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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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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김민정 시인이 2013년에 출간한 산문집 제목이다. 시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스물 넷에 시인이 됐고 지금은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자 ‘문학동네시인선’ 편집자로 일하는 김민정. 그는 누군가 “저는 시를 도통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면, 가장 귀를 쫑긋 세울 시인이다. 시를 쓰는 사람 이전에 책을 만드는 사람 ‘김민정’은 다른 작가의 성공에 배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는 경우가 없다. “남이 상 타면 난 왜 이렇게 좋나”고 읊조리는 그는 실로 뻔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7년 만에 펴낸 김민정의 세 번째 시집은 유독 리뷰가 많다. 제목이, 표지가, 시인의 말이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는 시인은 평소 시집은커녕 시를 읽을 여유가 없다는 독자들을 불러 세웠다. 전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로 시인을 만나왔다면 이번 시집은 낯설다. 현실의 언어로 묘사한 풍경은 시적이지 않다. 다만 범상하지 않은 시인의 눈썰미가 마음의 근육을 움직인다. 어릴 적 멀리뛰기 선수였던 김민정은 이성보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다. 코 푸는 소리를 시 쓰는 소리로 변주하는 직감주의자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김민정 시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자주 듣는 소리는 세 마디. “바쁘지?”, “통화할 수 있어?”, “아파?”다. 시인은 이런 안부를 듣는 상황이 창피하다고 했다. 그래도 “책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 “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라고 외치는 시인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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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다면 그건 기쁜 선물

 

하루에 전화는 보통 몇 통씩 하세요?


많을 때는 70, 80통 정도요? 회사 전화는 잘 안 받고 개인 전화를 많이 써요. 출판사로 전화를 하는 분들이 꽤 많기도 하고, 또 제가 전화를 할 때 ‘031’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라서 안 받는 분들도 있고 해서요.

 

가끔 전화기를 꺼놓고 싶겠어요.


에이, 그럴 순 없어요. 혼자 살다보니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님이 큰일이 난 줄 알아요. 얘가 좀 바쁘겠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약간 제 시처럼 얘한테 큰일이 났네, 났어, 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우리 집이 딸밖에 없어서 유독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전화기를 못 꺼요. 가족들이 좀 다혈질인데다 감정적인 기질이 있어요. 거꾸로 저 역시도 부모님과 통화가 안 되면 일 났네 일 났어 이러고 난리를 쳐요. 가족력인 것 같아요. 제 오지랖에 호들갑이.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세 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 나온 지 3달이 좀 안 됐어요.


제 시집 때문에 바쁜 일은 거의 없었어요. 시집이야 뭐 냅니다, 냈어요, 냈었네요, 하고 지나가지요. 난다에서 김이듬, 김행숙, 신용목 시인의 산문집이 연달아 나와 좀 바빴고요, 하반기에 출간될 문학동네시인선과 새롭게 시작될 문학동네 구간 시집 시리즈 때문에 좀 정신이 없을 뿐이에요. 그러고 보면 밀린 책 때문에 바쁜 일상이긴 하네요.

 

인터뷰도 거의 마지막이죠?


아마 그럴 거예요.

 

이번 책을 처음 봤을 때 좀 놀랐어요. 김민정의 시집이 핑크색이라서요.


(웃음) 문학동네시인선의 디자인을 해주시는 수류산방 박상일 방장님이 처음엔 에메랄드 색으로 포장된 디자인을 주셨어요. 세련된 시안이 좋긴 했는데 컬러로는 제가 부여하고 싶은 상징성이 덜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꽃’을 모티브로 고민을 더 해주십사 부탁을 드려봤지요.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뭘까? 근데 꽃 같더라고요. 피었다 지는 일이 아름다운데 참 쓸모없음이니까, 그건 인생사나 시나 뭐든 다 대입이 가능한 얘기니까. 그리고 며칠 안 되어 딸기우유 같은 핑크가 막 도착했는데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아 이거가 이거겠다 확신이 들더라고요.
 
평소 원색을 좋아하시잖아요.


자칭 원색중독자죠. 그런데 시집 내고 나니까 절대로 원색을 쓸 수 없는 제목이었음을 알겠더라고요. 제목의 발음이나 글자의 조형이나 그에 맞춰 컬러 배색에도 율동감이 생긴다는 걸 여전히 배우고 있어요. 또 여전히 새롭고요. 

 

시 「수단과 방법으로 배워갑니다」에도 등장해요. 시집을 빨리 묶자는 편집자와 대화하는 도중, “나 진짜 녹색 안 어울려. 고집스러운 색이 녹색이야”라고 말했어요.


녹색을 참 좋아해요. 선명한 녹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핸드백 같은 거 보면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어요. 단정하면서도 단호한데 도통 속을 잘 모르겠다 싶은 비밀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녹색이 다른 컬러들을 또 잘 받쳐주기도 하잖아요. 꽃 받쳐주는 것도 녹색 줄기에 녹색 이파리라고 보면 음…… ‘배려 있는 고집’이란 걸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겐 그 정의가 녹색이다 싶어요.

 

그런데 오늘 녹색 점퍼를 입고 오셨어요.


아 이 점퍼요? 실은 어제 오은 시인을 만났어요. “은아”하고 반갑게 만났는데 애는 안 보이고 이 옷만 보이더라고요. 보자마자 “나 줘” 했네요. (웃음) 걔한테는 좀 작다 싶은 것이 딱 내 옷 같더라고요. 그런데 헤어질 때 보니 내가 너무했나 싶은 거예요. 미안해져서 너 도로 가져가라 그랬더니 됐대요. 나중에 옷 한 벌 사줄게 했죠, 뭐.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게 빚으로 뚱뚱해져가는 일 같아요. 

 

표지를 열면 ‘시인의 말’이 가장 먼저 보여요.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며, “세 번째이고 서른 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라고 썼어요. “삼삼하다”는 표현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심한 허기에 찼을 때 모락모락 흰밥에 생선을 얹어서 한입 먹었을 때 그 첫 맛을 표현하라고 하면 전 꼭 삼삼하다 그랬어요. 간이 셀 때는 삼삼하다고 안 하고 보통 간간하다고 하잖아요. 앞서 냈던 두 권의 시집이 아주 간간했다면 비교적 이번 시집은 삼삼한 편이었어요. 물론 작정한 바도 있었지요. 시에서 자꾸만 소금 더 치려는 손을 억지로 잡아채는 마음의 순간순간들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거든요. 시에 있어 어떤 ‘간’에 대해 의식이란 걸 처음으로 해본 게 이번 시집임은 분명해요.

 

출근길 버스에서 시를 읽었어요. 멀미가 나는데도 읽게 되더라고요. 시를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뭔가 표현하고 싶다. 털어내고 싶다. 이 표현 욕구를 참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몇 자를 끄적였고요.


우와. 그 과정이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참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직선에서 곡선을 발견하는 일 같은 거잖아요. 얼마나 건강한 일이에요. 그건 타고난 체력이 좋다는 증거기도 하거든요. 더불어 얘도 쓰는데 나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건 저자로서 무척 기쁜 일 같아요. 저는 제 시가 앞으로 더 읽는 이들에게 만만해졌으면 좋겠어요. 만만하게 이쯤이야 하고 덤볐는데 쓰려니까 어럽쇼, 이쯤이 안 되네, 하게 만드는 시로 얄미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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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마주한 첫 시집

 

시집을 펴내고 독자들을 만나셨죠?


위트앤시니컬에서 행사 딱 한 번 했어요. 40명 모인 자리였는데 몇 분 빼고 다 여성들이더라고요.

 

7년 만에 시집을 펴내고 독자와 마주한 거잖아요. 첫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웃음) 바르고 있는 립스틱 컬러가 뭐냐고 묻던걸요. 그래서 제가 컬러 이름을 묻는 거냐, 상표 이름을 묻는 거냐, 되물었고 둘 다 말끔하게 답을 해드렸죠. 파우치에서 실물 이렇게 꺼내 보이면서. 저한테는 문학적인 질문거리가 별로 안 생기나봐요. 사실 그게 편하기도 하고요. 문학적으로 어려운 질문은 또 너무 어려우니까요.

 

리뷰도 찾아보시나요?


이번 시집 내고는 좀 찾아봤어요. 변화를 좀 가져봤다 싶은 시집이니까 어떻게들 읽으셨나 궁금하더라고요. 동료들끼리는 시집이 나와도 어떻다고들 잘 얘기 안 하거든요. 그저 사인해서 주고받을 뿐. 이번 시집 리뷰 중에서 가장 깔깔대며 웃고 본 것은 이 문장이었어요. 표지는 아름다운데 내용은 쓸모없구나. 재밌잖아요. (웃음) 안 재밌어요? 난 재밌었는데.

 

저자의 의도와 너무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제 의도대로 해석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시를 급조해서 벼락치기로 써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제 시임에도 불구하고 제 시의 의중을 뒤늦게 발견할 때가 많아요. 내가 이렇게 썼었나, 이런 대목을 이래서 썼구나, 뒷북처럼 나중에 내가 나를 때린다고나 할까. 해석은 늘 때릴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종 같은 거니까요, 다른 이들의 해석에 별 신경을 쓰지는 않는 듯해요.

 

여러 시어가 기억에 남지만, 마음에 유독 와 닿았던 표현이 있었어요. 「봄나물 다량 입하라기에」에서 등장하는 “저기 저참으로 간 아저씨의 손으로 코 푸는 소리 들린다”. ‘코 푸는 소리’가 참 좋더라고요.


실제 있던 일을 그대로 옮겨놔서 생생하게 전달된 게 아닐까요. 정직만한 무기가 없잖아요 원래 감동에는. (웃음) 파주 동네에 24시간 슈퍼가 있어요. 워낙에 조용한 동네고 밤에 사람도 없고 그래서 가끔 잠이 안 오거나 하면 새벽 2시나 3시쯤 장을 보러 가고는 해요. 그러고는 연근도 사고 달래도 사고 호박도 사고 알로에도 사는데 꼭 그 시간에, 사람이 별로 없을 때 혼자 장을 보면 아주 섬세해진단 말이죠. 관찰도 밀착력이 세지고. 잠옷차림에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저 여자 또 왔네 하고 직원들이 알은척을 하느라고 대화도 오가고 시 쓸 거리도 생기고 뭐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생활에서 건졌기 때문일까요? 몸의 이야기도 많아요.


최근에 제가 이사를 했는데요, 공사를 하면서 도배를 새로 하게 되었는데 평균 연령 75세이신 어르신 네 분이 오셨더라고요. 가만히 서서 그분들이 붓질하는 걸 한참 쳐다만 보기도 했는데요, 가장 웅크린 자세에서 가장 안 보이는 곳을 섬세하게 칠해나가시는데 뭔가 기적 같은 거예요. 몇 년 하셨냐고 했더니 다들 40년 이상 되신 베테랑이셨는데 아직도 아니고 ‘아즉’ 멀었다고 입버릇처럼 그러시는데 순간 슬픔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나중에 엄마한테 말했더니 “야, 먼데서 찾지 말고 네 엄마 불쌍한 거나 챙겨” 그러는 거 있죠? 한마디로 그냥 딱 깨는 거죠. 가족은 여러모로 좀 깨요. 그쵸?

 

어떤 인상 깊은 상황을 목격했을 때, '이게 시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나요?


모기 잡으려고 잠시 숨 멈추고 집중하게 되는 내 몸뚱이를 발견했을 때요. 달아날까 두려워서 초조함을 느낄 때요. 요거 잘하면 되겠구나, 그런 분주함으로 마음이 허둥거릴 때요. 물론 대부분은 버려지지만요.

 

시의 순서는 어떻게 정했나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시를 앞에 놓는 위주로 짰다가요, 편집을 담당한 문학동네 황예인 팀장의 말을 무조건 들었어요. 황 팀장이 절기 위주로 배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는데 아주 그냥 무릎을 딱 쳤죠. 너는 천재다, 얘 하면서 와락 껴안아줬죠. 탈수를 마치고 배배 꼬인 빨래들처럼 엉켜 있던 시들을 하나하나 털어 말릴 수 있었어요. 내게는 최선의 방안 같았어요.

 

편집자로 시집을 만들 때도 같은 요구를 하시나요?


시집 한 권을 읽어나가는 호흡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시의 배치니까요, 아주 여러 번 읽고 내 호흡을 계산한 뒤에 꽤 깊은 개입을 하는 것 같아요. 일단 불편하면 말을 해요. 보다 덜 불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같이 모색을 해보자고 하는 편이에요.

 

시집 편집자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저라고 정답을 알겠어요. 저보다 훨씬 오랜 경력으로 현역에 계신 분들도 많은걸요. 다만 이런 바람은 있어요. 시집 편집자가 좀더 당당하게 시인의 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거요. 좋고 싫음의 문제를 떠나 시를 읽다 보면 이 시집에 어울리는 시와 안 어울리는 시가 분명 구별이 되거든요. 시인만큼 깊이 여러 번 읽는 이가 편집자일 테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주었으면 하지요. 시인들은 버리는 걸 잘 못하거든요.

 

시집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모두가 이 제목은 안 읽힐 거야, 했는데 모두가 이 제목으로 시집을 기억해줄 때요. 저는 시집 제목 짓기에 좀 미쳐 있는 편이에요. 사실 그 재미에 시집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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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

 

SNS를 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에요. 글을 보면 지인, 동료,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요. 표현을 많이 하는 만큼 오해도 많이 받지 않나, 싶어요.


아무래도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유력한 공간이니까요, 웬만하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편이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거면 안 하는 게 SNS잖아요. 해야지 해서가 아니라 뭐하고 있나 보면 하고 있는 게 또 SNS잖아요. 어떤 강박 같은 게 있어서, 묘한 재미 들림 같은 게 있어서 트위터의 경우 딱 140자 맞춰서 글 올리곤 해요. 책을 준비할 때 교정지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은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붙여가며 편집을 해요. 교정 교열을 볼 땐 형광펜으로 밑줄 기본으로 삼는데요, 그 대표적인 부분들이 SNS에 올라가는 것 같아요. 나중에 보도자료 쓸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리트윗이나 좋아요, 반응을 보면서 대중들의 심리도 살피게 되지요. 가끔 그만 좀 해라, 잠이나 자라, 책은 그렇게 광고해서 파는 게 아니다, 점잖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도 만나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신경 안 쓰게 됐어요. 실은 책 만들 땐 내 저자밖에 뵈는 사람이 없기도 해서요.

 

현실에서 책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제 소소한 일상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올리면서도 실은 눈치를 보지요. 이런 거 올리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지금 분위기 파악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잘난 척하고 있는 건 아닌가. 비교적 균형을 갖고 날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혹시 제가 재수 없다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하고. 아직까지는 빨간불 켜주신 적 없는데요. 요즘 스스로 좀 지쳐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조절이 힘들지만 저는 눈치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아요. 제가 좋은데 어떡할 거예요? 반발이 있어도 '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예요.

 

그래도 출판사 대표인데요. 권위적인 느낌이 조금도 없어요.


권위요? 에이 제가 어울리면 벌써 떨어댔죠. (웃음) 권위도 아무나 부리는 건 아닌 듯해요. 저는 타고난 게 깨소금 같은 사람이라서 잘고 잘 섞이는 양념으로는 제법 쓸모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폐해도 커요. 사람이 행정적이지 못하고 계산기를 못 다루니 결국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불편함을 초례하기도 하거든요. 요즘은 그 고민이 많아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거요. 큰 그림을 그려서 도모를 잘해야 한다, 는 그거요. 출판사 대표로 가장 큰 바람은 직원들 중 그 누구도 안 아팠으면 하는 거예요. 아픈 직원이 회사 나오는 게 가장 싫거든요. 아프면 집에 가, 당장 가, 그게 제 입버릇인데 또 행정적으로 보자면 매번 그럴 수는 또 없는 거니까 아 그런 문제가 정말 어려워요. 그럼에도 이 정도가 이상이다 싶은 출판사의 밑그림은 있어요. 어디 있냐면 여기 내 마음에요. 그 꿈으로 버텨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어떤 사람을 싫어해요?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비단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요, 인간사의 도리가 필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에 상대가 어떻게 구는가를 봐요. 그리고 내 사람이다, 내 사람 아니다 빠른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난다가 지난 9월 1일, 주식회사가 됐어요.  2014년 6월부터 선보인 '걸어본다' 시리즈가 '난다'의 브랜드를 잘 설명하는 기획이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 김이듬 시인의 『모든 국적의 친구』까지, 8권이 나왔는데 계속 이어지나요?

 

네. 10월 초에 문학평론가 김형중 교수가 광주를 걸어본 이야기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가 나올 예정이고요, 소설가 김유진이 아이오와를 걷다 온 이야기 『받아쓰기』도 한창 마무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차후 나올 책들이 꽤 되는 듯하네요. 황현산 선생님은 목포를, 김연수 작가는 중국을, 백가흠 작가는 그리스를 다녀와 쓰고 있고요, 정영효 시인은 3개월간 이란에 가 있게 되면서 한창 테헤란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들 외에도 강경석 평론가와 김금희 소설가는 부부가 같이 인천을 쓰기로 했고요, 음, 또 누가 있더라, 왕십리 걷는다는 김엄지 작가도 있고…… 아무튼 국내 지역도 꽤 많이들 점을 찍어줘서요, 제가 부지런만 떨면 시리즈는 풍성해질 것 같아요.

 

인터뷰집도 곧 나온다고 들었어요.


준비한 건 꽤 오래되었는데 막상 출간하려고 하니 서둘러지지 않네요. 1998년에 잡지사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서 사람들 만나 인터뷰하는 일이 꽤 되었는데 좀 추려보니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남자들 만난 이야기만 남겨보자 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움만 커지고 그러네요. 그래도 조판은 해놨으니 출간, 해야죠. 저 말고도 인터뷰 원고 출간할 문인들이 꽤 되어서요, 아마 그들 포함해서 시리즈를 하나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난다’ 시리즈로 나오나요?


네. 이름은 미리 지어놨어요. ‘만난다’요. 말장난 같아도 요런 게 난 참 재미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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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에 오지랖을 떠는 사람

 

이번 시집에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라는 시구가 있어요. 거리를 걷다가 이런 간판을 보면,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기겠다 싶어요. 언제쯤 현실로 이뤄질까요?


야금야금 준비하고 있기는 해요. 이번에 이사하면서 책 정리는 얼추 좀 해둔 것 같아요. 공부 욕심은 전혀 없이 살았는데 책 욕심은 어마어마했던 것이요, 이삿짐센터에서 특별히 몽골 남자분만 다섯 분을 보내셨더라고요. 몽골 남자들이 힘이 좋대요. 진짜 무거운 책 박스를 번쩍번쩍 들더라고요. 왜 플라스틱 박스 있잖아요. 그걸 사이즈별로 컬러별로 사서 분류 작업을 하는데 참 별별 책이 다 있더라고요. 이걸 다 어쩌겠나, 죽을 때 이고 가겠나, 일찌감치 내놔야지, 하는 결심은 더욱 절실하게 한 듯해요.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어요.

 

유희경 시인이 시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을 때, 반가웠겠어요.


걱정도 되었지만 신이 나는 일 같아서 좋다, 도울 수 있는 일이면 함께할게 그랬어요. 시집 전문 서점을 시인이 운영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그림은 없잖아요. 어떤 시를 읽으면 좋을까요, 물어볼 때 이런 시를 읽으세요, 척척 알려줄 수 있는 타이트함 같은 게 현장에서 바로 조여진다면 그만큼 탄력적인 주고받음도 없지 않겠어요. 저는 이렇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작은 서점들의 출현을 더욱 기다리게 되었어요.

 

평소에 시는 굉장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한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가장 사회적일 수 있겠다 싶어요.


세상만사를 두고 온갖 오지랖을 떠는 사람이 시인이어서 그러지 않을까요? 어른인데 어린이처럼 우주를 손에 쥐고 주물럭대는 상상력으로 귀여운 오지랖을 떠는 이들이 시인이다 싶어요.

 

언젠가 한 시인으로부터 "시인을 돌보아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출판계에서 시인들이 소외됐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돈으로부터 참 자유롭잖아요. 돈 벌 궁리 속에 시로 덤비는 시인은 아마 세상에 없을 거라고 봐요. 그러다보니 시인이 눈치를 볼 이유도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억압도 사라지고, 그래서 다채롭고 풍요로운 시집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쓰고 싶은 시를 쓴다, 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과 동일하잖아요. 세상에 하고 싶을 일을 하고 사는 이는 많지 않으니까 이쯤 되면 복이지요, 복복.

 

이번 시집을 펴내고 “어르신들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떠셨나요?


“알아먹을 수 있더라, 안 길어서 내가 다 읽었다” 그런 말씀 하시는데, 좋더라고요. 이렇게 쓰지 마, 이런 거 시 아냐, 이런 전화 받았을 때는 우울하게 전화 끊었었는데 저도 참 간사한 거 있죠? (웃음)

 

시인님의 산문집 『각설하고,』가 생각나요. 김민정 시인의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아요. 각설하고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며칠 동안 아모스 오즈의『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책을 보면 “나는 한 권의 책이 되길 바랐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와요. 저는 우리 모두가 한 권의 책 같아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 사실을 서로 존중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는 얘기도 된다 싶거든요. 요즘 저는 삶의 매 순간이 아름답구나 불쑥불쑥 느껴요. 어쩌면 제 안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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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저 | 문학동네
이번 시집에는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시세계를 펼쳐오며,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 강한 영감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 외 8편의 시가 실려 있어 7년 만에 출간되는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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