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책에서 만난 이 문장은 작가에게 지금까지 삶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즐겁게 사는 것, 즐거운 일을 찾는 것, 그것을 앞에 두면 선택이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자신이 어른이 되고,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그 쉬운 선택을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른바 ‘시시한 어른’이었다.
청소년 소설 『하이킹 걸즈』, 『다이어트 학교』등과 동화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 『여름날 초록처럼 너를 사랑해』등을 써온 김혜정 작가가 첫 에세이로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을 쓴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학교 강연을 많이 다닌 작가는 반드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10대 때 너무나 어른이 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른의 삶을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아이들 눈에 지금 어른들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운 거잖아요. 힘들어도 버티는 힘은 내일은 나을 거라는 믿음인 건데 이 아이들은 내일이 없는 아이들인 거예요.”
시시한 어른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길,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문제가 훗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길, 즐겁게 살 권리가 너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작가는 간절히 바랐다. 자신의 자녀 역시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가 전하는 응원과 위로, 통렬한 반성과 솔직한 경험담,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고민해볼 일이었다.
‘자란다’는 건 ‘잘한다’는 것
맨 앞에 ‘열다섯 살의 이연수에게’라고 했어요.
네, 저희 아이에요. 아직 아기예요. 원래 이 얘기를 계속 쓰고 싶었어요. 소설, 동화만 쓰다 보니 에세이를 쓰기 쉽지 않아서 생각만 했었어요. 그동안 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요. 아이들에게 한 시간 동안 해줄 수 있는 얘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임신을 했어요. 나중에 아기가 컸을 때 바로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엄마가 되고 나면 엄마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다른 청소년 소설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라면 제 소설은 ‘제가 아이들 입장에서 대변하고 싶은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나 어른들에게 ‘우리는 이런 마음이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데요. 제가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면 어른 입장에서 아이를 키울 것 같더라고요. 그러기 전에 10대의 마음으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어요. 태교일기처럼(웃음) 임신 기간에 쓴 거예요.
실제 출산 전과 후에 생각이 많이 변했나요?
솔직히 그 전에는 아이들의 대단함을 잘 몰랐어요. 아기가 조금씩 움직이고 자라는 걸 보면 이것도 대단한데 중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정말 너무 예쁜 거예요. 대단한 거잖아요. 그런 아기가 커서 스스로 밥도 먹고(웃음), 생각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요. 이게 되게 기특한 건데 아이들이 그걸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글 안에 “‘자란다’는 건 ‘잘한다’는 것”이란 얘기를 했고요. 이건 아기를 낳고 나서 아이들에게 해주기 시작한 말이에요. 10대들이 그 말을 실제로 좋아해요. 멍하게 있다가도 이 말을 해주면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에는 기특함 보다는 친구 같은 마음이 더 많았던 거군요.
친구 같고, 나 같고 그랬어요. 대단한 건 사실 몰랐어요.
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녔다고요. 책도 그 계기로 나왔단 말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게 학생들에게 받은 질문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하는 거였어요.
질문이 거의 비슷해요.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요,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인상 깊은 질문이 있었어요. 한 아이가 울먹이면서 질문을 한 적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모님이 시키는 것과 다르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당장 하고 싶은 걸 못한다고 영원히 못하는 건 아니다, 부모님 말이 무조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준비해라, 스무 살 이후 본격적으로 네 인생을 살 수 있을 때 하면 된다, 그래도 늦지 않다,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아요. 강연이 끝나고 그 아이가 왜 울었는지 선생님께 들었는데요. 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니까 엄마가 전교 몇 등 안에 들면 하고 싶은 걸 시켜주겠다 약속을 했대요. 아이가 그 성적이 나왔는데 엄마가 약속을 안 지켰어요. 더 욕심이 났던 거죠. 성적을 더 올리면 들어주겠다고 한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 일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엄마가 너무 나쁘잖아요.
그런 식으로 신뢰가 깨졌을 때 받는 상처는 정말 클 거예요.
성적이 더 오르면 또 욕심이 나서 아이가 원하는 걸 안 해주겠죠. 또 요즘 아이들이 많이 질문하는 게 작가님은 금수저예요, 은수저예요, 이런 건데요. 작가 강연이니까 작가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부모님이 작가는 돈 못 버니까 하지마, 했겠죠. 그러니까 아이들은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저한테 얼마 버느냐고 물어요. 그런 걸 보면 어른들이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 가는데 그런 걸 먼저 가르쳐주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얘기는 금수저인 사람들이 만든 논리 같거든요. 올라오지 못하게 계층화 시켜서 미리 싹부터 자르는 것 같은데요. 그걸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참 안타깝죠. 어른들이 나쁘단 생각을 많이 해요.
이른바 ‘수저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네요.
자기도 모르게 세뇌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게 무서운 것 같아요. 물론 우습게 얘기하긴 하지만 내심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학습된 무기력이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많이 있었겠죠?
한 번은 이메일로 너무 죽고 싶다고 한 아이가 있었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책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에 나오는 내용 중에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왜 사느냐’고 묻자 아버지가 하는 말인데요. “누군가가 와서 총을 쏴서 너를 죽여,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사는 거야, 아주 잘 사는 거야”라는 얘기를 해주는데요. 저는 그 구절을 너무 좋아해요. ‘왜 살지?’ 라는 질문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그 질문은 해서도 안 되는 거죠. 살아가는 건 너무 당연한 거고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줬던 기억이 나요.
현장에서 듣는 그런 이야기들이 작가로서도 큰 재산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목소리를 작품에 담을 수도 있겠고요.
그렇죠, 고민을 들으면 요즘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알 수 있죠. 특히 친구에 대해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10대 시절 했던 고민 중에 친구 문제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걸 다 잊은 거죠. 이 책을 쓰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10대 때 제일 힘들었던 건 관계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친구와 관계된 소설도 써보고 싶어요. 강연 다니는 게 많이 도움이 되죠.(웃음)
아이들은 어른 되는 걸 싫어해
즐겁게 살 의무와 권리를 얘기했는데요. 직접 만난 10대들이 즐겁지 못하단 의미기도 하겠죠?
저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셨어요?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고 얘기해요. 근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 되는 걸 되게 싫어해요. 저는 강연 때 꼭 물어보거든요. 어른 되고 싶지 않느냐고요. 그러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삼분의 이 정도는 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초등학생은 그나마 그렇다고 하는데 고등학생 쯤 되면 거의 없어요. 어른 되면 좋을 게 없다는 거예요. 그럼 지금이 좋은지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하고요. 왜 그럴까 생각했어요. 아이들 눈에 지금 어른들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운 거잖아요. 힘들어도 버티는 힘은 내일은 나을 거라는 믿음인 건데 이 아이들은 내일이 없는 아이들인 거예요. 10대부터 그러면 어른이 돼도 그렇지 않을까 싶고요. 10대란 인생을 연습하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이잖아요. 그때 행복해지는 연습, 내일을 만들어가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10대 아이들에게 좀 더 즐겁게 살 권리를 얘기해주고 싶죠. 실제로 그 얘기를 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져요.
나는 십대들이 책임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사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까닭,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이유, 돈을 벌어야 하는 필요 등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이지만,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내 앞에 놓인 어른의 의무들을 보면서 막막하다고 느끼기 전에, 진짜 너희가 누려야 할 권리를 잊지 말기를. (227쪽)
행복한 어른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어른들이 흔히 그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하는데요. 그건 기억력이 나빠서 하는 얘기 같아요. 10대라는 나이가 제일 힘든 것 같거든요. 어른은 그나마 좀 다른 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직장 상사가 싫으면 무시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너무 마음이 말랑말랑 하니까 상처를 너무 많이 받거든요. 사실 친구 별 거 아닌데, 선생님 별 거 아닌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상처 받아요. 나쁜 선택도 하고요. 그렇게 힘든 나이라는 걸 어른들이 잊어버리고 제대로 된 가르침을 못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사는 모습도 못 보여주는 것 같고요.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선지 책에도 보면 ‘친구 따위 없어도 괜찮아’,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간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위로도 해주고 싶었고요.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게 많은데 왜 그렇게 인생을 안달복달하며 살아야 하는지 자주 생각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학습시키는 거잖아요. 친구는 몇 명 있어야 하고, 어떤 학교를 가야하고, 이런 식으로요. 어떤 부모는 몸매까지 다 체크한다던데 말이에요. 경제 상황이 안 좋은 것도 문제겠죠. 내 자식이 혹시 밥벌이 못 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럴 텐데요.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틀에 가둬 생각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싶어요. 다들 똑같이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왜 정답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지, 안타까워요. 그런데 어른들도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시해지는 것 같아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못 하면 어른들도 자기 자신을 낮게 보잖아요.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하고요. 그건 너무 피곤한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걸 받아들이면 되는데 틀렸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다름을 틀림으로 가르치는 세상인 것 같아요.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은 아니잖아요.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이 자라니까 어른 되기 싫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악순환인 것 같아요.
같은 의미에서 ‘시시한 어른’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실패한 혹은 나쁜 어른이라고 하지 않아서요. 그냥 멋있지 않은 거예요.
실패하지 않는 어른, 이게 예전 패러다임인 것 같아요. 성공과 실패로 판단하니까 직업의 기준, 성공의 기준처럼 온갖 갖춰야 할 기준들이 생기죠. 그렇게 우리도 자라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인생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멋있게 사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저는 ‘일베’ 같은 걸 아이들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아요. 다만 그런 것은 생각이 짧은 거라고 얘기해요. 깊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이 책을 통해 ‘다른 목소리’로 새롭게 삶의 지침을 찾은 10대들이 이제는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아져야겠고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정해진 틀 안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또 진로 교육이 많아져서 직업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을 해요. 하지만 대학에서 진로 찾는 사람도 많고 삼십 대에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많아요. 아이들이 너무 작은 틀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
작가의 어린 시절에 지침이 되어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좋아하는 작가들이었던 것 같아요. 무라카미 류를 좋아했고요. 김영하 작가, 박민규 작가 좋아했어요. 인생의 한 마디가 되었던 것은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말이 적힌 무라카미 류의 『69』를 읽고 정말 인생 헛살았다(웃음)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 문구가 제 인생의 목표예요. 책 내용은 아니었고 작가의 말이었는데요. 나를 괴롭혔던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즐겁게 사는 거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라는 글을 읽었을 때 많은 생각을 했어요. 10대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잘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저도 친구들이나 부모님, 형제들 때문에 힘들 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저들이 나한테 미안해하겠지, 이런 생각도 하고, 죄책감도 많았거든요. 잘 못하면 엄마한테 미안하단 생각도 들고요. 그랬는데 그 문구 하나로 모든 걸 내 중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인생이 사실 별 거 아니잖아요. 즐거움은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아직도 무엇을 선택할 때 그게 얼마나 경제적 도움을 줄 건가, 이런 게 아니라 재미있을까, 즐거울까, 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가라는 직업도 재미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했죠.
작가도 비정규직이고(웃음)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도 삶에서 무척 중요하긴 하지만요. 즐거움과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에요.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라는 직업도 할 만하죠. 경제 조건이 2순위, 3순위는 될 수 있지만 절대 1순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그걸 1순위에 두는 경우가 많아요. 안정적일까, 잘 먹고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이 인정해줄까, 하고요.
지금의 고민은 뭔가요? 작가의 현재가 궁금해요.
작가는 제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거지만 작가라는 직업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 제일 많아요. 아이들이 작가 언제까지 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할 거예요, 물을 때가 있거든요. 저는 내일이라도 글 쓰는 게 재미없으면 안 할 거라고 말해요. 즐겁지 않으면 안 할 거라고요. 작가라는 직업이 정말 즐겁긴 한데 제 인생 여러 요소에서 절반 이상을 빼앗고 저를 힘들게 하면 이 직업에 큰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어른의 기준에는 경제적 독립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없는 정도라면 직업으로 삼기는 힘들지 않을까도 생각하죠. 그래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긴 하죠. 요즘은 그거네요.(웃음)
역시 균형이 중요한 거겠죠.
그걸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오히려 20대 중반까지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때 작가가 되고 나서 슬럼프를 크게 겪었거든요. 그 다음부터 어떻게 하면 좀 더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요. 재미있는 건요. 책도 안 팔리고(웃음) 인생이 재미가 없다,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강연을 가면 이런 얘기를 제가 하죠. 그런 걸 잊고 있다가 강연에서 떠올리고 기분 좋게 집에 와요. 어른들도 다 알면서 잊고 사는 게 많아요. 인생이란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렵기만 한 건 아닌데 힘든 부분에만 주목을 하고 있으니까 더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딱딱해지고 사는 대로 지내다가도 나를 내가 좋아하는 나로 다시 되돌려놓는 장치가 필요한데 10대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보면 아주 좋은 스위치네요.
동료 작가 분들이 저를 항상 부러워하세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젊어서.(웃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갔어요. 그런데 제가 10대들을 보면 딱 그 마음인 거예요. 작가 선생님들께서 제게 해주신 얘기가 제가 아이들을 보니까 진짜 맞는 말이었구나 싶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도 아직 젊다고 말해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요. 아이들은 제가 지금 작가니까 평생 작가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평생 작가만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직 한참 젊으니까요.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쓸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아이들을 보면 생각하는 거죠.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
시간이 지나 10대가 될 자녀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내일을 기대하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을 기대하는 아이요. 내일이 없는 어른들, 내일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것만 있다면 인생이 시시해질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일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시시해지지 않을 거예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살지가 중요하다, 꿈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이 모든 게 딱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자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네요.
네. 시시한 어른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너무 자기 기준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거죠. 책을 보더라도, 영화를 보더라도 그래요. 취향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다른 사람이 하니까 하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요. 저는 그게 무서워요. 우리나라 인구가 오천만인데 천만 명이 같은 영화를 보고 좋아한다는 게 말이에요.(웃음) 재미없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저는 재미없게 사는 어른을 보면 그렇게 안타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 건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은 변할 수 있잖아요. 안 시시해질 수도 있고,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데 말이에요. 특히 아이들이 죽으면 너무 안타까워요. 살만큼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단순하게 내 인생 끝났다 생각하고, 가고 싶은 학교 못 갔다거나 친구랑 싸웠다거나 해서 홧김에 나쁜 선택을 하면 너무 안타까워요. 안 그럴 수 있는 아이들이니까요. 다른 가능성도 많고요.
그게 아니라고 해주는 어른이 한 명만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어요.
진짜 시시하지 않은 어른은 약자를 보호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선생님 혹은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우선 자기 인생이 똑바로 갖춰져야 하겠죠. 그렇지 못하니까 약자도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인생을 잘 살면 아이들 같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사는 어른들이 많아져야할 거예요.
아이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너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른들 무시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는 거예요. 너희를 보호하는 것도 어른의 의무라고요. 어른들이 의무를 다할 수 있게 제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는데요. 친구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잖아요. 학교 폭력이나 낙태 같은 건 아이들끼리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럴 때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혼내기나 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만 아이들도 어른을 믿고 자기들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 전체적인 문제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개인의 문제는 아니죠. 사회적인 문제기도 할 텐데요. 참여할 수 있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개개인은 약하더라도 그 개인이 뭉치면 충분히 사회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더 좋아져야 하고요. 한편 사회가 나아지려면 미래를 이끌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몫이죠. 그것만 잘해줘도 어른들은 시시해지지 않을 거예요.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어른이었으면 좋겠어요.
청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왔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에세이로도 담았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과제,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청소년 문학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10대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가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재미인 거죠. 그게 문학의 역할이잖아요.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자기 삶과 다른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제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첫 에세이였는데 에세이로 또 독자를 찾을 계획도 있나요?
이 책에서 큼직하게 얘기를 해서 다음에는 좀 더 세세한 아이들의 고민을 더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인 고민에 대해 상담하는 이야기도 쓰고 싶고 그래요. 또 인권 같은 주제로 교양서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 대상으로 하는 책은 많은데 아직까지 청소년을 위한 책은 많이 없거든요. 10대, 특히 중학생들은 아직 어른들 대상의 책을 읽으면 많이 힘들어 하거든요. 긴 글 읽는 걸 어려워하고요. 그 아이들을 위한 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 김혜정 저 | 자음과모음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은 청소년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저자가 작가가 되기 위해 해왔던 위한 많은 도전과 실패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십대는 멋진 어른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임을 깨닫게 도와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