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세 번째 숙제가 끝났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두 차례나 지냈던 윤태영. 그는 오랜 세월을 노무현과 함께 하며 ‘노무현의 말’과 살았다. 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기록하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변인 직을 내놓고 먼저 청와대를 떠나는 윤태영에게 그 말들을 정리해 책으로 내는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을 정도다. 이제 그 숙제는 홀로 해야 하는 일이 되었지만 그는 이 숙제를 끝까지 해내려고 한다. 윤태영은 이를 “운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리더십과 인간 면모를 담은 『기록』(2014), 국민통합의 꿈을 담은 『바보, 산을 옮기다』(2015)에 이어 말하기 원칙과 노하우를 담은 『대통령의 말하기』를 최근 출간한 것은 모두 그런 까닭이었다.
“책을 낼 때마다 내가 대통령의 철학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걸까,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떨 때는 너무 대중적인 부분만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정말 당신이 이런 책을 통해 넣고 싶어 하셨을 것들을 내가 빼먹은 건 아닐까, 이런 노심초사가 있긴 있어요.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는 이 책을 가리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쓴 ‘공저’라고 말했다. 그만큼 ‘살아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들을 많이 담았다. 그 속에서 말하기의 시대적 의미와 진짜 말하기의 정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외압과 힘이 아니라 결국 ‘말’
한 눈에 봐도 방대한 양의 기록들입니다. 한글 파일만 1,400개라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서문에도 썼지만 양극단의 평이 있는 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 이것이 오해 없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했어요. 어쨌든 ‘말하기’라는 자기계발 형식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님의 말하는 방식과 내용을 이 안에 잘 담아내는 것이 저의 책무이기도 해서요. 그 점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대통령’에 방점을 찍을 수도, ‘말하기’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는 책인데요. 쓰는 입장에서는 어디에 더 무게 뒀을지 궁금합니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썼을 때도 그랬는데요. 제가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책을 쓰고 다른 글쓰기 책들을 보니까 대부분 노하우는 비슷하더라고요. 말하기라는 것도 대체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 정말로 맞는 사례, 정확한 사례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가급적이면 대통령님의 말씀 중에서도 당신이 가졌던 철학이나 생각이 골고루 표현될 수 있도록 상당히 안배를 한 편이에요. 어린 시절 얘기도 들어가 있고요, 퇴임 후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현 상황을 규정한 얘기들도 있어요. 외교에서의 한미 관계, 이런 얘기도 있죠. 이런 것들이 다 포괄적으로 배합돼서 들어갈 수 있도록 했어요.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는 말이 굉장히 상징적이에요. 책에서 참여정부를 ‘말의 전성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은 말이 참 빈곤한 시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가 통치 행위를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말’이라고 생각해요. 독재 시대에는 힘으로 하거나 눈빛으로도 할 수 있었겠죠.(웃음)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상관의 분위기를 바라보고 했을 수 있는데요.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약하고 내세웠던 정책을 실현, 이행하려면 주변의 사람들을 다 설득해야 해요. 야당은 물론 장관, 비서실 직원들한테까지도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런 정책을 지향하고, 이런 이유로 이 공약을 이행하려고 한다’고 설득해야 해요. 결국 말이거든요. 때로 반대에 부딪칠 때도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 수단 역시 외압이나 힘이 아니라 결국 말이에요. 유일한 권한이라면 인사권 같은 걸 텐데 이것도 한계가 있고요.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 같은 경우는 생방송으로 하는 토론 프로그램도 주저 없이 나가셨어요. 설득하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노력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쓴 거죠.
때문에 ‘말’의 시대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말하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시대라면 이는 그전보다 후퇴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어쨌든 지도자라면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죠.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고 같이 가기 위해서는 결국 말을 해야 하는 거거든요. 말이라는 것도 ‘말재주’ 이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고요.
그런 이유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잖아요.
얼마 전 신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 실렸어요. 책상에 걸터앉아 얘기하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어느 신문에선가 ‘우리는 왜 이런 대통령이 안 나오느냐’고 하는데 댓글에 ‘우리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사진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거든요. 그건 노 대통령의 지향이기도 했는데요. 자연스럽게 참모들과 걸터앉아 회의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분위기가 돼야 스스럼없는 소통도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미국 대통령의 그런 모습은 굉장히 좋아하면서 한국 대통령으로 오면 다른 잣대를 대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의 대통령은 침묵으로 말한다거나 권위를 지켜야 한다거나, 그런 불균형이 좀 있죠.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하면 어쨌든 말 잘하고 서민적인,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좋은 평을 받잖아요. 이상하죠.
책 뒷부분에도 그런 아쉬움이 읽혀요. 노무현 대통령의 스스럼없는 모습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기상조였을지 모른다고 하는 생각 말이에요.
임기 초반에는 일부러라도 서민적인 용어를 많이 쓰시려고 한 부분이 있어요. 대통령의 언어라는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일부러 서민적 용어를 써서 소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금기를 깨고자 했던 것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일생을 금기에 도전한 분이셨거든요. 삼당합당 때도 그랬고, 부산이란 동네에서 계속 호남당으로 출마한 것도 그랬죠. 그것처럼 대통령이라면 이러해야 한다, 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 초반에는 서민적 용어를 많이 쓰셨어요. 정치인 시절, 재야 시절 썼던 용어도 일부러 쓰고요. 그런데 그게 보수 언론 등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죠. 지지율도 많이 떨어졌어요. 어쨌든 언론의 비판을 받으면 지지율이 많이 떨어져요. 지지율이 떨어지면 국정운영에도 상당히 장애요소가 돼요.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말씀이 잘 안 먹혀들어가는 게 느껴져요. 사람이 싫어지면 그 사람 말도 싫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걸 감수하면서도 해오셨는데 임기 말에 가서는 그걸 후회하는 듯한 말씀도 사실은 하셨죠. 말로 인한 시비 때문에 다들 상처 받았기 때문에요. 실제로 후회를 하셨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요. 아쉬움을 많이 남기셨던 것 같아요.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안 하면 될 텐데 말이죠.
안 나타나면 됩니다.(웃음) 말 안 하면 돼요. 가만히 있으면 소위 말해 중간은 가는데요. 대통령이 토론 현장에 뛰어들면, 일단 얼마 정도의 사람은 대통령이 토론의 당사자 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요. 또 대통령의 말, 논리를 찾아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통령이 논쟁의 한 편에 서서 얘기하기 시작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 것 같아요. 그걸 피하는 방법은 이미지 정치예요. 민생 현장에서 사진 찍고, 태풍 피해 입은 곳에서 작업하는 모습 찍고 하면 지지율은 올라갈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게 자이툰 부대 방문했을 때인데 당시 지지율이 확 올라갔거든요. 그러면 국정 운영도 훨씬 수월하죠. 대통령님도 나중에는 동의하셨어요. 민생현장에 가면 그 이슈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잖아요. 그런데 노 대통령은 가서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보다 밀도 있게 토론해서 그들과 정책을 한 가지 더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그림들이 나중에는 많이 나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좀 적은 편이죠.
보좌하는 분들 꽤 힘드셨겠네요.
의전비서관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항상 그런 일정, 민생 현장 방문이나 외부 요청 일정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님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들이 있었죠. 그렇지만 말씀드린 대로 대통령이 감으로써 그곳의 주제가 사회적인 의제가 되는 효과가 있으니까 나중에는 참모들의 설득을 많이 받아들였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쓴 책
대변인에 대한 생각도 적으셨거든요. ‘이래저래 쉽지 않은 자리’라고요. 대변인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이었어요?
초기에 연설 비서관이었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됐는데요. 일종의 고스트 라이터(ghostwriter, 대필작가)죠. 청와대 대변인도 한편으로는 고스트 라이터 같은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한 번은 제가 설명을 위해 비유를 한 번 써봤는데요. 아니다 싶더라고요. 내 언어로 얘기할 자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 내 얘기나 내 논리로 설명하지 말자고요. 그때는 심지어 언론환경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은 때라 설명도 제대로 못하면서 제가 오해를 증폭시킬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하튼 말씀이 최대한 정확히 전달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 그게 최고의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잘 안 되고 왜곡된 적이 꽤 있었죠.
그렇다면 대변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데는 모르겠어요. 정당 대변인은 좀 다를 거예요. 정당 대변인은 그 사람 자체가 한 명의 정치인이니까요. 자기 정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옳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요. 반면 청와대 대변인은 다르겠죠. 청와대는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조직이고, 그걸 보좌하는 기구니까요. 대변인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100% 투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의외로 또 큰 어려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고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거예요. 촌철살인이 있는 사람이면 그걸 활용할 수도 있죠. 제 경우 그런 능력은 없었어요. 어쨌든 청와대 대변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대통령의 철학과 배경을 온전하게 외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모시는 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겠죠. 깊은 이해가 있을 때 거꾸로 제일 편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청와대 대변인 자리가 국회로 가는 디딤돌처럼 기능한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 자체의 덕목이랄까, 그것을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생각을 듣고 싶었어요.
언론 노출이 굉장히 많은 자리라 장차 정치를 할 사람이라면 굉장히 좋은 디딤돌이 되는 것만은 확실해요. 노무현 정부 때는 특히 대변인의 언론 노출이 많았어요. 첫 해에 대변인 하던 시절에는 거의 매일, 저녁 뉴스에 나왔으니까요. 매일 뉴스에 나왔다는 건 진짜 정치를 한다면 굉장히 큰 자산이거든요. 인지도가 높아지니까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2007년에 먼저 나왔는데, 그때 대통령께서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퇴임한 당신의 얘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일을 같이 하자고 얘기하셨어요. 제 캐릭터를 아시고(웃음) 제가 정치에 안 맞는다는 생각도 있으셨겠죠. 그 말씀에 저는 동의했어요. 내 정치보다 대통령님의 얘기를 전달하는 걸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죽이자고 한 거고요. 처음 글 쓰는 비서로 들어갔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의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이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노무현 대통령이 봤다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으세요?
이 책이 나왔을 때 한 후배 언론인이 대통령께서 참 좋아하셨을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약간 울컥하더라고요. 무의식에 그런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통령님은 글과 말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우셨거든요. 당신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으면 승낙을 안 하시는 분이에요. 아무리 마감이 닥쳐도 말이죠. 공항까지 쫓아와서 결재를 올리는데 비행기를 타시면서도 결재를 안 하셨어요. 그런 분이기 때문에 이 책 작업을 같이 했다면 굉장히 힘들고(웃음)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도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는 글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를 안 하셨거든요. 이 책은 묘하게 둘이 섞여 있는, 사실은 공저인데요. 당신 말씀이 인용된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의견을 냈을 것 같고, 제가 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여를 안 하셨을 것 같아요.
책을 낼 때마다 내가 대통령의 철학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걸까,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떨 때는 너무 대중적인 부분만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정말 당신이 이런 책을 통해 넣고 싶어 하셨을 것들을 내가 빼먹은 건 아닐까, 이런 노심초사가 있긴 있어요.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래서 나중에는 원문 그대로를 옮겨내는 책도 하고 싶어요. 그게 연구하는 분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이 『기록』(2014), 『바보, 산을 옮기다』(2015)에 이어 세 번째예요. 한 인터뷰에서는 ‘숙제’로 표현하셨던데 아직 남은 숙제가 있나요?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오해들,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외국에서는 퇴임하면 바로 쓰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회고록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편이죠. 아직 쓰지 못한 얘기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숙제가 남아 있고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날것 그대로의 자료들을 엮어서 참여정부를 연구하는 분들에게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연구 중이에요. 어쨌든 그런 형식의 하나로 평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전은 꼭 한 번 쓰긴 써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쓴 다른 책들은 전달자 역할을 했던 거거든요. 저를 죽이고 대통령님의 생각이나 말씀을 옮기는 데 주력을 했어요. 반면 평전은 쓰는 사람의 평이나 생각, 가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쓰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그래도 다하지 못한 얘기들과 오해를 겪은 부분들을 최대한 사실 제시 차원에서 쓴다면 평전 형태가 제일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2차 자료, 그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 등이 다양한 형태로 많이 나왔어요. 반드시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대변인을 두 차례 했는데요. 처음 대변인 때는 근접한 대변인은 아니었어요. 열 개 알고 두 개 대답한 게 아니고 정말로 두 개만 알고 두 개 대답한 거죠. 그러니까 힘들었죠. 대변인은 공적인 자리만 배석하고 사적인 자리는 거의 배석을 못하니까 모를 수밖에 없어요. 한계가 있는데요. 나중에 부속실장으로 올라가면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게 됐어요. 그 전에 행정관이 한 분 계셔서 후보시절부터 기록이 있었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자신을 기록하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이에요. 누군가가 옆에서 기록한다는 건 당신한테도 도움이 되죠. 독대의 폐해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어요. 일대일로만 만나면 그 사람이 갖고 온 왜곡된 정보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회의나 세상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래요. 기록자가 있으면 오류를 줄일 수 있어요. 객관적인 기록이 남을 수 있죠. 기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용해요. 무엇보다 기록은 역사잖아요. 역사를 승리의 기록이라고 하면 기록을 남기는 쪽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도 있겠죠. 또한 누군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는 건 솔직함이거든요. 저는 거꾸로 누가 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지만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하게 하는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할 거예요.
그렇죠, 거꾸로 그 틀에서 자신을 계속 긴장시키는 장치도 됐을 거라 생각해요.
굉장히 오랫동안 곁에서 봐오셨는데 사람 노무현의 추억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감동을 주신 적이 참 많은데요. 크고 거창한 게 아니고요. 대통령님과 인연은 오래돼서 정치인 시절 자서전을 쓸 때 집중적으로 가까워졌고, 그분의 솔직함에 반했죠. 나중에 대선 때 캠프에 들어갈 때, 저는 대통령이 되실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저도 대세론에 지배됐던 사람이죠.(웃음) 다만 정치판에서 봐온 사람 중에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분을 위해 대선을 뛰어보기로 해서 들어갔던 건데요. 하루는 술을 많이 드셔서 모셔다 드리는데 술김에 “태영 씨, 잘 들어왔어, 나랑 청와대 가서 한 번 바꿔보는 거야” 이런 얘기를 어깨 두드리면서 하셨어요. 그런 게 감동이에요. 부속실장이 부러운 자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힘든 자리기도 한데요. 그런 힘든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을 주셨어요. 총리, 당의장, 대통령, 이렇게 세 사람이 밥 먹는 자리에 제가 옆에 앉아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건 인간에 대한 배려거든요. 제가 밥 나중에 먹겠다고, 뒤에 앉아서 기록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해도 그러지 말고 옆에 앉으라고 하시는 거죠. 참 존경하고 좋아할 만한 그런 분이에요.
이 기록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님이 이런 저런 평이 있지만 말을 잘하시는 분인 건 확실해요. 제가 마지막엔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는데 대통령께서 이름 붙이고자 했던 게 ‘말과글비서관’이었거든요. 그땐 이상하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름으로 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대통령님은 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말은 ‘김대중파’, 글은 ‘리영희파’, 이렇게 표현하셔서 이 두 분 중 누가 더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이 더 클까, 이런 고민도 하시고 했고요. 말하기 책을 쓴 건 대통령의 말하는 능력을 책을 통해 사람들이 배우면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생각과 철학을 남한테 전하는 수단은 결국 말과 글이니까요. 말 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부분에 강조한 내용, 편법은 없다, 최고의 전략은 정면돌파다, 핵심은 소신이다, 하는 것들이겠죠.
부록으로 2005년 신임 사무관 특강 녹취 자료를 넣었는데요. 크게 안 고쳤어요. 날 것 그대로의 워딩이 많은데요. 세상에는 하는 말을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이건 말재주라는 측면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에요. 말을 하시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정리를 하시고 새로운 말을 생각하거든요. 이렇게도 얘기해보고, 저렇게도 얘기해보면서요. 매끄럽고, 단아하고, 정제된 문장이 말 잘하는 것의 잣대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안에 담긴 내용, 말 하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한 거죠. 토론을 하려면 말재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이력으로 제압하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요. 진정한 말하기는 생각과 철학, 살아온 내력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나머지 미사여구나 매끄러운 말은 일시적으로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의미에서 앞부분에 그 내용을 넣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저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해요. 살아계셨다면 감히 공저인 책을 내볼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죠. 대통령님이 계셨으면 지금쯤 많은 책들이 나왔을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하나하나 여쭤보고 책을 내지는 못하는 거죠. 제가 임기 말에 한 번 여쭤봤었는데요.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내야 되느냐고 하니까 뭘 고민하느냐, 네가 들은 대로 써라, 억지로 꾸미려고 하지 마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있어서 자신감을 갖고 내긴 내고 있어요. 부담은 늘 있죠.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요.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 대통령님의 생각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의 말하기윤태영 저 | 위즈덤하우스
총과 칼이 아닌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노무현 대통령의 말하기 노하우를 23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저자는, 대화의 목적ㆍ대상ㆍ장소ㆍ상황에 맞는 대화법뿐만 아니라 말재주 없어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소통하는 말하기의 진수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