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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이상한 엄마로 위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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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구름으로 감춘 ‘이상한 엄마’가 호호네 집 현관에 서 있다. 호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에서 날라온 선녀 엄마. 무심한 표정의 선녀는 호호를 위해 달걀국을 만들고 달걀 프라이를 부친다. 판타지인가? 범상치 않은 얼굴의 선녀는 호호엄마가 퇴근하기까지, 호호를 살뜰히 보살피다가 선녀 옷을 남기고 하늘로 떠난다.

 

그림책작가 백희나의 신작 『이상한 엄마』는 보고, 또 보게 되는 작품이다. 한 번 보는 그림책은 없겠지만, 이상스럽게도 연거푸 보고 싶다. 아픈 호호의 발그레한 뺨, 연지로 얼굴을 꾸민 다소 코믹한 선녀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매일 보는 컴퓨터 그림에 지쳐서 일까. 장면 구석구석을 살피며 현실의 집, 현실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독자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전형적으로 너무 완전한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는 아쉬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보다 현실의 가족을 담고 싶었다. 허술해도 덤벙거려도, 사랑만 있다면, 똑같이 소중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이상한 엄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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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사랑만 있다면 똑같이 소중한 가족

 

1년 7개월 만의 신작입니다. 출간되자마자 반응이 무척 좋아요.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병원 신세를 좀 졌는데, 그래도 책을 좋아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으니 기운이 나요. 출판사에서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메이킹 영상도 재밌게 찍어주시고 북트레일러도 멋지게 만들어줘서 참 고마웠어요.

 

책 작업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게 아닌가 싶었어요.

 

1년에 1권은 규칙적으로 내고 싶은데 그렇게 편안한 스케줄은 아니에요. 다행히 손이 빠른 편이라서 작업에 들어가면 속도가 붙는데, 『이상한 엄마』는 그동안 이야기를 만든 방식과는 좀 달랐어요. 그동안은 소재가 떠오르면 이야기를 만들고, 스토리보드를 그린 다음에 더미북을 만들고 거의 수정 없이 한 큐에 진행했는데요. 이번 책은 제 현실이 담긴 이야기다 보니 좀 어렵더라고요.

 

아픈 호호를 위해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설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둘째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떠올렸던 이야기예요. 가져간 책을 다 읽고 나니 할 일이 없어서 멍하게 있다가 생각이 났어요. 처음에는 무척 장황했어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하지만, 이 책은 주인공이 딱 한 명이 아니잖아요. 호호와 호호엄마, 선녀가 나오는데 모두의 비중이 비슷하고 이 3명 외의 인물이 없으니까요. 또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단조로운 에피소드라서 이야기를 쳐나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덧붙이는 건 쉽지만 넘친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작업을 하는 와중에 번역서『시작, 그림책』를 다시 읽었어요. 그림책을 만든 지가 12년이 됐는데 아직도 가장 기본적인 걸 까먹을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기본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림책은 5살 아이가 봤을 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팽팽하게 스토리를 이어가다 보면 속도가 붙지만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도 있어요. 다른 가지로 뻗어나갈 가능성, 변화의 여지를 두고 작업해야 했는데 긴장을 많이 했어요. 약간 풀어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2년작 『장수탕 선녀님』을 떠올릴 독자도 많을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아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화장도 의상도 다르지만, 자매인가 모녀인가? 같은 인물인가? 궁금해 하는 분이 있었어요. 책을 보고 친정엄마가 생각났다는 분도 많았고, 일하는 엄마들은 뭉클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엄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그림책이 꽤 많잖아요. 작가님의 전작 중에 『삐약이 엄마』도 있고요. 『이상한 엄마』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어요. 특히 아이나 엄마 독자라면요.

 

처음부터 ‘이상한 엄마’를 제목으로 짓고 시작했어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요즘 ‘엄마’가 여러모로 이슈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일단 엄마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고, 모두에게 기대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굉장히 큰 가해자가 되는 것 같아요. 또 사회적으로 진짜 이상한 엄마도 있잖아요. 아이들 학대하는 엄마도 있으니까요. 회자되는 뉴스를 보면서 또 제 삶을 통해서, 엄마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이번 작품은 어떻게 달랐나요?

 

이번 책은 엄마로서의 제 상황이 절절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왔고, 또 『구름빵』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많았어요. 너무 표본처럼 완전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미안함이 컸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사랑만 있다면 좋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부모가 세상을 떠나 조부모와 사는 아이라도, 입양 가족이라도, 다문화가족이라도 모두 사랑이 있다면 똑같이 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이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보면, 당시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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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완전한 존재가 아니에요

 

주인공 ‘호호’의 표정이 참 정겨워요.

 

호호의 모델은 우리 둘째 아이예요. 호호가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의 디자인은 실제 우리 아이의 옷이에요. 아이한테 “이게 너야”라고 했는데, 별 반응은 없었어요. (웃음) 더미북을 보여주면 좋아하는데, 장난감 정도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호호’는 어떻게 나온 이름인가요?

 

둘째 아이의 동네 친구 이름이 ‘호건’인데, ‘호호’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호호가 이 책에서 아프기 때문에 ‘호호~’하고 입김을 불어주는 느낌도 주고 싶었고요. 그림책을 만들 때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게 참 힘들어요. 너무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시대를 반영하는 이름은 피하고 싶어서요. 약간 촌스러우면서 귀여운 이름이 좋은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에서 ‘덕지’의 경우도 때가 덕지덕지 붙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귀엽기도 하잖아요. (웃음)

 

선녀는 호호에게 달걀국을 끓여주는데요. 왜 달걀국이었나요?

 

달걀은 어느 집에나 항상 있는 식품이잖아요. 달걀과 김이 없이는 육아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달걀 프라이 사진도 직접 찍으셨죠?

 

8개의 달걀을 깬 끝에 완성된 사진이에요.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노른자가 사진처럼 투명하지가 않아요. 흰자 때문에 표면이 하얗게 보여서, 수란처럼 익혀 보이고 하도 조금 애를 먹었어요. 작업실에 계란을 한 판 사다 놓고 시작했는데, 그래도 꽤 빨리 성공했어요.

 

백희나 작가님의 책을 처음 본 독자라면, 이게 사진인가? 컴퓨터그래픽인가? 헷갈릴 수도 있어요. 지금 작업실에 보면, 『이상한 엄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모형, 소품들이 다 있어요. 책장을 열자 마자 등장하는 달걀 더미도 만드신 거죠?

 

주로 스컬피(sculpy)라는 재료를 사용해요. 찰흙이랑 비슷한 성질인데, 오븐에 구우면 딱딱하게 굳어져요. 기본 색깔이 살색이라 그 위에 색깔을 입혀 사용해요. 소품 같은 경우는 직접 만들거나 장난감을 리폼하기도 해요. 3D 프린터로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요.

 

특별히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나요?

 

마음처럼 느낌이 살지 않아서 사진을 전체적으로 다시 찍었어요. 특히 선녀가 하강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가 어려웠어요. 천장에 구름을 달았는데 솜 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자꾸 주저앉더라고요. 기술적으로는 이 장면이 가장 힘들었고 세심하게 찍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표지 그림이랑 호호엄마가 선녀와 통화하는 장면이에요. 전화선을 먼지 같은 철사 덩어리로 표현했는데, 두 사람의 말풍선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이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는 그림이잖아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또 표지는 어느 책이나 가장 중요한 그림이니까, 책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 호기심을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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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호호엄마가 집에 도착해 호호와 함께 구름 위에 누워 있는 장면은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의 모습 같아요.

 

호호엄마가 처음으로 마음을 놓는 장면이잖아요. 평범함 속에서 마음에 와 닿는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엄마가 불안한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갑자기 편안하게 잠을 잔다는 게 이상할 수 있어요. 몇몇 장면이 생략이 됐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었어요. 하나하나의 역할이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변수가 너무 많아 연출이 어려웠어요.

 

‘구름빵’은 캐릭터가 평면이었지만, 『이상한 엄마』는 입체 인형이기 때문에 촬영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빛이나 각도에 따라 너무 많이 바뀌니까, 도저히 남의 손을 빌려서 촬영할 수 없더라고요. 『구름빵』, 『달 샤베트을 작업할 때는 스케치와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할 수가 있었는데, 입체 인형은 불가능해요. 최대한 테스트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어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선녀가 자신의 옷을 호호 집에 흘려 놓고 떠나요. 『이상한 엄마』의 2편이 나오는 게 아닐까 기대됩니다.

 

시리즈를 생각해서 일부러 설정한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람도 사랑도 완전할 수 없잖아요. 많이 바쁘니까 깜빡깜빡 하면서 사는데, ‘그래도 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호호엄마도 직장을 다니는 엄마지만, 선녀도 하늘에서 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을 하다 호호엄마의 전화를 받고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겠어요. 호호네 집만 해도 다르지 않아요. 거실을 보면 되게 어지럽혀 있는데, 우리는 다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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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며 나 자신도 치유됐다

 

최근 그림책을 보는 성인들이 늘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요. 그림책작가로서 체감하시나요?

 

20대 여성들이 그림책을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희망이 느껴졌어요. 또 할머니들이 손주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책을 찾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어요.

 

선배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일단 제가 겪은 일이 있으니까, 계약을 잘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스스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너무 겸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낮은 자세, 낮은 조건으로 일하지 말고, 올바른 대접을 받았으면 해요. 낮은 자세로 일한다고 절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까요. 기성 작가이든 초보든 시작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시작했으면 해요. 시작이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데는 찾아보면 있거든요. 작품에 대한 충고는 글쎄요. 모두 각자의 길이 있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구름빵』의 저작권 소송은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작업 때, 사진 촬영을 맡았던 분이 자신도 원작자라고, 저랑 같이 저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저작자 확인 소송을 했어요. 올해 초 단독 저작자로 인정받았을 뿐이지, 저작 재산권을 돌려받는 문제는 아직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어요. 이제부터 협의를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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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하셨어요. 책도 반응이 좋았고요.

 

혼자 모든 공정을 다한다는 데 의미를 둔 건 아니었어요. 『구름빵』 저작권 사건 이후로 너무 자신감이 없어져서요. 내가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컸고, 누가 제 작품을 두고 평가하는 게 두려웠어요. 너무 약해져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상태였는데, 그림책 작업을 안 하면 제가 살 수 없었어요. 낙이 없고 에너지도 없고 의미도 없어서, 혼자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 1인 출판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책이 망하더라도 일단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책이 잘 팔렸어요. 천만 다행이었죠. 덕분에 작업실도 마련할 수 있었고 촬영 장비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책 살 때 망설임이 없었어요.

 

망설임이라면요?

 

비싼 책을 사고 싶을 때, 망설여야 했거든요. ‘이거 사? 말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때는 한 장면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책을 다 샀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4권을 만들었는데, 그간에 책읽는곰 출판사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신뢰를 회복했고 이후 『장수탕 선녀님』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수탕 선녀님』도 아이 독자들에게 반응이 대단했어요.

 

이 책 덕분에 제가 얼른 나았던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선녀가 덕지에게 ‘일단 나아라’라고 말하잖아요. 그 장면처럼 저도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됐어요. 작업 자체만 두고 봤을 때, 가장 행복했던 책은 『장수탕 선녀님』인 것 같아요.

 

후에 『이상한 엄마』는 작가님께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글쎄요. 1년 정도 지나야 아쉬운 것,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에 대한 생각도 최근에 든 거예요. 3년 정도 지나야 내 작품도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이상한 엄마』는 작업 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성장의 의미도 있어요. 엄마가 엄마로서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이 책도 작가로서의 성장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후속작도 궁금합니다.

 

‘이상한’ 시리즈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이야기의 소재는 아이한테 더 맞춰질 것 같고요. 또한 제 마음을 사로잡은 문제를 다루지 않을까요?

 

혹시 작가가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을까요?

 

물론 가장 소망하는 대상은 아이들이지만, 40, 50대 아저씨가 읽어줘도 되게 기쁠 것 같아요. ‘이 책 내 꺼야. 아무도 안 빌려줘’하면 너무 예쁠 것 같아요. (웃음) 또 바라기는 육아로 힘든 엄마, 아빠가 보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슬프게 그리는 작품은 많지 않잖아요. 살다 보면 행복하지 않고 힘들 때가 많은데, 그 순간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감이 큰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비록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도, 아이랑 같이 그림책을 보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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