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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가장 철학적인 동물은 인간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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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진중권 교수가 고양이 책을 쓴다고 밝힌 후, 독자들의 반응이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진중권의 저서이지만, 진짜 저자는 따로 있다. 바로 진중권의 반려묘로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루비’. 루비는 서문에서 “고양이는 인간의 자식이 될 수 없다”며 고양이중심주의를 선언한다. 루비의 발도장이 찍힌 책을 읽노라니, 미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곰곰 반추하게 된다. 고양이가 좋아서, 진중권의 글이 좋아서, 이 책을 꺼내든 사람은 이제 퇴근길 동네 어귀에서 만나는 길고양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루비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꼭 ‘인간화’했던 삶을 반성해.”

 

연남동 골방에서 산책냥 루비와 동거 중인 4년차 집사 진중권을 만났다. 아쉽게도 루비는 집사와 동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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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질문을 던지는 동물

 

책 주인공이 ‘루비’잖아요. 루비의 표지 데뷔를 기대했는데요.

 

(웃음) 촬영이 어려워요.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엄청 발버둥을 칠 거예요. 우연히 찍히는 건 괜찮지만, 완벽히 포즈를 잡고 찍는 건 불가능해요.


대한민국에 루비 팬이 정말 많아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루비의 존재는 알 정도니까요. 본격적으로 책을 쓰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리서치는 작년 3월부터 시작했고 집필에 들어간 건 8월쯤이에요. 원고를 마무리 지은 건 11월 말경이고요. 자료는 계속 모으고 있었어요. 노트에 필기도 하고 사진자료도 계속 모으고요. 논문들 살펴보고 서지까지 살펴본 상황이라 초안을 크게 안 잡았어요. 크게 역사학, 문학, 철학으로 나누면 좋겠다 싶었고, 쓰다 보니 역사학이 가장 큰 범위를 차지했어요. 책을 쓰기 시작할 땐 저도 어떤 책이 나올지 몰라요. 들어가봐야 알죠.

 

가제가 따로 있었나요?

 

처음부터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였어요. 고양이 관련 글을 찾다가 우연히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글을 접했어요. 데리다의 강연 제목이 <L’Animal que donc jesuis>인데 우리말로 ‘고로 내가 그것인 동물’쯤 됩니다. 이 문장으로 데카르트의 느낌도 나게 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지은 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였죠. 부제목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도 T. S. 엘리엇의 책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원래대로 하면 ‘Old Possum이 들려주는 고양이들에 관한 실용서’ 뭐 이런 얘기인데, Old Possum(주머니쥐)이 T. S. 엘리엇의 별명이죠. 원제와 너무 다른데 나쁘지 않았어요. 저는 슬쩍 ‘집사’로 바꾼 거예요.

 

올해로 4년차 집사 생활을 맞이하셨다고요. 루비의 충직한 집사가 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으셨을 텐데요.

 

선배 집사들이 말하는 온갖 경험담을 다 들어봤죠. 고양이 카페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궁금한 점의 대부분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요. 문제는 자기 고양이에 맞는 진리가 없다는 거예요. 고양이는 각기 식성도 다르고 모래에 대한 선호도도 달라요. 루비만 해도 먹는 취향이 대단히 까다로워요. 한 시리즈로 나오는 간식에서도 먹는 게 있고, 안 먹는 게 있을 정도니까요.

 

19세기 중반 고양이는 시인들의 소울 메이트였습니다. 교수님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철학적 물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던질 줄 알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동물의 권리를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관계를 맺으면서 완전히 다른 체험을 했어요. 고양이는 개와 확연히 달라요. 개는 아기 같지만, 고양이는 다 자란 사람 같아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난 너의 모든 걸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동물이에요. 개는 우리가 보호해줘야 할 존재라고 한다면, 고양이는 독립된 인격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윤리적 주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어요. 가끔 화장실에서 루비의 시선을 느낍니다. 왠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면, 루비가 서랍장 가장 꼭대기에서 저를 보고 있어요. 당혹스러운 느낌과는 또 달라요.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줄 때가 많아요. 고양이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항상 어딘가 멀리 있는 듯한 언캐니uncanny한 존재예요. 그래서 마녀화의 대상이기도 했고, 19세기에는 예술가들에게 찬양의 대상이 된 거죠.

 

고양이 자료를 찾아보면서 충격적이었던 역사도 있었나요?

 

사실 책에 안 쓴 이야기도 많아요. 캣맘, 캣대디들이 너무 상처를 받을까 봐 덜어낸 부분이 있어요. 이집트에서는 신전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제물로 바쳤어요. 고양이를 영속화한다고 하지만 결국 죽이는 거죠. 엄청나게 많이 죽였어요. 미라를 만들기 위해 신전에서 고양이를 키웠으니까요. 한 마리를 죽여 미라를 세 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고양이에 대한 책이 은근히 많아요. 반려견만큼은 아니지만요.

 

고양이 책들의 문제가 뭐냐면요. 다들 우리 고양이 예쁘다로 경쟁만 하고 있다는 거예요. 고양이를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와 있지만, 하나가 없어요. 고양이는 질문을 던지는 동물이라는 사실, 즉 인문학적인 존재라는 점이 빠졌어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이 체험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쓴 거예요. 누가 제게 강아지 버전을 쓰라고 한다면, 저는 못 씁니다. 경험이 없으니까요.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나올 수 있었던 책이에요. 처음에는 ‘훈민정음’으로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인간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루비묘제 훈인정음’이라고 해서 “고양이 말씀이 인간에 달아”라고요.(웃음)

 

문학작품에 등장한 고양이 이야기도 흥미롭더군요.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을 것 같아요.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이 현대문학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면 주인공 고양이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세상에 고양이로 태어나 산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만 한 식견 있는 고양이는 달리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일전에 무어라는 동족이 느닷없이 나타나 기염을 토하는 바람에 움찔 놀라고 말았다.” 최근에 고양이 무어의 삽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루비와 너무 닮은 거예요.(웃음) 이번 책을 쓰면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도 새롭게 다가왔어요. 이야기에만 빠져서 책을 읽었는데, 고양이를 중심에 놓고 읽으니 모든 게 다르게 읽히는 거예요.

 

진_루비,, 이건 꼭 넣었으면 합니다.jpg

진중권과 루비

 


대선 후보를 정하는 기준은? ‘집사’

 

고양이 이름은 총 3개라는 이야기도 재밌더라고요.

 

T.S. 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고양이 이름 짓기」예요. 사람들이 고양이 이름을 짓는 방식은 다양해요. 색깔이나 모양에 착안하기도 하고 청각적 인상이 예쁜 말을 고르기도 하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서 따오기도 하죠. 사르트르의 고양이는 무(無), 데리다의 고양이는 ‘로고스’, 푸코의 고양이는 ‘광기’, 카뮈의 고양이는 ‘이방인’이에요.

 

‘루비’는 교수님께서 좋아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서 따온 이름이고요.

 

오래 전 출판사에서 비워준 주택에서 책 작업을 할 때, 아침마다 나타나 참치통조림 하나를 비우고 가던 삼색 고양이의 이름은 ‘뒤샹’이었어요. 그 고양이를 만날 때 제가 마르셀 뒤샹에 관해 쓰고 있었거든요. 재작년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는 ‘베냐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줬고요. 지금은 좋은 데로 입양을 가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요.

 

가끔 고양이의 삶이 부럽기도 하시나요?

 

그렇죠. 집사가 다 해주니까요. 하지만 가끔이에요. 동네를 떠도는 길냥이를 보다 보면, ‘내가 루비를 데려온 것이 잘한 일일까’ 생각해요. 인간과 같이 살면 고양이는 밖으로 나가질 못하잖아요. 나가도 반경 30m 안이에요. 루비는 산책냥인데, 30m 이상은 안 나가요. 나가게 하면 불안해해요. 산책을 할 때도 철저히 자기 중심으로 움직여요.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차들이 막 오잖아요. 자동차가 와서 확 한 번 멈춰서면 그 뒤로 방향을 못 찾고 집에 못 들어와요. 그게 두려워서 집 밖을 잘 못 나가죠.

 

‘루비’ 집사로서의 진중권 에세이를 기대한 독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전혀요. 저는 인문학 저자이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오글거리잖아요. 프롤로그랑 에필로그를 쓰면서도 오글거려서 힘들었죠. 제가 만약 사적인 에세이를 썼다면, 고양이 사료부터 꼼꼼하게 소개했겠죠? 그런데 대한민국 캣맘, 캣대디의 섬세함을 제가 못 따라가요. 저도 사료를 신중하게 고르긴 하지만, 애지중지 키우진 않아요. 가끔 놀아주긴 하지만 대부분이 따로따로. 서로 쿨해요. 쿨하게 있다가 자기가 보고 싶을 때 오는 거죠. 목숨 걸고 키우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고백하자면 프롤로그랑 에필로그가 가장 재밌었어요. 진 교수님 글 같지 않은 느낌도 있어서요.

 

제가 견딜 수 있는 오글거림의 최대치예요.(웃음)

 

루비에게 동생을 만들어줄 계획은 없으신가요?

 

힘들어요. 단독주택을 갖고 있으면 모를까, 지금 환경에서는 어렵죠. 가끔 ‘고양이에게 가장 좋은 삶은 뭘까?’하고 생각해봅니다. 길냥이처럼 지내게 해주다가 가끔 병원에서 건강 체크만 해주는 게 제일 이상적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고양이를 품종별로 가격을 매기는 일은 분명 ‘고양이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행동일 겁니다.

 

품종묘를 선호하고 높은 값에 고양이를 사고 파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천 5백 만 원짜리 고양이가 막 뉴스에 나오곤 하잖아요? 정말 화가 납니다. 저는 그냥 길냥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고양이 하나 하나마다 다 희귀하고 독특한 존재이니까요. 희귀묘를 자랑하는 사람은 절대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잖아요. 반려묘가 늘어가는 이유 중의 하나예요.

 

예전에는 ‘Dog Person’이라고 불렀잖아요? ‘Cat Person’이라고 하면 재수없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되고요. 이제는 사회가 민주화되고 자유로워지면서 자기 독립성이 강한 사람들이 사랑을 받는 측면이 생겼어요. 개는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지만, 고양이는 훨씬 잘 견뎌요. 이런 측면에서 고양이가 계속 사랑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을 다 읽고 보니, 고양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재밌게 읽겠다 싶었어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의외의 독자에게 추천하신다면요?

 

의외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안희정 충남지사에게는 책을 보냈어요. 그 분이 고양이를 키우시거든요. “하늘이 아빠에게, 루비 아빠가”라고 적어서 보냈는데 아직 봤는지는 모르겠네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도 책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서 아직 안 보냈어요. 제가 대선 후보를 고르는 기준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인가’예요.(웃음) 고양이가 청와대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영국 수상관저에는 수석 수렵 보좌관이 있어요. 관저에 출몰하는 쥐를 잡는 그 고양이 이름이 ‘쥐잡이 수석보좌관’이에요. 우리도 경비대장이나 명예직으로 고양이를 뒀으면 해요. 유엔사무총장처럼 1대부터 역대 초상화도 좀 걸고요.

 

동물의 권리를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제가 동물들에게 동일한 권리를 주자, 혹은 선거권을 주자라고 급진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윤리적으로는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물에게 잔혹하게 하는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혹하다라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적 논리란 말이에요. 히틀러가 개를 얼마나 좋아하고, 레닌도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 동물에게 잔혹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거예요. 그게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런 방식의 철학적 논의들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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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은 아쉬우면서 아쉽지 않다

 

최근에는 단독 저서를 많이 안 쓰셨어요. 공저로 나온 책은 꽤 있고요.

 

공저로 나온 책은 제 책으로 인정하지 않아요. 본의 아니게 나오는 경우가 많고요. 강의를 했는데 1년 후쯤 그 강의를 책으로 묶자고 하면, 거절하기 좀 어렵잖아요. 간혹 여러 명이 쓴 책을 낼 때, 제 이름을 앞세우면 스트레스가 좀 심해요. 그래서 되도록 안 내려고 해요.

 

출간 기획안을 많이 받으실 텐데요.

 

받긴 하지만 의미가 없어요. 수락해서 책을 쓴다고 해도 완성될 때 보면 기획한 내용이 아닐 때가 많아요. 완성될 때 보면 기획한 내용이 아닐 때가 많아요.  책은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 쓸 준비나 마음이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쓰기 시작하면 문장을 만드는 게 힘들어요. 즐겁지가 않으니까요.

 

그럼 교수님의 책은 편집자의 역할이 조금 작겠네요.

 

그렇진 않아요. 제가 구성을 다하고 책을 쓰지만, 단행본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 어렵잖아요.만들 때 호흡이 굉장히 중요해요. 교정을 보고, 틀린 내용이나 정보를 찾아내는 것도 편집자의 역할이니까요. 꼼꼼하게 자료를 찾아주면 저자가 작업하기가 훨씬 수월해요. 책을 여러 권 같이 만든 편집자라면 중요한 것을 딱딱 집어내죠. 이미지 같은 경우도 그래요. 젊은 사람들은 서핑하는 수준이 다르잖아요. 훨씬 좋은 이미지를 찾아주니까 책이 더 탄탄해질 수 있어요.

 

지금까지 낸 책 중에 저자로서 좀 아쉬웠던 책은 없나요?

 

글쎄요. 뭐든 끝나면 아쉬운 법이니까요. 하지만 아쉽다고 생각했으면 책을 안 냈겠죠. 모든 책은 아쉬우면서 아쉬운 점이 없어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 출연 중이세요. 방송이나 외부 강연을 수락할 때 기준이 따로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사람들은 편집의 왜곡 같은 걸 두려워하는데, 저희는 쉽게 말하면 디지털 배우예요. 생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면, 저희는 편집기 앞에서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람이에요. 편집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을 만들어내는 거지, 누구의 분량이 적고 많았다를 따질 수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을 했는데, 방송에 안 나갔다고 화를 낼 수는 없어요. 그런 건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가 녹화를 하면 기본 5시간을 해요. 방송은 1시간이고요. 이런 프로그램은 편집의 예술로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싫으면 생방송만 나가면 되고요. 그런데 출연료는 녹화가 훨씬 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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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장 궁극적인 미디어

 

작년에 트위터를 접으셨잖아요. 복귀할 가능성은 제로인가요?

 

사람 일은 모르지만, 굳이 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웃음)

 

2013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가 후지다. 나는 풍자하고 패러디를 하는데 정색을 하고 보도한다. 이게 문제다”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속된 말로 ‘농담했는데 다큐로 받는다’고 하잖아요. 언어 능력들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들마저도 섬세한 표현을 못해요. 잘 못 받아들이고요. 우리나라가 문맹률은 낮지만, 독해 능력은 바닥이에요. 사실상 문맹인 경우가 많은 거죠. 언어도 너무 정치적으로 씁니다. 맥락을 보는 게 아니라, 자극적인 말만 표제로 때려 버려요. 왜냐, 사람을 때리는 걸 좋아하니까 모든 걸 정치화해 버리는 거예요. 법정화한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을 대하는 다수의 태도가 검사 같아요. 지나치게 공격적이에요. 저 사람을 까서 유죄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어요. 제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에요.

 

말꼬리를 잡는 사람은 트위터에 항상 있잖아요?

 

말꼬리를 잡고 공격할 순 있어요. 패러디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건 너도나도 법정화예요. 넌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쁜 놈이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거죠. 다 자신만의 이유와 상황이 있는 건데, 이 단어를 사용하면 너는 무조건 좌파, 우파, 빨갱이, 파쇼, 나치라고 주장해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고 봐요. 열린 사회의 적들인 거예요. 맥락은 안 보고 죄목이 될 수 있는 것들만 보니까 모든 게 공격 패러다임으로 흘러가요. 문명사회의 IS인 거죠. 저는 이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게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들이 얼마나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지 몸소 체험을 해봐야죠.

 

트위터 마지막 인사가 “이제는 이 짓하는 것도 지겨워요. 하던 일도 최소한으로 정리하고,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네요”였어요.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신가요?

 

사실 옛날부터 하고 싶은 일만 했어요. 가끔 하기 싫은 일도 좀 하고요. 지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학교도 조직이라 행정적인 일이 많아요. 편의를 많이 받는 편인데도 조직에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만약 책이 너무 잘 팔려서 인세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어휴, 생각만으로도 환상적인데요?(웃음)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 보고, 여행이나 다니면 좋겠네요. 책도 종종 쓰면서요.

 

이번 책은 약간 보너스 같은 느낌도 있어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잇는 대작을 기대하는 독자가 있을 텐데요.

 

지금 써야 할 책이 있죠. 미학사와 서양미술사를 썼으니까 그 다음에 남은 건, 철학서예요. 학술서로서의 미학사를 2년 전에 쓰다가 중단했는데, 지금 다시 쓰고 있어요. 철학사도 곧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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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나 칼럼집을 쓸 계획은 없으신가요?

 

마지 못해서 낸 경우도 있는데요. 대부분 다 거절해요. 칼럼은 그냥 사라지는 글이에요. 사람들이 카피를 하는 것도 오케이. 무조건 퍼 날라도 되는 글이에요.

 

책의 미래, 책의 가치는 어떻게 보시나요?

 

책은 언제나 궁극적인 미디어입니다. 그렇잖아요. 모든 이미지 아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텍스트 코드가 깔려있어요. 영상으로 본다고 해도 원리는 텍스트에서 시작되죠. 지금처럼 무한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는 필터링이 필수에요. 인포그래픽처럼 시각화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요. 하지만 이런 정보만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인어공주가 되는 거예요. 거품이 돼서 해체되는 거죠. 자기정체성 안에서 자기 사유를 가지려면 텍스트를 통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책은 굉장히 중요해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진중권 저 | 천년의상상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루비가 구술하고 진중권이 받아 적어 펴낸 책이다. 그 목적은 인간중심주의 집사 문화를 버리고 새롭게 ‘고양이중심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서! 고양이의 창세기부터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며 고양이에 관한 역사, 문학, 철학에서의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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