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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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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은주』의 작가 권비영이 새로운 작품 『몽화』와 함께 돌아왔다. ‘1940, 세 소녀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소설은 세 소녀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되살려낸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드는 한편, 1940년대 혼란의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채 꽃피우지 못한 열다섯 살의 소녀들-영실과 은화, 정인은 운명처럼 만난다. 경성 이모네 집에 맡겨진 영실은 만주로 부모를 떠나 보냈다. 아버지는 주재소 순사를 때린 죄로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향했고,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찾아 나서면서 가족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영실과 은화는 경성의 소문난 집 자제들이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속을 헤매는 것은 매한가지다. 영실은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누를 길이 없고, 은화는 기생이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세 소녀는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국운을 흔든 거센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영실은 생존을 위해, 은화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고 정인은 아버지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불란서로 떠난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조국을 잃은 지식인의 죄책감은 그들의 일상 속으로 깊게 침투한다.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고,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소녀들의 삶은 갈 곳을 모르고 흘러간다.

 

시간은 흐르고 그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가는 것이 잊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역사의 광풍 앞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가녀린 소녀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몽화』 383쪽, ‘집필 후기’ 중)

 

권비영 작가에게 있어 『몽화』는 ‘언젠가는 꼭 꺼내야 하는 이야기’였다. 한국 작가로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 상처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지우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덕혜옹주』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문제가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그녀에게 『몽화』의 이야기는 차마 눈 감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실, 은화, 정인의 삶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세 소녀로 대변되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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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어요

 

『몽화』는 오래 전부터 구상하셨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덕혜옹주』를 쓰시는 동안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생각하셨다고요.

 

저만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게 아닐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안부나 강제동원에 대해 알고 있었잖아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건 다소 두려워하지 않았나 싶어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이고, 그래서 저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럴 때일수록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의견을 모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의외로 좋은 물꼬가 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일본의 어느 폐탄광을 살펴보고 나서다”라고 쓰셨습니다. 폐탄광은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덕혜옹주』자료 조사를 할 때 위안부와 폐탄광(에 강제징용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런 자료들은 따로 모아 놨었고 이후에도 관련 자료를 보면 해당 카테고리에 저금하듯이 넣어 놨고요. 『은주』가 출간된 후에 2년 정도 『몽화』를 썼는데, 자료수집부터 집필까지 걸린 시간은 2년보다 더 긴 거예요. 일본에는 『은주』를 쓰고 나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의 자료를 조사하려고 갔었어요. 당시 동행했던 가이드가 폐탄광을 보여줬고요. 그곳에 가면 강제징용 왔던 분들이 살던 집도 있고, 위안부들이 머물기도 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몽화』의 집필을 결심하게 되신 사건이 있었나요?

 

폐탄광에 가니까 위령비가 있었는데, 그 앞쪽에 꽃이 피어 있더라고요. 살구꽃 비슷한 빛깔의 꽃이었어요. 처음에는 ‘꽃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바람이 살랑 부니까 꽃이 툭 떨어지는 거예요. 아래를 보니까 떨어진 꽃잎이 흩어져 있고요. 그걸 보는 순간 탁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람에 떨어지는 건 위안부, 떨어진 꽃잎은 위안부들의 피’라는 등식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제는 써야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동안에도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서 풀어가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그 일이 꼬투리가 된 거죠.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책 속에도 정민교의 시조가 나오는데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 아이는 비를 들고 쓸오려 하는고야 /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슴하리오”에서 떠오르는 그림하고 똑같은 거예요.

 

떨어지는 꽃송이에서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떠오르셨어요?

 

꽃이라는 게 몽우리가 졌다가 폈다가 떨어지는데, 소녀는 몽우리잖아요. 폐탄광의 나무에도 이제 막 예쁘게 피는 꽃이 있었는데 바람이 휙 부니까 똑 떨어지더란 말이에요. 그렇게 떨어진 꽃잎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처럼요. 위안부 소녀상을 보면 다 맨발이에요. 만져 보면 얼마나 차가운지 몰라요. 그 겨울에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헤매야 되는 소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프잖아요. 폐탄광에서 떨어진 꽃을 보면서도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이 꽃이 바로 너희들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몽화』라는 제목과 맞아떨어졌고, 표지의 일러스트에도 담긴 거예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분께 폐탄광에서 봤던 모습을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내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림을 보면서 탄복했어요.

 

강제징용 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위안부 문제는 다루기가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폐탄광을 갈 때 일본어 교수님한테 가이드를 부탁했었는데, 그분께서 제발 왜곡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니까, 일본은 일본대로 우리는 우리 대로 서로 부풀리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써달라고 하셨던 것 같고, 저 역시 그런 점에서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저는 르포 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니까, 이 문제를 다루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다거나 그분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 그런 자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들여다보자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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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몽화』의 출간을 두고 “협상에 둘러싼 논란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기도 합니다.

 

2년 정도 『몽화』를 썼으니까, 그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줄도 몰랐죠. 의도하거나 생각한 것도 없었고요. 작품이 나올 때쯤 되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작품을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제가 주인공을 빌려서라도 어떤 색깔을 드러내거나 강성적인 발언을 한 게 없잖아요. 저는 어떤 일에도 앞서서 나가는 걸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한 후에 판단하는 편이에요. 우리가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식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영실이가 너무 밋밋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너무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그 시대를 살면서 울분도 별로 토하지 않는다고요. 은화는 나름대로 고통을 겪고 정인이는 나름대로 색깔이 있는데, 영실이가 너무 밋밋하다고요. 그런데 제가 고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영실이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요.

 

‘영실’이 무력한 인물처럼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설정을 바꾸시지 않은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그 시대 상황에서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거죠. 위안부로 끌려가고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도 자기 존재도 못 찾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여성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물리적으로 위안부가 안 된 거지, 정신적으로는 위안부만큼 다 힘들게 겪었다는 거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고통이라 게 제 생각이에요. 영실이라는 인물이 너무 의기소침하고 힘도 없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그건 저의 의도예요. 강경하게 독립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애국심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오히려 저는 그렇게 무능력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이 ‘나는 위안부가 안 돼서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위안부는 안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들만큼 고통을 받았고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아프게 여기고 있어요. 몸만 더럽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나라가 없는 설움은 똑같이 겪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부러 영실이를 그런 인물로 그린 부분도 있어요.

 

몽화』의 세 소녀와 같이, 누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환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마지막에 보면 영실이가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잖아요. 일반 사람들이나 열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별것 아닌 일 일지 몰라도, 야학을 한다거나 독립 운동 기사를 보면서 자기를 조금이라도 찾아가려고 애를 쓰죠. (당시의 여성들처럼) 여성이 공부도 하지 못하고, 자기 자각도 없고, 자존도 없다 보면 세상과 마주쳤을 때 판단 능력도 없고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이 안 생기잖아요. 이 작품에서도 영실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를 못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우치고 나름대로 미미하나마 노력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이후에 영실이의 후일담이 써질 지도 모르겠어요.

 

‘영실’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항상 머릿속에는 서너 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빨간 실, 파란 실, 노란 실을 생기는 대로 넣어 놓는 거죠. 그러면 어떤 때에는 빨간 실이 커지고, 어느 순간 멈추고 노란 실이 커지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노란 실이 너무 커졌다, 이걸로 뭘 짜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작품으로 나오는 거예요. 지금도 머릿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것이 먼저 커져서 이야기로 짜여지는 시기가 될지 저도 모르죠.

 

‘권비영의 소설’은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제 작품을 보고 너무 쉽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좋은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비판적으로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저는 ‘커피가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 아세요?’라고 이야기해요. 원두는 하나인데 에스프레소를 먹는 사람도 있고, 아메리카노를 먹는 사람도 있고, 카페라떼를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같은 원두를 가지고도 내 취향대로 다른 걸 만드는 거죠. 밀가루를 가지고 빵만 만들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국수를 만들 수도 있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 돼요. 그러면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빵을 먹을 거고요.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국수를 먹을 거예요. 독자마다 취향이 있고 그에 따라서 선택을 하는 거니까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녹여서 어떤 음식을 만드느냐는 작가의 몫이고 작가의 취향이나 생각이 들어가는 거죠. 제 소설이 쉽거나 다른 작가의 소설이 어렵다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독자가 읽고 쉬우면 쉬운 대로 독자가 읽는 거예요. 각자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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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 기대하고 있어요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작가’로 평가 받고 계십니다. 특히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건 아니었어요. 『덕혜옹주』를 쓸 때도 투철한 역사 의식이 있거나 역사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저는 작가잖아요. 작가는 다방면에 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야 되고 모르면 그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지만, 저는 작가마다 쓸 수 있는 영역 같은 게 있다고 봐요. 사실은 저도 ‘덕혜옹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어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해주신 걸 들은 게 다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덕혜옹주’ 마마가 창덕궁에 살고 계셨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전혀 몰랐잖아요. 나중에 자료조사 하면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고초를 겪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우리 국민들이 모르고 있었잖아요. 그나마도 더 시간이 지나가면 사장이 되어버릴 거고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덕혜옹주만 그랬겠나’ 싶은 거죠. 잊혀진 존재는 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거잖아요. 모든 작가가 그럴 거예요. 낮은 자들 혹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다 있을 거예요. 그중에 저는 ‘덕혜옹주’를 잡았던 거고요. 제가 특별히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인에 국한되어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작가들도 있잖아요. 죄의식이나 복수 같은 감정들이 그렇죠. 그에 비하면 작가님은 ‘사회나 국가와의 관계에서 개인이 받는 상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 질문을 하시니까 언뜻 생각이 나는데요. 제가 그런 데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는데, 지금 짚어 보면, 저희 아버지가 가진 건 꼭 나눠주셔야 하는 분이었어요. 두 개를 갖고 계시면 하나는 남을 줘야 하고, 하나가 있으면 반을 쪼개서 줘야 되는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거든요. 입었던 옷도 벗어주고 오시고, 연고 없이 아이스께끼 장사하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공부도 시키시고...그때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아마 그때부터 상처 받은 영혼이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은연중에 생긴 게 아닌가 싶네요. 한 번도 아버지가 ‘내가 하는 행동을 배워라, 인간은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알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버지가 하시는 행동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주지 못했더라도, 마음으로나마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생긴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요.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몽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으세요? 특히 안쓰러운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점순이’요. 점순이는 밑바닥 삶을 산 아이잖아요. 열 몇 살밖에 안됐는데 벌써 자신이 일하는 여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유를 다 알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취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런 걸 보면 가장 불쌍한 영혼은 점순이 같아요. 자기가 그렇게 불쌍한 존재라는 걸, 그 자체를 모르잖아요. 영실이에게 ‘너도 위안부인데 왜 나만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냐’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그렇게 너무 당당한 건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영실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이라도 있는데, 점순이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요. 그렇게 너무 당당한 게 불쌍한 거예요. 아마 상처 받은 영혼의 전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죠. 점순이는 ‘무조건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그런 삶을 ‘무조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덕혜옹주>가 올해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다, 손예진 박해일 등 캐스팅도 화려해서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죠.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정말 좋았어요. 촬영지인 군산에 있는 사진관에도 가봤고요. 그런데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하니까, 너무 좋았죠(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감성을 보면 정말 잘할 것 같아요. 저도 영화 <덕혜옹주>가 너무 기대되고요. 저보다 주변에서 더 많은 기대를 해요.

 

시나리오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나요?

 

그럼요. 그건 그분들의 영역이지, 제가 감히 덤벼들 일이 아니죠. 덤벼들어서도 안 되고요. 제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지지만 각색되는 부분도 있고 영화로 보는 시선이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은 영화를 만드는 분들만의 고유한 영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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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권비영 저 | 북폴리오
일본제국주의의 핍박이 심해지는 1940년대의 세 소녀 영실, 은화, 정인. 부모를 다시 만날 기약은 없고, 눈앞에 놓인 운명이 기생이며,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라 손가락질 받는 저마다의 상처 속에서 영그는 우정은 서로에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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