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시대적 문제가 응축된 가족이 있을까. 최태민 씨의 의붓아들이자 일명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 조순제 씨의 아들 조용래 씨가 기록한 최 씨와 조 씨 일가,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다룬 책 『또 하나의 가족』을 읽은 감상이다.
먼저 중심에 최태민 씨의 부인이자 최순실 씨의 모친이기도 한 임선이 씨가 있다. 임선이 씨의 손자이기도 한 조용래 씨는 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최 씨 일가가 임선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의 가족 형태로 유지되기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할머니의 카리스마, 영향력 같은 것들이 최 씨 일가를 구성하는 핵심이거든요.”
돈에 대한 강렬한 임선이 씨의 집착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 같은 관계였던 최태민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관계에 가담하고 사적 이득을 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상 생활에 관한 소소하고 민감한 모든 것을 관리했으며 그중 일부는 며느리 김경옥에게 시키”기도 하면서 돈 관리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 당시 운동원들에게 두둑히 돈을 챙겨준 것도 임선이 씨였다. 그리고 끝내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기막힌 사태의 씨앗이 되었다.
일찍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을 한 눈에 알아본 최태민 씨는 “누구도 박근혜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기를 쓰며 차단”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그가 남긴 돈을 조순제 씨를 이용해 옮겨오기도 했으니 이 ‘또 하나의 가족’이 저지른 부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조차 힘이 든다.
조용래 씨는 자신의 기록이 새로운 변화에 단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완성했다. 가족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므로 남기고, 말했다. 아버지가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형편이 넉넉해졌다가 가족들로부터 배제당하며 몰락했던 집안의 경험을 말하며 이를 거울 삼아 우리 사회가 지난 세대의 부정의 고리를 끊어내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만 닿는다면 얼마든지 최순실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만 이 사회가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용래 씨는 여러 번 강조했다.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제목의 의미를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에요. 제목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대통령과 가족이 된다는 것,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데 권력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봤어요.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부정부패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죠.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인데요. 다른 하나는 저희 조 씨 집안과 최 씨 집안이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는 점이 있어요. 최 씨 일가와 박근혜 씨와의 관계 역시 분리하기 어려운, 가족적인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들을 모두 포함해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앞부분에 실은 가계도에서도 조 씨 일가와 최 씨 일가,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죠.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요. 특별한 권력과 가까워지는 과정의 시작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제가 파헤쳐보고 싶었던 거예요.
“훗날 벌어지게 될 비극적인 사태는 바로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어요. 임선이 씨를 주목해서 일련의 일들을 읽으면 많은 부분 이해가 됩니다.
그게 제가 발견한 부분이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보아 왔잖아요. 최 씨 일가가 임선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의 가족 형태로 유지되기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할머니의 카리스마, 영향력 같은 것들이 최 씨 일가를 구성하는 핵심이거든요. 돈 문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말이죠. 할머니를 굳이 악의 몸통이라고까지 표현한 부분은 아버지(조순제)를 통해 전해 들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버님 조순제 씨는 할머니 임선이 씨를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돈에 관한 한 참 억척스러운 사람이었어요. 돈에 대한 집착이 강력했어요. 그렇게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던 현실이 있었죠. 워낙 가난했고요. 할머니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정도였으니까요. 글은 몰랐던 반면 숫자에는 굉장히 밝았던 거죠.
최태민이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동안 임선이는 딸 넷과 전처들의 자식 셋을 같이 키워야 했다. 지독한 계모라는 말과 함께 독한 일수쟁이라는 말도 들었다.(중략) 하루나 이틀까지는 기다려 주었지만 그나마도 사흘째 날에는 가차 없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영천시장과 중림시장에서 임선이가 올라가 앉지 않은 방앗간 기계가 없었다. 빌린 돈을 갚기 전에는 기계를 아예 못 돌리게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32-33쪽)
임선이 씨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 최태민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의 역삼동 집에서 밀회를 나누던 장면이 나와요. 돈과 권력에 민감한 임선이 씨의 면모를 엿볼 수 있죠.
밀회라는 것은,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집안 분위기 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집안에 종교적인 특별함이 있거든요. 실체가 어떤 종교인지는 명확하게 보여드릴 수 없지만 종교적인 연대나 신뢰가 박근혜 씨와 최태민 씨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어요. 종교적 신뢰와 연대감이 굳건했다는 건 분명해 보여요. 주문을 외운다거나 하는 특별한 종교의식도 그 집안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고요. 모든 관계는 그런 종교적인 신념으로부터 시작된 거라고 보고 있어요.
“박근혜와 최태민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라고도 표현하고 있잖아요.
서로에게 그랬다고 봐야 해요. 굉장히 깊은 존경과 존중, 예의가 철저했어요. 정말로 떠받들었어요. 그게 낯설지 않았죠. 왕족이 없는 시대지만 사실상 왕가, 왕녀로 대우를 하셨던 거고요. 저희 할머니나 어머니(김경옥 씨) 모두 마찬가지로 아주 착한 백성이 절대 군주를 모시는, 그런 풍경이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거예요. 내가 내 권력을 위임하고 나는 백성이 되는 시대는 끝이 났어요. 새로운 시대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깊은 내막까지 전부 들춰봐서 철저하게 감시하는 현명한 시민들의 세상이라는 거죠. 이것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시민과 권력자 사이에 경계는 없다는 거고요. 저는 50대가 됐어요. 어머니는 80대시고요. 자식 세대는 20대잖아요. 딱 중간에서 보면 다음 시대가 가야 할 모습이 이것이라는 게 보여요.
부정부패를 이야기해야 한다
시민들이 대통령을 군주라고 여기지 않은지는 꽤 됐습니다. 80년대 민주화 항쟁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할머니만 해도 1920년대에 태어나셨으니까요. 그 시대 분들이죠. 저희 어머니는 1940년대에 태어나셨고요. 이분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를 겪었어요. 사실 우리가 왕정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잖아요. 일본에게 빼앗긴 왕을 회복하고 싶은 감성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박정희가 강력하게 독재를 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요. 박정희를 잃었을 때 여전히 잃어버린 왕을 또 기다린 백성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와 그런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분들이 주변에도 참 많아요.
저희 어머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세요. 안타까워하시고요. 저는 그렇다고 비판하고 싶진 않아요. 그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광화문 가서 저는 촛불집회 가고, 어머니는 태극기집회 가고 그랬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시대를, 저는 지금 시대를 사는 건데요. 이것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이죠.
결론은 부정부패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책 전체에서 단어 하나만 남기고 다 지우라고 한다면 부정부패 하나만 남기고 싶어요. 그 시대가 그렇게 부패했고, 그게 지금까지 그대로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치명적인 건 과거의 부정부패가 지금은 아주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는 거죠. 그 문제가 이 책의 본질이에요.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서 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사태로 인해 부정부패를 타파할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건가요?
저는 과거와 단절이 있을 거라고 봐요. 이 상황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못 받아들이잖아요. 이게 건강한, 새로운 사회로 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시대가 이렇게 열린다, 저는 이렇게 봐요. 홍콩 생활을 2년 정도 했는데요. 홍콩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과거 홍콩의 모습은 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된 데에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홍콩의 반부패 수사 기구)’라는 수사처가 있었던 거예요. 염정공서가 생긴 지 십 년 만에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어요. 그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런 변화는 우리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한 단어만 남긴다면 부정부패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책을 쓰시면서 이 책이 부정부패 척결에 어떤 기여를 할 거라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차근차근 그쪽에 가까워졌는지를 보고 자랐잖아요. 생생해요. 집안이 조금씩 나아졌어요. 나중에는 몰락을 했죠. 이 과정 자체가 부정부패의 모습이에요. 또한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가족이 해체되는 풍경은 여느 집과 비슷하죠. 제 친구들 중에도 많거든요. 형제 사이에도 탐욕과 욕심이 작용해요. 이게 나라의 큰 부정부패에도 작용한다는 걸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저희 집안에는 그게 다 응축되어 있는 거예요. 그것들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결시켜 본 거예요. 시대별 흐름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요. 가족의 치부를 다 드러내야 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굉장히 짧은 시간 써낸 책이에요. 이 책에는 많이 못 담았고요. 못 담은 이야기들이 되게 많아요. 처음에는 마땅한 방식을 찾지 못해 소설 형태로 썼거든요. 최종까지 변화를 많이 겪었죠. 그 과정에서 덜어내야 했던 얘기들이 있는데요. 그 이야기들은 좀 더 정리를 해보려고 해요.
특히 제 아래 세대들은 그들이 진짜 건강하고 현명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중간에 있는 세대로서 새로운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세대의 부패를 버려야죠. 앞으로 이런 게 또 반복될 수는 없을 거예요. 확신이 있어요.
덜어낸 이야기는 다른 책으로 낸단 말씀이시죠?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가족 내부의 대화와 생활상, 평범한 여느 집에나 있는 풍경이 여기도 있었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처음에는 비극적이지 않았다는 건데요. 지금은 완전히 비극이죠. 각 과정마다 다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남겨 놓으면 기록으로써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다 그 시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아픈 치부를 더 드러내야죠.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겠죠. 그러나 건강한 가족이 되는 방법이 건강한 나라가 되는 방법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탐욕과 욕심을 스스로 얼마나 절제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안이 대표적으로 해체된 집안이니까요.
모두 부끄러운 과거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홍콩에서 지낼 때인데요. 퇴근 후에 자려고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아버지 음성이 나오는 거예요.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실은 최순실이라는 기사를 일부러 안 봤어요. 심정이 복잡해지더라고요. 저 문제가 내 문제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아버지가 더 악착 같이 권력을 도모했다면 다 제 문제일 수 있잖아요. 그게 너무 불편해서 최순실과 관련된 뉴스는 외면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주체가 안 되더라고요. 그때 뭘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아버지 목소리가 매일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진실을 더 남겨야겠다, 생각을 한 거예요. 여과 없이 날 것으로 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보여주면 역사에 진실이 좀 남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일이 터졌을 때,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뉴스에 나올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느낌이 있었어요. 단순히 뉴스 한 줄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게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통령 탄핵까지 예상한 건 아닌데요. 최순실 문제만큼은 다 밝혀지겠구나 직감을 했죠. 멈출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것은 곁에서 직접 보아왔던 그 사람들의 성격이나 생활을 알았기 때문인가요?
그들이 한 부정부패가 보통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엄청나다는 걸 직감했던 거예요. 심지어 지금 (최순실 씨가)감옥에 있지만 이 정도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더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있어요. 뭔가 더 깊은 부패가 있을 거라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어요.
해명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나요? 가령 아버지 조순제 씨에 대해서라든지 말이죠.
아니요, 아버지가 관여한 일들이 다 부정한 일들이잖아요.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슬퍼하셨던 것, 괴로워하셨던 것은 제게 각인된 풍경들인데요. 거기에 대한 회한이 조금은 있어서 그것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정치인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고, 뒤에 숨어서 했던 일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는데요. 자기가 했던 일이 정당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에 대한 후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자기를 모른다고 부정하는 박근혜 씨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죠. 심지어 녹취에 참여했던 40년 지기도 조순제를 모른다, 녹취에 참여하지 않았다, 했거든요. 권력에 가까울 때는 다 가까운 척 했던 사람들이 그런 거예요. 더 슬프죠. 저는 아버지의 슬픔은 많이 이해하는 편이에요.
권력과의 거리에 따라 체감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상처였군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최순실이에요. 대통령이 특별히 내 의견에 귀 기울여주는데 누가 싫겠느냐고요. 미래의 최순실이 생기지 않으려면 최순실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고 도덕성이랄까 하는 관념을 조금씩 기준 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아버지 조순제 씨가 “너무 더러운 물에 사는 물고기는 어느새 혼탁한 물에 익숙해져 갑자기 깨끗한 물을 넣어주면 죽어버린다. 그때 상황이 꼭 그런 혼탁한 물과 그런 물에 익숙한 물고기들 천지였다.”라고 했었죠.
아버지도 그런 일인 줄 알면서도 했죠. 익숙해져서 했고, 반쯤은 어쩔 수 없이 반쯤은 따라서 했고, 욕심도 부렸던 거죠. 이제 와 아버지가 배제당하고 물려받은 것 없다고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다 부끄러운 과거니까 부끄러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남겨두는 것, 그것에만 의미를 두면 이것을 보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걸 보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전체 내용 중 저자와 직접 연관이 있었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영남대 입학 비리 사건이에요. 그때 기억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서울에 살았어요. 그곳까지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어쩌다보니 그랬어요. 부정부패의 결과죠.
그 장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비리와 권력을 비판하는 쪽으로 흘러가던 시기였잖아요. 그때 역시 기회가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결국 전부 뿌리 뽑지는 못했어요. 그런 장면을 지금 다시 지켜보고 반면교사 삼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본문에 있는 내용인데 굳이 저자 소개에 가져온 거예요. 저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그러면 책 쓰는 의미가 없으니까 창피한 것을 진실로 남기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그걸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못 하시고 슬프게 돌아가셨잖아요. 허망하게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그렇게 죽기 싫어요. 내가 죽을 때는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죽고 싶지 않아요. 지금 좀 창피한 게 낫죠. 창피하게 살아도 창피하다고 얘기하고,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죽을 때는 마음 편하게 죽고 싶어요. 자식 세대에 부끄럽다는 마음 없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그러시는 걸 봤기 때문에요.
이번 사건을 쭉 지켜보면서 가까이 있던 입장에서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나요?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솔직히 저런 풍경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상한 이야기인데 아버지도 그러셨었거든요. 시키는 대로 말 한 마디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하는 바보다, 이런 이야기는 옛날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여서 이상하지도 않았어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아버지를 모른다고 한 이전과 이후에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의 풍경은 너무나 달라요. 그때 이야기가 의미가 있는 이야기죠. 돌이켜보니 이건 잘못됐다, 내 인생이 잘못됐다, 생각한 계기도 당시 박근혜에게 부정을 당하면서부터였으니까요. 더구나 아버지는 박근혜 씨가 거짓말했다는 것만으로 폭발했던 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친구들, 지인들 반응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잖아요. 그 사람들이 아버지를 의심하는 거예요. 저렇게 대놓고 모른다고 할 정도면 뒤로 뭘 좀 받았겠지, 입 닦았겠느냐, 이게 치명적이었어요.
그때는 이미 투병 중이셨죠?
2007년 4월에 이미 6개월 선고를 받았으니까 절반이 지나서 3개월 밖에 안 남았을 시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뭘 하시겠다고 하니 걱정이었죠. 실은 겁도 났고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대놓고 폭로하면 무사할까,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쓰신 진정서 초안을 보고 막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때도 그 폭로가 묻혀버렸죠.
최순실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쯤이 되어서 나온 거예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서 실체가 보일 때쯤이죠. 십 년이 걸렸는데요. 결국 그렇게 될 게 뻔히 보였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을 정도인데 당사자들은 아니었잖아요. 처음에 그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시종 모르쇠로 일관했었죠.
적응 됐을 거예요. 마인드 세팅이 그렇게 됐을 거예요. 거기에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들 의미가 없죠. 기대를 했어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정도 해주면 좋았겠다고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보잖아요. 그렇게 만든 사람, 대통령 자리까지 올려준 사람, 다 미안해할 일인데 아직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대통령이 미안하단 말 한 마디를 해주면 좋았겠는데 아직도 저러시니, 답답하기는 하죠.
조순제 녹취록에 다 있다
책 작업을 하며 새롭게 하게 된 생각도 있었나요? 의외의 발견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부정부패에 대한 부분은 시작부터 갖고 있었고요.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초고 원고 분량이 많았는데 양을 줄이고 흐름만 보여주는 걸로 정리를 했죠. 솔직히 말씀 드리면 본문을 안 읽어도 예민하게 보는 사람들은 녹취록만 봐도 다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거기 다 있어요. 왜 단어를 그렇게 추상적으로 쓰면서도 사실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죠. 아버지의 말투를 저는 알잖아요. 그걸 아는 입장에서 읽으면 완벽해요. 다 있어요. 진정서에도 이미 ‘공유’,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를 다 쓰셨거든요. 아버지 불쌍해서 쓰긴 썼지만 자랑스러운 건 아니니까 씁쓸하죠. 자랑스러운 가족도 아니고요. 어찌 보면 지탄 받는 집안이잖아요.
그런가하면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 언론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사람들이 책을 과거의 기록으로 더 많이 읽었으면 해요. 이것 하나가 기회가 되어서 부정부패가 이렇게 진화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면 다음 시대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헌법 재판소 판결문 전문을 백 번 넘게 읽었어요. 딱 한 문장만 건지면 되겠더라고요. ‘좌우의 이념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부정부패, 그게 이 책과 맞닿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독자 분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탄핵 백 번 해도 안 바뀌려면 안 바뀌어요. 그런데 한 번으로도 바뀔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핵심은 과거 청산이겠네요.
네, 청산이에요. 제게는 고모들 기억이 너무 많아요. 좋았던 기억 많죠. 최순실 고모가 저 데리고 제주도 여행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했거든요. 귀여움 많이 받은 조카예요. 최순득 고모가 겨울에 스키장도 많이 데려가고요. 그런 가족이 이렇게 돈에 의해 해체되었죠. 할머니가 그렇게 만든 거고요. 돈이 많아 불행한 가족이죠.
또 하나의 가족조용래 저 | 모던아카이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최순실 게이트. 10년 전 이미 이런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한 사람이 있다. 바로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 『또 하나의 가족』은 조순제의 아들 조용래가 아버지 조순제와, 장기간 박근혜의 집사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태민ㆍ임선이ㆍ박근혜의 68년 역사를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