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곧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다. 좋은 책을 만들었어도 알리지 않으면 독자를 만날 수 없다. 2014년에 문을 연 1인출판사 '그림책공작소' 민찬기 대표는 열혈 편집자이자, 마케터, 영업자다. 오직 그림책만 내고 싶어 출판사 이름부터 직구를 날린 그는 발행인인 동시에 그림책공작소장이다. 민찬기 대표는 자식 같은 그림책을 내놓고 눈 밝은 독자들이 그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 SNS, 블로그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편집 일지를 기록한다.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아 때로는 하소연도 늘어놓지만 그림책에 대한 애정과 철학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림책공작소는 첫 책 『로켓 펭귄과 끝내주는 친구들』을 시작으로 『세상에서 제일 바쁜 마을』, 『내 친구 어디 있어요?』, 『춤을 출 거예요』, 『비에도 지지 않고』등 그림책 16권을 출간했다. 국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은 5권, 나머지는 그간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해외 작가의 그림책이다. 올해 6월은 그림책공작소가 딱 2년이 되는 달이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별 일이 좀 생겼으면 한다"는 민찬기 대표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자리한 그림책방 '베로니카 이펙트'에서 만났다.
출판 시장에 직구를 던지고 싶었다
최근 그림책공작소에서 펴낸 그림책 『나의 엄마』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예스24 ‘오늘의 책’에도 선정됐는데요. 엠디들이 책을 보고 울었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펑펑 울었다’는 독자 리뷰도 많이 봤어요.
저도 만들면서 울컥했던 책이에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같구나 싶었고, 고맙기도 했어요. 『나의 엄마』를 그리신 강경수 작가님하고는 10년 지기예요. 작가님은 만화 작업을 하다가 ‘2011년 볼로냐아동도서전 논픽션 부문 라가치상 우수상’을 수상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데뷔를 하셨는데요. 제가 어린이 그림책 출판사에서 일했을 때, 인연이 닿았어요. 출판사에서 그림책 공모전을 열었을 때 강 작가님이 작품을 출품하셨어요. 본심에는 올랐지만 아쉽게 탈락하셨는데, 출판사로 전화를 주셨어요.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요. 제가 심사위원은 아니었지만 담당자로서 의견을 드렸더니, 본인도 작업하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부터 친해졌어요. 매니저 같은 편집자라고 할까요? 그림책공작소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함께하게 됐어요.
각별한 사이로 보이는데, 작가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셨어요.
네임 밸류가 높은 작가님이신데 제가 선인세를 많이 못 드리고 있으니까요. 사실 작가에게는 선인세가 월급인 셈인데, 더 많이 못 드리는 형편이라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만약 강경수 작가님의 그림책이 큰 출판사에서 나왔더라면 더 많이 조명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림책공작소는 아직 신생 출판사니까요. 전파력이 좀 아쉽죠. 제가 보기엔 너무 좋은 책이니까 속상하고 아쉬워요. 정말 공부도 잘하고 착한 자식인데, 부모가 대학을 못 보내는 심정이라 할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작은 출판사의 이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잘 통하고 재밌다고 하세요. 예전에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편집 일지를 기고한 적이 있는데요. 강경수 작가님과 제가 또래이기도 하고 목소리나 톤, 자주 쓰는 어휘들이 좀 비슷해요. 그래서 편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펴낸 『나의 아버지』는 표지에 타공을 했는데, 강 작가님의 의견이었어요. 되게 미안해 하시면서 타공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되려 죄송하더라고요. 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인데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작가님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신 거죠. 솔직히 저도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책의 의도에 맞는 제작방식이라면, 작가의 의견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가를 산정할 때 가격을 조금 높여야 하나? 고민했지만, 요즘 도서정가제로 인해 독자들이 책을 비싸다고 생각하잖아요. 출판사가 조금 덜 이익을 보더라도 좋은 책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아버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에도 시선이 가더라고요.
군대에서 팔고 싶은 그림책이에요. 군인들이 아마 많이 공감할 것 같아요. 『나의 엄마』 같은 경우는 ‘엄마’라는 글 외에 다른 문장이 없잖아요. 텍스트를 넣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해칠 것 같았어요. 반면 아버지는 늘 말 없이 있는 존재잖아요.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생각도 같았고요. 같은 듯하지만 조금 다른 작품인 것 같아요.
그림책공작소가 문을 연 게 2014년 6월이니, 딱 2년이 됐습니다. 그림책 편집자로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요. 1인출판사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학습지를 개발했던 ‘노벨과 개미’와 주니어플라톤 교재를 개발했던 ‘한솔교육’ 근무 기간을 제하고도 그림책을 만든 지, 10년이 넘었어요. 저 나름으로 그림책에 대한 개념이 명료해지고 호불호가 확실해지더라고요. 창업을 하기 전 해에는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총괄로 일했는데요. 총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책을 마음껏 출간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좀 답답했습니다. 고용된 편집자로서 절대 충족되지 않는 편집 욕구랄까요? 작가와 최선을 다해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어느 출판사에서든 편집자의 소임을 다하면 되는데요. 출간 이후 판매와 후속 관리까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 작품과 작가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율권과 책임감은 늘 고민이 됐어요. 결국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발행인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일을 벌였죠. 예상한 것보다 정말 많이 힘들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웃음)
그림책공작소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야구로 치면 직구라고 할까요? 출판 시장에 직구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림책만 하고 싶다고요. 저희 출판사 로고를 보면 펜과 붓이 있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도구잖아요. 로고만 봐도 이 이 출판사가 어떤 책을 만드는 곳인지 알았으면 했습니다.
첫 책이 2014년 10월에 펴낸 『로켓 펭귄과 끝내주는 친구들』인데요. 네덜란드에서 나온 그림책입니다. 표지 그림만으로도 되게 궁금해지는 책이에요.
익숙한 동물들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는 그림책인데요. 총 24마리 동물이 등장해요. 네덜란드 원서에는 총 50마리의 동물이 소개됐지만, 국내 번역판은 우리에게 익숙한 24마리 동물 친구들을 선별했어요. 생태와 예술이 결합된 아름다운 그림책이라 출간을 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컸어요. 이 책은 수익금 일부를 자연환경국민신탁을 통해 서울대공원 지정 멸종 위기 12종에 기부했어요. 첫 책인 만큼 의미가 컸던 작품이에요.
해외 그림책은 어떻게 발굴하시나요?
“난 한 놈만 패!”라는 영화 대사가 있잖아요. 제가 그림책만 보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 성향이 명확해요. 그래서 그림책공작소만의 정체성, 방향과 비슷한 성향의 작가 또는 해외 출판사를 늘 예의주시해요. 신생 출판사가 분명한 기준도 없이 시류나 인기 작가를 따라가면, 자금력부터 시작해 모든 부분에서 기성출판사와 경쟁할 수 없어요. 방향성 없이 몇 년 가다 보면 어느 날 출간한 책 로고를 가렸을 때 어느 출판사 책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게 되겠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로고를 가려도 ‘그림책공작소 책인가?’ 싶은 그림책을 찾고자 노력해요.
100년 후에도 좋은 그림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요. 학창시절에도 출판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고등학생 때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야간 자율 학습하면서 라디오를 몰래 들을 때는 방송작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막연했지만 글을 쓰고 싶었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작가적 소양이 없다는 사실은 일찍이 파악했어요. (웃음) 자연스럽게 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편집 업종을 생각하게 됐죠.
편집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요. 그림책 편집자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다시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지리 책 안 읽는 국문학도였지만 사 본 책 중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레제르의 『원시인』이라는 카툰집이 있었어요. 글 없이 4컷, 8컷, 16컷의 카툰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그러다 학습지 회사에서 한글교재를 개발하면서, 그림책 작업과 비슷한 부록을 만들었는데, 그때 결정적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원시인』처럼 제가 매력을 느꼈던 책들이 결국 저를 그림책 편집자로 이끈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편견은 이제 많이 옅어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직까지는 많은 분이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조합된 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단순 물성비만을 이야기하는 차원이에요. 책에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텐데요. 저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그림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책을 그림책으로 간주해요. 그림책공작소에서 출간하고자 하는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효과적인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림책입니다. 또한 그림책을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주제나 그림 표현에 있어서도 가급적 제약을 덜 두는 편이에요.
앞으로 그림책공작소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세상을 담고, 세상을 바꾸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모토예요. 그림책이 ‘어린이 책’이란 생각은 배제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그리는 그림책들을 만들려는 의지의 표현이죠. 독자들에게 ‘그림책공작소’라는 브랜드만으로도 믿고 보는 출판사로 인정받고 싶어요. 지금이야 ‘어떻게든 이렇게 계속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지만, 50년 동안 그림책만 만들어 온 네덜란드 ‘렘니스카’처럼 50년, 100년 후에도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전문 출판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입니다.
출판시장은 어렵다고 하지만, 책을 내고 싶고 출판사를 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진짜 만들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동, 학습, 문학, 자기계발 등 분야만 정할 것이 아니라 책의 방향, 출판사의 방향 등 롤모델을 생각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자금은 분야마다, 전략마다 다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제 명의 아파트가 있는데, 지금 주방과 거실은 신한은행 겁니다.(웃음) 매입처 지불 결재일인 월말마다 ‘안방’만큼은 지킨다는 각오로 일을 하고 있어요. 출판은 생각보다 큰돈이 들고, 회수 기간이 깁니다. 영영 회수를 못할 수 있는 건 당연하고요. 지금 가진 돈을 출판에 다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출간 예정인 책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신인작가의 책을 ‘뚝딱뚝딱 나래책’이라는 시리즈로 낼 계획이에요. 윤태규 작가의 『소중한 하루』, 한연진 작가의 『빨강 자동차』가 출간 예정이고요. 강경수 작가의 신작 『배고픈 거미』도 준비 중이에요. 외서는 ‘뚝딱뚝딱 누리책’으로 내고 있는데요. 구스 고든의 『허먼과 로지』, 이사벨라 버넬의 『사라지는 동물 찾기』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올해에 다 펴내긴 어렵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려도 충실하게 작업해서 내려고 해요.
그림책 독자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그림책을 보실 때 찬찬히 봐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쓱쓱 넘기지 말고, 그림에는 뭐가 있고 글에는 뭐가 있는지 천천히 보셨으면 해요. 조금만 찬찬히 보시면 책을 만든 작가, 출판사의 의도가 보일 거예요. 그 다음은 독자 스스로 더 많은 걸 느끼실 겁니다.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가 1년, 2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작품인데 10초, 20초 만에 섣불리 판단하는 건 슬프니까요.
나의 엄마강경수 글그림 | 그림책공작소
곁에 있어 주는 엄마의 모습과 그 순환적 운명을 반영한 세로 띠지 구성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모두의 첫 번째 친구 엄마의 사랑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받아 다시 부모가 되는 과정, 그 보통의 삶에서 발견하는 애틋하고 뜨거운 감동을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