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이 있는 클래식을 앞장서서 만든 지휘자, 실력을 떠나 아는 지휘자를 손꼽으면 세 손가락 안에 들 ‘대중적’이고 친숙한 지휘자,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대학교 교수직과 산간 지방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를 동시에 맡는 지휘자 금난새가 이번에는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등을 잇는 『금난새의 오페라 여행』을 출간했다.
인터뷰 하는 날 사무실에서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가 한창이었다. 연습은 시간을 꽉 채워 끝났고, 인터뷰 도중에도 금난새 지휘자를 찾는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는 현재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농어촌희망청소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등 이력으로 치면 누구보다 긴 명함을 가지고 있다. 건강을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업무가 버겁지는 않을까.
그는 사진 기자가 배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까 벽에 있는 소품을 직접 바꾸고 인터뷰에 임했다. “내가 이렇게 노련합니다.” 하고 밝게 웃는 모습에서 연륜과 동시에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하긴 열정 없이 일로만 생각한다면 그 많은 일을 해낼 리가 없다. 정말 좋아서 하는 영업이 제일 잘 통한다고 했던가, 인터뷰가 끝나고 금난새 지휘자가 추천한 음악을 바로 찾아들었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저서가 나왔습니다.
어떤 분야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해요. 우리나라 음악, 예술 분야가 다양성에서는 조금 약해요. 교육도 있어야 하지만, 음악을 다루는 책도 있어야 해요. 물론 작가가 아니라 연주가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청중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오페라를 소개하는 책도 많고 원서는 더더욱 많지만, 금난새라는 이름으로 오페라 이야기를 쓰면서 나의 향기도 조금 넣어서 가면 좋지 않을까 했어요.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었죠.
작곡가에 관한 내용을 넣으려는데, 그런 건 역사고 이미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대로 적어서 내기보다 작곡가마다 라이벌처럼 구별해서 편집을 새로 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 당시 청소년을 위한 해설음악회 하면서 시기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책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것 같아요. 그 이후에 교향곡도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들어오고, 이번에는 오페라로 제안이 들어와서 진행한 거예요.
오페라만의 매력을 꼽자면요?
매력이라기보다,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산업으로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종합적인 기술이잖아요.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다른 장르에서 받지 못하는 느낌을 줄 수 있죠. 같은 오페라라도 연출가가 다르거나 의상, 장소 배우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라요. 유럽 같은 서양에서도 처음에는 극장에서 했지만 지금은 아레나라든지 큰 운동장 같은 데서도 하고, 어떤 때는 호숫가에서 하면서 많이 발전했어요
누구나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종합예술로서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만큼 돈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배는 만들어도 아직 항공모함은 못 만드는 거죠. 오페라 팬도 생기고 청중도 많아져야 오페라가 적자 없이 다른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오페라 진입 장벽 중에는 언어도 있습니다. 모르는 언어로 노래하는 게 생소할텐데, 오페라 곡은 번안곡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번역하면 의미로는 전달이 되는 데는 효과가 있겠지만 음악의 아름다운 향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외국에서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로 하거나 할 때가 있지만, 유명한 오페라는 대개 스토리를 알아서 원어로 해도 별 무리가 없어요. 그리고 오페라장에 가면 포켓북 책이 있어요. 자그마한 크기로 가사와 내용만 쓰여 있어요. 요새는 산만할지 모르지만 자막도 나오니까 같이 보면 도움이 되죠.
해설이 있는 클래식
클래식 시장을 넓히는 방법의 하나로 해설이 있는 연주회를 도입하셨어요.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시작했지만 이제 청소년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어른이 함께 올 수 있는 공연도 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사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클래식을 가르쳤어요. 육해공군 장교라면 적어도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입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리더라면 음악이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다른 음악 장르에서는 굳이 해설이 붙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클래식은 해설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나 글자가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음악은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언어잖아요. 그 언어를 모르면, 무슨 말인지 모르면 재미가 없어요. 클래식 음악이 우리가 만든 음악도 아니고 갑자기 듣고 이해하기는 힘드니까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유럽 사람이라면 가르쳐 줄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모르는 음악을 설명 없이 위대하다고 들이미는 건 마치 이솝 우화에서 주둥이 긴 사람을 초대해 접시에 먹을 걸 주고 먹으라고 하는 느낌이죠.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음식을 만들 줄 알아도 실제로 먹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눈높이에 맞게 작은 사람은 접시에 주고 긴 사람은 호리병에 주듯이 내가 아는 클래식을 다르게 설명해야 한다 이거죠.
레너드 번스타인을 롤모델로 꼽으신 적이 있습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레너드 번스타인의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 사람 때문에 지휘자 하겠다고 결심했었죠. 1960년대 미국도 클래식 청중들이 많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온 외국 지휘자들이 주요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죠. 레너드 번스타인은 미국 출신의 지휘자면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고리타분한 권위 위주의 대단한 지휘자들 위주의 판에서 이 사람은 언변이 좋으니까 친절한 안내자라는 식의 마케팅을 한 거죠. 하지만 그 사람 덕분에 음악가를 좋아하게 되고 청중이 생기고 그런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클래식 시장을 넓히자
우리나라에도 전문 인력,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우수한 인력이 국내에서 계속 활동하는 게 과제라고 하셨는데요.
얼마 전에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유명해졌는데, 좋은 청중이 있으면 이미 알려졌을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우승해야지만 잘한다고 인정을 받잖아요. 옛날부터 그런 방식을 지양하는데, 저변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30년 전부터 청중이 중요하다 말하고, 청중을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주자로서, 지휘만 해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저는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웃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우리나라 음악계는 교육으로 살아가죠. 훌륭한 콩쿠르에 합격하는 사람을 기르는 데 주력해요. 그것도 음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장의 발전과는 또 다른 문제잖아요. 많은 음악가는 사람들이 듣든 말든 자신의 연구를 발표해요. 그런 상황에서 시장을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이 더 나와야지 각 분야에 도움이 되고 연주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은 오페라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장르지만 지금은 오페라보다 더 많은 층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오페라의 경쟁 상대로 뮤지컬을 보고 계신가요?
그렇게 봐야죠. 지금 서울예고 교장을 맡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재능있고 훌륭한데 이들의 라이벌은 다른 클래식 음악가가 아니라 소녀시대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거죠. 생각의 변화가 필요해요. 오페라는 자기네들끼리 잘 한다 못 한다 할 게 아니라 뮤지컬이 25년 사이에 청중과 시장이 엄청 커질 동안 발전할 생각을 해야죠.
학생들의 연기력 이야기도 하셨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연기도 잘 해야 한다고요.
당연해요. 아이들이 오페라를 하려면 말하는 방식과 태도가 다 연극이 되어야 하는데 노래만 할 줄 아는 거예요. 뮤지컬단 들어가면 웃어야 하고 춤춰야 하고 모든 걸 다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경쟁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터뷰하는 충무아트홀에서는 일 년 내내 뮤지컬 공연이 열려요. 좌석의 80%는 항상 표가 팔려요. 하지만 오페라는 한 달 이상 하는 작품이 없어요. 지금도 연구발표에 머무르고 있어요.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어렵지만 생각의 변화가 정말 필요해요. 저는 평론가가 아니니 실제로 뛰면서 내 의견을 주장하는 거죠.
요새 젊은 친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나 음악 등이 있으면 그걸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남들에게 권하는 걸 ‘영업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선생님도 클래식이 좋아서 ‘영업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네, 잘하고 계세요(웃음)
그거면 됐죠(웃음). 아까와 같이 음악가들이 시장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개념이 없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독립,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중요했어요. 물론 사람이니까 도움을 받기도 하죠.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도 도움이라면 도움이지만 내가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척할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이 있어요. 내가 개척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백번 더 알고 고마워 하는 거죠. 누가 길을 놨어요, 내가 놔야 하는데 누가 먼저 놔줬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또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거예요.
책을 내는 것도 비슷한 시도인 거죠?
책을 내는 데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같은 글자지만 읽었을 때 더 재밌는 책이 있잖아요? 단원들한테는 오케스트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나는 음악가니까 음악만 한다기보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도 보여주는 거죠. 카메라에 관심이 있으면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든지요. 여러 각도로 변화가 와야 하는 시기가 왔고,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어떤 융합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죠.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 게 마치 우리 삶이 오페라 같네요.
모두의 음악
공교육에서는 오케스트라를 하거나 체육 활동을 하는 등의 교과 외 활동이 적습니다. 클래식도 지식 위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교육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계속 청중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까지 음악은 음악하는 소수의 엘리트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마치 올림픽 메달 따는 것처럼요. 하지만 소수만 열심히 달리는 것에서 나아가 체육 활동을 통해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졌을 때도 승복하는 스포츠맨쉽을 배우는 단계까지 나아갔잖아요. 음악계도 콩쿨 입상하는 걸로 우리가 대단한 나라라고 할 게 아니라는 거죠.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와 농어촌 희망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계십니다.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는 한지 한 5년 됐어요. 인구가 이만, 삼만인 군 단위의 도시에서 삼십 명 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하자고 할 때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바쁘다 하고 안 해도 되는데 왜 했겠어요. 음악 전공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음악을 실제로 연주해 본 사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대학교수만 중요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급수가 다르다고 생각하죠. 대학교수의 역할이 따로 있고, 초중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따로 있어서 다 연계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어디를 맡아달라고 제안이 왔을 때 대학이니까 가고, 아니면 안 가는 식은 아니에요.
하지만 예술계에서는 엘리트학교인 예고 교장을 맡게 됐잖아요? 그래서 아까처럼 소녀시대를 언급하는 거죠.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사회를 볼 수 있는, 남을 뒤돌아보는 연주자가 되어야 하니까.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 내 제자가 콩쿠르 되면 훌륭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라는 거죠.
돈키호테 같은 성격이라고 다른 방송에서 나온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이 방향으로 가는데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니까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뒀을 때 줄리아드에서 교장으로 와 달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시골에 가서 아주 외딴 폐교에 좋은 음악학교를 만들 수도 있어요. 우리는 보통 더 좋은 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잖아요. 내 능력은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될 수 있게 해야 하지만 원하는 건 저 시골에 가서도 해야 해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전문 연주자를 동시에 이끌고 계시잖아요. 둘의 차이가 있나요?
모든 프로페셔널은 기술적으로는 전문가지만 내면은 아마추어여야 해요.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하죠. 내가 잘한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으로 메시지를 주는 게 아마추어 정신이에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음악 하면 좋겠죠. 하지만 독일에서 살면서 내가 돈 한 푼 없는 학생이어도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도서관에 가면 책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걸 그 사회가 가르쳐 줬어요. 우리가 남들보다 돈과 명예가 적다 해서 불행하고 남보다 많아서 행복한 바보 어른이 되면 안 된다는 걸 독일에서 배우고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하고 그런 기회를 줘야 해요.
<언제나 칸타레> 등 방송에서 음악 예능 프로그램도 나오셨어요.
얼마 전에 대전시향 지휘하려 내려갔는데 <언제나 칸타레>에서 트롬본 불었던 관할 경찰서 형사가 왔더라고요. 얼마나 재밌던지(웃음) 음악이 생활 속에 들어가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방송을 통해서 우리 식으로 클래식을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까가 숙제니까 또 연습한 거예요. 재밌잖아요.
젊은 지휘자, 새로운 지휘자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포디엄에 서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제까지 한 이야기가 전부 포함되겠죠? 성남시향 할 때도 젊은 지휘자를 세우려고 했어요. 아까 말한 대로 독립심이 중요해요. 우리 음악계는 다 자기 선생이 있어야 연주를 해요. 지휘자는 개척 정신이 필요해요. 교회에서 지휘하는 것도 지휘고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도 지휘예요. 지휘자는 끈기가 있어야 해요.
다른 음악 장르도 들으시나요?
에릭 가드너라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있어요. 그 사람이 1960년대 낸 음반을 지금 50년 가까이 들어요. 다른 재즈 연주자도 워낙 많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서 좋아해요. 「Misty」라는 곡 알아요? 한 번 들어보세요.
소녀시대 음악도 들으시나요?
미안하지만, 아니요(웃음)
금난새의 오페라 여행금난새 저 | 아트북스
그동안 클래식을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로 만드는 데 앞장서온 지휘자 금난새가 이번에는 오페라 여행을 이끄는 가이드로 나섰다. 저자는 고전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오페라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쉽고 다정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엄선한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자세하게 풀어 해설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