이에서도 ‘ADHD가 과연 병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죠. 정말 심각한 수준의 ADHD 아동들은 누가 봐도 병적인 증상을 보인다고 알 수 있거든요.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올라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예전에는 그냥 말썽꾸러기로 여겨지고 말았어요. 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죠. 하지만 현대 사회는 20~30대까지 꽉 죄어놓고 못 움직이게 만드니까, 산만하고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문제가 병인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ADHD를 병으로 불러야 되느냐, 사회가 만든 병인 것 아니냐, 라는 이야기들이 있는 거고요. 한편에서는 이미 사회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떻게 하냐, 라는 이야기들도 계속 오고 가는 거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해야 할 일들도 알려주셨어요. 그 중에 “아이의 태도를 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 “아이의 관심사를 공유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한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자꾸 하시죠. 저도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같은 말을 하겠지만, 사춘기에 해야 할 일은 공부만이 아니거든요. 10대 때 갖춘 취향이 평생을 지배한다는 건 정설에 가까워요.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그걸 방해하고 있죠. ‘이건 해도 돼’라고 범위를 정해주실 필요가 있어요. 공부만 열심히 해서 사회 제도권에 들어간다고 해도, 사회 제도권이 원하는 직장에 가기에만 유리한 거지, 제도권 이외의 직업을 갖는 데에는 쓸모가 없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지금 청소년들이 살게 될 미래에는 소규모 경제들이 계속 발생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의미가 없어지죠. 그런 세상이 오기까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다 막아서는 안 된다고 봐요. 자기 정체성 형성을 해야 되는 시기에 정체성을 파괴해 버릴 수 있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거든요.
비슷한 문제로 병원을 찾는 청소년, 청년들도 많이 만나셨겠어요.
10대 후반~20대의 환자들 중 절반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경우예요. 명문대를 가야 한다, 대기업을 가야 된다, 의사 변호사가 돼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렇게 살지 못하면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을 해요. 그들의 부모님과 이야기 해보면 그런 생각 밖에 없으세요. 대안이 별로 없어요. 자기 취향도 별로 없고요. 청소년기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인데, 정체성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내가 무엇을 더 좋게 여기는지, 무엇이 더 나의 것이라고 느끼는지를 알아가면서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거거든요. 문제는 한국 사회가 그런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자꾸 쓸데없는 걸 하냐고 말하죠. 그러다 보니까 주류의 것들만 소비해야 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것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 형성이 되어 있고요. 그런 사람들은 최고만 추구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 최고가 무엇인지 개념이 없는 거예요. 결국은 지금의 40대, 50대들도 그런 식의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들이라 아이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건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직장생활 스트레스, 나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심리적으로 아기가 처음 엄마를 만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연인을 만날 때의 기본적인 감정이 사실은 부모나 가족 같은 애착 대상자들한테 바라는 감정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요구를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부모와 있었던 감정 중에서 나와 해결이 안 된 감정을 상대방한테 해결해 놓으라고 하기도 하죠. 무의식적으로요. 예를 들면, 매일 남자친구한테 사과하라고 우기는 여자가 있을 수도 있고, 밖에서는 점잖던 남자가 집에 가면 아이처럼 칭얼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린 시절에 결핍된 걸 지금 이 관계에서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문제는, 처음에는 상대가 해결해줄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이 욕망하는 것 또는 결핍된 감정이 클수록 상대방이 들어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요.
또 다른 갈등의 원인도 있을까요?
아니면 서로가 욕망하는 게 정반대인 경우가 있죠. 한쪽은 자기만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데, 한쪽은 혼자서 아무 문제없이 편안하게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면, 만나서 매일 싸우겠죠. 그건 자신들의 부모에게 요구했어야 될 문제들인데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연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들이 적절한 비율을 갖고 있어야 돼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상대가 메워준다고 생각하면 운명의 짝으로 여기겠지만, 그로 인해서 상대가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내가 물러나야죠.
『가족 심리 백과』는 직장생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정서중심 대처’와 ‘문제중심 대처’인데요. ‘정서중심 대처’는 자신의 스트레스가 “다른 사람이나 환경 등의 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언뜻 ‘남 탓하기’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요?
그건 누구나 하고 있는 거죠. 급할 때 제일 쉽게 사용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고, 하지 않으려고 해도 누구나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가 없어요. 문제 상황에서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하고 생각하면 너무 괴롭잖아요. 그럴 때에는 ‘내가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저 사람도 참 예의 없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생각해서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면 괜찮다는 거죠. 그런 다음에 균형을 잡으세요. 문제 중심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거예요(‘문제중심 대처’). 그러면 문제를 일으킨 데에는 나의 역할도 있고 상대방의 역할도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어느 한쪽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몫을 알게 됐다면 그 부분만 고치면 돼요. 그렇게 해서 문제 상황이 해결됐다면 잘한 것이고,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면 상대방이 문제인 거죠.
나이가 들수록 “이루어놓은 게 없다는 자괴감, 자기 처지에 대한 모멸감”이 들면서 스스로 고립되기도 하죠. 『가족 심리 백과』는 이들을 일컬어 “정체된 중년”이라고 말하는데요. 이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
50~60대가 되었는데 이뤄놓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잘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여겨지면 굉장히 허무하죠. 지나온 삶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는 거예요. 각자가 바라는 기준은 모두 다른데, 많은 남성들이 경제적인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알고 있어요. 많은 여성들은 자식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고요. 그런 사람들은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그런 것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청소년기의 정체성 문제와도 비슷하죠.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그 사람을 이루는 건데, 이런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최고’ ‘좋은 것’이라는 말 외에는 자신을 설명하는 게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분들께는 ‘이렇게 다양한 방법이 있구나’라는 걸 이해하게 해드려야 돼요. 그걸 하나씩 하나씩 깨닫고 나면, 그제야 가족의 유대감이라든지 자식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했어야 할 역할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자신이 전달해줄 수 있는 것에 돈만 있는 게 아니라 지식과 감각까지도 포함된다는 걸 알게 돼요.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고, 그걸 볼 눈이 없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지금이라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됐으니 내가 그렇게 나쁘게 산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가족심리백과송형석 등저 | 시공사
정신과의사 10명이 수십 년간 진료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내담자들의 다양한 고민거리들을 생애 단계별로 나누어 구성한 책이다. 일찍이 ‘우울’ ‘불안’ ‘감정조절’ 등 단편적인 주제를 다룬 심리서는 많았지만, 이렇게 사람의 전 생애를 좌우하는 모든 심리 문제를 집대성한 책은 없었다. 그야말로 국내 최초로 시도된 ‘심리서의 완결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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