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후유증이 길면 길수록 좋다. 그러나 곱씹을만한 문장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건 좋지 못하다. 쭉 읽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문장이 있어야 눈에 콕 박힌다. 책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2005년 에세이스트로 첫 책을 출간, 9권의 에세이집, 3권의 소설, 1권의 여행서를 쓴 작가 임경선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아슬아슬한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정갈하다. 지난 2월, 임경선은 글 쓰고 먹고 사는 이야기를 담은 9번째 에세이 『자유로울 것』을 펴냈다. 1달 만에 2만 5천여 명의 독자가 공감했고 곳곳에 리뷰를 남겼다. 출판사는 작가 임경선의 애독자들을 선별해 작은 식사 모임을 가졌고, 작가는 독자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갔다. 오늘도 작가는 합정동 단골 카페 ‘커피발전소’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다.
임경선은 『자유로울 것』 23쪽에서 이같이 말했다. “솔직해짐으로써 타인의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미워할 것인가.” 그는 독자들에게 “가급적 전자였으면 좋겠다”며,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심플하게 솔직하자”고 했다. 출간 한 달이 지난 날, 작가에게 메일을 띄었다. 독자, 책, 작가, 자유, 태도에 대해 물었다. 성실한 작가는 답변을 요청한 날짜가 채 돌아오기 전, 답장을 보내왔다. 사족 없는 심플한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다. 가감 없이 답변을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에는 독자들이 화답해주시길 기대한다.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바람직하다
출간하자마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최근에 11쇄를 찍었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책을 사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보다 현실적인 감상으로는, 조금 시간을 들여 다음 소설작업을 할 수 있겠다,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책이라는 것이 잘 팔릴 때도 있고 덜 팔릴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한 데도 막상 책이 출간되면 과거에 낸 책들 이상으로 사랑 받기를 욕심 내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튼 하나 확실한 것은 기왕이면 덜 팔리는 것보다는 더 팔리는 것이 좋긴 좋습니다.
‘독자와의 만남’ 행사도 소규모로 열었어요. 오랜 독자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열 명이라는 오붓한 멤버가 모여 앉아 두 시간 넘도록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는 『자유로울 것』출간을 하면서 처음 경험했는데요, 다들 처음 만나서 같이 밥을 먹으니까 마치 쇼셜 다이닝에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신선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수줍기도 하면서 어느덧 밥을 다 먹어갈 즈음엔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친밀감에는 공간의 아늑한 조명과 맛있는 음식도 꽤 큰 역할을 차지하고요. 무엇보다도 열 분의 독자들이 일반적인 ‘강연회’나 ‘토크 콘서트’ 형식의 만남보다도 이 식사 모임에 뽑힌 것을 훨씬 더 기뻐해주셔서요. 저야 ‘접대’모드로 한 분 한 분 대화 상대가 돼 드리는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많이 기뻐하시는 독자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와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작은 규모의 행사이다 보니, 꾸준히 제 책을 읽어오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미 많이 파악을 하시고 오셔서 질문이나 대화의 주제들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솔직하고 본질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독자들을 만나면 좋은 기운을 받아간다”고 하셨어요. 독자들의 인생을 궁금해 하는 저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개별적인 독자의 인생이 궁금하다기보다는 제 책을 좋아해주시는 핵심 독자 분들의 프로파일을 짚고 넘어가는 정도랄까요. 제가 나이 들어가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독자층이 기본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데요.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층의 신규 독자층들을 유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남성 독자의 비중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크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독자는 ‘제 책을 함께 읽는 모녀 독자’입니다.
독자들과 소통을 꾸준히 하시는 편이시죠? 오랫동안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계시고요.
저는 평소에 말수도 별로 없고, 밖에서 만나는 사교모임은 거의 없습니다. 송년회도 한 건 정도예요. SNS를 통한 독자들과의 소통은 주로 트위터로 하는데, 트위터는 뉴스 등의 정보를 선별해서 얻기 위해, 그리고 내 취향의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위해 합니다. 물론 책이 출간되면 신간을 홍보하는 용도로도 활용하죠. 자연히 독자 분들이 팔로우를 많이 해오시는데 말을 걸어오시면 대개 답신을 드립니다. ‘소통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고요. 가령 외국에서 호젓한 길을 걷다가 반대쪽에서 어떤 사람이 미소 짓거나 인사를 건네며 지나간다면, 저 역시 눈을 마주치면서 웃거나 인사를 건네요. 말하자면 그런 자연스러운 ‘스침’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에요.
가끔은 좀 부담스러운 독자도 있을 것 같아요. 끊임없이 피드백을 원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자-독자 관계로 처음 알게 돼서 이제는 친한 사이가 된 것도 다섯 명도 채 안돼요. 기본적으로는 저자-독자 간에는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바람직한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질척한 것’만큼은 사양해요. 신비주의적(?)으로 독자들 앞에 일절 나타나지도 않고, SNS를 하더라도 자신의 신간을 홍보하는 것을 민망해하시는 작가 분들도 계시는데, 작가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자 분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독자’라는 정체성은 늘 유동적이니깐요. 그래서 독자의 많고 적음, 칭찬과 비판에 일희일비해서는 작가로서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독자 없이는 작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은 엄중한 진실이지요. 나만 읽는 글을 쓰는 것은 일기장일 뿐이니깐요.
천성적으로 자기포장을 하지 못합니다
작년에 <채널예스>에서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셨어요. 작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 하나로 ‘성실’을 꼽으셨는데요. 작가님 스스로 성실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객관적으로 성실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성실하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많이 듣는 편입니다. 꾸준히 성실하고 싶은 마음에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이라는 칼럼 제목을 일부러 붙인 부분이 있습니다. 간판에 걸맞게 생활 좀 해보려고요. 제가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는 부분은 차라리 성실함보다는 ‘일을 빨리 한다’와 ‘뜸들이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차분하고 스토익한 자기규율(자율성)’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 생활을 오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에서 체계를 잡아 꾸준히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성실함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칼럼 연재 당시, ‘남자 편집자’에 관한 글이 출판계에서 화제를 모았어요. 남자 편집자들이 좀 속상해했다는 후문이요. 책에도 편집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이제 막 책을 낸 저자에게 ‘편집자와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라고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아, 그랬나요?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주한 경험을 근거로 쓴 것이고 ‘싸잡아서’ 비난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책을 낸 저자 분께 편집자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 보통은 편집자의 의견이 옳으니 그를 따르는 것이 맞지만, 내가 끌려 다니거나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편집자나 출판사를 바꿔야 한다. 2. 가까워져도 공과 사를 구분해서 계속 좋은 의미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상대를 동등한 파트너로서 존중해야 한다. 3. 편집자가 소속 출판사에서 퇴사하고 1인출판사를 창업한다고 해서 ‘의리’나 ‘친분’을 이유로 출판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4. 자신과 서로 윈윈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유능한’ 편집자를 찾아 가급적 오래도록 같이 일하는 게 좋다. 팀워크는 너무나 중요하니까. 5. 책의 표지디자인과 제목의 선정은 기본적으로 출판사에게 권리가 있지만 저자로서도 자신의 의견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보다 나은 결과물이 나오도록 애써야 한다.
에세이는 솔직하지 않으면 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자기검열’은 꼭 필요하죠. 작가님은 솔직함의 정도를 어떻게 조절하려고 하시나요?
외국(주로 서양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 ‘솔직하다’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당연히 솔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니깐요. 자기표현이나 주장을 절제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더 중시하는 한국이나 일본 문화에서나 ‘솔직함’이 하나의 성격 묘사로 간주되곤 하지요. 외국에서 오래 산 저로서는 그래서 ‘솔직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마다 갸우뚱하곤 합니다. 그냥 나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고 천성적으로 자기포장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굳이 ‘자기검열’을 한다고 한다면 구체적인 실명이 에세이 속에 등장한다면 사전에 그 분께 허락 받고 누군가가 나의 글로 인해 불필요한 상처를 받을 우려가 있다면 편집자와 재차 상의합니다. 나의 솔직함이 타인을 상처 입히면 안되겠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그것이 저를 상처 입힐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타인과 연애(사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전작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에도 썼지만 ‘관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가 날아들어올 수 있게 활짝 열려있는 것,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사랑한다면 기꺼이 상처받을 가능성을 끌어안는 것, 상대의 사랑이 먼저 식어버린다 해도 스스로를 피해자, 상대를 가해자라고 단정짓지 않을 성숙함, 나에게 찾아온 그 어떤 사랑이라도 그 사랑 자체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요.
스스로도 좀 불가사의한 기분입니다
개정판을 포함해 14권의 책을 내셨어요. 덜 팔린, 덜 주목 받은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특별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가장 아픈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내 작업의 페이스메이커’라고 하신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일까요?
가장 덜 팔린 책은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였지만 동시에 그 책은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덜 팔렸다고 해서 반드시 가장 아픈 것이 아니더라고요. 가장 아픈 책은 차라리 첫 책이었던 『러브 패러독스』였습니다. 출판사에서 만든 커버시안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반론을 제기해서 수정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고, 체감상 꽤 판매가 많이 된 것으로 느꼈지만 판매수량이나 인세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이리저리 캐묻고 따질 수 있을 만큼 저자로서 권리 챙기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했고요.
『자유로울 것』 208쪽에 “책 추천 요청만큼은 웬만하면 하지 말아주기를”이라고 하셨어요.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또 요청할지도 모를 것 같은데요. 최근에 재밌게 읽은 신간 2권만 소개해주신다면요?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과 줌파 라히리의 에세이 『The Clothing of Books』(국내번역본 3월말 출간 예정)입니다. 전자는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데 점점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스릴감이 일품이었고 후자는 ‘내용이 아닌 표지로 판단 받는 책’의 억울함을 자신이 시각적으로 백인들 사이에서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경험에 비유하면서 풀어낸 부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독서의 폭이 좀 좁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좀 좁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앞으로 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볼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영화 <컨택트>를 감명 깊게 보고 테드 창의 원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SF소설을 읽은 셈인데요, 휴머니티가 가미된 SF물이라면 향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아름답고 슬프지만 담백한 문체로 쓰인 소설,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이거나 위트 넘치는 에세이를 선호하는 취향에는 큰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독립출판물을 또 내볼 계획은 없으신가요?
몇 달 전에 독립출판물 출판을 위해 등록해둔 ‘마틸다’출판사를 폐업 신고한 것을 보면 당분간은 낼 계획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번 『임경선의 도쿄』때 저희 집 안방 침대 옆에 책 2,000부를 쌓아놓고(정말 어마어마한 산더미였습니다) 매일 아침 택배박스를 싸서 서점 등에 보내곤 했는데, 이젠 체력적으로 그 육체노동이 힘들 것 같습니다(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역시 유능한 편집자와 조율해가면서 책을 만드는 일이 더 제게도 보탬이 될 것 같고요.
후속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교토’에 관한 서정적인 에세이입니다. 대략 8월 중에 나올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건 내년에 나올 수 있겠지요.
지인 분께서, “네가 아프지 않아도 너는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하셨다고요. 작가가 되지 않은 삶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 지인은 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절친한 친구였고 워낙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많아서 더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저는 작가가 되지 않은 삶이 상상이 얼마든지 되고요. 아마 회사에 계속 다녔겠죠. 운이 좀 따랐다면 개인방 하나 얻었을 테고요. 오히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라는 게 스스로도 좀 불가사의한 기분입니다.
‘OO에 관하여’라는 책을 또 낸다면, ‘태도’ 말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좋아하는 ‘정서’에 관하여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실제로 다음 책 제목이 ‘정서에 관하여’가 될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이 제목은 제가 미리 이 자리에서 찜 해놓기로 합니다(웃음).
소설가 임경선으로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요?
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입니다. 각각의 인물 묘사가 섬세하고, 이야기는 깊고 아름답고 슬픈데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체는 담담하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게 되지만, 그것은 결국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고로 각각의 등장인물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애정이 가게 됩니다. 제가 소설에서 꼽는 매력적인 요소를 한데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혹은 쉽게 말씀 드린다면, 저는 아픔이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습니다.
개인주의자 임경선으로서의 앞으로의 꿈, 소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개인에 관해서는 56kg 체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더 이상 갑상선암 재발 수술을 받을 일이 없을 것. 하나 더 욕심 낸다면 사랑하는 딸아이가 매력적인 사춘기소녀로 커가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마무리로 보탠다면, 남편의 탈모 증상이 극적으로 완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질문을 하나를 건넬 수 있다면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종이책을 즐겨 읽는 독자 분들은 ‘웹 소설’도 읽으시나요? 아니면 둘은 다른 유형의 독자들이신가요?" (남자 독자 분들께) 남자독자 분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작가가 쓴 작품들을 잘 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요? 반대로 여성작가가 쓴 작품(소설/에세이)을 종종 읽으신다면 그 이유(혹은 동기)는 무엇인지요?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을 때(장바구니에서 제외시킴) 보통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제 ‘이 책을 사기엔 돈이 좀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자유로울 것임경선 저 | 예담
『자유로울 것』은 사랑에 대한, 그리고 글 쓰며 먹고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일하며 ‘잘’ 살아가는 여성 롤모델을 찾기 힘든 요즘, 그의 삶과 생각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범접할 수 없는 누구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멀기만 한 경험담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체화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