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그의 강연이 너무나 재밌다고,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고,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진한 위로가 남았다고, 고백한다. ‘스타 강사’, ‘소통의 달인’, ‘강사들의 롤모델’, ‘힐링 퍼포먼스의 일인자’ 등 수많은 수식어로 설명되는 한 남자, 김창옥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성악을 전공한 김창옥은 ‘대한민국 1호 보이스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전문 강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수의 기업과 정부기관, 학교, 단체 등 2천여 곳에서 강의했으며 서울여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대표강사로 활동하며 KBS의 <아침마당>, <여유만만>, EBS의 <60분 부모>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에는 김창옥의 강연 서른다섯 편이 실려 있다. 실제 강연의 내용을 옮긴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나 결코 쉬이 흘려 보낼 수 없는 아릿한 상처와 포근한 희망이 담겨있다. 그것은 김창옥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이의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자란 기억은 저자만의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좌절과 열등감 같은 감정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상처를 꺼내 보이는 그의 몸짓에는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저글링 하듯 자유롭게 상처를 주무르며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얻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일상에서 발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희망의 증거가 된다. 삶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가지게 만든다.
이 책은 맛집 설명서 같은 거예요
지금까지 5천여 번의 강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책에는 그 중 35편이 실려 있는데요. 내용을 추리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특강은 5천 번 정도 했는데요. 책에 실린 내용은 그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3백회 정도 강연했던 거예요. 5년 동안 해왔던 강연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썼어요.
강연 전에 원고를 쓰고 암기하시나요?
그렇지 않고요. 중요 주제나 에피소드만 기억한 채로 강연을 시작해요. 그리고 현장에 맞게끔 이야기하죠. 원고 없이요. 그렇다 보니까 이번 책도, 오히려 거꾸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했어요.
책을 엮으시면서 예전에 강의하신 내용 다시 보게 되셨는데요.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책을 쓰면서 제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으니까, 필터링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건 사족이다, 욕심이다’ 싶은 부분들을 거르게 되는 거죠. 그렇다 보니까 쓸데없는 말이 훨씬 더 빠져있고요(웃음). 책은 조금 부끄러운 게 있어요. 말은 하고 나면 사라지는, 책은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남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조금 부끄러움이 있죠.
강연을 준비하실 때 매번 다른 주제를 찾으려고 하신다고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려고도 하고, 일상의 바퀴에서 벗어나서 다른 걸 경험하려고도 하죠. 솔직히 스트레스예요. 평범한 일상에서도 특별한 걸 발견해내려고 해야 하고, 일상을 벗어나서 특별한 걸 경험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주변 분들은 저한테 자꾸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강연을 줄이고 경험을 하라고 말씀하세요. ‘오로라를 보러 가자, 우주여행을 가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웃음). 그런 게 사실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저를 훈련시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안의 이야기라는 건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잖아요. 강사로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다 보면, 소진된다는 불안감도 느끼실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예전에는 저도 모르게 타임 테이블을 강연료로 환산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부터는 영화 한 편 보기가 엄청 어려워지더라고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어려워지고요. 모든 사람들에게 타임 테이블이 곧 돈이지만, 그 액수가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음의 문제가 생긴 거죠.
슬럼프를 겪으셨던 건가요?
3년 전 쯤에도 한 번 그랬던 것 같아요. 조금 미련한 거죠. 제가 이런 책을 쓰는 것도 굉장히 지혜로워서가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하니까 부끄럽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죠.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호텔에서 강의를 하면서 숙박을 제공 받은 적이 있는데, 에비앙 같은 비싼 생수나 샴푸, 샤워젤 같은 샘플들을 챙겨 나왔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내가 이걸 왜 챙길까’ 싶어서 가지고 나오지 않고요. 에비앙을 먹어보고 슈퍼에서 다시 사다 놓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는 왜 이럴까’ 싶기도 했어요(웃음). 그런 거죠. 자기 돌아봄의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할까요. 제가 부끄럽게 경험한 길을 들려드리는 거예요. 맛집 설명서 같은 거죠.
맛집 설명서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맛집이라고 하는데 실제 가보니 별로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별로 맛이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집은 맛이 있더라고요’ 하는 식으로,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소소한 일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소통을 말하는 이유? 불통을 잘 아니까!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3년 전쯤부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배우 일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고요. 이건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처음 강연을 할 때부터 한 10년까지는 ‘나는 집에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있어도 강연을 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기계가 있으면 강의를 조금 줄이고 싶어요(웃음). 조금 곤란하거나 힘든 강연은 줄이고 싶죠. 그런데 영화를 하려면 시간이 할애되고, 저는 신인이니까 상업성이 별로 없잖아요.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아직 이 일로 돈을 벌지는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거꾸로 강연이 너무 고마워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네요.
네,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을 더 이해하게 돼요.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 업무를 시작할 때, 신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로또에 당첨 안 되나?’ 생각하면서 회사를 다니기도 할 거고요. 정말 회사를 좋아하면 원 없이 좋죠.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엔 그랬다가 안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다른 분들에게 추천을 하는 거예요. 정말 집중이 되고, 몰입이 되고, 돈과 시간을 들일만한, 자신이 반응하는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고요. 직장이 그런 대상이 된다면 최고의 이상일 거고 천직이겠죠. 그런데 그건 0.3% 정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작게라도 퇴근한 후에 자신이 집중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그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직장이 부분적으로 지원을 해주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마워지는 거죠. 저도 그런 거예요. 고마워지니까 슬럼프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거고요.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인데요. 사람이 명상이나 기도를 해도 호르몬과 뇌파가 안정되지만, 감사하다고 느낄 때 그보다 더 강력한 안정을 얻는대요. 그러니까 이런 경험을 통해서 또 강인함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감사하다고 느낄 때 인간의 몸이 굉장히 단단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져서 슬럼프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촬영 중이신 작품이 있나요?
네, 어제는 고사를 지내느라 새벽 3시에 끝났어요. 고사 지내고 나서 배우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저는 신인배우니까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같이 있으면서 그 기운을 먹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그가 없는 곳에서도 그를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는데, 영화배우들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촬영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계속 영화 이야기만 해요. 그건 사랑이잖아요.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건 직업이 아니라 사랑인 거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기운을 계속 보고 싶은 거예요. 그 기운을 먹고요. 영화대사처럼 ‘살아있네, 이 사람들 정말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들죠.
강사로서 저자님은 너무나 유명한 분이시고, 많은 곳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영화 촬영장에서는 그냥 신인 배우예요. 굉장히 느낌이 묘하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저한테는 이게 완전한 우주여행인 것 같아요. 강사로서 저는 저만의 우주에서, 저의 구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던 존재였잖아요. 강연장에 가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회사의 높은 분들이 오셔서 맞아주기도 하세요. 그런데 촬영장에 가면 신인이거든요. 강사로서 제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죠. 그런데 그때 저는 ‘강이 바다를 만날 때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첫 느낌은 내가 사라지는 것 같죠. ‘나는 뭐지? 지금까지 내가 했던 건 뭐지?’ 싶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불안한 느낌이 조금 있어요. 그게 두렵고 낯설죠. 그런데 ‘계속 흐르면 나도 바다가 될 지도 몰라’라는 믿음을 갖는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오셨어요. 최근에는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셨고요.
제가 오랫동안 불통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소통을 갈급해 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청각장애가 있으시기도 하고,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로서의 정서적 역할을 거의 못하세요.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애를 갖게 되셨는데,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 유입이 되지 못했잖아요. 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훤칠한 외모를 가지셨는데도, 그게 별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어린 나이에 계속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사람은 외모도 중요하지만 외모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서 최종적인 무언가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요.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셨을 것 같아요.
부모님도 사이가 좋지 않으셨어요. 엄마는 계속 ‘딴 놈하고 일 년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누나들한테 ‘네 애비 같은 남자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어요(웃음). 부모님이 같이 살면서 계속 비난하는 거예요. 원망하고, 욕하고, 싸우고, 아버지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을 반복해서 하시고... 그러니까 제가 정신이 안 나간 게 다행인지도 몰라요. 그런 집에서 자랐고 돈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불통으로 인한 소통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 생겼겠죠. 그런 거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 생겼겠죠. 열등감도 생겼을 테고, 자존심도 상했을 거고요. ‘나는 왜 항상 마이너일까, 왜 또래 아이들이 하는 걸 아무것도 못 할까’ 싶고요. 그 온갖 것들에 대한 목마름인 거죠. 그러니까 ‘소통을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소통에 대해 말한 게 아니고요. 목이 말라서 물을 찾은, 너무나 생물학적 이유였던 것 같아요.
삶을 반전시켜야 할 때, 유머가 필요해요
강연을 하실 때 청중들의 마음을 굉장히 잘 여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상처를 솔직히 내보이셔서 그런 것 아닐까요?
상처를 재밌게 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상처 있는 사람 엄청 많잖아요. 저보다 상처가 많은 분들도 엄청 많으시고요. 물론 모두가 자기의 상처가 가장 크지만, 세상 사람 중에 상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걸 드러내기는 쉽지 않죠.
그렇죠. 저는 상처를 조심히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가지고 저글링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아요. ‘나는 항상 상처를 감춰왔는데, 상처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거야?’ 싶으시겠죠. 모든 사람 마음에 그런 게 있잖아요. 말하면 죽을 것 같아서 감추는 무언가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조금 유쾌하게 말하는 거예요. 상처에서 나와서요. 상처에 들어가서 말하는 건 신파인 것 같아요. (울상을 지으며) ‘저희 아버지가 장애 3급입니다, 엄마가 저보고 머리에 똥 들었다고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도) 조금 불편하잖아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제가 자유로워져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사람들한테 소개하고 싶은 건 자유 같은 거예요.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셨다는 건가요?
그렇죠. 나의 열등감, 상처, 트라우마, 커리어... 나를 얽매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스님에게 왜 출가하셨냐고 물었더니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라고 답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마음이 이해가 돼요.
‘나는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런 거죠. 제가 오른팔에 화상 자국이 있거든요. 어렸을 적에 멸치젓국을 끓이는데 제 손이 솥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야 했는데, 열을 뺀다고 된장을 바르셨어요(웃음). 그렇게 하니까 (팔이) 깡마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중학생 때 반팔을 안 입고 다녔어요. (팔에) 살도 안 찌는데, 사춘기 때다 보니까 여자 아이들이 나만 보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버스를 타도 위에 달린 손잡이를 한 번도 잡은 적이 없고요.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잡거나 그냥 서 있거나 했어요. 오늘은 제가 소매를 걷고 왔잖아요. 청소년 시기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긴팔을 입고 절대 소매를 걷지 않았죠.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흉터를 받아들이는 저자님의 태도는 달라진 거군요.
제가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이 흉터가 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냥 있다고 말하는 거죠. ‘저는 여기 흉터가 있습니다’ 하고요. 저는 이게 자유인 것 같아요. 물론 흉터가 없어지는 것도 자유겠지만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흉터는 잘 안 없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자유로워졌지만 흉은 남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흉터가 있다고 말하고, 옷을 걷고 다니고, 누군가 저를 보고 ‘너 팔이 왜 그래?’ 하면 ‘아, 어렸을 때 젓국에 데었어. 그런데 엄마가 된장을 발랐더라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죠. 이런 게 더 자유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자님의 강연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는다’고 이야기하세요. 유머 감각은 타고나신 건가요?
엄마가 조금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엄마, 아버지 아파?’ 그러면 ‘항상 아프다, 느그 애비는 항상 아파, 개미가 지나가도 아픈 사람이다’ 하세요. 보통 사람은 말을 일차원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입체적으로 하시는 거죠. ‘엄마, 나 홍삼 보냈어’ 하면 서울 엄마들은 ‘그래, 잘 먹을게’ 아니면 ‘뭐하러 보내니’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창옥아, 보내지 마. 느그 애비 저런 거 많이 묵으믄 죽을 때 언능 안 뒤져브러’ 하세요.
어머니께서 전라도 분이세요?
해남 분이세요.
역시 전라도 분들은 입담이 정말 뛰어나신 것 같아요(웃음).
제가 ‘엄마, 계좌이체했어’하면 ‘뭣한디 보내, 엄마 3년 살면 뒤진다’ 그러세요. 그런데 3년 지났는데도 정정하시죠(웃음). 최근에는 ‘엄마 백 살까지 살까?’ 그러세요. 저번에는 ‘3년 살면 뒤진다’고 하시고서(웃음). 그런 엄마 모습을 오래 보면서 저도 전염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는 그렇게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일상에서 그렇게 하세요. 그건 경지의 끝인 것 같아요.
힘든 상황에서 웃음이 발휘하는 힘이라는 건 정말 큰 것 같아요.
유머(Humor)라는 말이 휴먼(Human)에서 왔다고 해요. 그리고 흐르다, 반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요. 그러니까 힘들 때 필요한 게 유머인 거죠. 웃길 때 필요한 게 유머가 아니고요. 정말 힘들고 ‘이게 끝이다’ 싶을 때 삶을 반전할 필요가 있잖아요. 그때 유머가 필요하거든요. 저는 엄마의 삶을 너무 처절하게 봤어요. 아버지는 바뀌지 않으시고, 아이는 여섯이나 낳았고...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여섯이나 낳으셨는지 모르겠어요. 각방을 그렇게 많이 쓰셨는데(웃음). 아무튼,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가기도 힘든 거예요. 남편이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아이 여섯을 버리고 가겠어요. 그러니까 갇혀있는 것 같은 삶을 항상 해학해 내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걸 제가 조금 보고 배운 게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내 선배 세대로부터 받은 혜택인 것 같아요.
이 책은 읽고 나서 잊어버리세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니께서 글을 읽지 못하시잖아요. 출간하실 때마다 가슴이 아프시기도 할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런 슬픔이 있죠. 글을 써도 엄마가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래서 제가 사진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었어요. 예전에는 인터뷰 요청을 받으면 제일 먼저 사진 넣어주냐고 물어봤었어요. 사진 안 넣어주면 인터뷰를 안 했었어요. 그때는 기사가 나오면 그걸 코팅해서 시골로 보내드렸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제 이름 ‘김창옥’을 읽으실 수가 없으니까 이게 아들이 썼다는 책의 내용인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사진을 넣어달라고 말씀드렸던 거였어요. 그리고 저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니까 제 노래를 들으신 적이 없죠. 제 목소리도 느끼실 수가 없고. 요즘은 제가 TV에 나오니까,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이 으레 그러시듯, 제가 뭐가 됐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엄마가 TV 보시고 나서 ‘창옥아, 우리 막둥이는 느그 애비를 닮아가꼬 말을 잘해잉’ 그러시는데, 제가 ‘엄마, 내가 무슨 아빠를 닮았어. 엄마를 닮아서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슬쩍 웃으며)‘그라까?’ 하세요(웃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인데, 저자님이 너무 재밌게 말씀하시니까 자꾸 웃게 되네요(웃음). 말씀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지기도 해요.
슬픈 게 많죠. 제 밑바닥은 대부분 슬픔이에요. 슬픔과 결핍. 제 강연을 들으시는 분들이 동의하실 수 있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숨기고 싶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거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요.
「열등감의 가죽을 벗겨내기 위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열등감을 뱀의 껍질에 빗대어서 말씀하셨어요. 저자님도 열등감을 경험하고 이겨내신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렇죠. 일단 다름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제가 똑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 거예요.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저희 아버지가 청각장애가 있으셔서 일반인보다 목소리를 크게 내서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친구가 너희 아빠는 왜 말을 저런 식으로 하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아빠는 장애가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러면서 행동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친구들을 집에 안 데리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아빠가 오실 때쯤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친구들을 다 돌려보내요. 그러니까 내 마음의 코드가 내 행동하는 방식도 표정도 바꿔버리더라고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공고에 진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로 인한 열등감도 갖게 되셨나요?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공고를 간 건 아니에요. 그냥 공부를 못해서 공고를 간 거죠. 그것도 저한테 (열등감의) 가죽 같은 거였어요. 공업고등학교를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거든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곳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던 거죠. 그러니까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또 열등감이 밀려오는 거예요. 나도 저 아이들이 입은 교복을 입고 싶은데 항상 실습복을 입고 있고, 몸에서는 납 냄새가 나고, 가방에서는 드라이버가 나오고. 그게 창피한 일이 아닌데 ‘이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몰랐던 거죠.
열등감에서 벗어난 계기가 있으셨어요?
어느 날 굉장히 작은 책자를 읽었는데, 그 책이 저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 열등감에서 해방되라고요. ‘너의 출신 학교나, 너의 외모나, 너의 부모님의 사회적인 위치가 너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라고요. 그게 마음에 들어온 거죠.
책에서 “예전처럼 상처받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라고 적으셨는데, 읽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쓴 책이, 아니면 출연한 방송이, 잘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는 별로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 쓴 책들은 ‘내 책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 덜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제가 썼지만 내 책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이 글을 쓴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어떤 거울 같은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책은 거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울이 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 감히 어떤 저자가 독자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건 오만방자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거울이 되어서 독자가 읽고 자신을 보게 하면 되는 거죠.
책을 쓰시는 동안 스스로를 비춰보기도 하셨나요?
저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그걸 쓰는 이유도 자기 삶을 보기 위해서예요. 저자를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자기를 보게 하기 위해서 그런 에피소드를 사용할 뿐인 거죠. 그러려면 내 자아가 빠져야 하는 것 같고, 내 자아가 빠지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할 것 같고요. 그러면 내 이야기이지만 내가 빠져 있죠.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별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항해할 때도 별을 보잖아요. 내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고, 보는 거죠.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별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강의를 많이 듣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도 삶에서 실험을 해보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를 통해서 독이 아닌 득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공부하려고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쭉 보고 잊어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기억하려고 하시지 말고요. 제가 보기에는 기억하려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자기의 때가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책을 그냥 보시고 잊어버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하셨을 때 기억되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한 단어이든 한 문구이든, 그것만 건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한 번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죠. 이 책은 지식 서적이 아니라 가이드북 같은 거거든요. ‘이렇게 가보세요, 이런 걸 해보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건데, 그대로 해보시는 거죠.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가 그 분한테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해요. 책이라는 생명과 그 분이 융합해서 새로운 자기 삶을 만들어낼 거예요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김창옥 저 | 수오서재
자신의 어둡고 초라한 모습마저 감추지 않고 기꺼이 드러내는 김창옥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는 공감의 힘이 있다. 삶이 권태로울 때, 뭘 해도 행복하지 않을 때, 이제 그만두고 싶을 때, 하지만 진심은 진짜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을 때 이 책이 위로와 응원, 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