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의 디제이 임레이(Imlay)는 해외 이디엠 신(scene)을 통해 먼저 알려진 사례다. 영국 인디 레이블 클라우드 레코드(Cloudhead Records)를 통해 선보인 '섹슈얼 파티(Sexual party)'는 새로운 사운드로 무장한 퓨쳐 베이스로 이디엠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이디엠 전문 웹진 마그네틱 매거진(Magnetic magazine)에선 「게이즈(Gaze)」를 퓨쳐 베이스 Top 10으로 꼽으며 그의 행보에 주목했다.
지난 2016년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 등장해 한국 이디엠 신의 루키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신예 아티스트. 한국의 마데온(Madeon)으로 불릴 만큼 어린 나이에 디제이와 프로듀서를 겸하며 'Abstract bass'라는 단어로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정의한다. 지난해 첫 EP <오리진>(<Origin>)을 발매, 퓨처 베이스를 기반으로 동양적인 선율을 짚어내는 그의 음악은 비단 동양풍에 그치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것을 향해 나아간다.
또 다른 신예 씨피카(Cifika)와 함께 한 「리추얼(Ritual)」은 임레이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오리엔탈이라는게 과하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풍이나 중국풍이 되어버려요. 한국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자연스럽게 녹여내자, 싶었어요.” 힙스터들의 주목을 받는 소문의 디제이는 겸손하게, 그러나 단정적인 어조로 그의 생각을 전했다.
임레이라는 활동명이 특이합니다.
임레이(Imlay)는 원래 미국에 있는 도시 이름이에요 사운드 클라우드를 처음 시작하면 '유저1388' 이런 식으로 이름이 생기는데 너무 평범하잖아요. 그렇다고 실명인 임재빈을 쓰기도 좀 애매해서 생각나는 지역 이름을 넣고 만들었어요. 결국 이름을 못 바꾸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웃음) 큰 의미가 있진 않습니다.
이디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음악을 시작할 즈음에는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중학생 시절 힙합을 좋아했어요. 랩을 조금 해보다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프로듀싱 쪽으로 노선을 바꿔서 비트 찍는 연습을 했죠. 나중에 스크릴렉스(Skrillex)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됐는데, 이 분이 미국에서 확 뜨던 때였고 다음 해에 마데온이 등장해요. 이 두 아티스트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프로듀서 입장에서 힙합 비트를 만드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근데 이디엠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어려운 걸 해보자 하는 도전의식이 생겨서. (웃음) 장르 자체가 희열에 관한 부분도 크잖아요. 들을 때도 즐겁고... 여기에 매료됐어요.
힙합과 이디엠은 상이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힙합에는 디스(dis) 문화가 있고 서로를 건드리는 가사가 있다면, 이디엠은 열정, 희열, 평화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주가 되는데, 갑작스러운 전환이 어렵진 않았나요?
힙합에 트랩이라는 장르가 있어요. 저는 트랩과 이디엠의 사운드가 가미된, '짬뽕' 장르를 해요. 한국 리스너 입장에서는 보통 이디엠 전에 힙합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기존의 탑 백 차트에 없는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찾는 거죠. 제가 이디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국내 힙합을 언더 시절부터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발판이 됐어요.
베이스가 강한 덥스텝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데도 현재 하시는 음악은 상당히 부드러워요. 듣기에 좀 더 편하다고 해야 하나요.
사실 제가 디제이지만 클럽을 좋아하지 않아요. (웃음) 공연 가서도 제 무대만 하고 쉬는 타입이에요. 전 이어폰이나 페스티벌처럼 넓은 곳에서 '낮에' 듣는 걸 선호합니다. 그래서 듣기 좋은, 일상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빌보드 차트만 봐도 이디엠 사운드가 가미된 곡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저는 좀 더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현장감 있는 음악은 집에서 들었을 때 그리 큰 감흥이 오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감상을 고려해서 노래를 만들 때가 많죠.
디제잉을 하시는데 클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네. 한국의 클럽은 대개 음악만큼이나 남녀의 '썸씽'이 중요하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틀어야 하니까, 디제이 본연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음악보다는 사람들의 허리를 흔들 수 있는 노래로 셋 리스트를 채워야 한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클럽 공연과 페스티벌 무대의 셋 리스트를 구성하는 기준이 다른가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대가 잡히는 시간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어요. 낮이면 제 음악 중에서도 공간감이 느껴지고 차분한 음악을 많이 트는 편이고 늦은 타임이면 마이너 코드나 음습한, 베이스가 강한 음악을 위주로 틀죠. 시간대를 생각해서 곡을 준비해요.
음반의 작업과정도 궁금합니다. 뮤직비디오나 아트워크 등이 독특하다는 반응이 많아요. 음악 창작 이전에 이미지를 먼저 형상화하는 편인가요?
일단 곡 작업을 하기 전에 시각적인 것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에요. 영화나 뮤직비디오, 잡지 같은 걸 즐겨 봐요. 시각적으로 자극이 됐던 것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죠. 예술 쪽 지인들이 많아서 그분들이 떠올리는 생각을 제가 음악으로 작업해요. 이미지나 색감에 집중해서 단순히 듣고 즐긴다기보다는 앰비언트 음악을 듣는 느낌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작년까지는 가사 없이 추상적인 음악이 많았지만, 올해는 보컬이 있는 노래가 많이 나올 예정이에요.
앰비언트라면 사운드 스케이프가 그려지는 음악들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음악을 만들 때 사운드를 넓게 써서 현장에서 들으나 이어폰으로 들으나 공간감이 느껴지게끔 해요.
영상 연출이나 아트워크에도 의견을 많이 제시하고 관여하시나요? 시각적인 요소라 곡 해석에도 영향을 많이 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콘셉트를 많이 조정했는데, 도와주시는 분들이 워낙 다들 잘 해주시고 저랑 호흡도 오래 맞춰서 이제는 제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결과물이 다른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제가 생각했던 구도와 다르게 표현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작품의 결과 중 하나니까요.
밴드나 힙합 크루와는 달리 이디엠은 많은 부분을 혼자서 작업하는 음악으로 알고 있는데, 작업 과정이 외롭진 않나요?
외롭죠. (웃음) 알고 보면 어릴 때 컴퓨터 좋아하는 '너드(nerd)' 같은 애들이 이디엠을 좋아해요. 실제로 오타쿠 성도 짙죠. 주변 친구들 만나보면 미드, 영드 많이 보고, 게임만 하고, 피규어 모으고 애니메이션도 많이 알고요. 인터넷 세대가 등장하면서 미디 접근성이 용이해졌어요. 유튜브에도 강좌가 많잖아요. 데드마우스(deadmau5)란 아티스트도 '프로 너드'거든요. (웃음) 어떻게 보면 이디엠은 너드들의 신(scene)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요. 페스티벌도 결국 자본가들이 투자해서 이들을 무대에 세운 거지, 원래 이디엠은 인터넷 커뮤니티로 음악 공유하면서 채팅하는 문화에서 출발했거든요.
작년에 첫 음반 단위의 결과물이었던 EP <오리진>(<Origin>)이 나왔죠. 보도 자료와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를 '동양풍', 'Abstract bass'로 소개하던데, 'Abstract bass'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사실 제가 만든 이름은 아니고 매니지먼트에서 기획해주시는 분이 이런 타이틀로 나가면 좋겠다, 하셔서 붙여주셨어요. (웃음) 동양풍 음악은 재작년부터 했던 것 같아요. 당장 주변을 보면 프로듀서들이 서구 팝의 기본 틀을 좇고 있더라고요. 한국만의 특색을 찾기 힘들죠. 전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좀 더 다양하게 교류해왔고 매니지먼트도 외국 회사인데, 그러다 보니 한국 아티스트면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그게 남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런 풍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확실히 처음 들었을 때 여타 음악들과 다르긴 했습니다. 목관악기를 사용해서 만이 아니라, 선율이나 음악의 전개에도 동양적인 맛이 있었어요. 비슷한 장르의 플룸(Flume)같은 서양 디제이와는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어디서부터 영향을 받으신 건가요?
동양풍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그냥 만드는 편이에요. 오리엔탈이라는 게 과하다 보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풍이나 중국풍이 되어버려요. 한국은 뭔가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자연스럽게 녹여내자, 싶었어요.
동양풍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일본풍인 음악들이 많기는 하죠. 마카이(Makai)나 오카와리(Okawari)같은 일본 디제이들은 그런 일(日)색 짙은 멜로디를 승부처로 삼아왔고. 그런데 임레이 씨는 씨피카와의 콜라보도 그렇고 한국적인 포인트를 잘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인위적이지 않게 작업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리추얼(Ritual)」은 제가 미국 살 때 씨피카 씨와 만들었어요. 둘 다 한국인이라서... (웃음)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한국만의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동양적인 음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착색돼요. 한국적인 것을 표면에 드러내려면 장구, 꽹과리를 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또 제가 하는 음악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굳이 따진다면 펜타토닉 스케일이라고, 도레미솔라 코드를 메이저 코드로 쓸 때가 제가 생각하는 이론적인 한국만의 색이에요.
<오리진>(<Origin>)에서는 특히 「슈라이(Shurai(high))」가 인상 깊었습니다. 전조되며 상승하는 후렴 멜로디나 전체적 리듬 구성이 신선했는데, 이 노래의 제작 비화가 궁금합니다.
한창 음악에 대한 욕심이 생겼을 때 쓴 곡이에요. 지금 제가 듣기에는 너무 '스트레스풀(stressful)'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음악이거든요. 의도한 대로 화려하게는 나온 것 같아요. 제목에 하이(high)라고 붙어있는데, 메인 멜로디는 같으면서 한층 톤 다운된 로우(low) 버전의 음악도 올해 나올 공개할 계획이 있어요.
그럼 반대로 편하게 썼던 곡은 어떤 건가요?
「임프레스(Empress)」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입시 스태프를 했었어요. 매일 지친 상태에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기절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잊기 전에 대충 멜로디만 찍어놓고 잠든 후에 2주 뒤 완성했죠. 「잔잔(Zanzan)」도 힘 ‘일’(1)도 안들이고 만들었어요. (웃음)
최근 발표한 「플라워 플라워(Flower flower)」는 일본의 밀크(MYLK)와 같이 작업한 곡인데, 임레이 씨의 기존 곡들과 질감이 다르더군요. 일본 음악 같으면서 트로피컬 사운드도 있고 화려한 느낌이었습니다.
원래는 이 곡에는 영어권 보컬을 붙이려고 했어요. 보컬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플라워 플라워(Flower flower)」도 동양적으로 쓰긴 했는데, 일본 보컬이 노래하니까 완전히 일본 노래가 되더라고요. 밀크는 영국에 사는 일본 분이신데 정말 일본 특유의 스타일을 잘 살리는 보컬이거든요. 근데 이것도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서 그냥 진행했어요. (웃음) 보컬로 인해 곡이 많이 바뀐 노래죠.
최근 박명수 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디제잉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디제이로서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디제이는 장벽이 없는 직업인 것 같아요. 과감하게 얘기하면 그냥 노래를 트는 일이잖아요. (웃음) 연예인들이 아무래도 인지도가 있으니 디제이로서 이름을 알리기에는 수월한 편이겠죠. 하지만 디제이는 퍼포먼스나 선곡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으로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모델, 연예인 출신의 디제이를 안 좋게 볼 이유가 없어요. 예를 들어 저는 발매되지 않은 곡도 잘 틀거든요. 아비치(Avicii)도 현장만을 위해서 곡을 쓰고 일부러 발매를 안 하기도 해요. 그래야 현장에 가는 메리트가 생기는 거잖아요. 누가 하면 진짜고 다른 사람이 하면 가짜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당장 우리가 방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해서 트는 것도 일종의 디제잉이에요.
지난해 보아와 빈지노의 「노 매터 왓(No matter what)」 편곡, 종현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작, 편곡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이렇게 팝과 이디엠이 결합한 음악들이 대거 나오면서 장르적 대중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메인스트림과의 작업 소회가 궁금하네요.
그래서 좋아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 계신 A&R 관계자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음악 취향도 맞아 친해져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에스엠이 음악적으로 열려있는 곳이었어요. 제 색깔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는 게 재밌었죠. 그걸 계기로 종현 형과도 작업했는데 그 분도 굉장히 음악을 깊이, 많이 아세요. 문화를 얘기하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종현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도 그랬지만 임레이 씨의 곡에서는 우리 가요적 멜로디 진행,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에 힙합 말고도 주류의 가요도 즐겨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듣기는 했죠. 근데 어렸을 때는 제가 힙스터 부심 따위가 있어서 가요를 배제하고 진짜 음악을 듣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웃음) 어쩌다 보니 힙합과 이디엠 쪽 음악을 찾아 나선 것 같은데... 그래도 <뮤직뱅크>도 보고 빅뱅도 좋아하고 그랬죠.
보아, 종현에 이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친한 동생 중에 쿤디판다라는 래퍼가 있어요. 그 친구와 작업하기로 했어요. 유명인도 좋지만 아직 수면 위로 안 올라온 주변 친구들 음악을 큐레이팅 하고 싶더라구요. 진짜 다들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항상 커넥션이나 기회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본인들이 음악을 천천히 작업하는 것도 있고... 저만 듣기 아까워서 알리고 싶어요.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채널도 하나 만들까 생각하고 있고요.
올해는 기존의 이디엠 말고도 보컬 곡들도 많이 나올 거라고 하셨는데, 말씀하신 은둔 고수들을 만날 수 있겠네요.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곡들에 보컬이 한 명씩 붙어있어요. 아무래도 보컬이 없는 곡을 많이 쓰다 보니까 제 음악이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진 않구나 싶었어요. 목소리도 좀 들어가고 하면서 제가 기획한 완벽한 구조를 갖춘 음악을 만들어 보려고요. 아직 어리니까 이런 시행착오도 겪어야죠. (웃음)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제 노래를 틀었을 때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것만큼 기쁠 때가 없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거든요. 막상 클럽을 가거나 로컬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보면 신나는 노래 틀기에 바쁘고, 관객들도 분위기를 띄워주는 디제이를 치켜세워요. 작년에 페스티벌 다니면서 회의감도 들었죠. 제가 아직 노래가 많지는 않아서, 지금 제 디제잉 세트를 보면 다른 아티스트 음악들이 많이 있어요. 구상해왔던 무대를 내가 만들고 있는가, 보면 아닌 거죠. 근데 지난 가을 이후부터 제가 집에서 곡 작업에만 매달리니까 노래가 많이 쌓이더라고요. 이제는 반 이상 정도는 제 곡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요. 올해 조금만 더 준비하면 제가 생각하는 저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곡해온 곡보다 자신의 곡을 틀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 걸 보고 기뻤다는 얘기지요?
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제 옷을 입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뮤지션이 한국에도 있어야 이디엠 신이 좀 커졌다고 말할 텐데, 실제로는 판만 커지고 그에 합당한 뮤지션은 좀 부족한 판국이에요. 그런 뮤지션들이 최소한 10명은 있어야 한국에도 이런 뮤지션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과거에 비해 이디엠 신(scene)이 커졌다고 실감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디엠을 즐겨 듣는 층이 넓어진 것 같아요. 보통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에 가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아티스트들도 많이 오잖아요. 그런데도 노래를 다 따라 불러주시고, 라인업에 있는 디제이들의 음악을 미리 듣고 오세요. 요즘은 클럽에서도 내한 공연이 많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파티가 열리거든요. 소수 인원일 때도 있지만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다 알고 오시는지 매 주말 밤을 즐기시더라고요.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나중에는 정말 괜찮은 신으로 성장할 것 같아요. 노는 문화를 넘어서서 듣는 문화로요.
성장 추세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기반이 튼튼하다는 의미군요.
그렇죠. 아마 작년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을 거예요. 미국조차도 2012년도 즈음에 확 불이 붙었는걸요.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페스티벌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다른 디제이들과 비교해서 임레이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특히 음악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저처럼 실용음악과를 나온 디제이가 많이 없는데, 덕분에 체계적인 이론이 곡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으니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창작에 시간을 다 쏟아요. 보통 디제이들이 곡을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 쓰는 이유가 바쁜 스케줄 때문이거든요. 집에 있는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디제이와 프로듀서를 겸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반면에 저는 상주하고 있는 클럽도 없고, 바쁜 편도 아니에요. 이런 부분에서 클럽 디제이와 페스티벌 디제이는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디제이들이 너무 힘들게 일을 해요. 곡 쓸 시간도 없고, 창작 활동을 할 만큼 안정적인 생활패턴도 없으니까. 그 전에도 전 집돌이였긴 하지만.... 집에서 쉬고 먹고 자는 걸 좋아해요. 저도 '너드'입니다. (웃음)
하지만 디제이와 프로듀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고요. 구체적인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특히 디제이와 프로듀서가 갈려요. 클럽 문화를 좋아해서 디제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일렉트로닉 음악이 좋아서 프로듀싱을 시작한 사람도 있어요. 기반이 다른 거죠. 디제이들은 초점이 무대와 관객에 있기 때문에 좋은 선곡이 우선이에요. 프로듀서 역시 좋은 음악을 틀고 싶긴 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틀어서 알리자는 의식이 더 강해요.
그렇다면 현재 본인의 음악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랙은 무엇일까요.
「임프레스(Empress)」요. 무대에 서면 항상 첫 곡으로 틀어요.
이디엠 마니아나 팬들 사이에서 임레이 씨를 마데온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한 것을 비롯해서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사실 저도 마데온을 진짜 좋아했어요. 저만의 음악을 정립하면서 많이 들었던 아티스트는 플룸, 스크릴렉스였고요. 참, 스크릴렉스도 프로 너드예요! (웃음)
한편으로는 단번에 이목이 쏠려서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정도(正道)를 걷고 싶어요. 잘 가다가도 사람이 무너지잖아요. 어디로 흡수가 된다든가 본인의 음악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따라한다든가... 저는 디제이면서 프로듀서니까,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과는 별개로 제 작품은 잘 기획해서 제대로 만들려고요. (웃음) 사실 한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란 듯이 좀 더 독창적이고 특이한, 음악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있어요. 진짜 리스너들이 원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이즘의 공식 질문입니다. 지금의 임레이를 있게 한 음반 석 장을 꼽아주세요.
마데온 1집보단 그 전에 싱글 단위로 냈던 트랙들이 좋아요. 「이카루스(Icarus)」 정말 좋죠. 스크릴렉스의 <뱅가랑>(<Bangarang>)은 너무 유명하고. 데이비드 게타의 <나씽 벗 더 비트>(<Nothing But The Beat>)'는 저에게 1등 앨범이에요. 이디엠을 알게 되는 그 과정에 있던 앨범이고, 그래서 제일 와 닿았던 작품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아직 모르겠어요. 원래는 외국으로 나가서 투어를 돌고 싶었는데, 이건 지금 제 첫 번째 목표가 됐어요. 멀리 본다면 저도 프라이머리 씨처럼 제가 기획한 팝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해외에 디스클로저(Disclosure)나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가 있듯이 한국에는 프라이머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색깔로만 이루어져 있는 가요나 팝 앨범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 보컬 피처링이면 더 좋겠죠. 사실 입으로는 한국적, 동양적 하면서 외국 보컬만 쓰고 있으니 제가 봐도 이치에 안 맞는 것 같아요. 이게 한국의 음악이다, 라고 할 만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지금 케이팝 시장이 잘 형성 되고 있으니 또 하나의 케이팝으로 포장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사진 : 홍은솔
진행 : 김반야, 정민재, 정연경
정리 : 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