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예술의 독창적인 길을 걸어오고 있는 작가 김영희. 1992년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녀는 이후에도 『뮌헨의 노란 민들레』, 『눈이 작은 아이들』, 『책 읽어주는 엄마』등으로 독자들과 만나왔다. 그녀가 펴낸 책을 살펴보면 유독 아이들 이야기가 많다. 제목만 봐도 ‘아이, 엄마’라는 단어가 눈에 자주 띈다. 인형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독일뿐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70여 차례 전시회를 열며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녀이지만, ‘작가 김영희’ 앞에는 늘 ‘엄마’라는 타이틀이 먼저였다.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아서일까, 14세 연하의 독일 남자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김영희는 온전히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작가 김영희’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리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드디어 ‘엄마 졸업’을 선언했다.
엄마를 졸업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여자로서의 책임을 벗은 이 시절이 찬란하게 내 앞에 다가온 것이 꿈만 같습니다. 집안일에 대한 부담도,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초조함도 버리고, 안간힘을 쓰며 달려온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함으로써 새 출발을 한 것이니까요.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날개를 달고 세상에 날아다니는 기분입니다. 이제야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지요. 진정한 여성으로, 또 진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 나를 거울에 비추어 보며 ‘아 아름답다!’ 거침없이 외칩니다. 그렇게 외치고 나면, 얼기설기 짜인 지난 세월도 비단결처럼 햇빛 속에 찬란히 빛나고, 다가올 미래는 더욱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 ||
김영희는 닥종이인형작가라는 타이틀 뒤에 다섯 아이의 엄마로, 14살 연하의 독일인 남편과의 두 번째 결혼으로 유명하다. 사별 후, 아이 셋을 데리고 독일행을 감행한 용감한 여자 김영희. 그녀는 유진, 윤수, 장수, 봄누리, 프란츠의 엄마로, 어린 남편의 아내로 긴 시간을 보냈다. 신작 『엄마를 졸업하다』를 읽으면, 그간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남편 토마스와의 결별도 담담히 고백한다. “싱글벙글 늘 즐거운 대학교 2학년생 큰 소년은 남편이라는 명패를 달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라는 자리에 설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작가는 본연에 들어갈 수 있는 직업 아니겠어요. 순수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죠. 세 명의 아이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했어요. 글을 쓴다면 보통 자랑을 하고 싶죠. 나의 성공, 자녀의 성공, 그리고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게 그 뿐 만이겠어요? 슬픈 일도 많고 괴로운 일도 많죠. 그게 인간이죠. 힘든 건 힘들 일로, 어려웠던 건 어려웠던 일로 포장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화장 안 한 인간 김영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처음에는 껄끄러워도 나중에는 더 쉬워요. 깨끗해져요. 속임수라면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어요. 남들이 몰락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몰락할 수밖에 없죠.”
그녀는 책을 통해 다섯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파산한 기업의 법정관리 전문 변호사로 성공한 큰딸 유진, 사설 음악학교를 운영하며 나름의 예술 영역을 개척해 가는 윤수, 자연의학 전문가를 준비하고 있는 장수, 미혼모가 된 봄누리, 마흔 넘어 낳은 늦둥이 프란츠까지. 일찍이 철이 들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부터 어느덧 장성해서 손자를 안겨주며 할머니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삶을 기록했다.
“며느리나 딸이 아기 봐달라는 말을 못 하게 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비법을 들은 적이 있어요. 자신이 입에 넣고 씹은 음식을 손자에게 먹이기, 방 닦던 걸레로 손자의 입과 코를 쓱 닦아 주기(웃음). 그러면 다시는 아기 봐달라는 소리를 안 한다는 거였죠. 저 역시, 다섯 아이를 키웠으니 아이 보는 걸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즘 달라졌어요. 가끔 손자를 보면서, ‘내가 이 기회에 많이 배운다’고 생각해요. 감동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아이들이 제게 던져 주기 때문이에요.”
“할머니, 저 꽃 좀 봐”, “할머니, 저 오리 둘은 싸웠나 봐”라며 손자가 소리칠 때, 그녀는 아이들의 어릴 적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힘과 상상력을 주었나.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호기심, 그 많은 시어와 동화들이 나의 예술적 나래를 펼쳐 준 것은 아닐까’하고.
“안정된 서울의 삶을 버리고 독일로 떠날 때,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한국에 다시 오지 않는다. 독일에서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절대 서울에 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운명이면 살아남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을 주는 것만 것 과연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요. 엄마로서 좋은 것만 해주고 싶지만 결국 아이의 인생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아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더 잘되는 경우가 많듯이, 중요한 건 바탕이 활발하고 아이디어가 많고 어떤 일에도 겁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용기에요. 많은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건, ‘운명이라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받아들여야 행복해져요.”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감사한다
“사실 두 번의 결혼 상대 모두 내가 꿈꾸던 남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 엄숙한 약속인 결혼을 두 번이나 했던가? 첫 번째 결혼 상대는 사별했으므로, 그 운명이 오지 않았다면 그와 영원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같이 살았을 것이다. 나는 남자의 칭찬에 약해서, 그 청혼을 거절하면 기회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뛰어난 미인인 내 친구가 바람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보고 나는 운명의 틀 안에서 잘 살고 싶었다. 이렇게 글로 자화상을 스케치하다 보니, 운명 탓으로 돌리며 합리화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에 감사한다.”(p.137) | ||
“헤어져야 할 때가 돼서 헤어진 거죠. 헤어져야 더 행복하다면 그게 맞는 거죠. 독일은 여자들이 이혼을 하면 우울증에 빠져서 밥을 많이 먹어서 뚱뚱해져요. 겉으로는 쿨한 척 하면서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하죠. 하지만 상처를 받아요. 항상 찌꺼기가 남아서 힘들어해요. 상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질투하고 궁금해하죠. 전 한국식이에요.”
늙으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여자
“요즘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 주름진 부분보다 주름 없는 부분을 먼저 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대신 가진 것을 확인하며 행복을 찾자’라는 것이 내 평생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장수가 내게 말했다. “엄마, 늙으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여자가 있어. 그 주름살이 마치 산하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존경스러웠어요.” 그래서 나는 주름을 사랑하기로 했다.”(p.148) | ||
“어머니가 억세게 일만 하며 나들이 한 번 안 다니셨지만, 한 번씩 옷을 장만해 장롱에 가득하게 채우셨어요.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제일 먼저 천을 내밀면서 ‘입성이 똑발라야 한다. 좀 갖추고 다녀라’면서 멋지고 아름다운 천을 골라주셨죠. 그런 어머니에게 배워서 그런지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이미 유럽에서는 고가의 명품 옷은 흥미가 떨어진 지 오래다. 아시아 관광객들이 명품 옷을 싹쓸이하여 가방 그득 담고 있는 것을 보면, 독일인들은 부러움이 아니라 조소를 보낸다. 독일인은 옷 한 벌 장만할 때도 심사숙고해서 지출을 하고 디자인도 심각하게 본다.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는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아들 장수가 한동안 제 전속 디자이너가 되어준 적이 있어요. 함께 천을 고르고 저만을 위한 디자인을 스케치해줬죠. 동양적인 것을 선호해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디자인을 접고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제 호강은 끝이 났죠(웃음).”
독일 뮌헨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여성들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외국 사람들은 그녀에게 “한국 사람들이 더 서양인 같아”라며 큰 눈과 높은 코에 호기심을 갖는다. 오랫동안 짧은 생머리와 짙은 아이라인을 고수하고 있는 김영희에게 한국 여성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자기만족으로 살아야 콤플렉스가 없잖아요. 성형에 대해 반대하진 않아요. 늙은 사람들이 주름살 때문에 우울하면 지워야죠. 다만 전 화가니까 내추럴한 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의사들이 말하길 ‘피부에서 인텔리전트가 드러난다’고 해요. 주름을 인공적으로 지워버리면, 그 안에 담긴 세월의 깊이도 지워지는 거죠. 난 실력이 있고 경험이 있는데 없어져 버리는 거죠. 전 성형수술 할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겠어요.”
중년의 우울증에는 산책이 최고라고 한다. 그녀는 단출한 옷차림으로 동네 산책을 나갈 때, 행복을 느낀다. 꽃을 볼 때는 꽃이 너무 아름다워 행복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기분이 좋아져 행복하다. 순간순간의 일상에 몰입하니, 세상만사가 없다.
“큰 아들 윤수에게 초대받아 음악회에 가면 그는 늘 첫마디를 이렇게 던진다. “엄마, 예쁘네.” 집에서 늘 보던 ‘노동자’의 변신이 경이로운가 보다. “…예쁘기는.” 멋쩍게 대답하지만 예쁘다는 그의 말을 나는 정말로 믿는다.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만큼 사는 동안 남에게 상처 주는 말 삼가며 살았고, 일부 유명인사들처럼 돈 욕심, 권력 욕심, 정욕을 자제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일도 없었으니 이만하면 제법 잘 살아온 것 아닌가? 또 어린 것들 세상에 떨어뜨려놓고 밥 안 굶기고 키웠으니 장하고 아름다운 여자 아닌가? 늙으면 그 세월이 거울에 비치는 것은 물론 마음에도 나타난다는데, 나는 내 칭찬거리를 무궁무진하게 찾아 속속 꺼내 보며 행복해한다. 예쁜 꽃만 뽑아 꽃바구니를 만들 듯 그동안 잘한 일들만 뽑아서 내 마음의 방을 한껏 장식한다.”(p.179) | ||
12월 25일까지 부산 수가화랑에서 ‘김영희 회화와 종이 조형전’을 열고 그녀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졸업하고 엄마도 졸업했으니,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물으니, “한국에 올 때마다, 여기서 그냥 살아 버릴까?”고민한단다.
“아줌마들이 김장하는 모습을 볼 때, 부산의 복국이 생각날 때,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을 때마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화실이 내 고향인데, 창고에 있는 작품들을 다 옮길 수가 없어요. 부수적인 것에 신경을 쓰다 보면 본업에 소홀해지잖아요. 이제 엄마를 졸업했으니 작가 김영희에게 더 충실해야죠. 한국은 이제 오고 싶을 때, 마음대로 올래요.”
‘오늘이 가장 맛있는 날’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작가 김영희. ‘아 많이 늙었구나’가 아니라 ‘아! 나는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인간 김영희. 그녀의 앞길이 또 다시 궁금해진다.
그녀의 서재엔 무엇이 있을까?
- 엄마를 졸업하다김영희 저 | 샘터
집안일에 대한 부담도,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 초조함도 버리고, 안간힘을 쓰며 달려온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한 '여자' 김영희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백한 에세이로 출간되었다. 일흔의 여울에 쓰여진 글들은 솔직하고 가을볕을 받아 오히려 뜨겁게 느껴진다. 유진, 윤수, 장수, 본누리, 프란츠… 그녀의 다섯 아이들은 어느 새 변호사, 예술가, 자연의학 전문가 등으로 무럭무럭 자라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빛나는 청춘을 보여줌과 동시에 마음이 아린 자신의 속앓이 역시 솔직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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